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문제 이전에 인간의 문제다
노동문제 이전에 인간의 문제다
  • 장원석 기자
  • 승인 2015.08.03 15:17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동은 인간 존엄성을 지키는 신성한 행위
탐욕의 경제, 배척의 경제를 넘어서야
[사람] 정수용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부위원장

올해, 굵직한 노동계 이슈 속에 노·사, 노·정간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모두들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이해당사자가 아닌, 종교인의 눈으로 바라본 노동 문제는 어떨까. 천주교 노동사목위원회는 1970년대부터 우리 사회의 노동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입하고 노력해 왔다. 정수용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부위원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사회적 약자,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웃에 대한 관심

노동문제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 정수용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부위원장
“신학교에 들어가 신부가 되기 위한 첫 발을 떼었다. 당시 신학교에 노동사목연구회라는 동아리가 있었다. 사목이라는 말은 천주교 사제가 목자로서 하는 활동을 말한다. 일반 본당에서 하는 사목은 본당사목, 병원에서 활동하는 것을 병원사목, 노동과 관련된 활동을 노동사목이라고 한다. 그 동아리에 들어가 우리 사회의 노동에 대해서 보고 들으면서 관심이 생겼다. 이후 2007년에 사제로 서품을 받아 본당에서 보좌신부로 생활을 좀 하다가 노동사목위원회에서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동아리 활동도 그렇고 보좌신부로서 생활할 때도 노동에 대한 관심이 컸기 때문에 고민의 시간도 있었지만 자연스럽게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현장에서 보아온 문제들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신부들이 노동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질 때에는 보통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웃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시작한다. 막 신부가 되었을 무렵인 2009년 쌍용자동차 사태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노동자들의 투쟁을 경찰이 무자비하게 진압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런 일들이 우리나라에서 가능한 일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 환경들에서 많은 신부님들이 매일 대한문 앞에서 쌍용자동차 희생자들을 위한 미사를 계속했고 그곳에서 함께 모여 기도하고 사회적인 관심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활동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노동에 대한 문제를 되새기게 되었다.

또 한 가지, 얼마 전에 대학에 강연을 갔었을 때였다. 가톨릭 동아리 학생들과 교회의 노동관, 성서에서 바라보는 노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질의응답 하는 시간에 학교에서 청소일 하시는 분이 ‘신부님. 저는 비정규직입니다’ 하고 말을 잇지 못하셨다. 마치 비정규직인 것이 죄라도 되는 것처럼 수그러드는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

요즘에 가장 관심을 가지는 이슈는 무엇인가?

“비정규직 문제다. 아주 비정한 문제가 비정규직 문제다. 비정규직 문제가 개인의 문제인 것처럼 여기고 개인 스스로도 존엄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끊임없이 차별과 고용불안과 임금격차에 시달리다보니 자신이 하는 노동도 부끄럽고 스스로 자존감을 느낄 수 없게 된다. 안타까웠다. 마치 2등 국민인 것처럼, 내가 스펙을 쌓지 못했고 학원을 다니지 못했고 토익을 못했기 때문에 비정규직이 된 것같이 생각한다.

비정규직은 찌질하고 게으른 사람처럼 보고 정규직은 말끔하고 성숙한 사람처럼 보는, 보이지 않는 차별을 하고 있다. 아주 슬픈 제도다. 그런데 정부에서는 기간을 4년으로 하고 조건을 완화시키려 한다. 이건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늘리는 것이다. 결국 비정규직을 줄이는 방향으로 정책이 입안되어야 할 것이다. 파견법을 엄격하게 적용하고 비정규직 자격을 정하고 대상과 기간을 축소해야 한다.”

최근 노동계가 집중하고 있는 이슈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개별 노사의 문제에 교회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 노사간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교회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문제, 인간의 고통에 대한 문제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노동시장 이중구조 속에서 차별받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문제 등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런 문제는 교회가 얼마든지 함께 아파하고 동참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도 현 시대에 대해 ‘인간의 가치에 무관심한 세상’이라 우려하셨다. ‘노숙자가 거리에서 굶어죽는 것에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서 주가가 조금만 떨어져도 세상은 큰일이 벌어질 듯 이야기 한다’는 것이다. 물질만능주의 사회에서 경제적인 효율성만 추구하다보니 인간의 노동 가치도 금전적으로 치환해버린다. 노동의 문제는 인간의 문제, 존엄성의 문제다. 우리는 노동의 문제를 인간의 문제로 바라보는 시각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교황님은 얼마 전, 세계평화의 날 메시지에서 형제라는 단어를 강조했다. ‘교통, 통신의 발전은 전 세계를 이웃으로 만들어주었지만 형제로 만든 것은 아니다’는 것이다. 내 옆의 사람의 고통에 동참하는 마음, 함께 울어줄 수 있는 마음, 함께 억울해 할 수 있는 마음이 회복되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또 ‘오늘날의 경제는 탐욕의 경제, 배척의 경제’라는 말도 하셨다. 채워지지 않는 과도한 욕망 속에서 인간을 도구로 보고 필요가 없어지면 버리는 배척의 문화 역시 버려야 할 부분이다.

1965년에 폐막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때, 최종적으로 교회는 4개의 헌장을 발표했다. 그중 사목헌장은 교회가 사회적인 관심, 사회와 대화를 나누면서 지켜야 할 원칙들을 담고 있다. 사목헌장 제 1장 가장 첫 문장은 ‘세상의 어떤 고통과 희망, 슬픔과 번뇌는 그리스도인의 그것이다’라고 말한다. 노동문제로 인한 세상의 고통. 그리고 교회에서 바라보는 노동은 인간의 존엄성 문제다. 임금의 문제 같은 차원이 아니라 하느님이 창조한 세상을 인간이 더 아름답게, 인간이 동참해서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 인간의 노동행위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노동행위 없이는 존엄성도 없다. 노동을 통해서 인간은 존엄성을 느낀다. 그런 세상이 될 수 있도록 함께 아파하고 고민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 


비정규직 문제, 아주 비정한 문제

만성적이라고도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노동의 문제를 말하는 순간 사회적 갈등을 이야기 할 수밖에 없다. 이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고 치유하고 합의를 만드는 것은 우리나라 사회의 성숙도하고 직결되는 문제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노동문제가 해결되는 과정은 개별 사업장에서의 문제해결 방식이 많았고 노사정 논의는 실패를 거듭했다. 노사정이 그 합의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어렵다면 이제 노동문제에 있어서도 민간까지 포함시키는 차원에서 새로운 시스템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노사민정으로 사회적 갈등을 치유, 합의하는 모델은 프랑스 등 서구사회에서도 보여주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노동의 문제를 노사의 문제로만 바라보지 않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본다. 다양한 사람들이 인간의 문제로 보고 합의를 이룰 수 있는 자리가 마련돼야 한다고 보고 더욱 많은 전문가와 관심도 필요하다.”

노동현장, 토론회, 기자회견 등 많은 곳에서 활동하는데 공통적으로 드는 생각이 있다면?

“당사자가 아닌 주위 사람들이, 전체적인 가치관들이 노동에 대해 너무나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교회는 노동을 신성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고 그 신성한 창조가 인간에게 노동의 형태로 계속 지속된다는 것인데 사람들은 노동의 문제를 고통스러운 것으로만 보고 있어 노동에 대한 인식 자체가 대단히 부정적이다.

노동, 노조 이런 말들을 금기시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근로자의 날이라고 하지 노동절이라고 부르면 거북해한다. 분단과 첨예한 이념대립 속에 노동의 가치를 높이거나 인정하는 것이 이념적인 일로 받아들여지는 세상이다. 노동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재벌 2세라고 해서 일을 하지 않고 매일 향락에 즐거움에 빠져 산다면 과연 그 사람이 인간의 존엄성을 느낄 수 있을까.

노동에 대한 인식의 전환은 정부가 나서서 바꿔야 할 것이다. 노동이라는 말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노동의 개념을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이 존엄성을 가지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실존의 의미로 만들어야 한다. 공교육에서도 좀 더 긍정적인 의미로 가르칠 필요가 있다. 하려고 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지금까지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자면 반 노조, 반 노동주의가 상당히 강한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 노조 조직률은 10% 정도다. 역사상 20%를 넘긴 적이 없었다. 노조가 약하니 강하게 투쟁할 수밖에 없고 일반 사람들이 반감을 가지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노동조합의 움직임이 일반 시민들과 문제를 함께 공유하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부분이다. 그래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연대와 공유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선다면 좋은 울림을 줄 수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