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장 개혁보단 제조업 위기 극복 먼저
노동시장 개혁보단 제조업 위기 극복 먼저
  • 홍민아 기자
  • 승인 2015.08.03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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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 3.0전략? 현장과 괴리된 정부 정책도 문제
현장 살리는 정책 지원이 우선돼야
[커버스토리] 하반기 정부發 개혁 파고 (1)

7월 20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올해 하반기 노동 부문 개혁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박근혜 정부는 노동, 금융, 공공, 교육 등 4대 부문 개혁을 추진해 왔는데, 중점 과제인 ‘노동 개혁’ 부분에 대해 여당도 한몫 거들고 나선 것이다. 양대 노총은 곧장 성명서를 내고 비판에 나섰다. 노동계는 노동시장 양극화,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격차, 비정규직 문제 해결이 필요하다는 인식에는 동의하지만, 정부와 새누리당에서 추진하고 있는 정책은 하향평준화를 통한 저임금화, 쉬운 해고를 가능하게 만들어 더 많은 비정규직들을 양산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것에는 노정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지만 현장과 괴리된 정책, 대화 없이 추진되고 있는 노동시장 개혁에 사회적 갈등만 깊어지고 있다.

ⓒ 이현석 객원기자 175studio@gmail.com

박근혜 정부, 노동시장 개혁 예고

“정년은 보장되고 청년 일자리는 늘어나는 임금피크제, 청년 일자리를 함께 키우는 대기업·중소기업 상생, 청년을 능력과 성과로 평가하는 능력중심사회, 청년 일자리, 노동시장 개혁이 열어갑니다” 고용노동부 홈페이지 첫 화면에 떠 있는 문구이다.

박근혜 정부는 노동시장을 개혁하면 청년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격차를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하며 노동시장 개혁을 추진했다. 대통령이 노사정위원회에 특위까지 설치해서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려 했지만 결국은 실패했고, 노정간의 갈등만 심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상반기 노동시장을 시끌벅적하게 만든 노사정위원회는 초라한 모습으로 퇴장했다. 한 노사관계 전문가는 정부가 단기간 내에 결론을 보겠다고 서둘렀기 때문에 충분한 대화가 이뤄지지 못했고, 결국은 문제 해결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김무성 대표의 ‘노동 개혁’ 발언을 시작으로 정부의 노동시장 개혁이 본격화 될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은 김 대표의 발언이 있고 난 바로 다음 날 국무회의에서 노사정 대화 재개를 주문했다. 이는 한국노총의 노사정 대화 복귀를 요청하는 메시지로 풀이된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여의도 한국노총 지도부 천막농성장을 찾아 노사정 대화 복귀를 주문하기도 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6월, 노동시장 유연안정성 제고를 위한 입법 등 조치가 필요한 사항, 노사정간 추가 논의키로 한 과제 등에 대한 구체적 방안을 마련해 8~9월 중에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노동시장 유연안정성에는 비정규직 규제 합리화, 능력중심의 인력운영 시스템, 사회안전망 강화 및 효율화 관련 내용이 포함될 예정이다. 4월 이후 노사정 대화는 이뤄지고 있지 않지만 정부는 노동시장 개혁 계획을 차곡차곡 실시하고 있었다.

정부의 노동시장 개혁안에 대해 노동계에서는 임금피크제를 실시한다 해도 기업이 청년 고용을 늘린다는 보장이 없고, 기존의 정년도 잘 지켜지지 않는 상황에서 임금피크제 도입은 노동자들의 임금만 깎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반발했다. 또한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의 격차는 노동자들이 늘린 것이 아니라 인건비 절감을 목적으로 기업이 비정규직 고용을 늘린 결과인데 왜 그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느냐며 억울한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 지난해 노사정위 특위 위원 자리를 박차고 나왔던 금속노련 김만재 위원장은 노동시장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만 정부나 기업들은 노동자의 양보만 요구했기 때문에 특위 위원 자리를 거부한 것이라고 전하며, 청년실업 문제가 정규직 때문이라는 논리를 정부에서 내세우고 있는 이것은 말이 안 된다고 딱 잘라 말했다. 그리고 경기 불황이 이어지면서 산하 조직들이 어려운데 정부에서는 새로운 산업 정책을 추진한다고 하면서 제조업을 도태시키고 있다며, 제조산업 발전을 위한 정책이 절실하다고 전했다.

ⓒ 이현석 객원기자 175studio@gmail.com

현장 반응은 아직은 뜨뜻미지근

정부는 여당과 결합하여 노동시장 개혁을 밀어 붙이고 있고, 한국노총의 김동만 위원장은 삭발식까지 감행하며 이에 맞서고 있다. 수배 중이라 현장에 나갈 수는 없지만 민주노총의 한상균 위원장은 각종 대회에서 영상으로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막상 정부 정책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되는 현장의 노동자들은 노동시장 개혁에 대해 아직은 뜨뜻미지근한 반응이다.

지난 달 4일 서울역 광장에서 모인 양대노총 제조부문 노동자들의 반응은 노동시장 개혁이 쉬운 해고, 저임금 확대,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것이라는 말만 들었지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특히나 이어지는 경기 불황으로 사업장이 어려운 곳이 많아서 정부의 노동시장 개혁안에 대한 관심 보다는 경영 사정이 나아지기를 바라는 노동자들이 더 많은 것 같아 보였다.

한 조선소 사내하청노동자는 해마다 사내하청노동자 기록을 갱신하고 있는 조선업계에는 아직도 하청업체들의 위장폐업이나 임금을 떼먹고 도망가는 업체들이 많이 있는데 정부에서 제대로 관리감독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하며, 원래 있는 법도 지켜지지 않는 상황에서 새로운 정책을 추진한다는 것이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철강업종에서 일하고 있는 한 노동자는 철강산업이 중국에 밀리고 있는 동안 정부에서는 국내 철강회사들이 자체적으로 구조조정 되는 걸 지켜보기만 했다며, 현장에서 필요한 정책 지원을 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대기업 자동차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한 사내하청 노동자는 사내하청이 불법파견이라 판결이 난지 2년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도 나는 아직도 사내하청 노동자라고 말하며, 대법원 판결까지 무시하고 있는 대기업에 대해 정부가 취하는 조치는 아무것도 없다고 분노했다.

기아자동차 사내하청노동자 2명은 6월 11일 새벽 기습적으로 국가인권위원회 옥상 광고탑에 올라 현재까지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완성차 공장 사내하청이 불법파견이니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대법원의 판결 이행을 현대자동차그룹에 촉구하고 있다.

아직도 제조 현장에서는 장시간 근로문제가 만연해 있고, 통상임금 판결 이후 사측에서 잔업을 통제하는 경우도 있어 임금이 거의 오르지 않는 곳도 있는 등 통상임금, 장시간근로 개선 문제가 아직 현장에서는 더 와 닿는 부분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많았다. 특히 소규모 사업장에서는 통상임금 문제로 노사간의 갈등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노동시장 개혁은 현장에 분란만 더 야기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 산업통상자원부

제조업 혁신 3.0, 1년차 결과물

제조업 현장의 전반적인 위기를 정부에서 인지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지난해 6월 산업통상자원부는 제조업 혁신 3.0 전략을 발표한다. 제조업과 IT, 서비스 산업간 융복합이 전세계적으로 확산 추세에 있고 스마트 공장이나 3D프린팅 등 새로운 생산방식이 등장함에 따라 국내 제조업 재도약을 위한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판단으로 제조업 혁신 3.0 전략을 수립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2017년까지 민관이 함께 24조 원의 재원을 마련하여 제조업 혁신을 위한 투자에 나서고, 2024년까지 제조업 4강으로 도약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현재 한국은 중국, 미국, 일본, 독일에 이어 제조업 생산 5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간 추진된 사항을 살펴보면 중소기업 300개 스마트 공장 구축, 미래 성장동력 세부계획 수립, 창조경제혁신센터 7곳이 개소되었고, 전자 부분은 삼성, 자동차 부분은 현대 등 업종별 대표기업을 중심으로 스마트 공장을 확산할 방안을 마련하여 2020년까지 국내에 1만 개의 스마트 공장을 구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인 지원 내용을 살펴보면 주요 대기업의 사업재편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산업은행의 기업 투자촉진 프로그램을 활용한다. 산업은행에서 15조 원, 민간기업에서 15조 원의 재원을 마련하여 주식이나 회사채 인수 방식으로 신성장사업, 전통 주력사업으로의 사업재편의 지원한다. 중소·중견기업의 M&A지원을 강화하기 위해 국내외 인수 가능 기업의 매물정보 제공 및 M&A 절차전반에 지원을 확대하고, 무인자동차나 무인항공기 등 기존의 법, 제도와 충돌할 가능성이 있는 제품에 대해서는 제도 개선을 꾀할 계획이다. 새로운 생산 방식과 융합신사업 확산에 대비해 제조혁신 관련 인재 육성에도 지원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미 지난해 한화는 삼성과의 1조 9,000억 원의 대규모 M&A를 통해 삼성토탈, 삼성탈레스, 삼성테크윈, 삼성종합화학을 인수하면서 방위산업과 석유화학산업에서 국내 1위로 도약했다. 삼성은 비핵심부분을 정리하고 전자와 반도체 산업에 집중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했다. 포스코 역시 지난해 포스코특수강 분야를 세아그룹에 넘겼다. 포스코특수강은 작년에 경기 불황으로 구조조정을 겪었고, 철강업계에서 튼튼한 중견기업인 세아그룹에서 특수강 시장 경쟁력 강화를 위해 포스코 특수강을 인수했다.

ⓒ 포스코경영연구원

정부 정책, 산업간 불균형 초래할 수도

하지만 지속된 경기 불황으로 사업장들이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기존에 있는 산업 육성을 위한 정책 없이 新제조업이라는 이름으로 스마트 제조업을 육성한다는 것은 현장에 맞지 않다는 지적들이 많다. 정부에서 추진 중인 스마트 공장의 경우만 보더라도 자동화가 가능한 분야가 있고 그렇지 않은 분야가 있는데 산업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산업간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문제제기도 있었다.

채권단 관리 하에 있는 한 단위노조 대표자는 정부에서 제조업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현장까지 내려오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라고 이야기 하며, 오죽하면 노동조합이 정부며 채권단이며 쫓아 다니며 회사를 살려달라고 이야기 하겠냐고 답답한 마음을 내비쳤다. 경기 불황이 이어지면서 이제는 노동조합에서 경영까지 신경을 써야 하고, 최악의 경우 회사를 살릴 수 있으면 다른 회사로의 매각까지 노동조합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많은 전문가들이 과거 산업 성장 방식이었던 대기업, 수출 중심의 산업구조가 마지막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고 말한다. 포스코경영연구원에서는 이미 제조업의 실질 성장률은 3년째 둔화되고 있고 제조업 부문에서의 고용도 감소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우리나라 제조업 고용비중은 중소기업에서 88%를 차지하고 있는데, 타선진국 대비 국내 중소·벤처기업의 생존율이 창업 후 5~9년 내에 경쟁력을 급격히 상실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소기업연구원에서 지난 20년간 중소기업 생존율을 조사하였는데 약 9%의 중소기업만이 생존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93년 이후 창업해서 대기업(500인 이상)까지 성장한 기업은 8개에 불과하다고 분석했다.

그리고 포스코경영 연구원 에서는 일본의 장기 불황 요인 중 하나로 소니나 도요타 같은 제조업의 위기를 언급하며 제조업 비중에 놓은 국가에서 금융이나 서비스, SW 산업으로의 산업구조 개편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을 것을 지적했다.

기존의 대기업 중심의 산업 정책, 결국 현실과 괴리된 정책 추진에 대해 노동계를 포함해 사회 각계각층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계속되고 있다. 정부의 표현처럼 ‘골든타임’을 맞추는 것이 개혁 정책의 추진에서 중요할 수 있다. 다만 사업장 현장의 상태가 반영되지 않은 채, 이해당사자들의 입장을 충분히 주고받으며 사회적합의 없이 강행된 정책이 얼마나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와 같은 양상은 제조부문 뿐만 아니라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잡음을 일으키고 있는 공공부문의 개혁 정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