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이유를 찾는다
죽음의 이유를 찾는다
  • 이상동 기자
  • 승인 2015.08.03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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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시로 살인사건 밝혀낸다
100여 명 인원이 전국 책임져
[특수직 공무원의 일과 삶] 검시조사관

지역주민센터 같은 행정기관에서 일하는 공무원이 아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공무원들도 많다. <참여와혁신>이 행정부공무원노동조합과 함께 특수직 공무원들의 일과 삶을 소개한다. 이번에 소개할 주인공은 검시조사관이다. -<편집자 주>

뉴스나 영화에서 폴리스 라인(Police Line)을 본 적 있을 것이다. 사람의 접근을 금지하기 위해 설치하는 폴리스 라인은 호기심과 함께 불안감을 불러온다. 어떤 이유에서 폴리스 라인을 설치한 것인지, 혹여나 끔찍한 사건이 발생한 것은 아닌지 관심을 가지게 된다.
폴리스 라인의 안쪽에서 일하는, 누구보다도 사건 현장을 가장 먼저 확인하는 사람이 있다. 경찰 과학수사대가 그들이고 그 중에서도 죽음의 답을 찾는 검시조사관이 이번에 소개할 특수직공무원이다.

ⓒ 이상동 기자 sdlee@laborplus.co.kr

변사(變死), 죽음을 본 사람이 없다

일반적으로 검시(檢屍)라고 하면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과 부검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부검을 담당하는 것은 법의학자들이고 검시를 담당하는 것이 검시조사관이다. 언뜻 생각하면 비슷해 보이지만 이 둘의 가장 큰 차이점은 ‘현장’에 있다.

일반인들이 부검과 검시를 접하게 되는 것은 대부분 영화나 드라마에서다. 수술실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차가운 느낌이 감도는 공간, 테이블 위에는 시신이 놓여 있다. 2명의 의사(법의학자)가 부검을 하며 시신의 사인을 찾는다.

폴리스 라인의 안쪽, 시신이 놓여있는 현장에서 시신을 검사하고 사인을 찾는다. 이것이 부검과 검시의 차이다. 부검이 검시 방법 중 하나이긴 하지만 현장에서 사인을 조사하는 검시조사관의 검시와는 다르다고 생각해도 된다.

검시조사관은 국내에서 발생하는 모든 변사의 사인을 확인하는 역할을 한다. 죽은 이유를 알지 못하는 죽음을 변사라고 하는데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사망하거나 노쇠하여 자연사한 것을 제외한 모든 죽음을 말한다. 하지만 자연사라고 하더라고 죽음을 지켜본 사람이 없다면 변사가 된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고독사 또한 마찬가지다. 시신을 처음 발견했을 때, 이불을 덮고 편안하게 누워있는 상태로 있다고 하더라도 죽는 것을 본 사람이 없기 때문에 변사가 된다. 집에서 가족과 함께 있다가 사망 하더라도 변사가 된다. 부모, 자식 간에 서로를 죽이는 현실 속에선 명확한 죽음의 이유가 밝혀지기 전에는 함부로 사인을 확정할 수 없다.

ⓒ 이상동 기자 sdlee@laborplus.co.kr

살인을 숨기다

변사사건의 신고가 들어오면 과학수사대 요원과 검시조사관이 2인 1조로 현장에 출동한다. 시신은 현장에서 감식하는 것이 원칙이다. 시신이 머리를 다쳤다면 현장의 어디에서 머리를 다칠 요인이 있는지 확인해야 하는 것이다. 추락사를 예시로 들면, 시신의 사인이 추락에 의한 사망이 확실하다고 하더라도 추락 위치를 확인하고 추락한 이유를 찾아야 한다. 자살인지, 사고사인지 여부까지 확실하게 구분하는 것이다.

또한, 추락사가 확실하다고 하더라도 시신에 추락에 의한 손상이 아닌 다른 손상이 발견됐을 땐 의심을 해야 한다. 시신에서 보이는 소견과 현장에서 나타나는 증거가 모두 일치해야 문제가 없는 것이다.

사고사로 신고 됐는데 확인을 해보니 타살인 경우도 있다. 집에서 사망했는데 창문, 출입문도 다 잠겨있고 옆방에는 가족들도 있었다. 죽음을 발견해 신고한 것도 가족이다. 타살의 혐의는 없어 보였다. 하지만 시신을 자세히 살펴보니 목에 약간의 압박감이 발견됐고, 입을 막거나 목을 졸랐을 때 나타나는 특이한 소견이 발견됐다. 일혈점(溢血點)이라고 하는 것인데 눈꺼풀 안쪽의 약한 모세혈관이 터지면서 발생하는 점출혈이다. 그에 따라 타살이 의심돼 추가 조사를 했고 피 묻은 장갑을 발견했다. 결국 가족에 의한 살인으로 밝혀졌다.

위 사례처럼 죽음을 사고로 위장할 수도 있다. 그 때문에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을 갖고 현장에 들어간다. 현장에 가장 처음 들어가서 죽음의 상황에 확신이 생긴 뒤에야 검시가 끝나는 것이다. 간단히 끝나기도 하지만 타살 혐의가 있을 땐 날을 꼬박 새기도 한다.

현장에서 검시를 할 수 없는 경우, 예를 들어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공개된 장소 같은 경우도 있다. 이럴 땐 시신을 장례식장으로 옮긴 후 검시를 진행한다.

현장에서 일이 마무리 되면 사무실로 들어와 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변사자조사결과 보고서’라는 것인데 이 보고서가 사건수사서류와 함께 검찰로 보내진다. 보고서에 기재하는 내용은 현장에서 파악한 부분에 대한 소견과 시신의 상태 등이다. 때에 따라서는 ‘부검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한다. 검시조사관이 부검을 요청하면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 부검을 진행한다. 부검을 하면 죽은 이유를 명확히 밝힐 수 있기 때문이다.

2만 5천 건의 변사사건, 모두 챙기기는 어려워

검시조사관은 2005년 11월에 처음 생겼다. 검시조사관이 생기기 전에는 과학수사요원이 시신까지 확인했다. 2005년 이후 채용된 67명과 올해 새로 충원된 38명을 포함해도 총 인원은 105명뿐이다. 새로 충원된 인원은 교육훈련을 받고 있어 현재 현장에서 활약하는 인원은 67명이 전부다. 서울, 경기도와 같이 사건이 많이 발생하는 지역에 더 많은 인원이 배치되고 상대적으로 사건 빈도가 낮은 지방에는 배치되는 인원이 적다. 제주도는 3명이 맡고 있다.

적은 인원으로 24시간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근무강도는 당연히 높을 수밖에 없다. 근무 형태도 일반적이지 않다. 당직-비번-일근-당직-비번-휴무 순서의 6일제로 돌아간다. 당직을 서고 다음날 비번으로 휴식, 삼일 째에는 일반적인 주간 근무, 다음날에 다시 당직을 서고 비번과 휴무를 연이어 쉰다. 여기서 말하는 당직은 오전 9시부터 다음날 9시까지 24시간 근무를 말한다.

이러한 근무 형태는 각 지방경찰청마다 조금씩 다르다고 한다. 일근 없이 당직-비번-휴무의 연속으로 돌아가는 곳도 있다. 휴무라고 무조건 쉬는 것은 아니다. 다른 검시조사관이 교육을 가거나 연차를 쓸 경우엔 땜빵 근무도 서야한다. 6일제로 돌아가기 때문에 주말 이틀을 다 쉬는 경우는 거의 없다. 주말 이틀을 쉬기 위해서는 금요일에 당직을 서고 토요일 오전에 퇴근해야 한다.

전국에 변사사건은 1년에 약 2만 5천 건 정도 발생한다. 그 모든 현장에 출동해야 하지만 인원 부족으로 전부 챙기기는 어렵다. 지방 기준으로 1년에 1,800건 정도의 변사사건이 발생한다면 그 중 400건 정도는 교통사고에 의한 변사사건이다. 이를 제외하면 1,400건인데 하루에 약 4건 꼴이다.

모든 변사사건에 출동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현장에 출동하는 데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중점 관리 변사사건이라고 해서 ‘부패가 심해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경우’, ‘타살의 혐의점이 있는 경우’, ‘유명인사 혹은 사회적 이슈가 될 사건’ 등을 우선시 한다.

ⓒ 이상동 기자 sdlee@laborplus.co.kr

생긴지 10년, 체계는 아직 미흡

검시조사관은 경찰 과학수사대 소속 요원이긴 하지만 경찰직이 아닌 일반직 공무원이다. 경찰직의 순환보직 체계를 생각했을 때 잦은 보직 변경이 업무의 연속성과 전문성에 피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일반직으로 채용한다. 채용되면 보직변경 없이 과학수사대에서만 일하는 것이다.

검시조사관이 되기 위해서는 임상병리사 또는 간호사 자격증이 있어야 한다. 그 중에서도 법의학 관련한 학위를 가지고 있거나 과학수사 대학원을 나왔을 때 우선권이 있다. 임상병리사는 업무영역에 법의학이 포함돼 있어 부검 시 의사의 보조를 하기도 한다. 간호사의 경우에도 죽음과 연관이 있는 부서인 응급실, 중환자실, 수술실 등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주로 채용된다.

채용된다고 해서 바로 현장에 투입되는 것이 아니다. 먼저 경찰수사연수원에서 교육을 받는다. 총 5개월 동안 교육을 받는데 경찰수사연수원에서 7주 교육을 하고 지역 국과수와 지방청으로 나눠 현장 교육을 진행한다.

생긴지 10년 정도 된 조직에 전체 인원도 100여 명 정도라 아직 체계가 명확히 잡혀있지는 않다. 급여는 일반 공무원과 동일하고 검시수당이라고 해서 24만 원이 수당으로 추가된다. 생명수당도 4만 원을 받는다. 그나마 받게 된 검시수당도 기존의 공무원 수당 규정에는 없었던 부분이라 직접 건의를 해 작년부터 지급되기 시작했다.

처음 3년 정도 채용을 하고 이후 오랜 기간 신규 채용이 없었다. 하지만 작년 유병언 사건으로 검시조사의 중요성이 부각되며 대대적인 채용이 이뤄졌다. 그 인원이 지금 교육을 받고 있는 38명이다. 내년에 추가로 인원이 채용 되면 총 정원은 144명이 된다.

죽음에는 익숙해지지 않는다

죽음은 매번 접하면서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동일한 죽음이 없을 뿐더러, 시신에서 나오는 악취는 언제 맡아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 검시조사원은 시신을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만져야 한다. 구더기가 있으면 구더기를 닦아내야 하고 부패가 진행 돼도 몸의 다른 상처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검시를 마치고 나면 온 몸에 냄새가 밴다.

검시조사관으로 채용이 돼도 시신을 못 보겠다는 이유로 그만두는 사람도 있다. 방금 전에 죽은 사람은 살아있는 사람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호흡과 심장 박동 여부의 차이 뿐이다. 시간이 경과되면 파리가 꼬이고 구더기가 생긴다. 부패하며 악취도 심하고 형태도 알아보기 힘들게 된다. 얼굴이 없어지기도 하고 배에 가스가 차올라 빵빵해진다. 그런 부분이 힘들어 그만두는 것이다.

가장 힘든 것은 근무체계다. 인원부족 때문에 3일에 한 번 당직을 서야 하는 것은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어려운 일이다. 당직을 선다고 해서 사무실에서 가만히 상황만 보는 것이 아니다. 사건이 생기면 현장으로 출동해야 한다. 서울이나 경기도는 담당하고 있는 권역이 너무 넓기 때문에 분할된 권역에 검시조사원이 배치돼 근무를 한다. 지방은 지방경찰청에서 현장으로 출동을 하는데, 거리가 짧으면 상관이 없지만 먼 경우엔 왕복 2시간 이상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이동시간만 2시간이 걸리고 현장 상황에 따라서 검시에 걸리는 시간, 복귀 후 보고서를 작성하는 시간까지 생각하면 쉴 틈이 없다.

당직을 서면 24시간 근무를 선다. 다음날 오전 9시에 업무를 마치고 집에 들어가도 가족들을 바로 볼 수 없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고 부인도 퇴근을 하는 저녁이 되어야 가족이 모일 수 있다. 주말에 시간을 내는 것도 당연히 쉽지 않다.

ⓒ 이상동 기자 sdlee@laborplus.co.kr

현장에서 답을 찾다

미국드라마 중 ‘CSI 과학수사대’ 시리즈가 인기를 끌었었다. 드라마를 보면 사건현장의 작은 단서를 증거로 범인을 찾아낸다. 현장의 작은 지문, 혹은 흐릿하게 찍힌 사진, CCTV 영상 등에서 증거를 찾아낸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드라마는 짧은 시간동안 모든 사건을 해결하지만 타살의 현장에서는 오랜 시간 꼼꼼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드라마에 나오는 과학기술들은 현장에서는 실제로 적용하지 못하는 ‘허구’의 것이 많다.

하지만 드라마와 같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검시조사관들 막중한 책임감이라고 할 수 있다. 조사가 모두 끝나면 철수를 한다. 중요한 사건이 아니면 폴리스 라인을 제거하기도 한다. 검시조사관의 생각에 따라 그 사건의 죽음은 그대로 종결되는 것이다. 현장에서 잘 봐야 한다는 중압감과 책임감이 항상 따라 붙는다. 작은 단서 하나라도 놓치게 되면 그 다음은 없다. ‘내가 최후의 보루다’라는 자부심도 함께한다.

검시조사관은 늘 죽음하고 같이 생활을 한다. 계속 죽음을 보는 것이 일인 것이다. 실제로 죽음을 보면, 사전에 예견된 죽음이 있고 전혀 예기치 못했던 갑작스런 죽음이 있다. 가족의 갑작스런 죽음은 엄청난 충격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건강을 챙겨야 한다고 말한다. 죽은 사람을 보면 건강을 조금만 신경 썼으면, 가족들이 조금만 더 보살폈으면 갑작스런 죽음을 겪지 않아도 될 경우가 많다. 건강을 신경 쓰지 않고, 가족 간의 화목이 깨진 가정에서 변사 사건이 많이 발생한다. 항상 건강을 챙기고 가정의 화목을 위해야 한다고 말하는 검시조사관의 말은 가볍게 다가오지 않는다. 죽음의 이유를 찾는 검시조사관은 지금도 현장에서 답을 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