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으로는 힘든 삶, 생활임금이 대안?
최저임금으로는 힘든 삶, 생활임금이 대안?
  • 장원석 기자
  • 승인 2015.09.11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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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악한 최저임금 대안 vs. 지자체 거덜 내는 포퓰리즘
올바른 정착 위해 끊임없는 논의와 개선노력 필요
[사건]생활임금

지난 7월 9일, 2016년 최저임금이 6,030원으로 결정되었다. 이번 최저임금 논의에서 근로자위원이 시급 1만 원을 요구한 것은 최저임금이 현실적인 가계 생계비를 충족하지 못한다는 지적에서 비롯됐다. 사용자위원들도 그 부분은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현 경제수준과 기업 지불능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인상이 어렵다고 주장한다. 결과적으로 최저임금만으로는 사람이 정상적인 삶을 살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 ‘Go try it’이라 말해 큰 영향을 준 것도 이와 일맥상통하는 내용이다. 이런 가운데 요즘 지자체에서는 새로운 물결이 일고 있다. 바로 생활임금이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생활임금, 적정 생계를 책임지는 임금

일반적으로 생활임금은 노동자가 실질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물가 등을 고려해 책정한 임금을 뜻한다. 생활임금은 학술적인 개념이라기보다 사회적인 개념으로 범주가 법률로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보통 지역경제와 가계의 전반적인 기본 생계비를 기준으로 전일제 노동자와 부양가족을 빈곤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기 위한 적정한 임금수준을 산정, 반영한다. 국제노동기구(ILO)에서는 생활임금을 ‘노동자와 그 가족에게 양질의 생활을 보장하는 임금’이라는 개념으로 보고 있다. 이번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앞으로 가구생계비를 병행조사 하도록 정했지만 현재까지 우리나라의 최저임금은 미혼단신생계비만을 고려해 책정되어 생활임금에 비해 노동자의 생계를 현실적으로 충족시키기 어려웠다.

생활임금운동은 1994년 미국의 볼티모어 지역 활동가들로부터 시작됐다. 이들은 지역 내 여러 조직과 연계하여 저임금노동자의 적정 생계를 책임질 수 있는 임금을 확보하자는 시민운동을 전개했다. 결국 볼티모어 주정부로부터 주 정부와 거래, 재정지원 관계에 있는 민간업체는 연방정부가 정한 법정 최저임금보다 50% 높은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생활임금 조례 제정을 얻어내게 되었다. 이는 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수준을 높여 빈곤을 벗어나게 하고 지방정부와 계약을 맺는 민간 기업들이 저임금 경쟁을 하지 못하게 하며 결국 적정 임금수준을 지역사회 전반에 확산시켜 근로기준 전반을 향상시킨다는 의미가 있다.

볼티모어의 생활임금 운동은 1995년 조례가 제정된 이후, 미 전역으로 확대되어 5년 만인 2000년에는 22개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영국에서도 2001년 운동이 본격화되기 시작해 버밍엄, 뉴캐슬, 카디프와 같은 지역에서도 생활임금 조례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현재 영국은 721개 고용주가 생활임금에 참여하고 있다. 또 대학, 병원에서 구글, 네슬레, HSBC와 같은 민간 기업까지 확산되고 있는 상태다.

우리나라에서도 2013년 서울 성북구와 노원구가 구청장의 행정명령으로 최초의 생활임금제를 도입했다. 이후 2014년 부천시와 경기도, 2015년 서울시가 조례로 지정해 지자체로 빠르게 확산됐고, 현재 21개 지자체에서 조례가 발의됐다. 생활임금이 지급되고 있는 지자체의 평균액은 6,629원, 최고액은 7,254원이다. 또 10여 개 지자체에서 조례안이 발의 입법 예고된 상태며 이외에 많은 지자체들에서 생활임금에 대한 공청회, 토론회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의견수렴과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제 역할 못하는 최저임금 대안 vs. 지자체 재정난 부추기는 포퓰리즘

이렇게 지자체가 생활임금 도입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는 가운데 노동계와 재계는 서로간 찬반입장을 분명히 한다. 노동계에서는 재벌 위주의 경제정책과 도시개발정책으로 인해 늘어나는 저임금노동자의 임금 문제를 지자체의 생활임금제도를 통해 어느 정도 개선할 수 있다고 말한다.

노동계는 특히 우리나라의 최저임금제도가 미흡한 점을 지적한다. 우리나라의 최저임금은 정규직 평균임금에 약 1/3정도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최저임금이 미혼단신노동자 생계비를 기준으로 책정되었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을 가지고 한 가정이 생계를 꾸려가기에 부족한 액수라는 것이다. 이 주장은 올해 노동계가 최저임금 1만 원 인상을 들고 나온 이유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더불어 노동계는 최저임금을 받거나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근로빈곤층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는 점도 생활임금이 필요한 이유라고 말한다. 2015년 대한민국의 최저임금, 최저임금 미만 노동자의 비율은 12.7%로 나타났다. 2012년 9.9%에 비해 2.8% 오른 것으로 인원 수로는 232만 6,000명에 달한다. OECD 평균인 5.5%에 비하면 약 2.3배 높은 수치다. 이렇게 양극화, 빈곤화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지자체가 풀뿌리 민주주의를 통해 근로빈곤층을 그 삶에서 벗어나게 만들고 지방 경제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경영계는 생활임금이 지자체의 재정난을 초래하고 영세사업자를 힘들게 하는 정책으로 선거에 민감한 지자체장의 포퓰리즘에 불과하다고 맞서고 있다. 최저임금과 별로 다르지도 않고 개념도 모호한 생활임금을 도입하는 것은 선거에서 많은 표를 얻어야 하는 지자체장이 주민들에게 선심성 정책을 펴고 있다는 것이다.

경영계는 대한민국의 임금수준, 특히 최저임금수준은 다른 나라에 비해 낮은 수준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OECD 구매력 기준 최저임금에서 대한민국은 10위로 중간치를 보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저임금보다 약 2~30% 높은 수준의 생활임금 도입은 영세자영업자에게 심각한 타격을 입히고 저임금 근로자의 고용불안만 높인다는 것이다. 또 이러한 임금상승추세가 민간으로 확산된다면 기업마저 국내투자를 꺼리게 되어 성장률이 하락하고 고용이 줄어드는 악순환이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더불어 경영계는 지자체·공기업이 2014년 기준, 100조가 넘는 부채를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생활임금의 도입은 방만 행정으로 부채비율을 높여 심각한 재정난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전문가도 갑론을박

생활임금제도를 가장 먼저 도입한 미국에서는 생활임금제도 시행에 대한 실증분석이 일정부분 진행 된 상태다.

우선 생활임금 수준이 높더라도, 고용감소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1995년 볼티모어에서 생활임금 조례에 따라서 계약을 맺은 민간 기업들을 조사한 결과 채용 감소가 나타나지 않음을 확인한 것이다. 지자체의 부채와 관련해서 생활임금을 적용하더라도 계약비용이 기업주에게 전가되어 지방재정이 악화되지 않는다는 연구도 눈길을 끈다. 또 지방정부와 계약을 맺은 민간 기업은 근로자에게 더 높은 비용을 지불하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진행된 연구에서는 문제점이 드러나기도 했다. 바른사회시민사회 양성옥 책임간사는 보고서에서 “생활임금제를 시행 중인 노원구와 도봉구는 ‘자체수입 대비 인건비 비율’이 92%를 넘고 광주 서구와 인천 계양구, 동작구, 구로구, 서대문구, 노원구, 도봉구, 성북구는 ‘지방세 수입 대비 인건비 지출 비율’이 100%를 넘어 지자체 재정 상황이 매우 열악하다”고 지적했다. 또 생활임금을 시행 중인 지자체 가운데 4곳을 제외한 나머지 지자체는 대부분 전국 평균 재정자립도인 44.8%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음이 드러나 우리나라 지자체에 생활임금제도를 시행 할 능력이 있는지 의문이 드는 상황이다.

생활임금에 효과, 형태, 필요성에 대해서는 전문가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고 있다. 숙명여대 권순원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이 지방 정부와 거래를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이익이 되기 때문에 높은 비용을 감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신범철 경기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 대한민국의 경기둔화 원인은 가계에 돈이 없어 부채가 늘고 소비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인데 생활임금은 소득 증진이 소비증진으로 이어져서 성장이 촉진될 수 있는 바람직한 제도”라고 평가했다.

이에 반해 류호상 한경대 노동연구소장도 “우리나라의 지방재정은 대부분 상당히 열악한 수준으로 시기적 측면에서 적절치 않다. 또 대상이 아닌 민간기업 근로자가 소외감을 느낄 수 있어 이 부분 역시 논의가 필요한 지점이다”고 반대했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생활임금의 개념이 추상적이고 모호하여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통상임금과 유사한 혼란을 일으킬 것”이라며 “현재 통상임금과 관련해 수많은 소송이 진행되듯 생활임금도 문제가 될 수 있다. 만일 생활임금을 법제화하려면 생활임금의 개념을 법률에 구체화하여 열거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 역시 찬반 양측으로 맞서고 있지만 생활임금이 도입된다면 명확한 개념과 법률적 보조, 지자체 재정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공통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

ⓒ 참여연대

적정 임금을 산정하기 위한 기준이란?

생활임금의 산정방식을 놓고 전문가들은 우선 크게 2가지 방식을 제시한다. 절대적 방식과 상대적 방식이다. 절대적인 방식은 대표적으로 가계가 일정한 소비수준을 유지하는데 드는 비용인 생계비를 통해 산정하는 방식이다. 생계비는 17세기부터 영국, 독일 등 유럽에서 빈곤층 규정, 최저생계비 산정에 활용됐다. 이 외에 생계비는 노사 임금교섭, 소득세율 기준, 국제적 가계복지 비교지표로 사용된다. 상대적 방식은 정부가 매년 제시하는 소득척도에 기초하여 일정한 비율을 생활임금으로 산정하는 방식으로 최저임금, 실업급여에도 적용되는 일반적인 방식이다.

두 번째로 생계비에 있어 어떤 소득척도를 기준점으로 삼아 생활임금을 산정할지, 가계를 나누는 기준 인원은 몇 명으로 해야 하는지에 대해 논란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생활임금 도입운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시민단체인 참여연대는 3가지 생활임금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 안들도 생계비 산정에 있어서 인원수에 대한 쟁점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1인 가구는 3, 4인 가구와는 달리 생계비에 교육비, 주거비 등이 반영되지 못한다. 또 우리나라의 각종 통계와 추정이 4인 가족을 기준으로 제시되어 있는 상황인데 서울 평균 가구원수는 2.8명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지자체중 가장 먼저인 2013년 생활임금제를 도입한 서울 성북, 노원구는 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기준을 혼합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두 지자체는 생활임금 결정의 1단계로 고용노동부 조사상의 5인 이상 사업체 기준 정액급여의 50%를 산정한다. 정액급여는 기본급과 특별급여를 제외한 기타 수당을 포함한 임금이며, 통상임금과 가장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서울시가 산정한 생활물가 하한선의 50%를 추가하여 생활임금을 완성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생활임금을 책정한 광주시 광산구의 경우, 산정방식은 정액급여의 50%에 최저임금인상분을 가산해 계산하고 이후 해마다 공무원 보수인상률과 물가상승률 일부를 반영하는 등, 앞선 두 지자체와 거의 동일한 방식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타 지자체들은 법령에서 통상근로자의 소정근로시간을 일 8시간(월 209시간)으로 정하고 1일을 유급 주휴일로 지정하는데 반해 광산구는 2일 유급 주휴일을 지정하면서 생활임금액 향상과 대상자의 주 5일 근무도 달성했다.

당사자의 참여와 소통, 지속적 개선노력이 중요

생활임금 도입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생활임금 수준을 결정하는 기준과 방식의 합리성이다. 또 지방자치의 핵심적 요소인 참여와 소통을 잘 활용하는 것도 필요하다. 권순원 교수는 “생활임금 또한 노동의 대가로 지급되는 임금이라는 점에서 사용자와 근로자 및 지자체 등 이해관계자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기준이 제안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생활임금은 최저임금과의 관계, 법제화의 필요성 및 가능성, 이해관계자들의 수용성, 노동시장에 대한 영향 및 효과 등에 있어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권 교수는 “생활임금의 제도화 및 안정적 확산을 위해서는 이상의 문제에 대한 노사민정의 지속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생활임금은 사회복지가 취약한 우리 노동시장에서 임금과 소득의 재분배를 추구하고 이를 통해 저소득 계층의 생활안정을 도모할 수 있는 유효한 방법”이라고 밝혔다.

한양대학교 공익소수자센터 김근주 전문위원은 영국 생활임금에 대한 보고서에서 “영국 생활임금에 관한 논의들은 비교적 최근에 이루어지기 시작했지만 빠른 기간 내에 사회적·정책적 지지를 받게 되었다. 그 이유는 ‘참여의 자발성’과 ‘산정방식의 타당성’에 근거하고 있는데 강제성을 배제하고 사용자의 자발적인 참여를 독려하는 캠페인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생활임금 운동은 처음에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견해도 많았지만 현재, 이러한 자발성이 생활임금의 정착에 가장 큰 이유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최재혁 간사도 “제도로서 생활임금이 모든 지방자치단체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운영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제도를 여러 단위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수용해 일단 시행이 되고, 이행하는 과정에서 제도를 개선해 나가는 방식으로 제도화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최 간사는 “현실적으로 개별 기관마다 위탁·계약 상황, 고용된 노동자의 인원차이가 있는 상황이다. 제도를 도입하되, 구체적인 운영방식은 기관의 사업 현황, 적용대상이 될 노동자의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적용될 필요가 있다. 특히 지방자치측면에서 제도 적용대상인 노동자와 업체, 지역 주민 등과의 소통, 의견반영이 중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