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극복, 사회적 합의가 최선이다
위기 극복, 사회적 합의가 최선이다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5.10.05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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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간에도 동반성장 필요
고용률 수치 아닌 양질의 일자리 대책 마련해야
[커버스토리] 커버스토리 위기에 빠진 제조업 ②

앞에서 본 대로 우리나라 제조업의 위기에 대한 노사정 당사자들의 입장은 엇갈리고 있다. 당면한 제조업의 위기를 극복하고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당사자들을 비롯한 이해관계자들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그러한 바탕 위에서 위기 극복을 위한 이해관계의 접점을 모색해야 한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가 만나는 지점에서부터 제조업의 위기 극복을 위한 혁신이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각 당사자들은 이해관계의 접점을 찾으려 노력하기는커녕 오히려 서로의 차이만을 부각시켜 상대방을 비난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 그 결과 우리사회 곳곳에서는 이해관계가 또 다른 이해관계와 맞부딪쳐 굉음을 내고 있다. 곳곳에서 위기를 알리는 경고음이 울리고 있지만, 이마저도 자신의 이해관계를 정당화하는 논거로 쓰인다. 결국 이런 이해관계의 충돌은 해소하기 힘든 갈등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 참여와 혁신 DB
벌어도 벌어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제조업의 위기와 관련하여 노사정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는 동안, 국민의 삶은 나락으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앞에서 이야기했던 대로 노동 그 자체에서 의미를 찾기보다 노동을 통해 돈을 벌어 자신과 가족의 행복을 추구하는 노동자들이 대다수다. 그러한 노동에서 굳이 의미를 찾는다면 비록 수단일지언정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활동이라는 점이다. 물론 어떤 상태가 행복한 것인지, 돈이 얼마나 있어야 행복한지에 대해서는 각 개인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으나, 어쨌든 노동을 함으로써 돈을 벌어 행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노동이 진행되는 과정을 보면 과연 이렇게 노동을 하고서도 행복할 수 있을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노동하는 과정 자체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행복을 희생해가면서까지 돈 버는 데 집착하는 모습을 자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OECD에서 발표한 각종 지표 중에서 우리나라가 줄곧 상위권에서 내려와 본 적이 없는 지표가 몇 가지 있다. 우선 멕시코에 이어 두 번째를 기록하고 있는 연간 노동시간이 그 하나다. 2013년 기준 우리나라의 연간 노동시간은 2,071시간으로 OECD평균인 1,671시간에 비해 연간 400시간을 더 노동하고 있다.

또 하나는 2011년 기준 65세 이상 노인인구의 빈곤율(중위소득의 50% 이하인 인구의 비율)로 우리나라의 노인빈곤율은 48.6%에 달해 압도적인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노인빈곤율 2위 국가인 스위스의 24.0%와 비교해도 두 배 이상 차이가 나는 수준이다.

이런 지표들을 종합하면 우리나라 노동자들은 은퇴 전에는 자신의 여가시간을 희생해 가며 장시간 노동을 하지만, 정작 은퇴 후에는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질까? 지난해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한 결과, 은퇴 전 노동자들이 주로 돈을 쓰는 곳은 자녀교육과 내 집 마련이었다. 물론 표본의 크기가 작아 통계화할 수는 없다고는 하지만, 일반적인 노동자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인터뷰에 응한 많은 노동자들이 주로 고민하고 있는 바는 자녀교육이었다. 못 배웠기 때문에 자신이 고생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노동자들은 자신의 자녀만은 자신과 다른 삶을 살기를 바랐고, 그러기 위해서는 많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 때문에 노동자들은 자녀교육에 아낌없이 돈을 쏟아 붓는다.

현대자동차 노동자들뿐만이 아니다. 자녀를 더 가르치고 싶은 것은 대다수 노동자 부모들의 바람이다. 자신은 비록 최저임금을 받고 있지만, 자녀만은 더 나은 대우를 받기 바라는 노동자들은 빚을 내서라도 자녀를 학원에 보내려고 발버둥 친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이런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사교육비는 빠른 속도로 오르고 있다. 게다가 학원에 보내지 않으면 자녀를 대학에 보내기조차 어려운 교육여건에서 사교육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된지 오래다. 고등학생 자녀 한 명에게 들어가는 사교육비가 적게는 수십만 원에서 많게는 수백만 원에 이르는 상황이다 보니 노동자들은 돈을 벌기 위해 악착같이 매달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그렇게 대학에 보내도 자녀가 졸업 후에 번듯한 직업을 가질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현대자동차에서 만난 한 노동자는 자녀의 취업 문제 때문에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명문대는 아니지만 대학교를 졸업한 자녀가 서른 살이 다 되도록 취업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신도 2~3년 후면 정년을 맞게 돼 더 이상 뒷바라지를 할 형편도 안 된다. 그 노동자는 여전히 자녀를 데리고 살고 있지만, 매일 출근하면서 자녀의 축 늘어진 어깨를 보면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내 집 마련에 들어가는 돈도 노동자의 가계를 옥죄는 또 다른 요인이다. 요즘엔 66㎡(20평형)짜리 소형 아파트라도 웬만한 도시에서는 수억 원을 호가한다. 조금 넓은 아파트는 십억 원을 훌쩍 넘긴다. 연봉으로 따져 평균 9천만 원에 가까운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조차 아파트 한 채를 장만하려면 20년 가까이 돈을 모아야 한다. 그것도 자녀교육비나 기본적인 생활비 외에는 쓰지 않을 때라야 가능한 돈이다. 상대적으로 임금을 많이 받는다는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조차 이런 상황이니 최저임금에 가까운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은 더 말하지 않아도 빤하다. 오히려 빚을 지지 않으면 다행인 상황이다.

최근에 1천조 원을 넘어섰다는 가계부채는 결국 자녀교육과 내 집 마련에 대부분 들어갔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누구든 다양한 방식으로 먹고 살 수 있어야 한다

상황이 이와 같아 굳이 정부가 고용률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국민들에게는 돈을 벌 수 있는 번듯한 직장을 가지는 일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국가 전체적인 차원에서 보면 그만큼 일자리, 그것도 양질의 일자리가 중요하다.

그런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제조업을 육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취업계수(각 상품 또는 산업별 산출액 10억 원당 소요되는 취업자 수)는 사업지원 서비스업(24.1명), 문화 및 기타 서비스업(22.3명), 음식 및 숙박업(18.7명), 교육서비스업(16.5명), 도매 및 소매업(16.5명) 순으로 나타나 기타 제조업의 9.1명보다 훨씬 높게 나타난다. 따라서 이 수치만 보면 서비스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것이 일자리를 늘리는 데 유리할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올해 그리스 사태에서 드러난 것처럼 제조업 기반이 탄탄하게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서비스업 위주로 산업구조가 편성돼 있을 경우, 외부적인 환경의 변화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점 역시 분명하다. 그리스 국민이 무능하거나 게을러서 위기를 맞은 게 아니라 그리스의 산업구조가 외부로부터의 충격에 취약한 구조였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물론 이와 관련해서도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산업연구원 장석인 선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가 상대적으로 제조업의 비중이 높기 때문에 정부 입장에서는 제조업 비중을 선진국 수준인 20%대로 낮추고, 대신 선진국에 비해 1/3 수준인 서비스업의 생산성을 1/2 또는 2/3 수준으로 높이면 그만큼 부가가치가 창출될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면서 “그게 기재부가 서비스업 중심으로 가겠다는 논리인데, 반면에 산업부는 제조업 중심으로 가거나 유지한다는 입장”이라고 설명한다. 같은 정부 안에서도 부처에 따라 의견이 나뉠 수 있다는 것이다.

장석인 연구위원은 이에 대해 “같은 정부 안에서 이 문제에 대한 합의를 좀 더 정교하게 해야 한다”면서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발전 수준을 봤을 때 제조업을 어느 정도 수준으로 유지한다는 식의 합의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우리나라 산업구조를 어떻게 구성해 나아갈 것인가에 대해서 의견이 엇갈릴 수는 있다. 다만 그것이 단지 숫자로 결정될 성질의 문제는 아니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취업계수와 같은 수치에 의존해 결정할 문제는 아니라는 점이다. 분명히 취업계수는 제조업보다 서비스업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지만, 그렇다고 서비스업에만 올인 하는 것은 그리스 사태에서 보듯이 치명적인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현대중공업노동조합 김형균 정책실장의 다음과 같은 언급은 귀담아 들을 만하다.

“제조업이면 제조업, 서비스업이면 서비스업과 같이 어느 하나의 산업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각각의 산업들을 균형 있게 조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누구나 취업을 해야 하는 구조에서는 어느 산업을 키워야 한다, 고용을 늘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진다. 그러다 보니 자꾸 한 쪽만 생각하게 된다. 전체적으로 볼 때 모두가 반드시 제조업 기업에 다니면서 먹고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예술을 하면서도 먹고 살 수 있고 농업에 종사하면서도 먹고 살 수 있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공무원이 되려고 올인 하거나 대기업에 들어가려고 올인 하는 문제가 바뀔 수 있다. 대·중소기업 간에 동반성장을 주로 이야기하지만 산업 간에도 균형 있는 동반성장이 필요하다. 그래야 어느 한 산업을 키우기 위해 구태여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니겠는가.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꼭 공장에서 노동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 다양한 방식으로 다양한 산업에 종사하면서도 먹고 살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정부의 관심은 오로지 서비스업 육성에만 쏠려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정부가 여러 차례 논의를 거쳐 추진하고 있는 ‘투자활성화대책’이 대부분 서비스업 육성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점을 봐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노총 금속노련 최장윤 정책국장의 지적처럼 정부는 고용, 그것도 고용률 몇 %라는 숫자를 중심에 두고 생각하다 보니 제조업에 대해서는 실효성 있는 정책을 내놓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 참여와 혁신 DB
위기, 서로를 공격하는 무기 아니다

최장윤 국장은 제조업의 위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정도의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구조조정은 우리나라에서는 고용구조조정으로만 인식되는 경향이 크다. 이는 그동안 몇 차례 경험을 통해서도 확인한 바다. 그러다 보니 고용안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노동계로서는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말에 우선 거부반응부터 보인다.

당사자들의 받아들이는 태도가 갈리는 것은 구조조정뿐만이 아니다. 위기라는 말에 대해서도 각 당사자들은 서로 다르게 이해한다. 경영자들은 보통 위기 상황에 닥치면 그에 대응하기 위해 구조조정을 쉽게 할 수 있는 유연성, 특히 고용의 유연성을 요구한다. 고용구조조정을 쉽게 할 수 있어야 기업이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논리다.

반면 노동계에서는 위기 상황을 맞이하면 고용안정에 최우선의 목표를 두고 노동시간 단축, 일자리 나누기 등을 제안한다. 사회안전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해고는 곧 살인’이므로 고용을 유지할 수 있는 방식의 위기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각 당사자들의 입장에 따라 똑같은 말을 쓰더라도 그 의미가 달라진다. 노사가 똑같이 ‘위기’라고 이야기하지만, 경영자에게 위기는 고용구조조정을 추진할 기회로 인식된다. 위기 상황이기 때문에 최우선 목표인 기업의 생존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고용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내세운다.

반대로 노동계에게 위기는 수세국면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러한 위기는 대부분 경영의 실패에서 기인한다는 책임론을 제기하면서 어떻게든 고용을 유지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려 한다. 위기는 경영자의 잘못된 판단 때문에 발생했는데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 노동자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말라’는 것이다.

위기 상황에 맞닥뜨리면 이처럼 경영자는 노동자의 고용을 공격하려 들고, 노동자는 경영자의 책임을 문책하려 든다. 결국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서로의 힘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약점을 공격하는 데에 더 신경을 쓴다는 것이다. 그동안 여러 차례의 경험을 통해 이러한 인식이 자리 잡다 보니 서로에 대한 불신의 골은 갈수록 깊어지기만 할 뿐이다.

분명한 것은 위기가 다양한 방식으로 끊임없이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때마다 서로를 공격하려고만 들면 결국 파국을 맞게 된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쌍용자동차 문제나 한진중공업 문제를 통해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쌍용자동차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고용구조조정이라는 방식을 선택했고 회사는 어느 정도 위기 국면에서 빠져나온 것처럼 보이지만, 해고된 노동자들은 여전히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고 이는 경영자들에게 지속적인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반대로 IMF 경제위기 당시 수많은 경영자들은 폐업이라는 방식으로 경영 실패의 책임을 져야 했지만, 그 결과는 노동자들의 일자리마저 사라지는 것으로 귀결됐다.

결국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각 당사자들이 대화를 통해 서로가 생존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는 수밖에 없다. 어느 일방의 희생을 통해 단기적으로 위기 상황에서 벗어날 수는 있지만 결국 상대방에게도 그 피해가 미치게 되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비싼 수업료를 치를 만큼 치렀다면, 이제는 상대방에 대한 공격을 통해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려는 시도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그 출발은 서로의 입장과 이해관계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다. 위기 상황에서 비용을 최소화하려는 경영진의 이해관계와 고용을 유지하려는 노동계의 이해관계를 서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바탕 위에서 서로의 이해관계가 만나는 지점을 모색해야 한다. 기업의 생존을 통해 일자리를 유지하면서도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고통을 분담하는 방식과 같이, 서로 다른 이해관계 위에 서 있지만 그러한 이해관계가 만날 수 있는 지점을 찾아야 한다. 정부는 그와 같은 노사의 노력을 지원함으로써 사회적 비용이 발생할 가능성을 낮춰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인식을 공유하고 합의하는 것이다. 상대방을 공격하는 것은 일시적으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는 방편이 될 수는 있지만 위기 극복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공유하고, 갈등이 아닌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 같은 인식과 합의가 전제될 때 비로소 위기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유연한 방안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진정으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부분은 바로 이런 부분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