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피크제가 청년 일자리 대책?
임금피크제가 청년 일자리 대책?
  • 홍민아 기자
  • 승인 2015.10.05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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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기업, 고용창출 효과 확답 어려워
공공기관 역시 기대만큼 효과 없어
[사건]임금피크제

2016년 정년 60세 도입 의무화를 앞두고 공공기관 및 민간기업을 대상으로 한 정부의 임금피크제 도입 촉구가 거세지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하반기에는 지방 공기업까지 범위를 확대해 공공기관 임금피크제 도입을 압박하고 있고, 국내 30대 그룹을 대상으로 임금피크제 도입 현황까지 파악하며 하반기 이내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임금피크제 실시가 청년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고 대대적인 홍보활동을 펼치고 있지만, 고용 창출 효과가 현실로 이어질 지에 대한 의구심은 줄지 않고 있다.


 ⓒ 홍민아 기자
노사정 대화 지지부진한 사이
정부, 임금피크제 도입 강행

2013년 국회는 인구 고령화 및 노동생산성 감소에 대응하기 위해 정년 60세법을 통과시켰다. 상시 300명 이상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장을 비롯해 공공기관, 공기업, 지방공기업은 2016년 1월 1일부터 의무적으로 정년을 60세로 연장해야 하고, 2017년 1월 1일부터는 300명 미만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장과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로 확대 적용된다.

개정법 시행에 따라 원래 정년이 60세 미만인 사업장이라도 정년을 60세로 정한 것으로 보고 이를 위반할 시 부당해고로 간주되어 처벌받게 된다. 또한 정년 60세 적용에 해당되는 사업장은 노사가 논의하여 정년연장에 따른 임금체계개편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개정안은 규정하고 있다.

법 개정 당시 재계에서는 임금수준 조정 없이 정년만 연장하면 기업의 인건비 부담만 늘어난다고 반발하며 임금피크제 도입 등의 임금체계개편을 위한 추가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었다. 하지만 개정안에는 정년 60세 만을 법제화하고 임금피크제 도입 등의 임금체계개편은 노사합의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판단 하에 권고사항으로 남겨뒀었다.

그리고 지난해 노사정위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을 위한 합의 내용에 임금피크제를 포함시키고 논의를 진행해 왔다. 하지만 일반해고, 취업규칙불이익변경 등을 두고 의견이 좁혀지지 않았고 4월 8일, 한국노총은 5대 수용불가사항을 내세우며 노사정위 결렬을 선언했다.

내년 정년 60세 법제화 시행을 앞둔 정부는 노사정 합의로 임금피크제 도입을 해결하려고 했으나 4개월 가까이 노사정 대화가 중단되자 각종 설명회를 통해 공공기관 및 지방공기업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것을 압박했다. 그리고 한국노총이 노사정위에 들어오지 않으면 독자적으로 노동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한국노총은 일반해고,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등 노동자에게 중요한 영향을 주는 노동시장 구조개선 관련 모든 의제와 해법은 공식적인 노사정위 협상에서 논의하고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8월 27일 노사정위에 복귀했다.

가까스로 노사정 대화가 시작되었지만, 최경환 부총리가 정부 예산안을 국회 제출하는 전날인 9월 10일까지 노사정 합의를 마쳐야 한다고 압박에 나섰고, 대화가 재개된 지 18일만인 9월 13일 부랴부랴 노사정위는 합의안의 도출을 발표했다.

정부-경제계, 청년 일자리 기회 20만 개 창출
이중 실제 일자리는 7만5천 개에 불과

정년 60세 시행에 대비한 임금피크제 도입에 대한 합의 문구는 ‘노사정이 단체협약 및 취업규칙 개정을 위한 요건과 절차를 명확히 하고 이를 준수하며, 정부는 이를 일방적으로 시행하지 않고 노사와 충분한 협의를 거친다’로 정리되었다.

결국 임금피크제 도입 방법은 노사가 협의할 사항으로 남았지만, 정부는 계속해서 임금피크제 도입이 청년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고 홍보하며 공공기관 연내 도입 완료 및 민간기업으로의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임금피크제 도입은 장년층의 일자리 불안과 청년들의 신규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고 정년연장의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중요한 열쇠이므로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까지 강조했다. 최근에는 황교안 국무총리까지 나서 “청장년 상생고용제도인 임금피크제를 올해 안 모든 공공기관에 도입하는 것이 목표이고, 임금피크제를 실시하는 민간기업들을 대상으로는 세재, 재정지원 등을 아끼지 않겠다”고 거들고 나섰다.

그리고 고용노동부는 지난 7월 ‘청년일자리 기회 20만개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청년 실업률이 10%를 넘어서고 있고, 2016년 정년연장 의무화 시행으로 생기는 기업의 인건비 부담으로 향후 3~4년간 청년 고용절벽 사태가 발생할 수 있으니 이를 타개하고자 경제계와 협력하여 2017년까지 20만개의 청년일자리 기회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에 따르면 2017년까지 공공부문에 4만 개, 경제계가 민간부분에서 16만 개, 총 20만 개의 청년 일자리 기회가 만들어 진다.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정부는 교원 명예퇴직 확대를 통한 신규 채용 확충, 특수교사 확충,  포괄간호서비스의 조기 확대를 통한 간호인력 확충, 어린이집 및 보조대체교사 확충, 시간선택제 및 임금피크제 도입 등을 통해 4만 명의 신규 일자리를 확보하고, 경제계에서는 기존 직원 이직시 청년인력을 우선 채용하고 임금피크제 도입 등을 활용하여 3만 5천 개의 신규 일자리를 만든다. 그리고 7만5천 명에게는 중견기업 인턴 ‘기회’ 제공, 5만 명에게는 유망직종 직업훈련 및 일학습병행제 등을 통해 일자리 ‘기회’를 제공할 계획이다.

이렇게 정부와 경제계가 청년 실업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공동으로 일자리 창출 필요성에 공감대를 형성한 것은 긍정적인 일이지만, 노동계에서는 실제로 창출되는 일자리가 얼마나 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점을 제기하고 있다.

‘청년 일자리 기회 20만 개’를 살펴보면, 신규로 창출되는 일자리는 7만5천 개이고 나머지 12만5천 개는 인턴이나 직업훈련 등을 통한 일자리 ‘기회’ 제공에 불과하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7만5천 명의 신규채용 마저도 장기적인 전망에서의 청년 고용 정책이 아니라, 고령자 조기퇴직이나 임금삭감으로 인해 발생되는 일자리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김 연구위원은 신규 채용 일자리 중 교원 명예퇴직으로 1만5천 명, 임금피크제 도입으로 공공기관과 민간기업 각각 8천 명, 3만 명의 일자리가 만들어 지는 것이라고 설명하며, 정부에서 임금피크제가 청년고용대책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은 사실상 청년고용대책을 포기했음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임금피크제를 실시할 여력이 있는 곳은 정년이 보장된 공공기관과 민간 대기업뿐인데 이미 임금피크제를 실시하고 재벌기업에서 청년고용이 늘어났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고 있고, 경영목표가 비용 절감을 통한 단기수익 극대화인 민간기업에서 임금피크제를 통해 고령자의 임금을 삭감하더라도 청년 고용을 늘리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어차피 뽑아야 할 신입사원을 채용하면서 정부로부터 임금피크제 지원금을 받게 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 홍민아 기자
30대 그룹 47% 이미 임금피크제 도입
청년 일자리 창출 효과는?

정부는 임금피크제로 절감되는 인건비로 기업이 청년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우며 공공, 민간부분을 망라하고 임금피크제 도입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7월에는 자산 총액 기준 상위 30대 그룹 계열사 총 378 곳을 대상으로 임금피크제 도입 여부를 조사해서 47%에 해당되는 총 177개 사가 이미 정년 연장에 따른 임금피크제를 실시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같은 달 정부와 경제계는 청년일자리 기회 20만 개 창출에 대한 협력을 선언했다. 그리고 다음 달인 8월 대기업들은 앞다투어 청년 고용에 대한 대책을 내놓았다. 삼성이 발표한 청년 일자리 대책 총 규모는 30,000개이다. 이중 실제 일자리는 절반 수준이고, 나머지는 인턴 및 교육지원을 통해 일자리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내용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연평균 1만2천 명, 향후 3년간 3만6천 개의 청년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발표했다. 연초 현대자동차그룹에서 발표했던 2015년 총 9,500명을 채용하겠다는 계획과 비교하면 25% 증가한 수준이다. 그리고 이와 별도로 협력사 취업 지원, 교육훈련 및 창업지원을 통해 향후 3년간 1만2천 명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렇게 삼성그룹이나 현대자동차그룹 등의 대기업들이 선도적으로 임금피크제 도입 및 청년 일자리 대책을 추진하겠다고 앞장서고 있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이것은 그나마 여력이 있는 대기업들의 경우이고 인력이 부족하고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는 중소기업에서는 임금피크제를 아직 논의도 못 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노동계 역시 정부가 민간기업에 임금피크제로 절감되는 재원을 청년 일자리 창출에 써야한다고 강제할 수도 없고, 정년조차 보장되지 않는 대기업들을 타켓으로 임금피크제를 실시하라고 압박하는 것은 임금을 깎자는 이야기 밖에 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한국노총은 정부가 정책시행에 유리한 내용으로 판단되는 경제단체 산하 연구소의 연구결과는 검증도 없이 그대로 가져다 쓰면서, 임금피크제 도입 효과가 과장됐다는 국책연구기관의 연구 결과는 공개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하며 임금피크제 효과 부풀리기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대기업 임금피크제 도입을 조사한 정부 관계자들도 임금피크제 실시로 인한 청년 고용 창출 효과를 당장에 확인하기는 어렵다고 답했다. 현재 민간기업들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있지만 내년에 정년 60세 제도가 시행되고 2~3년을 지켜봐야 임금피크제 실시로 인한 고용 창출 효과를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했다. 그리고 현재 대기업들이 청년고용 대책으로 발표하고 있는 방안들이 임금피크제 도입의 효과로 보기에는 사실상 어렵다는 이야기했다.

 ⓒ 홍민아 기자
임금피크제 도입 완료 공공기관
3곳 중 1곳, 신규 채용은 0명

9월 국정감사가 시작되면서 임금피크제가 실시된 공공기관에서 신규 채용 효과가 없다는 지적들이 이어지고 있다. 박완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기획재정부가 제출한 임금피크제 도입기관 현황을 분석한 결과 96곳의 공공기관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했지만, 36곳이 정원이 없어 증원차제가 불가했다고 밝혔다. 결국 96곳 공기업에서 임금피크제 도입으로 만들 수 있는 일자리는 총 1,817명인데 이는 정원 대비 1.9%에 불과, 정부가 주장한 3%에 크게 못 미치는 수치라고 전하며  임금피크제 도입 공공기관 3곳 가운데 1곳은 내년에 신입사원을 채용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전정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역시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제출받은 올해 임금피크제 적용 산하 공공기관 인건비 절감액과 고·대졸 신입사원 초임, 연간 채용 인원을 분석한 결과 임금피크제 도입에 따른 신규 인력 창출 효과는 없고 기업의 인건비 부담만 줄여주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밝혔다.

노사정 대화를 통해 정년연장에 대비하고 임금피크제 도입을 논의하자는 당초의 목표는 청년 일자리를 창출하는데 중장년층이 협조하여 청년 실업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프레임으로 바뀌어 버렸다. 청년 일자리 정책을 만들어야 하는 정부는 정작 일자리 부족 탓을 정년을 앞둔 공공기관, 대기업 노동자들의 탓으로 돌리며 세대 간의 갈등만 증폭시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