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생명 정리해고 11년, 아직도 싸우는 해고자들
흥국생명 정리해고 11년, 아직도 싸우는 해고자들
  • 장원석 기자
  • 승인 2015.08.03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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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정리해고, 7월 24일 민사 항소심 판결 앞둬
‘아무리 힘들어도 양심을 저버릴 수는 없었다’
[사건] 흥국생명 정리해고 11년

2005년 1월, 흥국생명 정리해고 사태가 일어나고 11년의 시간이 지났다. 하루만 지나도 주변이 변하는 시대에 11년은 정말 긴 시간이었다. 그동안 흥국생명을 시범케이스로 쌍용자동차, 코오롱, 콜텍, 하이디스 등 수많은 기업들이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를 들어 정리해고를 시작했고 노동자들은 거리로 내몰렸다. 다른 사업장들이 무너지는 동안, 아직까지도 흥국생명 해고자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다.

정리해고, 정말 ‘긴박한 경영상 이유’?

흥국생명은 1998년부터 지속적으로 명예퇴직과 정리해고를 해왔다. 2005년 사태 이전까지 3번의 희망퇴직과 정리해고로 구조조정을 해왔다. 2005년 1월, 흥국생명은 지점 통폐합, 백오피스제도 확대시행으로 인한 유휴인력의 발생, 방카슈랑스 확대로 인한 미래경영상 이유를 들어 21명을 정리해고 했다.

해고자들은 해고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당시 해고자인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공동대표는 “흥국생명은 IMF 이후로 한 번도 적자 없이 매년 당기순이익 흑자를 기록한 우량 금융기업이다. 2002~3년 세후 500억이 넘던 당기 순이익이 2004년 260억 원 정도로 줄었는데 이는 IBNR(미보고발생손해액) 115억, 희망퇴직 위로금 73억, 전산장비구입비 212억 지출이 있었기 때문이다”고 주장했다. 상시적 지출이 아닌 비경상적 이유(일시적인 지출로 인한 당기순이익 감소)는 경영상 어려움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행정소송 1, 2, 3심 모두 ‘장래에 올 수도 있는 위기에 미리 대처하기 위한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가 있었다’며 회사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흥국생명의 ‘긴급한 경영상 이유’와는 다른 증거와 증언이 계속 나오고 있다. 2012년 공중파의 탐사보도 프로그램에서는 흥국생명에서 시설관리 등을 총괄한 모 부장의 증언이 있었다. 그는 2004년 정리해고 당시 흥국생명이 그동안 영업을 하면서 쌓아온 부실을 대부분 털어버렸다고 밝혔다. 다른 소송에서도 흥국생명의 한 간부가 “흥국생명이 적자, 흑자의 폭을 의도적으로 줄이고 늘렸고, 정리해고 무렵 2년 동안 회계적으로 회사 부실을 한꺼번에 정리했다”라는 진술과 일치하는 것이다.

또 경영상 이유로 기업이 해야 할 해고회피노력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당시 흥국생명은 행정법원에 해고회피를 위해 전산인원 등을 아웃소싱 했다고 밝혔고 법원은 이 진술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아웃소싱한 회사는 이호진 전 회장과 그 아들이 모든 지분을 가지고 있는 회사로 편법적 상속을 위한 일감 몰아주기에 불과했다는 것이 해고자의 주장이다.

부동산 취득 의혹도 있다. 흥국생명은 2004년 말, 서울 중구 남대문로에 300억 원 가량의 부동산을 매입했다. 흥국생명측은 이 매입을 KT&G의 부동산 계획에 대한 방어 차원, 소위 ‘알박기’목적이라고 해명했으나 이후 4,000억 원에 가까운 ‘흥국타운’이라는 랜드 마크 빌딩을 건설하려 했다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흥국생명 경영실태평가 자료’(국회 정무위 김기준 위원 자료열람)에서도 2004~5년까지 흥국생명은 지급여력·자산건전성에서 1등급을, 수익성·유동성에서 2등급을 받아 종합평가 1등급을 받았다. 해고자들은 “이런 명백한 흑자경영 상황에서 220여 명을 희망퇴직시키고 또다시 20여명을 추가로 정리 해고할 경영상 위기가 있다고 할 수는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리해고, ‘노조 찍어내기’?

▲ 이형철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연맹 부위원장

역시 해고자였던 이형철 전국사무금융연맹 부위원장은 “2014년 12월, 일방적으로 정리해고 사실이 노조, 직원들에게 통보되었고 통보된 그날 희망퇴직을 공고했다. 회사가 일방적으로 정한 희망퇴직 대상자에게 강제퇴직을 종용하는 방식으로 220여 명의 직원들이 강제퇴직을 당했다. 대부분 여성 직원이었다. 이후 강제퇴직을 거부한 21명에 대해 동일한 방식으로 희망퇴직이 종용되었고 재차 거부하자 정리해고 되었다. 이후 노조 간부 4명에 대한 징계해고도 이루어졌다. 그런데 정리해고 대상자, 강제퇴직자들은 대부분 노조 간부를 비롯한 노조원이었다”고 말한다.

21명 중 16명은 노조원이었는데 이들이 해고대상자가 된 것은 회사의 무보직 발령에 항의했다고 징계를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소위 ‘찍퇴’라는 것이다. 이 부위원장은 “이런 방식이 허용된다면 어떤 회사도 마음대로 해고를 시킬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 “이렇게 퇴직한 직원들을 다시 계약직으로 고용하고 있음이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해고자들은 흥국생명과 흥국생명이 속해있는 태광그룹의 노동조합 탄압은 치밀한 계획에 의해 준비된 것이라고 말한다. 김 대표는 정리해고가 이호진 전 회장이 아들에게 회사를 물려주기 위해 회사를 개편하는 일환이라 주장했다. 정규직을 줄이고 계약직 등 비정규직을 늘리는 한편 일방적으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하고, 역량성과제라는 여직원 임금 상한제(최고 4,000만 원)를 도입하기 위해 이에 반대하는 노조를 우선적으로 무력화하기 위해 정리해고를 했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우리가 있을 당시 흥국생명 연봉 평균이 6,000만 원은 됐다. 지금은 3,600만 원 정도로 들었다. 그래도 금융권인데 말이다. 회사의 구조조정이 노동자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해고자들은 2011년, 태광그룹의 이호진 전 회장과 그 모친인 이선애 전 상무의 1,500억 원대 횡령 및 배임사건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면서 노조를 탄압 했다는 확실한 증거가 나타났다고 말한다. 검찰에서 압수한 이호진 전 회장의 수첩에서는 ‘징계사면에 따른 정리해고자 재선정, 분위기 조성(위기감), 위기극복위원회 발족, 휴업자 교육문제-노동부지원 고려, 돈 문제, 신상필벌의 이차원의 인사’라는 태광그룹 소속의 태광산업, 대한화섬의 정리해고에 대한 내용이 들어있었다.

이 부위원장은 정리해고자를 징계로 선정하는 방식은 흥국생명 정리해고 방식과 동일한 것으로 이호진 전 회장이 그룹 정리에 주도적으로 개입했다는 것이라 설명한다. 관련 재판에서 “군복을 입은 인원을 고용해 숙식을 제공하며 노조에 맞서 싸우는 ‘구사대’로 활용했다”는 증언도 있었다.

이 부위원장은 “2000년 1월부터 조합원 탈퇴 공작이 있었다. 2003년에는 블랙리스트를 작성해서 조합원을 관리했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합법 파업 중 손배·가압류와 노조 간부 징계해고 했으며 위원장이 대법 승소로 복직하자 또다시 해고하기도 했다. 이후 단체협약의 일방적 해지, 무단 징계 등, 수많은 노조탄압, 부당노동행위가 자행되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2004년 말, 노조위원장에 출마했다. 위원장과 부위원장 등 후보자 조 6명을 갖췄다. 우리 이외에 2개 조가 더 나왔다. 투표결과 우리가 49.1%, 다른 후보가 50.8%를 가져갔다. 근데 나머지 한 조가 획득한 표는 불과 4표였다. 적어도 한 조에 6표가 나와야 정상 아닌가. 나중에서야 두 조가 회사의 지시를 받고 서로 짰다는 것을 알았다. 회사의 노조파괴가 이 정도였다”고 말했다.

‘승패를 떠나, 사실관계만 명확하게 해주십시오’

▲ ⓒ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

이 부위원장과 김 대표 모두 재판과정과 사법부의 판결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했다. 김 대표는 “행정법원 1심 도중 검찰은 부당해고로 이호진 전 회장과 흥국생명을 고발했고 각 천만 원의 벌금을 받았다. 솔직히 검찰에서 부당해고로 기소하리라고는 생각 못했다. 당시 미래경영상 이유로 정리해고가 된 사례는 단 한 차례도 없었고 우리는 당연히 승소를 확신했다.” 하지만 행정소송에서는 모두 흥국생명이 승소했다. 김 대표는 “흥국생명이 1심에서 전 행정법원 부장판사를 변호사로, 2심에서는 김앤장을 소송인단에 더했다. 전관예우와 자본에 이길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 부위원장도 “얼마 전 경향신문의 기고를 보니 25년 동안 쟁의행위, 정리해고 판결을 한 61명의 대법관 중 59명은 사용자에 유리한 판결을 했다더라. 법 조문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과 법이 결탁해 법 위에 군림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법이 있고 조문이 있으면 그것을 가지고 판단해야 하는 것이 법관이다. 그 위에서 자꾸 다른 요소들을 넣어 판단하는 것은 웃기는 일이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노조원이 인사부 계정에서 구조조정 문건을 입수해 사측이 해킹 협의로 노조원들을 고소한 사건이 있었다. 나는 노조 회의에 참석하지도 않았음이 경찰에서 입증되고 무혐의 처리가 되었다. 그런데 행정법원 판결문에는 내가 그 행위에 참여한 것으로 되어있더라. 최후의 진술에서 나는 ‘승소와 패소의 여부를 떠나서 제발 사실관계를 따라 정당하게 판결해 달라’고 말했다. 나는 11년 동안, 우리나라 법원의 판결이 증거주의에 입각한 판단이 아니라는 것을 수없이 경험했다. 그만큼 우리나라 법원이 엉터리고 법이 아닌 다른 부분이 개입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흥국생명 정리해고 사태의 각종 쟁점과 재판에 대한 입장을 흥국생명에 질문지 형식으로 문의했으나 대답을 들을 수는 없었다.

11년 장기투쟁, 양심을 저버릴 수는 없었다

정리해고 이후 11년, 20대의 미혼 여직원은 40살 아주머니가 됐고, 막 가정을 꾸렸던 30대 남직원은 어느덧 50을 바라보게 되었다. 일용직으로, 노동운동으로, 주부로 각자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대부분의 ‘후발’ 정리해고자들은 몇 년 가지 않아 사라졌다. 대법원의 판결이 나고 조직 유지의 필요성이 없어졌거나 내부의 갈등, 경제적 어려움으로 투쟁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흥국생명 해고자들은 아직도 투쟁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 부위원장은 “2005년부터 처음 1년여 동안은 총력으로 투쟁했다. 우리 모두가 생계도 다 제쳐두고 전국의 흥국생명 지부를 돌며 부당 정리해고를 알리는 한편 관련 소송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그 다음 개인의 삶 문제가 생겼다. 모두의 생활도 피폐해졌다. 그래서 이후 10년 동안 생계를 꾸리며 싸우고 있다. 해복투를 결성했을 때, 20명 중 11명은 여성, 9명이 남성이었다. 1명 빼고 모두 미혼이던 여직원들은 대부분 결혼해 주부가 되어있다.”

그러다보니 가족들과의 관계도 좋지 못했다. 김 대표는 예전에 기사가 한 번 났는데 아들이 아버지가 정규직이었냐고 물어봤다고 했다. 아들이 김 대표를 비정규직으로 알고 있었던 것 이다. 김 대표는 아들에게 비굴하게 양심을 팔면서 살 수는 없었다고 했다. 김 대표는 11년 동안 경제적으로 어려웠지만 포기나 타협하고 싶지는 않았고 끝까지 해 보고 싶었던 마음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양심과 자존심의 문제라는 것이다. 김 대표는 “우리는 농담 삼아 ‘55세가 정년이니 그때까진 투쟁하겠다’고 말한다”고 밝혔다.

해고자들이 전국에 흩어져 있어서 모두가 모일 수 없는 환경이 되다 보니 목요 정기집회를 시작했다. 노동단체, 시민단체에서 운동을 시작한 해고자들이 집회를 주도했다. 하지만 오랜 기간 투쟁하며 내부적으로 문제도 있었다. 김 대표는 “문제점이 있었다. 개인의 문제도 문제지만 이탈자도 생기고 각자 이해관계가 있으니 충돌이 있었다. 누구는 집회 오는데 왜 누구는 안 오느냐 하는 식으로. 사소한 문제는 어디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슬기롭게 잘 넘어온 것 같다”고 말한다.

대법원 판결이 난 다음 해고자 내부에서 이 싸움을 계속 해야 하는지에 대해 논의가 있었다. 하지만 해고자들은 해산하지 않고 끝까지 가자는 합의를 했다고 한다. 이 판례가 굳어진다면 다른 정리해고 사건에서도 악용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이 부위원장은 “우리 사례 때문에 다른 사람이 정리해고를 당하지 않을까에 대한 미안함이 있고 그래서 이 판례만큼은 막아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해복투 20명 모두가 같은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투쟁 과정에 대해 “우리가 적극성이 부족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 번도 고공시위 같은 강도 높은 투쟁을 생각하지 못했다. 이번에 스타케미칼 고공농성을 보면서 절박함도, 치열함도 부족했다는 생각을 했다. 이슈화가 되지 못해 언론에 노출되지 못한 것도 문제였다. 하지만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싸워왔기에 11년이란 기간 동안 투쟁을 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태광그룹 비리 사건이 터졌을 때, 해고자들은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고 엄벌 탄원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다시 민사소송을 시작했다. 김 대표는 그간의 투쟁으로 이호진 일가가 중형을 받지 않았나 싶다고 했다. 또 이 사건으로 해고자들이 옳았다는 것을 반쯤은 증명했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투쟁하면 결국 이런 식으로 보상이 온다는 말도 덧붙였다.

11년 동안 많은 정리해고로 인한 복직투쟁, 장기투쟁 사업장이 생겨났다. 오랫동안 해고복직 투쟁을 해온 흥국생명 해고자들은 다른 노동자들에게 연대, 믿음, 의지를 강조했다. 이 부위원장은 “노동자들이 자신이 하는 일이 옳고 가치가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투쟁을 했으면 한다. 신념과 투쟁이 정당하다는 의지를 가지면 결과가 있다고 본다. 최근 스타케미칼을 보면 그렇지 않은가. 우리도 언젠가는 승리한다는 의지를 가지고 같이 투쟁하겠다”고 말했다. 김 대표도 “인디언들이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온다고 한다. 비가 내릴 때까지 기원하기 때문이다. 힘들더라도 양심을 팔지 않는다면 반드시 일에 좋은 끝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