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노조를 아시나요?
데이터 노조를 아시나요?
  • 함지윤 기자
  • 승인 2006.08.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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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이성과 문학적 감수성의 조화
마양호 이건창호시스템노동조합 위원장

▲ ⓒ 김창기 기자 ckkim@laborplus.co.kr
...(상략)...
나만 힘들다고
나만 불행하다고
불평하고 있을 때
창밖에서 보이는 공장의 연기와
시끄러운 소리는
긍정적인 사고를 갖게하고
마음을 다스려 사랑과 희망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합니다.
...(하략)...
- 마양호, [창밖] 중에서 -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감사합니다”

매일 아침 6시 30분이면 인천 이건창호시스템 공장 정문은 아침인사로 활기가 넘친다. 서로 주고받는 인사로 아침을 시작한 것이 벌써 9년째. 9년 동안 매일 아침 통근버스에서 내리는 동료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는 사람은 바로 이건창호시스템노동조합의 마양호(44) 위원장이다. 동료들이 하루의 일과를 기분 좋게 시작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시작한 일은 이제 습관이 됐다.

바뀐 것은 아침 출근문화만이 아니다.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 위원장 덕분에 이젠 이건창호시스템에선 술이 없어도 얼마든지 속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됐다. 이런 마 위원장의 지난 9년간의 행적은 신선하면서도 따뜻하다.

위원장은 회계 전문가
마 위원장은 1997년 위원장이 되고 보니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업무를 배우기 위해서 100여 곳의 회사를 찾아다녔다. 그 과정에서 마 위원장은 노동계가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것을 느꼈다. 그때부터 10명의 젊은 위원장들과 함께 재무제표와 손익계산서 분석을 3년 동안 공부했다.

“노총에선 생계비를 기준으로 임금인상률을 정해요. 회사마다 형편이 다른데 생계비로 단순화시키는 것은 21세기에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회사 재정을 분석하고, 한국노총의 생계비를 기준으로 이건창호시스템 노동자들에게 맞는 생계비를 분석해 임금인상률을 파악한다. 그리고 1월부터 3월까지 비수기 동안 조합원 면담을 통해 요구사항을 파악한다. 회사의 재정과 생계비, 조합원 요구사항까지 고려한 임금인상률은 회사도 거절하지 못한다. 지금까지 노조 요구안의 1% 내외에서 타결됐다.

임단협, 현장 정서 읽는 기회
“21세기에 맞는 지식과 전문성을 가지고 회사에게 접근하면 사용자들도 거부할 수 없는 상당한 힘이 있다는 것을 그동안 느꼈습니다.”

정확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임금인상률과 임단협 시작하기 전 전직원 대상 사전 브리핑, 타결 후 임단협 결과 설명회. 이것이 바로 이건창호시스템이 ‘데이터 노조’로 불리는 이유다. 당연히 협상기간도 4~5차례로 짧아졌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무교섭이나 위임은 없었다. 왜냐하면 마 위원장은 임단협이 조합원들의 정서를 읽을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임금협상 기간에 충분한 대화를 통해서 현장 노동자들의 어려움을 파악할 수 있어요. 아무리 사회가 개방이 되어 있어도 현장 사람들은 자기 할 소리 다 못합니다.”

섬기는 자세로 동기 부여
마 위원장은 위원장의 자리를 ‘섬김의 자리’라 말한다. 동료들의 어려움을 몸소 체험하고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과 항상 가까이 하고 최대한 예우를 하며 받들어 섬겨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없이 낮아지고 겸손해져야만 실천이 가능하다는 게 마 위원장의 생각이다. 아침인사도 이런 고민 끝에 시작된 일이다.

늘 조합원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실천하다 보니 자연스레 그 고민들은 ‘어떻게 하면 즐겁게 일할 수 일터를 만들까?’로 연결됐다. 그래서 신입사원이 입사한지 100일, 200일, 300일마다 열리는 조촐한 파티에서부터 무재해수당 신설, 근속수당을 통상임금에 포함, 장학재단 마련(예정) 등 조합원들의 동기부여책에 많은 신경을 쓴다. 이 모든 활동들이 시작단계부터 술술 잘 풀렸던 것은 아니다. 임금인상제시안의 절반수준에서 인상률이 타결되는 것을 봐온 조합원들은 마 위원장의 임금인상률에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고, 일부 조합원들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마 위원장은 힘들더라도 대화하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 ⓒ 김창기 기자 ckkim@laborplus.co.kr

시 쓰는 노조 위원장
마 위원장은 객관적인 데이터로 조합원들에게 자신의 삶에 대한 예측가능성을 부여했다. 그리고 섬기는 마음으로 조합원들 마음 가까이에 다가가려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 좀 색다른 이력은 이것이 끝이 아니다.

마 위원장은 시를 쓴다. 그의 실력은 이미 대외적으로 인정을 받았다. 근로자문화제에서 시로 은상과 장려상을, 수필로 은상을 수상했었다.
시인의 따뜻한 눈으로 세상과 노동, 동료들을 바라보기에 그가 만들어 나가는 일터는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9년 동안 위원장 생활을 해 온 마 위원장은 이제 위원장의 자리를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상급단체로 나가 노동운동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게 요즘 바람이다. 그런데 상급단체로 나가기 위해 치러야 하는 금전비용은 한달 판공비 8만원인 마 위원장에겐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마 위원장의 노동운동에 대한 사랑과 정신이 험한 세상에서 무너지지 않고 끝까지 빛을 발할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