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아는 만큼 바뀐다
치매, 아는 만큼 바뀐다
  • 박상재 기자
  • 승인 2015.08.03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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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양가족, 고위험군 모두 해당할 수 있는 베이비부머세대
치료 병행 시 5년 이상 증상 지연시킬 수 있어
[정년 후]치매

프랑스 영화 <아무르>(2012)는 치매를 다루고 있다. 노부부의 잔잔했던 황혼이 부인이 치매를 얻고 난 이후 무너지는 과정을 담은 내용이다. 결말부터 말하자면, 결국 남편은 부인을 죽이고 홀연히 사라진다. 지극정성이던 남편이 결국 자신의 손으로 아내를 가슴에 묻기까지의 과정이 관객에게 충분히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치매가 당사자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늘어나는 치매인구

▲ ⓒ 강동구 치매지원센터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치매환자는 꾸준히 증가해 1995년엔 21만 8,300명 수준에서 2015년엔 57만 1,000명까지 늘어났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도 2009년부터 2013년까지 5년간 치매에 대해 분석한 결과 40대 미만, 40대, 50대 진료인원 비중이 2009년 이후 각각 43.4%, 6.5%, 38.4%씩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2013년 기준 치매진료인원의 비중은 70대가 86.9%, 60대 9.9%, 50대 2.9% 순으로 나타났고 나머지는  1% 미만 수준이다. 하지만 전체 연령층에서 치매진료인원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서도 치매가 더 이상 단순히 노년층만의 문제가 아님을 견지할 필요가 있다.

치매는 원인과 증상이 100여 가지에 이를 정도로 매우 다양한데, 크게 분류를 하면 흔히 말하는 알츠하이머와 뇌혈관성 치매, 그리고 기타로 분류할 수 있다. 치매환자 중 70% 가량이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고, 뇌혈관성 치매는 24.4% 수준이다. 알츠하이머가 뇌의 노화로 인한 질환이라면, 뇌혈관성은 혈관의 노화나 고혈압 등 혈관질환에서 기인한 뇌 조직 손상이 주요 원인이다. 알츠하이머의 경우 치료를 통한 완치가 어려운 반면 뇌혈관성 치매는 수술을 통해 완치가 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이외에도 ‘가성치매’의 경우 우울증에서 기인한다. 우울증은 인지기능에 영향을 미쳐 치매로 오인되기도 하고, 기억력 장애, 감정변화, 시공간 능력 저하 등이 나타난다. 주로 갑작스런 상황변화에 따른 충격으로 인한 경우가 많은데, 항우울제와 같은 약물치료와 정신과 상담을 병행한다면 충분히 기억력을 회복하고, 증상이 호전되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한경혜 강동구 치매지원센터 팀장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방”이라며 예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강동구 치매지원센터의 경우 검진을 원하는 사람들에 대해 고위험군, 경증, 중증 등의 증상을 확인할 수 있도록 무료로 검진을 실시하고 있다. 그리고 고위험군에 대해선 보건소와 연계해 운동처방, 금연클리닉, 만성질환 관리 프로그램 등을 지원해주며. 우울증 환자의 경우엔 정신보건센터와 연계해 지속적인 관리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완치는 쉽지 않지만

<사례>치매를 앓고 있는 시어머니를 부양하고 있는 C양 가족은 할머니의 거친 욕설 때문에 견디기 힘들다. 게다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손녀딸에게 험한 욕설을 한창 내뱉다가도 정작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 안 그래도 견디기 힘든 치매환자지만, 자식에게까지 상처를 주는 상황이 반복되는 상황이 감당하기 힘들어지고 있었다.

예방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하더라도 조기에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일부 환자의 경우 스스로가 증상을 부인하고, 인지기능과 같은 일상생활의 능력이 경미하게 떨어지기 때문에 단순한 노화로 판단할 가능성도 많다. 하지만 조금만 더 관심을 갖고 접근해 치매지원센터나 인근 병원을 찾는다면 전문가의 상담을 통해 자연스러운 치료 권유나 프로그램 유도 방식을 통해 정밀 진단을 받을 수 있다.

치매의 완치는 쉽지 않지만, 주기적인 치료를 받고, 적절한 약물치료를 한다면 5년 이상 치매 증상을 지연시킬 수 있다. 치매환자 측면에서도 긍정적이지만, 부양가족의 측면에서 더욱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과격한 행동이나 언행이 줄어들 수 있다는 측면에서 도움이 된다. 위 사례의 경우도 치매지원센터를 통해 꾸준한 치료를 받은 결과 과격한 행동이 줄어들었으며, 비슷한 사례들도 긍정적인 결과를 얻었다는 것이 센터 관계자의 설명이다.

또한 부양가족의 경우, 특히 부부 중 어느 한 명만 치매환자를 부양할 경우 자신의 생활을 잃어버려 우을증에 걸리는 등 정신적으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다. 강동구 치매지원센터의 경우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그 중 기억키움학교는 주5일간 약 3시간씩 치매환자를 대상으로 인지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전개하고 있다. 이는 환자가 교육을 받는 동안 부양가족에게 시간적 여유를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무기력한 치매환자들이 모여 활동 영역을 넓힌다는 측면에서 부양자와 환자 모두에게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만 기억키움학교는 비교적 경증 환자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중증의 경우 교육 참여가 어려울 수도 있다.

중증 환자의 경우 분리불안장애 증상을 보이는 경우도 있는데, 치매지원센터 관계자는 “치매환자가 부양자인 딸이 잠시라도 보이지 않으면 몹시 긴장해 상담이나 치료를 진행할 때도 3분마다 자리에서 일어나선 딸을 찾는 행동을 해 주변 환자들까지 불안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재가요양을 하는 경우였기 때문에 이런 증상은 부양자마저 고립시켰다. 센터를 찾아 성향을 파악하고, 원인을 분석해 다른 무언가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통해 모녀가 분리된 상황에서도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했다. 물론 중증 환자였던 만큼 이런 증상을 완치하진 못했지만, 짧게는 30분, 길게는 1시간가량 부양자와 떨어져 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부양자의 부담을 크게 덜 수 있다.

시설 요양보단 재가 요양을

<사례> 해외에서 안정적인 경제력을 가지던 가족에게 닥친 경제위기는 가족 구성원 모두의 삶 전반을 바꿔놓았다. 갑작스런 사업 실패로 인해 아들은 신용불량자로 한국으로 돌아오지도 못한 채 행방불명이 되었다. 딸은 빚을 갚기 위해 ‘돈’을 목적으로, 일본으로 결혼을 하러 떠났다. 간신히 부모의 경제력을 뒷받침하게 됐지만, 한국에서 생활을 할 수는 없었다. 노부부는 기초수급대상이 된 채로 한국으로 귀국했지만, 남편은 충격으로 갑작스럽게 중증 치매환자가 됐다. 아내 B는 생활고와 함께 치매남편을 돌봐야 했고, 결국 아내 B도 견디지 못한 채 치매에 걸리고 말았다.

홍종석 강동구 치매지원센터 사회복지사는 해당 사례에 대해 “갑작스런 충격과 복합적인 모호한 요인들로 인한 치매 발병”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다른 사례를 봐도 충격으로 인해 치매가 오는 경우가 꽤 있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강동구 치매지원센터에서 담당하고 있는 위 부부에 대해 잠깐 언급을 하자면, 남편은 치매를 앓던 도중 결국 사망했다. 치매를 앓고 있음에도 경미한 증상을 보이며 간신히 남편을 부양하던 아내도 남편의 죽음 직후 중증 치매로 돌아섰다. 홍종석 사회복지사는 “이미 진단 결과는 할머니가 할아버지보다 중증 치매인 것으로 나왔지만, 할아버지를 부양하겠다는 절실함에 감춰져 있던 것”이라며 그동안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이 있었고, 그로 인한 자살 시도도 몇 차례 있었다고 설명했다.

위와 같은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더라도, 부양가족은 치매환자를 돌볼 때 재가요양과 시설요양 중 고민하게 된다.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고, 3~4인 가족이 흩어져 지내 친인척간의 도움을 받기 어려운 요즘 시대엔 더욱 그렇다. 정부도 이런 상황을 고려해 노인장기요양보험을 통해 15~20% 수준의 자기부담금을 지급하면 요양시설을 이용하거나, 요양보호사가 가정으로 방문하는 재가요양을 받을 수 있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가능한 재가요양 형식을 통한 치매환자 관리를 권장하고 있다. 한경혜 팀장은 “지역사회에서 계속 관계를 이어가며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환자에게도 좋고, 시설에 들어간 이후로는 환자도 지역사회로 복귀하기 어렵고 부양자도 다시 환자를 돌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인 만큼 시설 입소 전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시설 요양이나 요양보호사를 통한 재가 요양 외에도 이를 활용하기 어려운 부양자의 경우엔 가족에게 매월 15만원을 지급하는 제도도 있으니 이도 확인해 볼 만 하다. 다만 가족이 직접 환자를 돌보려는 경우엔 치매지원센터를 통한 교육이나 전문가 상담을 통해 이를 미리 숙지해 놓는 것이 환자의 증상을 지연시키고, 부양자가 스트레스 요인에 덜 노출될 수 있는 방법이다.

하지만 사실 치매노인을 돕는다는 건 단순히 주변 조력자의 도움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강동구 치매지원센터에선 다른 사례의 경우 찾아오는 조력자를 심하게 경계하며 집안에 접근조차 할 수 없도록 해 고립된 상황을 악화시키기도 한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치매 초기증상의 경우 ‘도둑 망상’과 ‘독극물 망상’이 흔히 나타나는 증상이다. 도둑 망상의 경우 타인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 누군가가 자신의 소유물을 빼앗아 갈까봐 타인을 기피하는 경우이고, 독극물 망상의 경우 자신을 누군가가 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타인이 주는 음식물을 모두 버리거나, 거부하는 증상을 보인다.

그래서 강동구 치매지원센터는 ‘노노(老老)케어’를 운영하고 있다. 사회복지사나 간호사에 비해 전문성은 떨어지지만, 비슷한 연령대의 치매환자에겐 소중한 말벗이 되고, 망상에 사로잡힌 환자들에게 상대적으로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기 때문에 많은 도움이 된다. 이는 독거노인뿐만 아니라 자택에서 돌봄을 제공하는 재가요양가정에서도 큰 도움이 될 수 있고, 부양자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는 측면에서도 요긴한 제도이다.

환자, 부양자모두 아픔을 나누면

이 외에도 치매환자 및 부양자의 심리적인 부담을 덜어주는 프로그램이 많다. 치매 가족들이 모일 수 있는 시간을 주기적으로 마련해 이들이 치매환자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부터 서로간의 어려움을 털어놓을 수 있도록 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치매 가족의 경우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의 5단계를 거쳐 감정적, 재정적인 문제를 외면하게 되는 과정을 밟게 되는데, 가족모임 프로그램을 통해 심리적인 안정을 갖는 것만으로도 부양자의 재정적 안정까지 유도할 수 있다. 치매지원센터는 현재 전국 단위로 운영되고 있으며, 서울의 경우엔 개별 구 단위마다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베이비부머 세대에겐 치매 당사자로서의 위험과 부양자로서 겪어야 할 어려움이 공존하는 세대이다. 점차 기대수명이 높아지고, 치매 발병 위험이 높아지는 현 상황에서 다시 한 번 치매에 대한 관심을 높여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