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과 눈높이를 맞춰 갈 수 있어 보람차다
모든 사람과 눈높이를 맞춰 갈 수 있어 보람차다
  • 박상재 기자
  • 승인 2015.08.03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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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선 노조 위원장, 당당한 노동계 출신 시의원 되기까지
‘철로’와 같은 노사관계 형성이 지향점
[사람] 신건택 LG유플러스노동조합 위원장

신건택 LG유플러스노동조합 위원장이 서울시 의원으로 활동한 지도 어느덧 1년이 넘었다. 그의 표현을 빌자면 “어디 가서 머리띠 두르고, 집회나 하던 사람으로 보던 주변 시선들” 사이에서 출발했지만, 더욱 단단하게 자신의 영역을 넓혀온 신건택 ‘의원’은 이제 노동이 존중받는 서울, 타 지역의 롤모델이 될 수 있는 수도 서울을 만들기 위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었다. 노동계 출신 시의원이 말하는 ‘서울’, 10년 넘게 위원장직을 수행하고 있는 그가 보는 ‘현장’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았다.

시의원 활동한 지도 1년이 좀 넘었는데, 그동안 위원장과 시의원활동을 병행하느라 힘들지는 않았나?

▲ 신건택 LG유플러스노동조합 위원장

“처음엔 몸에 안 맞는 옷을 입고 있는 듯한 느낌도 받았고, 주변에서 노조 위원장도 하기 힘들텐데 그만큼의 무게가 실린 일을 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도 많았다. 그런데 노동조합 위원장 역할을 하면서 보람을 느낀 것처럼, 시의원 활동도 조금씩 보람을 느낄 수 있어 좋다. 예를 들어 서울시 생활임금위원회 활동을 하며 삶의 수준을 유지하기 위한 임금제를 만드는 데 보탬이 됐고, 노동현장의 이야기를 나눌 때 그들의 이야기를 대변해 줄 수 있어 자랑스러웠고,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고민을 나눌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이전부터 노동조합 위원장이 제일 좋았던 건 CEO부터 임원, 비정규직 그 누구를 만나도 같은 눈높이, 동등한 위치에서 이야기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시의원이 된 이후로도 서울 시장부터 재래시장에서 시금치를 파는 할머니까지 누구와도 동등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긴 게 좋은 점이다.

처음에는 노동계 출신이라는 것 때문에 머리띠 두르고, 집회나 하던 사람이라는 시각으로 날 보던 눈들이 분명히 있었지만, 새누리당이나 한국노총에서 나를 이 자리로 보냈을 땐 원하는 게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 시장질의 자료준비 할 때도 보좌관이 없기 때문에 혼자 석 달간 자료를 모으고, 1년간 주말에 제대로 쉬어본 게 세 네 번 밖에 안 된다. 만나는 사람의 스펙트럼은 넓어지는데 시간이 모자라니 계속 시간을 쪼개야 하고. 잠자는 시간을 줄이는 방법밖에 없으니 피곤하긴 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큰 공부하고 있다는 생각에 보람도 느끼고, 계속 움직일 수 있는 것 같다.”

노동계가 바라본 서울시의 모습은 좀 다를 것 같은데, 어떻게 보고 있는가?

“대기업 노동조합 위원장일 때는 지방자치단체가 움직이는 것에 솔직히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서울시에 와서 노동, 일자리, 장애인 문제 등을 보니 적어도 수도 서울이라면 이 정도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인구 전체의 17~20%가량이 서울에서 살고 있는데, 서울시에 노동관련 부서는 노동정책과 딱 하나이다. 생활임금제도 처음엔 전담자가 없었다. 생활임금제위원회도 구성해야 하고, 할 일이 적은 게 아닌데 사람도 없다. 그래서 경제지원본부나 기획재정실에 계속 요구해 노동정책과에 추가 인원을 배정받아 담당자가 생겼다.

내가 생각하고, 주문하는 것은 ‘수도’서울이라면 달라야 하고, 다른 지자체가 서울을 기준으로 변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노동정책과에 있는 공무원들도 노동에 대해 잘 모르니 노동교육도 해야 한다고 본다. 사람이 태어나서 사회에 속해야만 하고, 내가 속해있는 사회에 내가 제공할 수 있는 최고의 서비스가 노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욱 노동은 가치 있는 것이고,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가치를 살리는 역할을 시의회가 해야 하고. 좀 더 세부적으로는 노동계 출신인 내가 담당해 나가야 할 부분이라고 본다. 당장 바뀔 수 없는 문제인 만큼 꾸준히 풀어가야 할 것이라고 본다.”

반대로 노동조합 위원장 활동은 벌써 10년이 넘었다. 노동조합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이 있다면 무엇인가?

“노동조합은 세 가지 측면에서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조합원들의 고용과 삶의 질 향상, 둘째, 회사 생산성 향상을 위한 노동조합의 노력, 셋째, 소외계층들의 고충을 들어주는 것과 같은 사회에 대한 역할 등이다. 개인적으로는 적어도 시의원이 됐다면 더욱 힘든 사람들의 애환을 들어줄 수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노동조합 위원장보단 직원의 한 사람으로 말을 하자면, LG유플러스 이상철 부회장의 리더십을 존경하고 있다. 노동조합 위원장이 회사 경영진을 자랑하는 경우는 없지만. 과거 LG텔레콤에서 ‘꿈의 주파수’라고 불리던 800Mhz 주파수를 가져와 세계 최초로 LTE를 상용화했고, 기업이미지도 많이 바꿨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회사가 성장한 것은 이유 있는 성장이었고, 앞으로도 발전지향적인 행보를 이어갈 것으로 본다. 내가 갖고 있는 ‘어설픈’ 노사관을 설명하자면, 이를 열차에 비유한다. 열차가 목적지로 가기 위한 리더가 CEO라면, 열차가 지나가는 양쪽 레일이 ‘노’와 ‘사’라고 생각한다. 철로라는 것은 너무 좁아지지도, 멀어지지도 않게, 탈선하지 않을 만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그러나 목적지는 함께 공유해야 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게 지금 우리 사회의 노사관계여야 한다는 생각도 한다.”

그동안 LG유플러스노동조합 활동을 하며 가진 개인적인 자부심이나 목표의식도 있을 것 같은데.

“노동조합 위원장이 되면서 무언가를 하겠다는 건 없었는데 굳이 따지면 벌써 6선 째이다. 초선 때는 민영화를 앞두고 있으니 고용안정을 위해 파업을 했고, 두 번째 임기에는 ‘LG점령군’이라고 흔히 말했는데, 경영권이 바뀌고 이들과 고용문제로 다퉜다. 세 번째 임기에는 ‘레드오션’시장인 통신업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직접 영업도 뛰고 판촉활동을 했다. 네 번째는 LG텔레콤, 파워콤, 데이콤 3사가 통합된 이후 위원장 임기 1년을 남기고 노조 통합을 했고, 새로 선거를 해서 다섯 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다섯 번째 임기에는 후배들을 위해 노력했다. 선거기간엔 밖에서 조합원을 일체 못 만나도록 못 박고. 커피를 한 잔 마셔도 사무실에서 마시도록 하고. 그렇게 계파 간 갈등 같은 것들을 없애고. 후배들이 ‘입’이 아닌 ‘뒷통수’를 보고 배울 수 있도록 직접 행동했다. 지금은 회사에서 급여도 받지 않는데, 내가 의원 활동 하며 생기는 공백 대신 지급될 임금으로 전임자를 채워놓았다. 그래서 더욱 당당하게 의원 일에 매진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더욱 잠이 모자라고 피곤하지만, 보람찬 활동을 할 수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