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33명
이제는 33명
  • 이상동 기자
  • 승인 2015.08.03 14:58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KTX 여승무원, 대법원 파기환송 이후
기약, 결론, 희망은 없다. 그래도 가야하는 길
[사람] 김승하 KTX열차승무지부 지부장

한국철도공사와 철도유통 소속 KTX 여승무원들 사이에 직접 근로관계가 성립하였다고 단정할 수 없다. 2월 26일 대법원은 KTX 여승무원들이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파기환송했다. 서울고등법원에서 다시 재판을 하라는 것이다. 1심, 2심 판결에서 연이어 승소하고 대법원에서도 같은 판결이 내려질 것이라 믿었던 여승무원들은 생각지도 못했던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다. 대법원 판결 이후 어느새 5개월이 지났다. 파기환송심은 7월 24일 시작된다.

ⓒ 이현석 객원기자 175studio@gmail.com

“변호사가 파기환송심은 긴 시간이 걸리진 않을 거라고 했다. 파기환송해서 내려왔다는 것은 이미 어떤 식으로 판결하라고 지침이 내려온 것과 같기 때문에 시간을 끌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김승하 KTX 승무지부 지부장은 24일부터 시작될 파기환송심에 기대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미 결과는 정해졌다는 생각이다. 파기환송심의 판결에 대한 상소는 하지 않을 계획이다. 의미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판결처럼 몇 년씩 걸리지도 않을 것이고 속행해서 ‘이유 없음’으로 결과가 날 것이라는 판단이다. 대법원에서 두 번씩이나 같은 판결이 나면 명분이나 실리가 떨어진다고 했다.

“더 이상 법적으로는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남은 건 공사와 합의하는 방법이다. 아직 철도 조합원이고, 철도조합을 통해서 합의를 해야 하는 것이다. 조합원으로서 활동도 열심히 하고 우리 문제에 대해서 계속 제기를 하고, 끊임없이 시끄럽게 떠들어야지 합의할 수 있는 기회도 생기는 것이다. 사실 지금은 협상 테이블도 생기지 않는 상태니까 합의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게 먼저고 그러기 위해서 여러 사람의 도움이 필요해 많이 활동하려고 하고 있다.”

대법원 판결 이후 여승무원 한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인당 8,640만 원의 빚이 생겼다. 재판 기간에 받았던 임금을 한 번에 돌려줘야 하는 것이다. 지쳐서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들 지쳐서 포기하고 싶다. 누가 좋아하겠나. 근데 그렇다고 포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어쩔 수 없다. 개인적으로 각자의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부담이, 부담의 강도가 다른 것 같다. 일인당 판결 이후 돌려내야 되는 돈이 그 정도 있지만 이미 빚을 가지고 있던 있는 친구도 있었다. 요즘 취업도 어렵고 그런데 이런 경력은 쓸 수가 없다. 어디서 반기겠나. 다른데 취업을 하려고 해도 경력이 빈다. 구하기 굉장히 어렵다. 그래서 지금 일하고 있는 분들은 프리랜서를 많이 한다. 서비스강사나 리더십, 자기개발 쪽으로 하시는 사람도 있고 웨딩플래너 하는 사람도 있다. 지금 우리 나이 때가 서른 중반이라 결혼해서 아이가 한 둘씩 있는데, 아이가 어리다. 엄마가 돌봐줘야 할 나이라 가정에 있는 사람도 많다.

예전에 힘차게 많이 싸워서 지금까지도 도와주겠다는 사람도 많이 있다. 그렇긴 하지만 각자 다른 환경에 처해있고 각자의 마음이라는 것이 더 약한 사람이 있고 강한 사람이 있다. 그래서 안 좋은 선택을 한 사람도 있다. 사실 알려진지 얼마 안 됐다. 대법원 판결이 나고 얼마 안 있어서 그런 일이 있었는데 잠적한 상태라 연락이 거의 안됐다. 나중에야 알아서 아직도 믿기 힘든 상황이다. 판결이 나면서 힘들지만 그렇게 더 힘들어하는 같은 동료, 친구, 3년 동안 투쟁하면서 가족 같은 존재가 됐는데 그런 선택을 하니까 힘이 든다.”

끝이 어떻게 날 것인지에 대한 답은 보이지 않는다. “기약이 없다, 결론은 없다. 희망을 가져야 한다고 쉽게 말할 수 없다.” 애써 담담하게 이야기 한다. 할 수 있는 것은 계속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끊임없이 우리 목소리를 내는 수밖에 없다. 안 그러면 묻힌다. 이 목소리를 낼 사람이 우리밖에 없다. 우리가 안하면 끝나는 것이다. 이 길로 가면 뭔가 이뤄질 수 있어, 라는 게 보이면 가는 길에 힘이 날 것 같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지금 이 길을 안 갈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거를 누군가 다른 사람이 하겠지 하고 피해버리면 몸은 편할 수 있다. 심리적인 것이 신체적 육체적인 것 보다 더 크다는 것을 하면서 많이 깨달았다. 친구가 어딘가 끌려가 있고 그런 걸 보는 게 더 힘들다. 차라리 내가 들어가 있는 것이 훨씬 편하다. 친구가 그러고 있는 걸 보는 게 더 훨씬 많이 힘들었다. 그래서 나가서 더 이상 이쪽은 안 볼래 하려 해도 그걸 할 수 없는 사람들이 남아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아무렇지 않던 숫자가 이제는 가슴에 맺힌다.

“34명에서 지금은 33명이지만, 숫자를 말하기가, 말할 때 마다 그 한 친구가 그런 선택을 하고 나서는 그 숫자가 가슴에 많이 박힌다. 처음 인원에서 숫자가 팍팍 줄어들 때는 그런 숫자에 둔감했는데 어쨌든 마지막 34명, 근데 이제는 34명이 아니니까. 말할 때 마다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