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튼튼해야 경제가 튼튼하다
제조업 튼튼해야 경제가 튼튼하다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5.09.11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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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불러들이는 선진국 vs. 내보내는 한국
연구개발·사업구조 개편으로 신성장동력 찾아라
[커버스토리]제조업의 위기 ③ 어디로 가야 하나

개별기업 노사 담당자들의 경우 현재 당면하고 있는 위기를 제조업 전반의 구조적인 위기로 인식하기보다는 경기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어려움으로 파악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는 개별기업 차원에서는 당면한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우선이어서 전체 제조업의 상황으로 눈을 돌릴 만한 여유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제조업의 위기를 이야기한다고 해서 당면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이 나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두산중공업
캐치-업 무력화시킨 중국의 성장

개별기업에서 현재 당면하고 있는 상황을 경기에 따른 일시적인 어려움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다. 산업연구원 장석인 선임연구위원은 “지금 제조업의 상황이 안 좋은 게 단순히 영업이익이나 매출이 좀 줄어드는 게 아니라 구조전환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부분이 있고, 구조전환을 해도, 예컨대 조선 같은 경우는 해양플랜트를 위주로 전환했는데도 불구하고 무너져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태로 치닫고 있다”고 말한다.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그런 구조적인 위기가 현상적으로는 매출이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좀 더 안으로 들어가 보면 영업이익 자체가 낮은 수준이고 영업이익률도 감소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으며, 그런 상황이 최근 2~3년간 지속될 뿐만 아니라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장석인 연구위원은 “제조업 전체로 볼 때 2007년경 글로벌 금융위기 시절부터 볼 필요가 있는데, 글로벌 위기가 와서 전 세계적으로 수요가 확 줄어들었지만 우리나라는 중국 등의 성장과 환율 덕에 굉장히 빨리 복원했다”면서 “그렇게 위기에서 빨리 벗어나니까 위기극복 과정의 성과에 취해서, 지금부터 위기에 대비해야 한다고 해도 잘 듣지 않았다”고 말한다. 앞서 한 자동차업계 관계자가 현대자동차에 대해 “차가 잘 팔리다 보니 그 안의 불합리한 구조를 개선할 기회를 놓치고 성장에 묻어갔다”고 진단한 대목과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제조업이 위기극복 과정의 성과에 취해 있는 동안, 중국과 같은 성장하는 국가들은 소위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우리나라의 성장전략을 답습하면서 급속히 성장했고, 그 과정에서 우리나라 제조업이 가지고 있던 장점을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동안 우리나라 제조업은 캐치-업(catch-up, 선두 따라잡기) 전략을 통해 성장해왔다. 선진국의 기술을 모방하면서 가격경쟁력을 무기로 급속도의 성장을 이뤘다. 그런데 2010년 18%에 달하던 제조업 매출액 증가율이 2013년 0.7%로 급락하면서 이러한 전략이 한계에 부딪힌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 따르면 2012년 2.1%이던 조선산업 매출액 증가율은 2013년 0.3%, 2014년 상반기 -0.9%로 낮아졌다. 같은 기간 자동차산업의 매출액 증가율 역시 10.5%에서 5.2%, 1.5%로 각각 낮아졌다. 또 다른 주력 수출상품인 휴대폰의 매출액 증가율도 같은 기간 72%에서 31%, -9.4%로 낮아졌다.

그동안 우리나라 제조업의 성장은 중국 경제의 성장과 맞물려 있었다. 그런데 중국 제조업이 국가의 지원 등 여러 사정에 힘입어 급속하게 성장하고 중국 경제의 성장이 둔화되면서 전 세계 제조업은 공급과잉 상태에 놓이게 됐다. 거기다 ‘엔저’를 앞세운 일본 제조업과의 경쟁에서 밀리면서 우리나라 제조업의 매출액은 급격하게 줄게 된 것이다. 셰일가스의 개발로 국제유가가 급락한 것도 우리나라 제조업, 특히 해양플랜트에 집중 투자한 조선산업의 위험요인으로 작용했다.

 ⓒ두산중공업
싼 인건비만 좇다 핵심인력 놓친다

이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기업의 체질을 바꾸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장석인 연구위원은 “IMF를 극복하는 과정에서는 구조조정 등 나름대로 잘 적응해 왔는데, 위기가 있었다면 그 다음에 대한 예측과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면서 “하지만 중국이 뜨면서 우리나라 제품은 무조건 다 가져오라는 분위기였고, 우리나라 기업들은 중국에 벌크로 가져다 팔아도 돈이 잘 벌리니 더 잘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사업구조 개편에 대한 준비를 전혀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장석인 연구위원은 또 그동안 우리나라 기업들은 사업구조 개편을 하더라도 외부에서 사후적으로, 강압적으로 압력을 받아왔다고 주장한다. 사업을 하다가 잘 안 되는 때에 이르러서야 정부 등 외부에서 강압적으로 추진하는 구조조정에 익숙해져 있다는 것이다. 학계에서는 이미 20여 년 전부터 고부가가치 아이템을 개발해야 한다고 이야기했지만 기업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지난해에 이르러서야 삼성과 한화의 석유화학부문 빅딜 등 기업들이 처음으로 자발적인 구조 개편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장석인 연구위원은 “그런 구조 개편이 더 일찍, 4~5년 전부터 시도됐어야 한다”면서 “노사관계의 문제나 지분 상속 문제도 있고, 그런 구조 개편을 매끄럽게 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제도도 안 만들어져 있어서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사업구조를 개편해 나갈 기회를 많이 놓쳤다”고 주장한다.

다른 한 편, 제조업을 바라보는 인식에 대해서도 지적이 나온다. 제조업을 중요하게 여기는 인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제조업이 GDP(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대인 미국이나 영국 등 선진국과 비교하면 우리나라의 경우는 아직 30% 정도로 높은 편이다. 그러나 선진국들 사이에서 점차 제조업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서비스업을 강조하면서 제조업을 자꾸 내보내려고만 한다는 것이다.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제조업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제조업은 동북아에서, 금융이나 문화산업, 지적 재산 등 주로 머리 쓰는 산업은 선진국에서 하는 식의 분업을 생각했다. 그러나 금융위기를 당해 보니까 그런 식으로 하면 특히 일자리 창출이라는 측면에서 충분하지 않다는 걸 확실하게 깨달은 선진국들은 좋은 조건을 만들면서 해외로 나갔던 제조업을 다시 불러들이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내보내고만 있다.”

장석인 연구위원은 이렇게 제조업을 자꾸 내보내면 제조업에서 노하우가 쌓이지 않고 새롭게 뭔가를 시도해볼 수 있는 인력까지도 해외로 유출된다고 우려한다. 그러다 보면 연구개발(R&D) 능력이나 핵심능력이 소실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각기 자국에 제조업을 유지하고 육성하기 위해 힘쓰는데, 우리나라 기업들은 아직까지 싼 인건비를 찾아 떠날 생각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자국의 산업기반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제조업을 튼튼하게 육성하고 유지해야 한다는 인식이다. 정부와 개별기업들이 이와 같은 인식을 가질 때 비로소 연구개발과 사업구조 개편 등을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나가게 될 것이다. 지금 시급한 것은 무엇보다도 ‘제조업이 튼튼해야 경제가 튼튼하다’는 인식의 전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