가족 위해 산다면서 정작 가족으로부터 소외
가족 위해 산다면서 정작 가족으로부터 소외
  • 하승립 기자
  • 승인 2015.07.10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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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팔아 자식 주고 낙향하겠다는 게 노후 계획?
가족 올인’ 일에만 빠져 사는 가장들의 슬픈 자화상
우리 시대의 노동, 노동자 ② 노동자와 가족

본격적인 산업화가 시작되던 1960년대, 고향의 아들딸들은 먹고 살기 위해 도시로 나갔다. 농사짓는 것만으로는 가난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었던 그들은 도시에서 임금 노동자가 되었다. ‘돈 벌어서’로 대표되는 성공을 통해서 우리 집안을 일으키겠다던 그 아들딸들이 자라 부모가 되었다.

‘부모가 된 아들딸’들은 가정을 이루었다. 이제 이들의 목표는 ‘내 아들딸의 성공’으로 바뀌었다. 자신은 이루지 못한 꿈을 위해, 혹은 자식들만은 자신처럼 살지 않기를 바라면서 자신은 버리고 자식에 모든 것을 걸었다.

그 아들딸의 아들딸들이 자라 지금 바로 우리들이 되었다. 우리는 여전히 임금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한 노동에 모든 것을 걸었던 부모처럼 살지는 않겠노라고, 적어도 가족을 위한 노동을 하느라 정작 가족은 뒷전이었던 그런 삶은 살지 않겠노라고 다짐하면서.

그리고 지금 그 아들딸의 아들딸들은 다시 자신의 아들딸들을 위한 삶을 살고 있다. 아직 어린 내 자식은 좋은 대학에 보내 ‘노동자 아닌 삶’을 살도록 하겠다며 이 학원 저 학원을 둘러본다. 그러다가 졸업하고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는 자식들을 보면서 내 일자리를 내놓아서라도 ‘번듯한 직장’을 구해 ‘안정적인 노동자’로라도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은퇴 후에는 낙향을 꿈꾼다. 호젓한 전원생활을 위해서? 아니다. 시집장가 보내야 할 때가 되었지만 도시에서 집 한 채 구할 능력이 있을 리 만무한 자식들을 위해 내가 살던 집이라도 내놓겠다는 계획이다. 나이 들어 농사라도 지으면 입에 풀칠이야 하지 않겠느냐며.

ⓒ 참여와혁신 포토DB
아이들을 위해 노동시간을 늘린다

올해 봄 서울의 한 금융권 노동조합에서 최근 유행하는 토크콘서트의 형식을 딴 공부콘서트를 기획했다. 조합원들에게 자녀교육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행사를 공지하자마자 예정인원을 다 채웠다. 심지어는 다른 금융권 노동조합으로부터 한두 자리 내어줄 수 없냐는 ‘청탁’까지 받았다.

이렇게까지 뜨거운 반응이 나타난 것은 이 공부콘서트의 부제가 ‘우리 아이 SKY 보내는 법’이었기 때문이다. 자식을 이른바 명문대학을 상징하는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에 보내고 싶은, 우리의 현실은 땅에 발 딛고 있지만 자식만큼은 ‘하늘’을 날게 하고픈 마음이 반영된 것이다. 여기서 노동자의식이 어쩌니 하는 말들은 어쩌면 사치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어느 부모가 그렇지 않겠는가. 적어도 자식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수도권 대기업 제조업체에서 생산직으로 일하는 상재 씨(35세, 입사 9년차)는 결혼이 남들보다 빠른 편이어서 아이도 벌써 셋이나 두고 있다. 여섯 살, 다섯 살, 세 살의 올망졸망한 아이들을 보면서 좋은 아빠가 되겠다는 다짐을 한다.

상재 씨의 목표는 아이들과 놀아주는 아빠이다. 한주 단위로 주간과 야간근무가 반복되는 패턴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주간조일 때는 일 끝내고 들어와서 씻고 어쩌고 하다보면 벌써 아이들이 잠들 시간이다. 야간조 일을 끝내고 들어오면 아이들은 유치원에 가고, 돌아올 시간에는 다시 일하러 나가야 하는 생활의 반복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근무형태가 변경되면서 시간이 많아졌다. 1조 근무일 때는 오후 4시 전에 일을 끝내기 때문에 돌아와서 아이들과 놀아줄 수 있게 되었다. 더 많이 이야기 하고 또 더 많이 안아줄 수 있어서 행복하다는 상재 씨.

그런데 아이가 셋이 되고나서부터 주말 가족여행이 사라졌다. 상재 씨는 ‘발등의 불’이라고 표현했다.

“예전에는 특근을 안했거든요. 한 번도 안했어요. 퇴직금 정산 받을 때도 안했으니까. 그런데 애 셋 낳으니까 상황이 달라지더라고요. 첫째, 둘째 유치원비만 해도 40만 원이 넘어가니. 애들 먹는 게 어리다뿐이지 거의 한 사람 몫은 먹더라고요. 입는 것도 금방 크니 계절마다 석 달에 한 번 사준다고 해도 남자, 여자 있으니까 그것도 많이 들어가요. 또 집도 마련을 해야 하죠. 분양을 받은 상태니까. 발등에 불이 떨어지니까 돈이 되면 웬만하면 하는 거죠.”

퇴직금 정산할 때는 남들이 안 하는 특근도 만들어서 한다는데, 그것조차도 마다했던 상재 씨가 요즘은 ‘특근 중독’이다. 지난달에는 특근 4번을 풀로 채웠다. 그 앞 달에는 그나마 친척 경조사 때문에 한 번 빠졌을 뿐이다. 결국 상재 씨는 내일을 위해서 오늘을 저당 잡혔다. 아이들과 여행 다니는 것은 조금 유예하고 가족의 내일을 꿈꾼다. 물론 상재 씨는 행복하다. 적어도 이 직장에서는 2년만 이렇게 일하면 내 집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사교육비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학비는 회사에서 나오니 그 걱정은 없다. 그저 2년만 딴생각 안 하고 악착 같이 돈을 모을 생각이다.

“애들 만 몇 천 원짜리 치킨 한 마리 사주는 것도 부담스러워서 마트에서 세일할 때 사간다”는 비정규직 현정 씨에게는 마냥 부러운 일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배부른 소리’로 치부할 수는 없다. 제도적 뒷받침을 통한 사회안전망의 구축과는 별개로 개별 노동자들의 자녀교육 계획은 그 하나하나가 특별하고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자녀로부터 소외되는 아버지

진짜 문제는 상재 씨가 꿈꾸는 ‘아이들과의 더 많은 스킨십을 위한 소통’이 현실의 벽에 막혀 있다는 점이다. 상재 씨는 내일을 기약하고 있지만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정말 중요한 시기를 놓치고 있을 수도 있다는 걱정은 어쩔 수 없다.

지방 거점도시 공기업에서 일하는 종훈 씨(47세)는 요즘 답답하다. 남들은 철밥통이니 어쩌니 하지만 종훈 씨가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남들과 다르지 않다. 차장 자리에 오르기까지 남들보다 더 빨리 출근해서 더 늦게까지 야근을 마다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부장 승진의 압박감에 시달린다. 더구나 요즘엔 아이들 때문에 속이 상한다.

종훈 씨가 지내고 있는 도시는 지방 도시 중에서도 물가가 높기로 유명하다. 집값은 물론이고 학원비도 서울의 웬만한 지역을 능가한다. 중학생과 고등학생인 두 아들의 학원비로만 한 달에 150만 원이 든다. 남들보다 많이 시키지 않는 편인데도 그렇다.

종훈 씨에게 아이들은 희망이다. 흔히 경상도 남자들이 그렇듯이 종훈 씨도 가족들에게 살갑게 대하지 못하는 성격이다. 그저 마음만으로 응원하고, 자신이 해줄 수 있는 모든 지원을 다해 왔다고 생각했다.

특히 큰 애의 경우 대학 진학도 생각해야 할 시기가 왔으니 더 많이 대화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시도해 봤다. 그런데 아이의 반응은 냉랭하다.

“말이 이어지지가 않아, 뭘 물어도 그냥 단답형인기라요. 이놈아가 머리 굵어졌다고 아부지 하고는 말을 안 섞을라고 그래. 얼굴 마주치기도 힘들다니까. 집에 같이 있어도 지 방에 틀어박혀서 나오지도 않고.”

이것은 종훈 씨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 구인정보 사이트의 직장인 대상 조사에 따르면 하루 평균 가족과 나누는 대화시간은 10분~30분 미만인 경우가 43.6%로 가장 많았다. 30분~1시간 대화한다는 응답이 23.9%, 10분 미만도 23.6%에 달했다. 심지어 대화를 전혀 나누지 않는다는 응답도 3.4%나 있었다.

학생들에게 물어도 마찬가지 결과가 나왔다. 한국과학창의재단이 서울 소재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10분~30분이 33.6%, 30분~1시간이 26.4%, 10분 미만이 14.2%였다. 1시간 이상은 22.8%로 나타났다.

직장인 조사와 학생 조사에서의 차이를 보면 직장인은 1시간 이상 대화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비해 그나마 학생은 22.8%에 달한다는 것이다. 결국 이것은 1시간 이상 대화의 상대가 주로 엄마라는 뜻이다.

종훈 씨의 경우만 하더라도 그렇다. 대부분의 가족대화가 밥 먹을 때(51.3%, 고교생 대상 조사)나 거실에서 TV를 보며(30.4%) 이루어지는데 종훈 씨는 아이들과 같이 밥상에 앉는 경우가 많지 않다. 중학생인 둘째는 가끔 저녁 식탁에서 마주하지만 고등학생인 첫째는 귀가 시간이 10시 이후다. 실제로 직장인 대상 조사에서 일주일에 1~3번 가족과 식사를 한다는 대답이 44.4%, 4~6회는 25.6%, 거의 못한다는 응답도 13.7%나 나왔다. 삼시세끼는커녕 삼시한끼도 어려운 실정인 것이다.

더구나 아이들이 잠깐 TV라도 볼라치면 ‘공부는 잘 돼 가냐’는 ‘빗나간 대화 시도’로 아이들을 다시 자기 방으로 돌려보내곤 했다. 하지만 종훈 씨는 몰랐다. 이제 아이들이 자기 방에서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TV를 본다는 사실을.

‘공부하라’ 아닌소통하는 법 익혀야

게다가 대화법이 잘못됐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교육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공부는 잘 되니?’ ‘학교에서 잘 지내니?’ 같은 질문을 하지 말라고 한다. 구체적 답변이 나올 수 없는 질문이고, 아이들 입장에서는 그것을 질문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공부에 대한 강요나 생활에 대한 간섭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이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기업과 노동조합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다. 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 이문호 소장은 “소통이 화두가 되고 있는데 가정사에 개입하라는 것이 아니라 가족끼리의 소통이 무엇이 문제이고, 또 어떻게 하면 소통을 잘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교육을 노사가 공동으로 실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소장은 구체적 대안으로 여가활동에 대한 아이디어나 기획을 제공하고, 직원·조합원 욕구조사 등을 통해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 소장은 또 “많은 기업이 굳이 이런 일까지 해야 하느냐고 반문할 수 있는데,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아져서 손해나는 기업은 없다”면서 “이걸 자꾸 비용으로만 보는데 무형의 자산이고, 직원만족도는 품질이나 생산성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투자자도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또 노동조합에 대해서도 “노동 생활뿐만 아니라 일상생활과 삶의 질까지도 만들어 나가는 것이 노동조합의 역할이고, 노동조합도 자신들의 사업영역을 생활의 정치로까지 확대해 나가는 것이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앞서 언급했던 자녀교육지도 프로그램을 노사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다만 그 경우 학습법이나 대학진학 상담이 아닌 소통을 기반으로 한 자녀의 적성 및 진로지도가 되어야 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진로적성교육 전문기업 와이즈멘토 허진오 이사는 “부모와 자녀가 함께 참여하는 강연회나 캠프 같은 프로그램에서 학습법을 주제로 하는 것은 아이들 입장에서는 ‘싸우자는 것’으로 받아들인다”면서 “정말 중요한 것은 내 아이의 적성을 파악하고, 그에 맞도록 진로지도를 하는 과정에서 부모와 자녀가 서로의 마음을 터놓고 소통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들은 왜 낙향하는가

최근 이른바 ‘고용 세습’이 뜨거운 논란이 된 바 있다.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일부 기업에서 노조가 신규직원 채용 시 조합원 자녀에 대한 가산점을 요구했다고 해서 여론의 집중포화를 당한 것이다.

사실 이 문제도 일부 왜곡되어 전달된 것이다. 노조의 주장에 따르면 모든 조건이 동등할 때 조합원 자녀에게 가산점을 준다는 취지라는 설명이다. 현재도 많은 기업들이 채용 과정에서 임직원 자녀에 대한 우대조항을 두고 있다. 그런데 이 경우에만 유달리 논란이 됐다. ‘노동조합’과 ‘고용’이라는 뜨거운 감자가 실업난이라는 사회적 현상과 결합하면서 생긴 폭발력이다.

이렇게 따가운 시선이 쏟아지자 지난해 현대자동차는 조합원 사망 시 자녀 우선채용 단협을 지킬 수 없다고 나서 노조의 강력한 반발을 샀다. 가장의 사망으로 생계가 어려워진 직원의 가족을 채용하는 것은 그간 미담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던 것이 ‘고용 세습’이라는 프레임이 논란이 되자 구태나 악습으로 치부된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논란이 생기는 것일까. 그만큼 고용시장이 얼어붙어 있다는 반증이다. 상당수 대기업들은 자녀의 대학등록금을 지원하고 있다. 대학진학률이 70%가 넘는 한국적 상황에 더해 대기업 직원 자녀들의 진학률은 그보다 더 높다. 실제로 한 대기업 우리사주조합 관계자는 “일전에 대학 학자금 지원현황을 본 적이 있는데 우리나라에 이렇게 많은 대학이 있었는지 놀랄 정도로 처음 들어보는 대학도 많았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의 분석에 따르면 학자금 지원을 받기 위해 어떡하든 대학에는 보낸다는 것이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자녀 채용 시 가산점 논란이 되고 있는 대기업노조들의 사례는 자신과 같은 생산직 채용과 관련된 것이다. 그런데 이들 기업의 생산직은 대졸의 경우 아예 지원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 이렇게 본다면 ‘동일한 조건일 때 가산점’이라는 전제조건을 떼놓고 보더라도 채용조건 자체가 되는 경우가 많지 않은 셈이다. 그런데도 핫이슈로 부각되는 것은 그만큼 자녀세대의 취업이 어렵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나는, 혹은 내 자녀는 극심한 취업난 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누군가는 무임승차 한다는 의식이 확산되면서 강한 거부감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자녀의 취업과 결혼까지 부모가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이 강한 것과 연결지어 볼 수 있다.

지방의 대표적 제조업체에서는 한창 부동산 바람이 불었다. 몇 년 전 주식열풍과는 다른 양상이다. 당시 주식열풍은 ‘재테크’의 성격이 강했다면, 이번 부동산 바람은 ‘노후대비’가 주목적이다.

이 회사 노조 관계자는 “주변만 하더라도 주말에 땅 보러 다닌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주로 인근 지역 시골로 나간다”면서 “지금 정년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의 경우 시골 출신으로 어릴 때 농사를 지은 사람들이 많다. 이 사람들이 은퇴 후에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자녀에게 넘기고 농사지으며 지낼 곳을 알아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녀들의 결혼 준비를 위해 집을 내놓고 낙향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취재 결과 이는 비단 이 회사만의 흐름은 아니었다. 수도권 제조업체의 한 노조간부는 요즘 방송통신대 농학과에 다니고 있다. 이 간부도 충청지역에 땅을 마련했다. 농사 경험이 없으니 농학과를 다니면서 농사를 배우고, 은퇴 후에 자녀 결혼을 위해 집을 넘기겠다는 계획이었다.

이런 현상과 관련, 한국경영자총협회 남용우 노사대책본부장은 “영미 국가들이 인디비주얼리즘(individualism,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다고 하면 우리는 우리 안의 공동체의식을 강조하는 코뮤니즘(communism) 성향이 강하다”면서 “사고 자체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남 본부장은 “본인은 인정하지 못하지만 내가 설계한 삶 속에 아이들이 들어오도록 강제하는 경우가 많은데 내가 독립적인 주체이듯 자식을 하나의 독립적 주체로 보고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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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늦게 들어올수록 좋은 남편?

서툰 ‘관계의 기술’로 곤혹을 겪는 것은 자녀와의 문제만은 아니다. 의외로 많은 노동자들이 부부관계에서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젊은 세대의 경우 가사나 육아분담을 통해 자연스럽게 소통하는 경우가 많은데, 중년 이상으로 갈수록 부부관계에서 갈등을 빚는 경우가 잦다. 가부장적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경우에 주로 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울산 북구청이 현대자동차 주간연속2교대제 도입에 맞춰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 의뢰한 ‘지역산업 근무형태 변경에 따른 영향 분석 연구’의 결과는 흥미롭다. 노동자와 그 가족에 대한 심층 면접조사 결과 주로 젊은 세대인 부인은 주간연속2교대제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남편이) 야간조 할 때는 집 전화 소리라든가 거의 모든 면에서 숨을 죽이고 살아야 했거든요. 누가 방문한다고 해도 무조건 거절하고, 애들도 뒤꿈치 들고 생활을 하다가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요.”

반면 50대 부인은 전혀 다른 의견을 내놨다.

“20년간 말도 않고 살다가 부부간에 같이 있는 부분이 많다보면 아무래도 서로 간섭하고 잔소리하게 되고, 그러면 스트레스 받고….”

근무형태 변경을 같이 겪은 수도권 소재 자동차업체 상동 씨(53세, 27년차)는 ‘간 큰 남편’이다. 스포츠와 레저를 즐기는 상동 씨는 주말마다 각종 대회다 모임이다 해서 집에 붙어 있는 경우가 없다. 보디빌딩에 사이클, 등산까지 하는 상동 씨의 평일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일을 일찍 마쳐도 집에 들어가는 시간은 늘 한밤중이다.

상동 씨는 대학 3학년인 아들이 잘 자라줬다고 말하지만, 혼자서 아들을 건사한 아내의 마음고생이 훤히 보인다. 이런 상동 씨가 어느 날 아내에게 물었다. 늦게 들어오고 주말에 집에 없는 것에 불만은 없느냐고. 아내는 “그 부분에 관해서만큼은 120점을 넘어 130점”이라고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는 대답을 내놨다. 대화와 소통에 익숙하지 못한 중년 부부들에게는 차라리 함께 있지 않는 것이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고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한술 더 떠 상동 씨는 정년퇴직 후 고향에 내려가 나무 심는 것을 소일거리 삼아 할 예정이라고 말한다. 아내의 동의는 구했느냐는 질문에 “평생을 일했는데 얘기하면 그 정도는 들어주지 않겠냐”고 대답했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014년 혼인 이혼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황혼이혼(혼인한 지 30년 이상 된 부부의 이혼)이 1만300건으로 전년보다 10.1% 늘었다. 해마다 증가추세로 10년 전과 비교하면 2.3배 늘어난 것이다.

많은 기업들이 노사공동의 ‘퇴직준비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주로 자금관리나 퇴직 후 새로운 일자리를 위한 전직지원이 중심을 이룬다.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이 프로그램 속에 ‘부부관계의 기술’도 포함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노동자들은 가족을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한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유보한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스스로를 소외시키고 있는 셈이 됐다. 가족 안에서도 자신의 자리는 없는 것이다. 그저 돈 벌어오는 기계가 되어버렸다는 한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렇기 때문에 달라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