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환경보다 구조적 원인을 찾아라
외부환경보다 구조적 원인을 찾아라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5.09.11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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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으로 집중된 이윤 구조
정부가 헛발질 하는 동안 제조업 떠난다
[커버스토리] 제조업의 위기 ② 위기의 원인

현재 우리나라 제조업이 겪고 있는 어려움이 경기침체에 따른 일시적인 것인지 아니면 구조적인 원인에 의한 것인지에 대한 의견은 엇갈린다. 시황의 어려움 때문에 발생한 일시적인 위기라는 의견부터 산업구조와 노사관계의 문제를 거론하는 의견도 적지 않다.

 ⓒ여수시
단기성과 추구하다 기술축적 안 돼

앞에서 보았듯이 우리나라 제조업이 부진한 실적을 보이는 데에 외부적인 환경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2008년에 발생한 금융위기나 세계의 공장이라고 불리는 중국의 성장률 저하, 그리스 사태와 같은 악재들이 계속 이어지면서 세계경제가 전반적으로 가라앉아 있기 때문이다.

조선산업의 경우 현대중공업 홍보팀 관계자가 언급했듯이 “조선 분야의 시황이 좋지 않고, 해양플랜트 분야도 유가 하락의 영향으로 신규수주가 1년 가까이 없는 상황”이다. 특히 해양플랜트 건설에 영향을 미치는 유가는 북미 지역의 셰일가스 개발에 따라 하락 국면에 머물러 있다. 이 같은 저유가 상황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조선산업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시황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대중공업노조 김형균 정책기획실장은 “현재로서는 해양플랜트 발주가 안 돼서 야드를 채울 만한 물량이 없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주력업종인 상선을 여전히 만들고 있고 경쟁력도 여전하다”면서 “조선산업이 가장 잘 나가던 시점에 비해서는 분명히 경기가 낮아지기는 했지만 평균적으로 봤을 때는 그렇게 낮은 것만은 아니다”고 주장한다.
김형균 실장은 우리나라 조선산업이 여전히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면서 “한국의 조선산업이 중국에 밀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지만 중국의 기술력이 우려했던 만큼 그렇게 발전되지는 않았다”면서 “유조선이나 벌크선 같은 기술력이 크게 높지 않은 부분에서는 중국의 기술력이 어느 정도 올라와 있지만, LNG선이나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건조할 수 있는 능력은 아직까지 없고 그런 부분에서는 우리나라가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나라 조선산업이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은 잘 나갈 때 위기에 대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잘 나갈 때 설계능력을 키우고 기술력을 발전시키는 데 투자하는 대신, 엉뚱하게 문어발식 확장을 위해 돈을 썼다는 주장이다.

거기에 더해 김형균 실장은 “인건비를 줄이고 이익을 극대화하고 단기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 자꾸 하청을 주다 보니, 숙련이 향상되고 기술이 전수되는 과정이 끊겼다”고 주장한다. 그러다 보니 해양플랜트에 들어가는 부품의 경우 발주자의 요구에 맞추기 위해 전량 수입에 의존해야 할 만큼 기술적으로는 미흡한 실정이라는 것이다.

또 기업이 잘못된 행태를 보일 때 이를 견제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역할을 해야 할 노동조합이 그동안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점에 대한 지적도 빼놓지 않았다.

김형균 실장은 또 “회사는 위기라고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위기 상황이고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는 자료는 없고, 사무용품을 바꾼다든지 하는 걸 보면 정말 위기인 건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면서 “위기라는 말을 앞세워 노동자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구조조정을 하기 위한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고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실제로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연말에 회사의 위기상황을 이유로 과장급에 대한 희망퇴직을 실시하고 여직원에 대해 직무교육을 실시한 바 있다.

 ⓒ여수시
불합리한 관행이지만 당연하다?

제조업 내부의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하는 이도 있다. 현대자동차를 취재하면서 만난 한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현대자동차의 경우 IMF 터지고 나서 누구도 예상치 못하게 너무 단기적으로 위기를 극복한 측면이 있다”면서 “2008년에 금융위기가 왔다고 하지만 운 좋게 현대자동차에만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면서 차가 잘 팔리다 보니 그 안의 불합리한 구조를 개선할 기회를 놓치고 성장에 묻어갔다”고 진단한다.

그에 따르면 잘 나갈 때는 모든 문제들이 드러나지 않지만, 한 번 제동이 걸리면 내부적인 불합리한 관행, 인원의 과잉, 설비의 과잉, 사내하도급 문제 등이 모두 문제로 등장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최근 현대자동차가 실시하는 기초질서 지키기 운동을 예로 들었다. 근무하면서 지켜야 할 선이 있는데 이를 지키지 않아도 그동안은 성장에 취해 그냥 덮고 넘어갔다가 최근 실적이 악화되면서 이를 다잡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엄교수 정책기획실장도 수긍했다. “회사로부터 더 쟁취해야 할 부분이 많은 것은 분명하지만, 조합원들에게도 문제가 있다”면서 “얼마 전 문제가 된 근무시간 지키는 문제도 분명 회사가 처음부터 막지 못한 잘못이 있기는 하지만, 조합원들이 당연한 관행처럼 여기는 인식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엄교수 실장은 여기에 더해 더 큰 틀에서 “대기업으로 집중되는 이윤 구조를 사회에 환원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단순히 돌려주라는 것이 아니라 이윤을 재투자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고 친환경 차 개발 등 R&D 투자를 통해서 100년을 갈 수 있는 기업으로 발전하도록 기초를 튼튼히 하는 데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이른바 CR(cost reduction, 납품단가 인하)을 통해 납품업체들에게는 최소한의 이윤만을 강제하면서 모든 이윤을 대기업에 집중하지 말고 적정한 납품단가를 보장함으로써 부품업체에서도 저임금에 시달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대기업과 부품업체가 동반성장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엄교수 실장은 “이게 안 되고 밑으로 내려갈수록 납품단가를 후려치니 가장 아래 있는 업체는 최저임금도 줄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면서 “그러면 이들이 현대차를 욕하고 ‘안티 현대’는 이렇게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또 노사의 의사결정구조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노조 집행부는 조합원의 눈치를 보느라 해야 할 말을 못하고, 회사 경영진은 자기 목이 걸려 있어서 입바른 소리를 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그러다 보니 노사가 서로 적당한 선에서 두루뭉술하게 담합하고, ‘내 임기 내에만 아무 일 없으면 된다’는 자세로 임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합의를 하면 나중에 가서 문제가 발생하게 되고, 그때가 되면 문제가 더 커진다는 주장이다.
최근 현대자동차 5공장과 2공장 사이의 물량이관 문제가 그런 유형이다. 물량이 넘치는 5공장에서 물량이 부족해 특근을 못하고 있는 2공장으로 일부 물량을 이관하기로 합의가 이뤄졌다. 그런데 이관할 모델의 주력 공장이 5공장인데 물량을 이관하고 나면 2공장이 주력 공장처럼 보일 수가 있다면서 주느니 못 주느니, 주면 5만 대 주느니 3만 대 주느니 하는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완성차 제조처럼 대규모 공장에서 거대 노동조합이 활동하는 경우와 달리, 석유화학 업종의 경우 고도로 진행된 자동화설비로 인해 조합원 규모가 작다. 울산지역의 한국노총 화학노련 산하 석유화학업체 노동조합 대표자들은 “노사관계에서 작은 노조들이 느끼는 힘의 차이는 매우 크다”고 말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경기가 호황일 때야 문제가 없지만, 본격적인 위기가 찾아올 경우 “조합원들의 고용안정이나 근로조건을 지키는 것에 100% 자신 있다고 말할 조직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이미 상당히 고임금을 받고 있다는 점도 오히려 노사관계를 임·단협에 국한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한 석유화학 노동조합 대표자는 “타 업종과 비교했을 때 이미 상당히 고임금을 받고 있기 때문에, 매년 임금 교섭에서 좋은 성과를 기대하긴 어렵다”며 “그래서 더 노조 집행부가 임·단협에 온 신경을 쓰는 경우가 많으며, 여기에 얽매일수록 업종이나 지역의 큰 발전방향 등을 회사와 함께 고민해 나가는 것을 기대하긴 어렵다”고 말한다.

 ⓒ두산중공업
핵심 놓친 정부정책

산업정책의 문제 역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산업연구원 장석인 선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봤을 때 제조업의 비중이 큰데, 그걸 보고 생각이 다를 수 있다”고 말한다.

한쪽에서는 “너무 제조업 중심으로 돼 있어서, 예를 들면 철강, 석유화학 업종처럼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화석연료를 많이 쓰는 업종에 묶여 있으니 제조업 비중이 이제 좀 낮춰야겠다. 선진국들을 봤을 때 30%를 유지하는 나라가 없으니 20% 정도로 가고, 선진국에 비해 1/3 수준의 생산성을 1/2이나 2/3까지 높이면 그만큼 부가가치가 창출될 거라고 본다”는 것이다. 주로 기재부가 서비스업 중심으로 가겠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반면 산업부는 제조업 중심으로 가거나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같은 정부 안에서 합의가 되지 않고 양 극단으로 밀어붙여서, 누가 더 파워를 가져가느냐는 맥락으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장석인 연구위원은 “그건 아니다. 산업이라는 게, 제조업과 서비스업이라는 게 요샌 자꾸 융합이 되어가고 있고, 더군다나 글로벌 위기 이후에는 제조업의 상대적 중요성이 자꾸 높아져가고 있는데, 아직도 정부 내에서는 서비스 중심으로 가야 한다, 아니면 제조업 중심으로 가야 한다, 이런 논리들만 갖고 갑론을박을 하고 있는 것은 중앙정부가 실책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이렇게 갑론을박하고 있는 사이에 서비스업은 서비스업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제조업 기반은 점점 무너지고 있다. 단적인 예가 해외로 낮은 인건비를 찾아 떠나는 제조업 기업들이다. 우리나라에 제조업 육성을 위한 정책이 없는 게 아니고, 중소기업을 위한 정책이 없는 것도 아니건만, 정작 정책의 수혜를 받아야 할 중소 제조업은 우리나라를 떠나 중국으로, 동남아시아로 향하고 있다.

그 결과 국내에서는 일자리 부족과 청년실업과 같은 문제들이 사회이슈로 부각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정부의 대책은 잘못 꿰인 첫 단추를 바로잡기보다는 장년층의 임금을 깎아 청년층의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미봉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심각한 청년실업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지금 필요한 것은 국내에 제대로 된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토양을 갖추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