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노동조합, 더 많은 노동자를 조직하라
위기의 노동조합, 더 많은 노동자를 조직하라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5.07.10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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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득권만 지키려 하면 더 큰 어려움 직면할 것
노동조합 내부의 변화 필요 … 개혁적 리더십 세워야
우리 시대의 노동, 노동자 ⑤ 노동자와 노동조합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10월 우리나라의 노동조합 조직률이 2013년 말을 기준으로 10.3%라고 발표했다.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노동조건과 임금 등을 유지·개선함으로써 조합원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정치적 지위를 향상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조직이다. 결국 우리나라 노동자 10명 중 1명꼴만 이와 같은 노동조합의 보호를 받고 있는 셈이다.

많은 사람들이 노동하면서 살아가지만 자신을 노동자로 인식하지 않거나, 노동은 자신과는 상관없는 것으로 인식하는 데에는 이와 같은 낮은 조직률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비정규직이나 중소영세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일수록 열악한 환경에서 노동할 가능성이 높고 노동조합의 보호를 필요로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런 사업장의 노동자들일수록 노조의 울타리 밖에 있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조합비만 내면 문제 해결해주는 보험

이번 취재 과정에서 만난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에 소속돼 있는 조합원들이었다. 따라서 노동조합의 보호를 직접적으로 받고 있기 때문에 노동조합의 역할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대형할인점에서 일용잡화 파트 일을 하고 있는 은실 씨는 “노동조합은 인간다운 삶의 기준”이라고 이야기한다. 노동조합이 있기 때문에 인간답게 살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이커머스 파트의 민아 씨가 “노동자에게 동앗줄 같은 곳”이라고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같은 평가는 이곳의 노동조합이 새로 생긴 지 얼마 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노동조합이 없던 시절에는 부당하고 억울한 일이 있어도 어디 가서 하소연할 곳도 없었던 데 비해, 노동조합이 생기고 난 후 노동조합을 통해 부당함을 호소할 수 있게 됐고 교섭을 거쳐 개선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만큼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노동조합에 소속된 많은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노동조합이 자신의 권리를 지키고 확대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점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1987년 이후 노동조합을 통해 노동자의 권리가 크게 확대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인식과는 달리 노동조합의 외부에서 노동조합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리 곱지만은 않다. 각종 매체의 영향이기도 하지만 ‘그들만의 리그’라고 인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다만 노동조합의 현재 모습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노동조합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만큼 노동조합이 일정한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하지만, 현재의 노동조합이 그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다른 한편, “눈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노동조합에 대한 관심이 떨어진다”는 김경수 사무금융서비스노조 대외협력국장의 말에서 조합원들이 노동조합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유추해 볼 수 있다. 김경수 국장은 “내 문제를 대신 해결해주는 조직이 노동조합이라는 인식이 사무직 노동자들 사이에 퍼져 있다”면서 “조합원들은 조합비를 낸 것으로 할 역할을 다했다고 인식하며, 권리가 침해당하는 일이 생기면 ‘당연히’ 노동조합이 해결해주는 것으로 이해한다”고 말한다.

비단 사무직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다른 영역에서도 이와 같은 경향은 존재한다. 결국 노동자들은 자신이 당할지도 모르는 불이익에 대해 보험을 드는 것처럼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노동조합에 가입한 노동자들은 조합비를 낸 것으로 자신이 할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노동조합, 정의의 칼 내려놓다

이렇게 노동조합의 역할에 대해 평가는 엇갈린다. 노동조합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은 노동조합의 위기론과 맞닿아 있다.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이병훈 교수는 “노동조합의 역할이나 몫은 큰데 그러한 몫을 하기에는 노동조합의 현재 상태가 어려운 상태가 돼 있다”면서 “노동운동이 표방할 가치로 연대성, 공공성, 대표성 등을 이야기하는데, 지금 노동조합은 사회에서 요구되는 ‘정의의 칼’로서의 역할, 연대성, 공공성, 대표성 등을 모두 놓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한다.

물론 노동조합 내부에서 이런 가치들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 나오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러한 이야기가 말 그대로 이야기에 그치고 있다는 점이다. 이병훈 교수는 “입으로는 연대를 말하지만, 정부에 대항할 때조차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공동으로 대응한다기보다 예컨대 임금피크제 때문에 자기 조합원들의 임금이 얼마나 깎일지, 고용은 어떻게 될지에 관심을 둔다”면서 “노동조합의 울타리 밖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시늉에 그치고, 사실상 자기 조합원의 기득권, 조합 간부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운동으로 전락했다”고 비판한다.

경영계의 입장을 대변하는 한국경영자총협회 남용우 노사대책본부장은 오랫동안 노동조합과 대화해오면서 느낀 점들을 이야기한다. “노동조합 역시 정치와 비슷하게 표를 먹고 살아가는 정치조직이다 보니 장기적인 전략을 고민하기보다는 선명성을 내세우면서 사측과의 대립과 투쟁을 강조할 수는 있다”면서 “이는 아직까지 우리나라 노사관계의 역사가 그리 길지 않아서 진정으로 노사 상생을 이야기할 단계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근로자들이 그 때 그 때 실리에 따라서 강성 목소리를 내는 집행부를 선택해 온 측면도 있다”고 분석한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합리성을 기반으로 한 리더십 형성돼야

이 같은 노동조합의 위기에 대한 이야기는 노동조합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이를 위해 노사관계의 큰 틀이 변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우선 제기된다.

남용우 본부장은 노동자들이 합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조건을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데 방점을 찍는다. “지금까지의 노사관계가 대립과 투쟁의 노사관계였다면 이제는 통섭적 관점에서, 상호이익의 관점에서 공동의 선을 추구하는 목표를 찾아내고, 그에 대한 중장기 계획을 세워 같이 실천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면서 “그러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의 집행부를 선출하는 조합원들의 인식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남용우 본부장은 “근로자들이 합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즉 정치적인 측면에서 갈등을 기반으로 하는 리더십을 발휘하려고 하는 집행부를 인정하지 않을 수 있는 합리성을 가질 수 있게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그러기 위해서는 기업의 노력도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기업이 공개적인 경영이나 합당한 보상이라는 규칙을 만들어 이를 통해 근로자들이 합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게 결과적으로 노동조합 내부의 이해관계에 따른 계파갈등을 줄여나갈 수 있는 기저가 될 것”이라며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계에서도 합리적인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지도자가 나와 내부의 구조적인 속성 때문에 반대의 목소리가 나온다 하더라도 옳은 길을 갈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균관대학교 사회학과 조준모 교수는 “노동조합을 평가하는 데 있어 노사관계의 시각에서 보지 않고 노동조합만을 분리하여 평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면서 “노동조합의 문제점은 결국 후진적인 경영 속에서 배태된다”고 이야기한다.

따라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노사관계의 측면에서 피아의 진영논리보다 역지사지의 시각이 이제 뿌리를 내릴 때가 됐다”면서 “과거의 노사관계에 안주하기보다는 능동적으로 환경을 개척하고 기업과 사회를 건강하게 이끌어가는 모습을 노동조합이 보여주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노동조합이 사회적 책임을 다함으로써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사회와 함께하는 노동조합운동으로 전환돼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조합, 미조직된 90% 품어야

다른 한편, 노동조합의 외연과 의제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김형동 변호사는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자에게 노동조합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김형동 변호사는 “지금까지 노동조합이 어렵다고는 하지만 상대적으로 보호를 받으면서 안정적이었다”면서 “이제는 노동조합으로 조직돼 있지 않은 노동자에게도 노동3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예를 들어 만약 정부가 완벽하게 모든 노동자의 노동3권을 보장하는 패를 내놓는다면 노총이 무엇이든 양보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김형동 변호사는 “대한민국은 지금 안정화를 넘어 노쇠화 되어가고 있다”면서 “노동조합의 조합원이 됐을 때 받을 수 있는 서비스, 예컨대 조합비를 내면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게 하는 방법 등을 통해 노동조합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미 때늦은 후회이기는 하지만 “이번 노동시장 구조개선 협상 과정에서도 노동계가 이런 노동조합 활성화와 확대 방안을 내놓고 정부와 협상을 벌여야 했다”는 게 김형동 변호사의 생각이다.

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 이문호 소장은 노동조합이 조직된 10%에 머무르지 말고 미조직된 나머지 90%의 노동자들에게 시선을 돌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문호 소장은 “노사관계의 포인트를 조직화된 10%에만 두고 나머지 90%를 싹 잊어버리면 안 된다”면서 “희생하고 있는 미조직된 90%, 중소기업 노동자, 비정규직의 임금수준이나 원·하청관계, 노동조건으로 관심을 돌리지 않으면 노동조합이 정말 힘들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문호 소장은 “조합원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보는 노동조합의 입장에서는 ‘우리더러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면서 “노동조합이 기득권에 대한 보호막을 치고 자기 울타리 안으로만 들어가지 말고 전략적 고민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비정규직을 조직화해서 노동조합으로 받아들이고 비정규직의 노동조건을 단체협약 문제로 부각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문호 소장은 그렇다고 노동조합의 약점만을 자꾸 들추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도 분명하게 지적한다. “자꾸 문제제기를 하면 개별적인 비난으로 받아들여 방어막을 치는 식으로 대응할 수 있다”면서 “사회 전체적인 문제들을 고려하는 게 개인이나 기업 모두에게 유리하다는 인식을 공유할 수 있게 정책적인 고민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병훈 교수는 노동조합 내부의 개혁을 주문한다. “안팎으로 노동조합이 욕을 먹거나 여러 가지 걱정의 대상이 되고 있다”며 “그런 점에서 다른 것보다 노동조합 내부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노동조합 내부에도 한편에는 현재의 상태를 기득권으로 즐기며 계속 유지하려는 세력도 있지만, 다른 한편에는 ‘정의의 칼’이 아닌 ‘기득권의 무기’로의 노동조합의 변질과 지금의 좌절에 대해 답답해하고 이런 현실을 바꿔나가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는 사람들도 있다”면서 “이렇게 변화를 고민하는 세력이 정말 개혁적인 리더십을 노동조합에 세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병훈 교수는 우선 노동조합이 ‘자기 상’을 만들 것을 권고한다. “조합원들이 아닌 밖에 있는 미조직 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이 내 돈벌이, 내 자리 지키는 수단, 하나의 권력집단으로 생각되거나, 자신이 노동조합에 못 낀다는 이유로 노동조합을 향해 ‘저런 나쁜 놈들’ 하는 식의 인식을 주면 노동조합의 변화가 불가능하다”면서 “그런 점에서 노동조합이 우선 노동조합은 이런 것이다 하는 ‘자기 상’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병훈 교수는 또 “스웨덴 같은 복지국가에서는 노동조합이 굉장히 공공적인 성향으로, 일반 국민에게 노동조합이 친근하고 공적으로 없어서는 안 되는 사회의 기둥으로 인식된다”고 소개했다. 그런 스웨덴의 사례처럼 “우리나라에서도 노동조합이 그동안의 성과와 변화된 역할을 통해서 노동조합 밖에 있는 노동자들로 하여금 ‘아 그들이 자기 밥그릇만 챙기는 것이 아니라 다른 노동자들도 걱정하고 사회를 바꾸기 위해 애쓰는구나’ 인식할 수 있게 해야 바깥의 노동자들도 노동조합에 참여하거나 도와주려는 생각을 가지게 될 것”이라며 “그러자면 노동조합 활동가들이 아무리 밖에서 꼬드기더라도 정말 노동조합답게 역할을 할 수 있게 노력하는 것이 1차적으로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다.

다른 한편, 이병훈 교수는 노동조합이 실력을 키워야 한다는 점도 지적했다. “과거에는 학출이니 뭐니 했지만 80년대, 90년대의 노동운동사를 보면 노동조합 내부에 정말 뛰어난 지도자와 실무자가 있어서 대안과 협상, 정책에서 사측에 밀리지 않고 팽팽하게 할 수 있었다”면서 “그런데 어느 시점을 지나면서 기업이나 정부는 노사관계를 안정시키기 위해 컨설팅을 받고 교수들도 끌어들이고 내부자들을 교육시켜 똑똑한 사람들을 배치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 정책과 대안을 제시하는데, 노동조합은 시간이 지나면서 굉장히 허술해졌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눈높이가 높아진 조합원의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하고 기존에 했던 내용을 재탕, 삼탕 반복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아주대학교 법학과 이원희 교수는 “이제는 옛날처럼 선진의식을 가진 선진노동자가 있어서 앞장서고 깃발 올리고 노동조합운동을 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단언했다. 이원희 교수는 “젊은 세대의 퍼스낼리티가 그렇다”면서 “노동조합운동도 비장함보다는 그 안에 유머러스와 코믹터치가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직도 일부에서는 노동조합을 없애야 할 존재로 보고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그런 일부를 제외하면, 노동조합의 현재 모습을 보면서 비판하는 이들도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런 만큼 노동조합에 거는 기대가 크다고 할 수 있다. 현재의 노동조합이 그런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 또한 분명하다. 바로 지금 노동조합의 변화를 위한 노력이 절실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