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은 돈 벌기 위한 수단일 뿐
노동은 돈 벌기 위한 수단일 뿐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5.10.05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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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은 요원…낭비되는 갈등비용
각자 입장만 고수하는 동안 경제는 침체일로
[커버스토리] 위기에 빠진 제조업①

우리나라 제조업 주요 기업들은 현재 경영실적이 악화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리나라 제조업을 이끌어왔던 반도체와 자동차 업종의 대표적인 기업들인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2분기 실적 발표에서 드러나듯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또 다른 주력 제조업인 조선 업종의 경우 지난해 8조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실적보다 더 큰 문제는 이들 업종의 실적 악화를 바라보는 이해당사자들의 시선이 엇갈리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에서는 외부적인 환경의 변화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이야기하는가 하면, 제조업이 가지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라고 바라보기도 한다. 현재의 어려움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바라보는 시각 차이에 따라 이를 위기라고 부르는 쪽이 있는가 하면, 일시적인 시황의 문제일 뿐 위기까지는 아니라고 진단하기도 한다. 이하 기사에서는 현재의 상황을 ‘제조업의 위기’라고 통칭한다.

 ⓒ 참여와 혁신 DB
노동, 일에서 의미 찾지 못한다

제조업을 비롯한 산업의 위기는 곧 산업을 무대로 활동하는 노동의 위기이기도 하다. 산업이 쇠퇴하면 노동이 설 공간도 좁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동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 같은 위기는 직접 체감하기 전까지는 ‘남의 일’이다. 그러다 보니 제조업이 위기라는 말을 접할 때마다 많은 우려를 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자신과 연결되지는 않는다. 그 결과 나타나는 현상이 ‘모럴 헤저드’이다. 근무기강이 흐트러졌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제조업 기업인 현대자동차는 현재 주간연속2교대제를 실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1조의 근무는 오후 3시 30분에 끝난다. 그런데 오후 3시 20분쯤 되면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3시 30분에 맞춰 ‘칼퇴근’을 하기 위해 노동자들은 나머지 일감을 후다닥 해치우고 퇴근준비를 한다. 그렇게 대기하다가 3시 30분이 되자마자 각 공장에서는 노동자들이 쏟아져 나오고, 회사 정문 밖으로 나가기 위한 경주가 벌어진다.

사실 이 정도는 약과다. 현대자동차 모 공장에서는 주말 특근을 위해 출근하기는 하지만, 출근 직후에 바로 퇴근하려다가 이를 막는 경비직원과 실랑이가 벌어진 적도 있었다. 물론 출근을 했으니 특근수당은 그대로 지급받는다.

문제는 이런 일들이 관행처럼 굳어져 있다는 것이다. 현대자동차 사정에 정통한 자동차산업 관계자는 “빨리 끝내고 집에 가서 쉬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는데, 이거는 안 된다, 잘못됐다고 할 수 있는 단위가 없다”고 표현한다.

현대자동차 공장에서 최근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것 중의 하나는 이른바 ‘두(발)뛰기’ 문제다. 컨베이어 시스템을 따라 물량이 흘러가는데 한 노동자가 자기 공정은 물론 다른 사람의 공정까지 소화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작업에서 이탈한 노동자는 휴식을 취하는 것이다.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엄교수 정책기획실장은 “회사가 라인을 충분히 여유 있게 설계하고 설비를 갖추면 그런 문제가 없었을 건데, 예를 들어 10m 안에 두 공정을 넣어야 하는데 라인 설비가 부족하니까 앞에 있는 장비하고 겹치게 되고, 작업자들끼리 부딪혀서 작업을 다 못하게 되니 한 명이 다른 작업자의 공정까지 하게 되는 것”이라면서 “그게 익숙해져 한 사람은 일하고 한 사람은 쉬는 구조가 만들어졌는데, 회사는 ‘근무시간 중에 자리는 지켜라’ ‘퇴근시간 되기 전에 나가지 마라’라고만 한다”고 설명한다. 회사도 이런 문제를 알고는 있지만 애초에 작업공간을 넉넉하게 주지 못한 책임이 있어서 자리를 지키라고만 할 뿐 근본적인 대안을 내놓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회사에서 관리를 못하는 부분도 분명히 있지만, 그런 일이 관행처럼 행해지면서 현장에서 잘못이라는 인식이 없어졌다”면서 “노동조합이나 활동가들도 표심에만 매달리다 보니 조합원들에게 말을 못한다”고 지적한다.

현대자동차 관계자의 지적처럼 노동조합과 활동가들을 포함한 노동계는 노동현장에서 발생하는 이와 같은 문제들에 대해 제대로 지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당장 선거를 통해 당선돼야 하는 과제가 눈앞에 있는데, 조합원들의 표심을 잃을 것이 빤한 이야기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대신 노동계는 선거 때마다 조합원들에게 ‘달콤한 약속’을 쏟아낸다. 마치 정치인들이 지키지 못할 ‘선심성 공약’을 내세워 표를 얻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한 편 당선되지 못한 현장조직들은 집행부 임기 내내 집행부 흔들기에 골몰한다. 사사건건 트집을 잡아 집행부가 잘못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것이다. 문제는 그런 비판이 조합원들의 권익을 지키기 위한 정당한 것일 때도 있지만, 때로는 그야말로 비판을 위한 비판인 경우도 비일비재하다는 점이다. 더구나 과거에 자신들이 집행하던 시절에 했던 말과 180도 다른 이야기도 서슴없이 한다. 조합원들의 표를 얻는 데 도움이 되기만 한다면 염치는 일단 접어놓고 보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많은 노동자들에게 노동은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것’ ‘돈을 벌기 위한 수단’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자신의 노동현장에서 창의성을 발휘해 노동할 수 있는 노동자는 손에 꼽을 수 있을 만큼 드물다. 그저 주어지는 일을 처리하는 데 급급할 뿐 노동에서 재미를 느끼고 자아를 실현하는 것은 책에나 있는 이야기다. 그러면서도 역설적으로 노동자들은 노동에 목을 맨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노동시간, 그것도 근무로 인정받는 노동시간에 목을 맨다. 노동시간이 곧 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참여와 혁신 DB
경영, 말로는 상생…실제론 가만히 있으라

노동을 돈 벌기 위한 수단으로만 여기는 것은 노동자들뿐만이 아니다. 경영자들에게도 노동은 돈을 벌어다주는 수단일 뿐이다. 차이가 있다면 노동자들은 노동을 수단으로 생각하는 반면, 경영자들은 노동과 노동자를 분리하지 않고 노동자 그 자체를 수단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노동자들은 노동을 통해 돈을 벌고 그 돈을 자신에게 쓰려고 하지만, 경영자에게는 노동자들이 하는 노동이 곧 자신을 위한 돈벌이 수단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경영자들에게 있어 ‘참여’를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곧 경영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비칠 뿐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영자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다수 경영자들에게 노동자란 노동과 분리되지 않는 수단일 뿐이고, 이윤이라는 목적을 위해서는 취사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옵션 중 하나일 뿐이다.

이 때문에 경영자들은 노동자들 또는 노동조합과의 소통을 통한 의사결정을 꺼린다.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이경훈 지부장은 “현대자동차가 발전하려면 노사간의 신뢰관계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면서 “만약 회사가 노동조합에 매월 실적을 공개하고 공유하면서 노동조합이 경영에 참여하도록 한다면 실보다는 득이 훨씬 클 텐데, 현대자동차에는 현재 그런 게 없고 노사간에 서로 불신만 팽배해 있다”고 말한다. 1년 중에 회사의 실적을 공식적으로 확인하는 계기는 단체교섭 때 뿐이라는 것이다.

노동자를 수단으로 여기며 소통하지 않고 쥐어짜려고만 하는 경영자의 태도가 지속되는 한 노사간의 신뢰관계 형성은 요원할 뿐이다. 강성이라고 평가받는 모 산별노조의 한 간부는 “노동자, 노동조합이 경영에 참여한다고 할 때 과연 회사가 망할 요구안을 내겠느냐”고 반문한다. “더 잘 살기 위해서라도 회사가 잘 되기를 바라는 게 노동자들의 일반적인 생각일 텐데, 왜 그토록 쥐어짜려고만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경영자들은 노동자를 수단으로 여기기 때문에 설비를 매각하는 것과 노동자를 해고하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M&A 후 조직을 구조조정하는 과정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매각차익을 노리고 M&A를 시도한 자본의 경우, 보통 핵심적인 부분을 남기고 부수적인 부분을 매각 등의 방식으로 처리해 조직을 구조조정하려 든다. 이 때 매각할 부수적인 부분에는 건물 등 부동산, 설비뿐만 아니라 인력도 포함된다.

경영자가 노동자들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것은 투자 대신 쌓기만 하는 행태에서도 드러난다. 대표적인 것이 사내유보금을 둘러싼 논란이다. 일각에서는 우리나라 30대 대기업의 사내유보금이 710조 원에 이른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 중에 아주 작은 부분만 투자해도 최대 이슈로 부각된 청년실업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거나 비정규직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사내유보금이 곧 현금성 자산은 아니라고 반박해 봐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는다. 사내유보금의 성격, 곧 그것이 현금성 자산처럼 바로 쓸 수 있는 자금인지 아니면 비현금성 자산으로서 유·무형의 자산을 가리키는 말인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지난 2009년 법인세를 인하한 이후 사내유보금이 비약적으로 증가했으며, 사내유보금 중 현금성 자산은 경영자 단체인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밝힌 바에 따르더라도 전체 사내유보금의 25%에 달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가계소득이 거의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사이에 기업에서는 현금성 자산을 포함한 사내유보금이 큰 폭으로 증가한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즉 가계소득과 기업소득 사이의 격차가 커진 것이다. 노동자들에게는 “임금 몇 푼 올려주는 것에는 인색한 기업의 소득이 큰 폭으로 늘었는데, 기업은 그 자금을 쌓아놓고만 있다”고 보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 문제인 것이다.

더구나 일부이기는 하지만 노동조합에 대한 혐오를 극단적으로 표출하는 경영자들의 태도 역시 반감을 자초하고 있다. 지난 몇 년 사이에 극단적인 형태의 노사갈등을 일으켰던 사업장들의 사례를 보면 경영자들의 노동조합 혐오가 큰 몫을 차지하고 있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결국 말로는 노사상생, 노사화합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가만히 있으라’고 요구하는 경영자들의 태도와 행태가 노사간의 불신과 갈등으로 나타나고 있고, 이러한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비용이 사회적으로 낭비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정부, 중재자 역할 포기했나?

노동을 둘러싼 또 다른 당사자인 정부의 입장 역시 공정하다고는 할 수 없다. 노사관계가 아무리 협력적이라고 하더라도 근본적으로는 갈등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고 할 때, 이러한 노사간의 갈등을 공정하게 중재하는 역할이 정부의 역할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많은 노사갈등이 원만하게 해소되기보다는 극단적인 형태로 비화하는 데에는 정부가 이런 역할을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놓여 있다.

<노사공포럼> 편집위원장을 맡고 있는 숙명여대 김장호 교수는 한 좌담회에서 우리나라 노사관계를 ‘기울어진 경기장’에 비유한 바 있다. 더구나 노동법 체계와 이를 해석하는 사법부, 노동법을 집행하는 행정부가 기울어진 경기장을 바로잡기는커녕 오히려 점점 더 기울어지게 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노총 금속노련 최장윤 정책국장은 공정성과는 또 다른 측면에서 정부의 자세에 문제를 제기한다. “현 정부 들어 정부의 정책은 노동정책보다는 고용 중심의 사고에 편중돼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하는 최장윤 국장은 “현재 정부는 ‘제조업혁신 3.0’을 내걸고 이를 추진할 제조혁신위원회도 구성했지만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현재 상태로 가다 보면 머지않아 중소 제조업체뿐만 아니라 대공장에서도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갈 수도 있는 상황인데 제조혁신위원회의 활동은 사실상 전무하다”고 비판한다.

이 같은 상황은 현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방향에서도 드러난다. 제조업의 구조조정을 통한 재도약을 위해 ‘제조업혁신 3.0’ 전략을 입안했지만, 정작 산업현장에서는 이러한 전략에 따른 정책을 체감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전략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경우도 많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정부가 제조업을 사양산업 취급하며 버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가 여러 차례 논의를 거쳐 추진하고 있는 ‘투자활성화대책’은 대부분 서비스업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최장윤 국장은 “정부는 제조업에 대한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제조업이 위기상황에 직면해 있어 이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구조조정이 필요한데, 사측은 이에 대해 고용을 축소하는 방향으로만 생각하는 반면, 노측은 고용안정을 최우선에 두다 보니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면서 “정부가 이를 중재하고 제조업을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시행해야 하지만 지원할 생각이 있는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정부의 태도는 국정목표로 내세운 ‘고용률 70% 달성’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우리나라의 고용률이 OECD 국가들의 고용률에 비해 낮은 수준이어서 이를 끌어올리는 것은 필요하지만, 현 정부는 자신의 임기 내에 이를 달성하려다 보니 시간제 일자리와 같이 질이 낮더라도 일자리의 숫자를 채우는 데에만 급급하다는 것이다. 정작 일자리를 늘려 고용률을 끌어올리려면 그 기반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한데도 겉으로 드러나는 성과만을 중시하다 보니 단기처방에만 목을 맨다는 지적이다.

일례로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울산에도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설립됐고, 우리 회사도 센터 설립에 적지 않은 투자를 했다”면서도 “하지만 센터를 통해 우리 회사가 투자한 만큼만이라도 혜택을 볼 것이라는 기대는 처음부터 하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정책인데 개별기업 차원에서 이를 거부할 수는 없기에 투자를 하기는 했지만, 현 정부의 임기가 끝남과 동시에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창조경제혁신센터의 운명에 기대는 것은 무모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처럼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고 경영자는 노동자와의 소통보다는 쥐어짜기를 통해 이윤을 추구하며 정부는 눈에 보이는 수치에 목을 매고 있는 동안, 제조업의 위기는 점점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하향세로 돌아선 실적은 좀체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경제전망을 내놓는 국내외 연구소들은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하향조정하고 있다. 과연 이대로 우리나라는 침체의 늪에 빠지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