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노사갈등 겪는 악조노벨
극심한 노사갈등 겪는 악조노벨
  • 홍민아 기자
  • 승인 2015.10.05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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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간부, 지회장 폭행에 임금체불 의혹까지
지회, 안산공장 정문 앞 무기한 철야 농성 돌입
[사건]악조노벨지회

8월 26일 노동시장 구조개악 저지를 위한 민주노총 집중행동이 있던 날, 붉은 조끼를 입은 화학섬유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주한 네덜란드 대사관 앞에 모였다. 악조노벨분체도료(주)의 노조탄압에 항의하기 위해 조합원들이 모인 자리에, 고운 원피스를 입은 한 사람이 마이크를 들었다. “회사에서는 산업재해가 발생해도 본인 돈으로 치료하라고 하고, 노동조합에 가입한 사람들에게는 인사고과에서 낮은 평가를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삶을 자유롭고 가치있게 살고,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 홍민아 기자

일방적인 교대제 개편, 잔업은 계약직만 

악조노벨분체도료는 네덜란드 글로벌 기업인 악조노벨의 분체도료 부문 한국법인으로 1985년에 설립되었다. 분체도료는 가루페인트로 가전이나 자동차, 건축, IT 등에 코팅제로 사용되는 물질이다. 악조노벨분체도료에서 생산하는 분체도료는 중금속 성분을 포함하지 않은 안료를 사용하고 재사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친환경제품으로 각광받고 있고, 업계에서 기술력 또한 인정받고 있다. 국내공장에서 생산하는 제품의 대부분은 내수시장에서 판매되고 있는데 주 고객처가 삼성전자, LG전자 등이다.

전세계 최대 규모의 분체도료 제조사인 악조노벨분체도료의 본사는 전세계 80여 개국에서 사업장을 운영하는 글로벌 기업에다가 친환경제품을 생산, 기술력 또한 인정받고 있기 때문에 업계에서 회사 이미지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인 편이다.

하지만 지난해 4월 노동조합이 설립된 이후 내부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당시 사측에서는 임금 수준을 저하시키는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을 시도했고 이에 조직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노동조합이 만들어졌다. 이현목 악조노벨지회장은 “2013년 통상임금 대법원 판례 후에 일할 지급하는 정기상여금의 지급 요건을 바꾸려는 시도가 있었다. 노동조합을 만들어서 그 시도는 막아 냈지만, 교대제가 변경되는 것은 막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악조노벨분체도료는 원래 주간 근무만 하는 1교대제로 운영되고 있었다. 아침 7시 30분에 출근해서 오후 4시에 정시 퇴근을 하고, 보통 8시까지 연장근로를 해 왔다. 하지만 통상임금 대법원 판례 후 정기상여금 800% 전체가 통상임금에 포함되면서 기본급화 되었고, 통상임금 수준이 올라가면서 연장근로에 대한 인건비가 30% 이상 증가했다. 이에 사측은 물량 증가를 이유로 교대제 개편을 실시했다. 기존 주간근무 1교대제에서 주야 2교대제로 근무시간 체계를 변경했고, 이 과정에서 조합원들의 연장근로를 중단시켰다.

이 지회장은 회사가 교대제 개편을 하면서 단기계약직 20여 명을 채용해 연장근로를 몰아 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기본급 비중이 총임금에서 60% 수준인데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면서 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연장근로 수당이 대폭 증가했고, 회사는 인건비 절감을 위해 짧게는 1개월 길게는 6개월의 계약직 노동자를 고용해 주야 2교대제에 필요한 인력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통 제조업 사업장들은 기본급 수준이 낮기 때문에 연장근로를 통해 임금수준을 보전하는 경우가 많다. 사측에서 조합원들을 연장근로에서 배제시키면서 임금 압박을 가했고, 이를  못 버티고 노동조합을 탈퇴하는 조합원들이 속출했다. 지난해 63명으로 출발한 악조노벨지회에는 현재 34명의 조합원들만이 남아 있다.

 ⓒ 홍민아 기자
지난해 첫 단체교섭 체결은 했지만...

현재 악조노벨지회는 2015년 임금교섭 파행으로 부분파업과 태업 중에 있다. 4시간 부분파업에 들어간 조합원들은 네덜란드 주한대사관과 대표이사의 집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고, 그 외 조합원들은 공장근무를 하면서 태업 상태에 있다.

악조노벨은 지난해 단체교섭을 체결할 때도 난항을 겪은 바 있다. 지난해 5월, 지회는 사측에 단체교섭 첫 상견례를 요청했지만 사측에서는 노무사 선임 등의 이유를 들어 교섭을 거부했다. 교섭 신청하고 한달 여만에 이뤄진 교섭 자리에는 위임장도 받지 못한 노무사 2명과 재무이사, 인사팀장만이 참석했다. 실질적인 권한이 없는 사측 대표들만 교섭에 참석하자 지회는 8월 교섭해태 및 부당노동행위로 사측을 고소하기에 이르지만, 노동부 중재 하에 사측 대표이사와의 교섭, 성실교섭 약속을 받고 고소를 취하했다.

하지만 이후 사측에서는 대표이사가 아닌 노무사를 대표교섭위원으로 내세웠다. 진척이 없이 시간만 흐르자 지회에서는 교섭 속도를 내기 위해 매주 교섭을 진행하자고 제안했지만 이마저도 사측의 거부로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지회는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 조정신청을 했고 2차 조정 때 노사가 잠정합의 함으로써 2014년 단체교섭이 마무리 되었다.

이 지회장은 기본급 인상 및 수당 신설 등을 요구했지만 그 부분은 합의하지 못했고, 기본적인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보장만 합의했다고 전했다. 또한 지난해 처음 회사와 단체교섭을 시작했는데, 끝까지 대표이사 아닌 노무사를 대표교섭위원으로 내세우는 것은 사측에서 노동조합을 대화상대로 인정하고 있지 않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올해 역시 대표이사 대신 노무사가 대표교섭위원으로 참석해 있는 상황이다. 지회는 “보통 다국적기업들은 OECD 가이드라인 적용 대상이다. 가이드라인에는 경영진 대표가 교섭장에 나와서 노동자 대표가 교섭할 것을 제시하고 있는데, 계속해서 경영에 대한 실질적인 권한이 없는 노무사가 대표교섭위원으로 나오는 것은 교섭을 해 봤자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고 전했다.

지난해 악조노벨은 고소고발이 오가는 가운데 겨우겨우 단체교섭을 마무리 했지만, 임금교섭이 걸려 있는 올해는 지난해 보다 상황이 더 악화된 상태이다. 특히나 회사 관리자들의 지회 간부, 조합원 폭행사건까지 발생하면서 노사관계는 끝이 안 보이는 어두운 터널 속으로 들어갔다.

지회 간부, 조합원 폭행사건까지 발생

첫 폭행사건은 올해 6월에 발생했다. 지회는 대의원 중 한 명이 생산설비 청소 과정에서 발생하는 유해가스 문제를 지적하자 사측 관리자가 대의원에게 쓰레기통을 던지고 욕설을 퍼부었다고 주장했다.

문제가 되는 청소도구는 산소용접기이다. 페인트를 생산하고 나면 분진상태의 페인트들이 설비에 들러 붙게 되는데 이를 제거해야 다음날 작업이 가능하기 때문에 매일매일 청소를 해줘야 한다. 그런데 산소용접기를 이용해서 설비에 눌러 붙은 페인트들을 태우는 과정에서 유해한 것으로 추정되는 가스가 발생하게 된다. 현장에 있는 직원들이 분진마스크를 쓰고 있기는 하지만, 가스용 마스크가 아니기 때문에 유해가스로 추정되는 물질에 사실상 노출되는 것이다.

그래서 지회에서는 현장이 아닌 외부로 설비를 옮겨가서 청소할 것을 사측에 요청했고 사측은 이를 수용했다. 한동안은 현장 외부에서 청소작업이 잘 진행되었는데, 설비를 분해해서 옮기고 청소하고 다시 조립하는 과정을 거치고, 매일매일 청소를 하다 보니 폭행사건이 발생한 날에는 현장 근처에서 청소작업이 진행했고, 연기가 현장으로 다시 들어오게 된 것이다.

이를 목격한 대의원 한명이 이 문제를 지적했고 청소 작업자는 작업을 멈추고 사측 관리자에게 관련 내용을 보고했다. 그런데 보고 과정에서 대의원이 청소를 하지 말라는 식의 지시를 했다고 내용이 왜곡되면서 관리자가 대의원을 폭행하는 일까지 발생한 것이다.

두 번째 폭행은 임금교섭 결렬로 인한 파업기간에 발생했다. 7월 31일, 공장 내부에 게시된 대자보를 철거하려고 하던 관리자를 이 지회장과 한 조합원이 저지하며 실랑이가 벌어졌다. 그 과정에서 관리자가 조합원들을 밀쳐서 넘어졌고 조합원 한 명과 대의원 한 명이 손목, 허리 등에 부상을 입고 전치 3주의 진단을 받아 병원에 입원했다.

지회는 현재 사측에서 조합원 폭행 사실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있지만, 대의원 폭행은 인정하고 있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폭행사건으로 인해 노사가 극심한 갈등을 겪고 있고, 교섭이 파행된 상황에서 이 지회장에 대한 7월 급여 미지급 사태까지 발생하자 지회는 8월 7일 쟁의대책위원회를 발족시켰고 안산공장 정문 옆 주차장에서 철야 천막농성을 시작했다.

지난해 악조노벨 노사가 처음 체결한 단체협약 상에는 전임자 근로시간 면제 600시간으로 명시되어 있고, 교섭 전 2주와 교섭 후 1주까지는 교섭위원 한 명에 한해서 유급으로 인정한다는 조항이 있다. 하지만 사측에서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4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규정을 들어 지회장 임금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 현재 지회가 고용노동부에 고발장을 접수한 상황인데 아직 판단은 나오고 있지 않다.

 ⓒ 홍민아 기자
올해 임금교섭 결렬, 대화 재개될 낌새도 안 보여

악조노벨 노사는 6월 첫 폭행사건이 발생한 이후 교섭을 재개하지 못하고 있다. 지회는 연장근로 중단에 따라 임금수준이 하락했고, 조합원 생계비를 감안해 기본급 35% 인상(근속년수 9년 미만 44만 원, 9년 이상 28만 원) 할 것을 요구하고 있고, 사측은 4% 인상안을 고수하고 있다.

노사간 의견 차이가 가장 큰 기본급 인상에 대해서 이 지회장은 “지회에서 임금 인상을 과하게 요구한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연장근로가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기상여금 통상임금화로 기본급이 올랐고, 연장근로가 줄어 일을 안 하기 때문에 이전 수준까지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도 2~30% 손해는 감수하고 있다. 하지만 35% 인상은 생활임금 수준에 맞춰서 계산을 한 것이기 때문에 요구안으로 제시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지회의 요구안을 듣고선 사측은 펄쩍 뛰었고, 기존에 제시한 4% 인상을 고수하고 있다. 사측에서는 매년 8월에 내년도 예산을 측정하는데 지회 요구안이 예산 범위를 넘어서기 때문에 지회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한다.

기본급 인상에 대한 교섭 진척이 없는 상황에서 6월 16일 7차 교섭 이후 사측은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 조정신청을 내기에 이른다. 보통의 조정신청은 노동조합이 파업을 결의하기 전에 지노위에 신청을 한다. 조정과정에서 노사 의견이 모아지지 않으면 지노위는 조정 중지 결정을 내리고 노동조합은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통해 파업을 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한다.

신환섭 화학섬유노동조합 위원장은 사측이 먼저 조정 신청을 하는 것은 결국 회사에서 파업을 유도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신 위원장은 “교섭이 결렬되고 노동조합이 파업을 할 것 같으니 이에 대비해서 계약직 직원들을 뽑고, 노동조합에 파업을 유도해서 조직을 깨트리려는 악질적인 행위”라며 “노사관계의 기본은 대화인데 노동조합이 생기자 계약직들을 고용해 파업에 대비하고 있는 것 자체가 노동조합을 인정하고 있는 않고 있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사측에서 신청한 조정이 7월 1일에 중지 결정이 났고, 지회는 같은 달 21일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실시했다. 투표율 95%에 87.5%의 조합원들의 찬성으로 쟁의행위 찬반투표는 가결되었다. 그렇게 악조노벨지회의 파업은 시작되었고, 6월 이후로 교섭이 중단된 이후 노사간 대화는 전혀 이뤄지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악조노벨지회, 아직도 해결해야 할 문제 잔뜩있어

지회에서는 현재 사측에 성실히 교섭에 임할 것과 조합원 폭행에 가담한 관리자의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 노동조합 탄압 금지, 산업재해에 대한 책임을 요구하며 철야 천막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아침 출근선전전에는 가족들까지 함께 하며 회사의 노동조합 탄압 금지를 촉구하고 있다.

28일 주한 네덜란드 대사관 앞에서 마이크를 들었던 고운 원피스의 주인공 역시 이 지회장의 아내였다. 이 지회장의 아내는 “이런 횡포가 더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이 땅의 정의를 위해 노력하는 분들과 함께 하기 위해 마이크를 잡게 되었다”고 이야기하며 “악조노벨지회에 힘을 주시길 부탁한다”고 말했다.

악조노벨 노조는 현재 임금교섭 결렬로 파업 중에 있지만, 지회가 풀어가야 할 문제들은 산적해 있다. 제조현장에서 항상 문제가 되어온 산업안전 부분이다. 이 지회장은 회사가 가루 페인트를 생산하는 공장이다 보니 분진이 날리는 문제, 중량물을 취급하는 과정에서 지게차 사용이 잦은데 이로 인한 안전사고, 조명이 어둡고 설비 밑으로 사람이 들어가서 작업하는 경우 머리나 어깨 등을 부딪히게 되는 경우 등을 지적하며 “산업안전 문제에 대해 노사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합원 A씨는 피부병이 생겨 병원을 다녔는데 피부과에서 스테로이드가 많이 들어간 약을 처방해서 양 다리 고관절이 괴사되는 병이 생겼다. 인공관절을 넣어야 한다는 진단을 받고 수술을 진행했는데, 추후에 산재 판정을 받았다. 피부병이 원인이 되어 고관절괴사가 발생했고, 피부병이 가루가 많이 날리는 작업현장으로 인한 발병했다는 점이 인정되어 산업재해 판정을 받은 것이다. 그 외에도 비슷한 시기에 두 명의 직원들한테서 백혈병이 발병했는데 그 원인을 찾기 위해 사측에 MSDS(물질안전보건자료)을 요구했으나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다고 지회는 주장했다.

추석을 앞둔 현재까지도 노사간 대화는 단절된 상태이다. 노사가 극심한 갈등을 겪고, 소규모 사업장을 취재할수록 사측의 입장을 듣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천막농성장을 취재한 후 지회에서 주장한 사실 확인을 위해 여러 차례 악조노벨 사측 담당자와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자리에 없다는 이유로 통화조차 할 수 없었다. 문제를 풀기 위한 최소한의 단초는 대화이다. 폭행, 조합원 차별 등의 노조탄압 문제가 발생해 논란이 되고 사업장에서 최소한의 사실 확인을 위한 취재진과의 대화조차 거절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아직도 악조노벨 노사가 가야할 길이 멀게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