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닛산’ 살린 카를로스 곤, GM 구원투수 되나?
‘위기의 닛산’ 살린 카를로스 곤, GM 구원투수 되나?
  • 참여와혁신
  • 승인 2006.08.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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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 릭 왜고너 회장 입지 축소 불가피르노-닛산, 내실 없는 규모 확장 우려

지난 6월 30일, 세계 최대 자동차 메이커인 GM의 주식 10%를 보유하고 있는 ‘트라신다’가 GM측에 르노-닛산 그룹과의 제휴를 검토하도록 요구하였다. 이후 르노-닛산 이사회와 GM이사회가 제휴 협상을 승인하면서 양 그룹 대표자(르노-닛산측은 카를로스 곤, GM측은 리처드 왜고너)는 제휴와 관련된 제반 내용에 대한 구체적 검토에 들어갔다.

현재까지 알려진 내용으로는 르노-닛산이 약 4천억 엔을 투자하여 GM의 주식 20%를 보유하는 형태의 제휴가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르노-닛산 그룹과 GM 간의 제휴가 성사될 경우, 유럽-일본-미국을 연결하여 1,500만 대를 생산하는 초대형 메이커가 출현하게 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1990년대 후반 다임러 벤츠와 크라이슬러의 합병으로 출현한 다임러크라이슬러의 규모가 400만 대 수준이었음을 감안할 때 상상을 초월한 규모라 할 수 있다.

초대형 자동차회사 탄생하나
따라서 최근 세계 자동차업계에서는 이번 초대형 제휴가 향후 가져올 영향을 분석하는데 분주하다. 그 분석의 내용은 긍정적인 것부터 부정적인 것까지 다양하게 나오고 있는데,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것은 거의 파산선고를 받았던 닛산을 기적처럼 살린 부활의 원동력을 GM이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제휴를 주도한 ‘트라신다’의 소유주, 코크 커코리언 등 GM의 주주들은, 최근 왜고너 회장에 의한 GM 개혁이 성과를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 경영진보다는 ‘닛산의 부활 신화’를 선택한 것이다.

커코리언은 라스베가스 카지노 사업과 기업 매매를 통해 부를 축적한 전형적인 투기꾼이다. 그는 1990년대 초반부터 크라이슬러에 투자하면서 자동차사업과 관계하기 시작했는데, 2005년 5월 약 17억 달러를 투자하여 GM 지분을 인수한 것이 GM의 실적 악화로 한때 30% 이상 평가 손실을 경험하면서 GM의 경영진에 강력한 구조조정을 요구하여 왔다.

최근 전미자동차노조(UAW)의 양보로 GM의 구조조정이 한층 탄력을 받고 있는 가운데 나온 이번 제휴 제안은, 커코리언을 비롯한 주주들이 보다 빠른 주가의 회복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닛산 ‘부활신화’의 주역, 카를로스 곤의 리더십
그렇다면 닛산은 어떻게 부활하였고 ‘닛산의 부활 신화’가 과연 GM에서도 유효할까?

1999년 르노와 닛산의 제휴가 이루어지던 당시 닛산은, 1990년을 피크로 경영실적이 지속적으로 악화되다가 사상 최대인 6,844억 엔의 적자를 기록하면서 파산선고를 받기 일보 직전까지 갔다.

닛산의 경영진들은 90년대 들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경영실적의 악화를 막아보고자 노력하였으나 기존의 관료적인 경영관행과 절박한 위기의식의 결여 등으로 제대로 된 개혁을 추진해보지도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었다.

한편, 세계 자동차업계는 1998년 다임러 벤츠와 크라이슬러 간의 M&A가 성사되면서 자동차 메이커 간 인수합병의 바람이 거세게 불기 시작했다. 주된 논리는 400만 대 생산규모를 가지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서유럽의 지역 메이커에서 글로벌 메이커로 성장하기 위해 인수 대상을 찾던 르노와 경영위기에 처해 자기를 구제해 줄 메이커를 찾던 닛산이 인수합병의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게 된 것이다.

협상은 닛산이 르노 이외에 다임러크라이슬러와도 협상을 동시에 전개함에 따라 지연되기도 했지만 결국 다임러크라이슬러가 인수합병 의사를 포기함에 따라 르노와의 협상이 급물살을 타면서 순조롭게 협상이 타결되었다.

협상의 내용은 르노가 닛산에 6,430억 엔의 자본금을 투자하여 닛산의 주식 36.8%를 보유하고 닛산의 구조조정을 실시할 르노 경영진을 파견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닛산의 협상 대표자였던 하나와 사장은, 이번 제휴가 비록 르노가 닛산을 인수하는 형태로 이루어졌지만 양사 간의 대등한 동맹이어야 함을 강조하였고 이는 르노의 협상 대표자였던 슈바이처 회장에게 전적으로 받아들여졌다.

르노는 닛산에 보낼 경영자로 당시 르노의 2인자였던 카를로스 곤을 선택하였다. 카를로스 곤은 28살의 젊은 나이에 타이어 메이커인 미쉐린의 브라질 공장의 공장장에 임명되어 당시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어려움을 겪던 공장 운영을 정상화하였다.

이후 미쉐린 북미 사업을 담당하면서 미국 타이어 메이커인 ‘유니로얄굿리치’를 인수하고 이질적인 문화와 다른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두 기업을 성공적으로 통합하면서 그 능력을 인정받았다.

1996년 카를로스 곤은 완성차 메이커인 르노에 2인자의 자리를 보장받으면서 회사를 옮겼는데, 르노에서도 경영조직의 혁신, 공장 폐쇄, 조달체제 개혁 등을 통해 200억 프랑에 이르는 대규모 비용절감에 성공하면서 당시 어려움을 겪고 있던 르노를 개혁시켰다. 이러한 카를로스 곤의 이력은 그에게 ‘코스트 커터(Cost Cutter)’라는 별명을 만들어 주었다.

강력한 구조조정, 구매부문 합리화
닛산의 CEO로 취임한 카를로스 곤은 닛산 위기의 근본 원인이 일본 경제의 버블 붕괴와 장기 경기침체, 엔고 등 외부 환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위기의식의 결여, 각 부문 간 의사소통의 결여, 효과적인 위기관리 능력의 부재, 관료적인 경영관습의 지속 등 내부적인 요인에 있다고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거의 동일한 외부환경에 직면했던 경쟁사인 도요타와 혼다는 이 시기에도 성장을 지속하였기 때문이다.

카를로스 곤은 취임과 함께 닛산 내부 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하기 시작했다. 카를로스 곤이 취한 개혁은 우선 목표의 명확화와 목표 달성을 위한 우선순위의 설정, 비즈니스 원칙의 확립, 의사소통의 활성화 등을 조직내부에 불어 넣고자 하였다.

우선 목표의 명확화를 위해 1999년부터 ‘NRP’, ‘N180’, ‘밸류업’ 등의 3개년 계획을 수립, 이를 기업내외에 발표하였다. 이 계획안에는 달성해야 할 목표가 수치로 명확하게 설정되어 있으며 모든 조직원이 이 목표를 향해 매진하는 동기를 부여하고 있다.

우선순위의 설정 사례를 보면, 기존의 닛산은 실적이 악화되면, 전체 비용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구매부분의 합리화를 통한 비용절감보다는 실행하기 쉬운 사무용품 절약이나 냉온방 등 에너지 절감 등의 경비 절감을 통해 비용 절감을 추진하였다.

이러한 비용절감은 실적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직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기까지 하였다. 카를로스 곤은 조달부문에 과감한 개혁의 메스를 들이대었다.

부품업체의 수를 1,145사에서 600사로 축소한 것이다. 부품업체 수의 축소는 업체 당 발주량을 늘려 결국 부품 단가의 절감을 가져왔다. 비즈니스 원칙의 확립을 위해서는 당시 1,390사에 이르던 계열부품회사의 주식을 대부분 매각함으로써 기존 계열관계에 의존하여 관행으로 이루어지던 거래관계를 청산하였다.

또한 우주항공부문과 같은 비핵심 사업 및 자산을 매각하고 그 매각 대금을 부채의 청산과 연구개발 투자에 사용하였다. 이것은 유이자 부채의 조기 상환과 연구개발 부문의 개혁 추진 그리고 신차개발 능력의 향상으로 나타났다.

의사소통 활성화를 위한 복합기능팀 운영
의사소통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서로 다른 부문(R&D, 구매, 생산, 판매 등)이 일정하게 주어진 과제(조달문제, 상품개발문제, 재무비용문제 등)를 해결하기 위해 한 팀을 이루는 복합 기능팀(CFT:Cross Functional Team)의 구축, 지역부문(북미, 유럽, 아시아 등)과 기능부문(판매/마케팅, 생산/구매/품질, 재무일반, 연구개발 등)을 상호 연결하는 매트리스 조직의 구축 등을 추진하였다.

이러한 조직 혁신은 닛산이 가지고 있던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보다 효과적으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는 조직능력의 향상을 가져다주었다.

이러한 강력한 개혁 활동으로 인해 닛산은 인원축소, 공장폐쇄, 부채청산, 수익개선 등을 목표로 내건 닛산부활계획(NRP:Nissan Revival Plan)을 당초 목표기간보다 1년 앞서 목표치를 초과 달성하였다.

또한 그 뒤를 이어 발표된 세계판매 100만대 확대, 영업이익률 8% 달성, 유이자 부채의 완전 청산 등을 목표로 내세운 N180계획도 2005년 9월에 완료되었다. 지금 닛산은 새로운 성장 계획인 ‘밸류업(Value-up)’을 추진 중이다.

닛산은 이 기간(1999년~2005년) 동안 매출액은 3조 4천억 엔이 증가하였으며 영업이익은 8,300억 엔, 순이익은 6,065억 엔이 증가하였다. 또한 세계 판매대수는 115만대가 증가하였다. 이제 세계 자동차업계는 완전히 닛산의 부활을 믿게 되었으며 세계 유래가 없는 ‘V자 회복’을 이루어낸 카를로스 곤의 리더십에 주목하고 있다.

GM 릭 왜고너 회장 입지 축소 예견돼
2000년대 들어 판매가 지속적으로 감소되던 GM은 지난해부터 적자를 기록하기 시작하였고 올 상반기에도 판매가 전년동기대비 12.3%나 감소하면서 적자폭이 한층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GM의 왜고너 회장은 지난 3월, 2008년까지 북미에서 5개의 완성차공장을 포함한 9개의 공장을 폐쇄하여 북미지역 생산능력을 520만대에서 420만대로 감축하고 북미지역 종업원의 21.1%에 해당하는 3만명을 감원하는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하였다.

전미자동차노조(UAW)의 격렬한 반대에 직면했지만 결국 지난 6월에 UAW가 양보함으로써 GM에서 3만 6천명, 델파이에서 1만 2천명의 조기 퇴직자를 모집하여 총 4만 8천명의 감원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GM의 경영이 정상화되기까지는 여전히 험난한 장애가 놓여 있다. 고유가 시대에 대응해 연비효율이 좋고 친환경적인 차를 개발하여야 하며 품질이 좋지 않다는 이미지를 벗어야 하고 시장에서 요구하는 차를 적시에 내놓을 수 있는 개발 및 생산능력도 구축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과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조직 능력을 과연 GM이 가지고 있는지 이미 오래전부터 의문시되어 왔다. 판매가 지속적으로 감소되는 가운데 인센티브의 확대 등을 통한 무리한 판매 정책의 추진, 고유가 시대가 이미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연비효율이 나쁜 대형 픽업 및 SUV 개발 지속, 델파이의 분사를 비롯한 부품조달 정책의 실패 등, 조기에 효과적인 경쟁력 강화 정책을 전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르노-닛산그룹과의 제휴가 성사된다면 ‘닛산의 부활’로 이미 그 능력을 인정받은 카를로스 곤과 달리, 왜고너의 입지는 좁을 수밖에 없다. 심지어 대주주인 커코리언은 GM의 회장에 카를로스 곤이 적합하다는 말을 하면서 왜고너를 더욱 압박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왜고너 회장을 중심으로 한 현 GM의 경영진은 이번 제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르노-닛산 내부에서도 반대 여론 떠올라
반면, 지난해 르노-닛산그룹 회장에 취임한 카를로스 곤은 매우 적극적으로 이번 제휴를 추진하길 원하고 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카를로스 곤은 경영이 어려운 기업의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에 맞는 처방을 신속하게 내릴 뿐 아니라 실행력에 있어서도 타에 추종을 불허하기 때문에 GM의 문제가 아무리 심각하다 할지라도 결국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만일 GM의 회장이 된다면 세계 생산 1,500만대에 이르는 세계 최대 메이커의 회장에 등극하게 된다는 그의 야심도 크게 작용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닛산의 판매가 부진해지고 르노의 경쟁력도 약화될 기미가 보이면서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카를로스 곤의 발목을 잡고 있다. 닛산은 지난 2005년 9월, ‘N180’계획이 달성되었다고 발표한 바로 다음 달부터 세계 판매가 급격한 감소세를 보이기 시작하였는데, 곤 회장은 ‘N180’ 목표 달성에 따른 반동효과로 설명하면서 빠르게 회복될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으나 이후 올 5월까지 판매가 회복될 조짐은 보이지 않고 있다.

또한 르노 역시 지난해 순이익 3천억 엔 가운데 2천억 엔이 닛산 주식 보유에 따른 배당 수익으로 사실 영업이익은 전년에 비해 감소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닛산과 르노의 주주들 사이에서는 곤 회장이 GM과의 제휴에 신경 쓰기보다는 르노-닛산그룹의 내실다지기에 나서야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견해가 만만찮게 나오고 있다.

●‘닛산의 부활’, GM에도 통할까?
그렇다면 ‘닛산의 부활’은 GM에도 유효할까? 그 결과를 단언할 수는 없지만 만일 곤 회장이 GM 회장에 취임한다면, 르노-닛산 그룹의 실적이 단기간에 악화되지 않는다면 GM-르노-닛산의 대규모 동맹은 세계 자동차 업계에 막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만약 현 왜고너 회장 체제가 지속되거나 르노-닛산의 실적이 악화된다면, 이번 제휴는 단순히 주가를 올리기 위한 GM의 대주주이자 투기꾼인 커코리언의 해프닝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곤 회장의 GM 회장 취임은, 곤 회장의 리더십이 GM의 내부 역량과 조직능력 극대화를 바탕으로 개혁을 이끌어내는 전제 조건으로 판단되며, 르노-닛산그룹의 실적 악화 여부는 곤 회장의 개혁이 과연 지속가능한 성장으로 연결될 수 있는가에 대한 판단 기준을 제공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현시점에서 GM 재건까지는 불확실한 변수들이 많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기업 내부 개혁과 이를 통한 조직능력의 향상이 부활, 지속 성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변수라는 것이다.

지난 7월 14일, 르노-닛산 그룹과 GM은 3개월 동안 제휴 효과에 대한 조사에 들어갈 것을 합의했는데, 3개월 후 GM은 과연 어떤 결과를 발표할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