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하락세, 심상치 않다
제조업 하락세, 심상치 않다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5.09.11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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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간 지속될 수도 있어
한국 제조업 위협하는 중국의 성장
[커버스토리] 커버스토리 제조업의 위기 ① 현실 진단

한국의 주력 제조업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를 이끌어왔던 자동차, 반도체, 조선, 석유화학 등 주요 제조업이 대내·외적으로 여러 사정과 맞물리면서 부진한 실적을 보이고 있다. <참여와혁신>은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업종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제조업의 현황을 살펴보고 나아갈 길을 모색하는 기획기사를 준비했다.

 ⓒ울산광역시
조선, 전체 시황이 좋지 않다

한국산업연구원이 발표한 산업동향에 따르면 올해 1/4분기 제조업 생산은 전년 동기 대비 1.1%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조선의 경우 전년 동기 대비 13.7%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 큰 폭의 감소세를 보였다. 자동차 생산 역시 같은 기간 4.2% 감소했다. 화학 업종의 생산은 전년 동기 대비 1.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 약간의 증가세를 보였으나, 증가폭은 크지 않았다.

조선의 경우 그동안 중소 조선사들이 경영난을 겪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이른바 빅3라고 불리는 대형 조선사들이 적자를 기록한 경우는 드물었다. 그 중에서도 우리나라 조선산업을 대표하는 현대중공업의 지난해 실적 발표는 큰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연결 기준 3조 2천억 원, 별도 기준 1조 9천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고 실적을 발표한 바 있다.

현대중공업 홍보팀 관계자는 지난해 실적에 대해 “해양플랜트 분야의 공기지연과 추가공수 투입, 조선 분야에서 일부 특수선 프로젝트의 공기지연과 추가공수 투입이 주요한 적자 원인”이라면서 “대부분 처음으로 건조하거나 제작하는 특수선이나 해양플랜트들에서 그런 손실이 발생했는데, 처음 하는 공사들이다 보니 경험도 부족했고, 설계변경 등이 발생하면서 공기가 지연되면서 이를 만회하기 위해 추가적으로 공수를 투입하다 보니 손실이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적자 원인은 따지고 보면 전체적으로 시황과 관련됐다고 볼 수밖에 없는데 조선 시황은 2008년부터 침체돼 있는 상황”이라면서 “시황이 안 좋아 일감이 부족하다 보니 경험이 부족한 특수선 프로젝트를 수주를 할 수밖에 없었고, 좋지 않은 시장 상황 때문에 낮은 가격에 어려운 프로젝트를 수주하다 보니 이런 문제점들이 발생했다”고 덧붙였다.

특히 적자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는 해양플랜트 분야의 실적 부진에 대해 “조선 분야가 계속 침체에 빠져 있어서 돌파구를 해양플랜트 쪽에서 찾을 수밖에 없었다”면서 “해양플랜트는 유가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유가는 지속적으로 상승 추세에 있었기 때문에 2014년까지는 해양플랜트 쪽의 수주도 예년에 비해 증가 추세에 있었고 시장 전망도 좋아 조선 분야의 어려움을 만회하기 위해서 해양플랜트 쪽에 공격적으로 수주를 하고 규모도 계속적으로 키워왔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현대중공업의 해양플랜트 분야는 10년 전에 비해 3배 가까이 매출액이 증가할 만큼 급격히 성장했다. 하지만 북미 지역의 셰일가스 개발로 인해 유가가 하락하면서 지난해부터 거의 1년 가까이 해양플랜트 신규 수주가 끊겼다. 더구나 해양플랜트는 공사의 특성상 설계변경이 많고, 발주사의 시공기준도 엄격한 편이어서 공기지연과 추가공수 투입이 늘면서 적자 규모를 키웠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해 현대중공업노조 김형균 정책기획실장은 “중소 조선소는 중국 등 후발 조선업체들이 진출하면서 저가에 수주할 수밖에 없고, 정부의 지원도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현대중공업을 비롯한 빅3의 경우에는 상선 중에서도 부가가치가 높은 LNG선이나 컨테이너선에서 여전히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면서 “지금 현대중공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잘 나갈 때 어려움에 대비하지 않았고, 번 돈을 기술개발 등에 투자하지 않고 문어발식으로 기업을 인수하는 등 다른 곳에 썼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자동차, 엔저의 직격탄 맞다

현대중공업처럼 적자를 기록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을 대표하는 현대자동차 역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 7월 발표한 현대자동차의 2분기 영업실적을 보면 영업이익이 5분기 연속 감소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현대자동차는 지난 2분기에 매출액 22조 6,216억 원(전년 동기 대비 0.3% 증가), 영업이익 1조 7,509억 원(전년 동기 대비 16.1% 감소)을 기록했다.

시장에서의 판매 감소 역시 확인할 수 있다. 현대자동차가 올해 상반기에 판매한 자동차는 241만 5,777대로 전년 동기 대비 3.2% 감소한 수치다. 국내시장에서는 전년 동기 대비 3.0% 감소한 33만 5,364대, 해외시장에서는 전년 동기 대비 3.2% 감소한 208만 413대를 각각 판매했다.

이와 관련 현대자동차 홍보팀 관계자는 “세계 자동차시장 자체는 계속 확장되고 있지만 엔저 때문에 일본 메이커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진다”면서 “현대자동차의 영업이익률은 6%대로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글로벌 메이커들에 비해서 여전히 높은 수준이지만, 2014년을 정점으로 해서 순이익 규모가 계속 줄고 있는데 한 번 꺾인 추세를 회복하는 게 쉽지 않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특히 중국의 경우, 현재 3공장까지 가동하고 있고 4, 5공장을 건설하고 있는데, 전체적인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낮아지고 있고, 제2의 샤오미라고 불릴 만한 중국 로컬 업체들이 성장하고 있어 장기적으로 위험요인이 되고 있다”면서 “중국 기업들의 자본력이 커지면서 제조공장뿐만 아니라 인력까지 빨아들이고 있고, 과거에 비해 기술 격차도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성능 면에서 크게 뒤지지 않는 중국 자동차 메이커들의 자동차가 1/3 수준의 가격으로 판매될 뿐만 아니라, 중국 정부가 자국의 자동차산업 육성을 위해 혜택을 주고 있고, 거기에 애국심에 호소하는 마케팅까지 더해져 현대자동차가 중국 시장에서 경쟁하는 데 그만큼 더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엄교수 정책기획실장은 이와 관련해 “엔저 때문에 경쟁력이 떨어진 것은 맞다”면서 “국내공장의 경우 생산대수 자체는 줄지 않았지만 마진이 줄어들어 실적이 악화됐고, 해외공장에서는 실제로 생산량이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엄교수 실장은 이어서 “지금 당장 영업실적이 악화된 것보다 더 큰 문제는 현대자동차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악화된 것”이라면서 “특히 일자리가 부족하다 보니까 대기업 정규직에 대한 반감이 커지고 언론이 이를 자극하면서 ‘안티 현대’가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그 결과 현대자동차의 안방이라고 할 수 있는 울산이 전국에서 외제차 등록률이 가장 높은 도시가 됐다고 설명했다.

현대자동차의 또 다른 관계자는 “현재의 위기 상황이 오래 갈지 짧게 끝날지 단위공장에서 이야기하기는 쉽지 않지만, 여러 자료들을 보면 짧게 끝날 것 같지는 않다”면서 “현재 상황이 20년 이상 갈 수도 있을 것”이라는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석유화학, 차이나 리스크 본격화

국내 석유화학 업종의 동향을 말하면서 중국의 영향을 빠뜨릴 순 없다. 여타 산업 역시 중국시장의 규모에 따른 비중을 무시할 순 없겠지만, 특히 석유화학 업종의 경우, 세계 최대의 수입시장인 중국과의 지리적 근접성을 바탕으로 수입수요 변화에 그동안 민첩하고 탄력적으로 대응해 오면서 중국 내 점유율 1위의 수출국 위상을 유지해 왔다.

석유화학 제품의 총 수출액 중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1992년 한중수교 당시만 해도 29.8%에 불과했으나, 2000년에는 43.6%, 최근에는 대부분 50%를 상회하면서,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국내 주력 수출 상품들과 함께 ‘중국효과’에 크게 영향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의 석유화학 제품 자급률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 데다가, 중동·동남아 등 후발주자들이 추격해 오면서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국산 석유화학 제품의 중국시장 점유율은 점차 낮아지는 추세다. 합성수지, 합섬원료, 합성고무 등 중간 원료에 해당하는 석유화학 3대 유도품의 자급률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2010년 64.9%에서 2014년에는 79.1%까지 자급률이 상승했다.

산업연구원은 또한 중국의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있는 점, 자급률 상승이 앞으로 계속될 거라는 점 등을 감안하면 중국으로의 수출은 사실상 한계상황이 가깝다고 진단한다. 그뿐만 아니라 압도적인 원가 경쟁력을 갖춘 중동이 수출 품목을 합섬원료나 합성고무 등까지 다양화할 경우 ‘차이나 리스크’는 더욱 본격적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국내 석유화학제품은 대부분 원유를 증류해 얻어지는 나프타를 기초 원료로 하고 있다. 국제유가가 급락하면서 원가 부담이 경감된 부분도 있지만, 이는 결국 에틸렌이나 나프타의 마진도 낮아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별반 이득이 없다. 게다가 글로벌 경기침체가 계속되면서 수요 자체의 부진과 함께 제품단가 인하의 압력도 더해진다. 또 미국을 중심으로 셰일에너지의 본격적 개발이 진행되고, 중동에서도 천연가스를 기반으로 제품 생산을 늘리면서 경쟁은 심화되고 있다.

신한금융투자는 지난 4월 석유화학 업종 보고서를 통해 2014년에는 국내 석유화학 기업 대부분이 매출 및 영업이익의 급격한 감소로 고전했으나, 올해 1분기에는 일부 기업이 회복세를 보였다고 발표했다. 이는 올해 초 유가반등 국면에서 원료보다 제품의 가격이 오르면서, 스프레드(제품가격-원료가격)가 크게 호전된 데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올해부터 시행된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탄소배출권 거래제도 등 환경규제가 강화되는 부분도 석유화학 업종의 비용을 높여 해외이전을 추진할 동기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