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개월 비정규직 ‘체육선생님’
11개월 비정규직 ‘체육선생님’
  • 이상동 기자
  • 승인 2015.10.05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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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강사 제도 8년, 대량 해고 위기까지
교사, 학생, 학부모 만족감 높지만 처우는 열악
[사건]계약직 스포츠강사 고용불안

정부는 학교체육 활성화를 위해 스포츠강사를 채용해 초등학교에 배치하고 매년 그 숫자를 늘려왔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전국의 모든 초등학교에 스포츠강사를 배치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지만, 이는 지켜지지 않았고 오히려 인원이 축소되고 있다. 이들은 10개월, 11개월의 단기 계약의 고용불안 속에서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7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임금은 동결됐다. 학교와 학부모, 학생들까지도 높은 스포츠강사 제도에 만족감을 보이지만 그들의 처우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 이상동 기자
전국 모든 초등학교에 배치한다더니

8월 14일 초등학교에서 ‘체육선생님’으로 불리는 스포츠강사들 1,000여 명이 길거리로 나왔다. 이들은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집회를 열어 ‘11개월 계약’, ‘7년 째 임금동결’, ‘무기계약 전환 제외’ 등의 문제를 제기하며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또한, 1,000여 명의 스포츠강사가 대량 해고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2016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지원하던 20%의 인건비 예산이 교육부로 이관되며 전액 삭감될 예정이었다. 그에 따라 교육부는 채용인원을 1천 명 감축할 계획이라고 밝힌다. 2016년 채용 예정인원 수요조사에 따르면 문체부 지원 예산이 삭감될 경우 대구, 세종, 인천, 전북 등의 지역에서는 스포츠강사를 채용하지 않을 계획이다. 11개월 계약 후 매해 신규채용 방식으로 고용을 이어가던 일자리를 잃게 되는 것이다.

초등학교 스포츠강사 제도는 2008년 문화체육관광부 업무보고 중 이명박 대통령의 지시사항에서 시작됐다. ‘공교육에서 건강과 체육에 대한 제도적 방안을 강구’한다는 목적에서 ‘학교체육 활성화’를 위해 초등학교 담임교사의 체육수업 부담 경감과 학생들의 체육수업의 흥미유발을 통해 학교체육 활성화를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학생들이 체육활동의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평생 운동습관 형성에 기여한다는 목적도 있다.

2008년 시범사업으로 시작해 2학기부터 952명을 선발 전국 952개 초등학교에 배치했다. 2013년의 문체부 보도자료에 따르면 2012년에 스포츠강사는 2,852명으로 인원이 늘어났다. 2013년에는 6,051명으로 확대해 전국 모든 초등학교에 배치할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인원 확대는 3,800여 명에 그쳤다. 2014년에는 예산 문제로 인원이 축소됐다. 2016년에도 인원 감축이 계획돼 있다. 전국 초등학교에 모두 배치하겠다던 계획은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 이상동 기자
11개월 계약, 고용불안과 저임금 이중고

스포츠강사의 원래 명칭은 체육보조강사였으나 2009년 스포츠강사로 변경됐다. 주 업무는 체육교과의 정규수업을 보조하는 역할이다. 학교 교사와 함께 수업을 진행하고, 수업을 전담하는 것은 불가하다. 하지만 스포츠강사들은 실제로 체육을 전담하고 있다고 했다.

스포츠강사가 되려면 초등학교 정교사(2급 이상) 자격증을 가지고 있거나 중등학교 체육과목 정교사(2급 이상) 자격증, 체육 과목 실기교사 자격증 중 하나의 교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아니면 경기지도자 또는 생활체육지도자 자격증을 가지고 있거나 5년 이상의 지도 경력이 필요하다. 선수 경력이 5년 이상일 경우에도 가능하다. 이처럼 전문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스포츠강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실제로 보조업무만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했다.

스포츠강사 제도 도입 이후 문체부에서 조사한 설문조사 결과에도 교사, 학생, 학부모의 수업만족도 결과가 95%에 이르는 등 스포츠강사 제도는 긍정적인 반응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제도시행 후 7년이 넘는 기간 동안 고용불안과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다.

2008년 처음 시행 이후 스포츠강사의 계약기간은 10개월이었다. 2014년이 돼서야 1개월이 늘어난 11개월 계약이 이뤄졌다. 1월 31일에 계약이 끝나면 2월에 다시 채용을 시작해 3월부터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계약이 끝나면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등 생계비 마련을 위한 다른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 채용이 확정되면 기본 소양, 교직 일반, 초등체육이론과 실기 등의 연수를 받고 3월 2일부터 일을 시작하게 된다. 2014년에는 계약기간이 늘어났지만 그에 따른 예산이 반영되지 않아 스포츠강사의 인원이 축소됐다. 1개월의 계약기간이 늘어난 대신 동료 스포츠강사가 일자리를 잃은 것이다.

2015년에는 학교체육진흥법 시행령 제4조(스포츠강사의 자격기준 등)가 개정되며 스포츠강사의 자격기준이 변경됐다. 국민체육진흥법에 따라 체육지도자(스포츠지도사, 건강운동관리사, 장애인스포츠지도사, 유소년스포츠지도사, 노인스포츠지도사) 중에서만 임용이 가능하게 바뀌었는데, 이를 두고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은 “스포츠강사가 무기계약 전환 대상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변경했다”고 주장한다.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라 국민체육진흥법의 체육지도사는 무기계약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체육지도자 자격증이 없는 스포츠강사는 무기계약직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스포츠강사의 자격기준을 개정해 무기계약 대상이 아닌 체육지도자만 스포츠강사가 될 수 있게 변경했다는 것이다.

결국 11개월의 단기 계약만 반복되고 고용보장의 가능성은 더욱 줄어드는 것이다.

 ⓒ 이상동 기자
낮은 임금, 수당 차별에 제도 폐지까지

고용보장 뿐만 아니라 임금에서도 문제가 제기된다. 2008년 제도가 처음 시행될 당시 급여는 월 150만 원(세전)이었다. 하지만 8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도 185만 원 정도 수준이고 장기근속이나 경력에 따른 추가보상은 없다. 명절휴가보전금, 연가보상비, 교통비, 가족수당, 복지비 등의 수당에서도 제외된다.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조사에 따르면 전국 17개 시도에는 지역 상황에 따라 자체적으로 수당이 지급되는 경우도 있다. 명절상여금이 지급되고 맞춤형 복지비, 장기근무가산금도 지급된다. 하지만 이는 각 지자체 상황에 맞춰 지급되는 것이기 때문에 소외되는 지역도 많다.

지역에 따라 계약기간에 차이가 나기도 한다. 강원, 전남, 경남, 부산 등 4개 지역은 12개월 계약을 진행한다. 한 학교에 4년을 배정하는 곳도 있다. 전원 고용보장을 약속한 지역도 있지만 인원 축소를 결정한 곳도 적지 않다. 특히 인천은 2016년에 스포츠강사를 뽑지 않을 계획이라 밝히며 더욱 문제가 되고 있다. 114여 명의 스포츠강사가 전원 해고될 처지에 놓인 것이다.

인천시 교육청은 스포츠강사 제도를 폐지하고 기존 교사들 중에서 체육전담교사를 선임해 체육수업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교육공무직본부 인천지부는 8월 14일 인천시교육청 앞에서 ‘해고 철회, 고용안정과 처우개선 쟁취를 위한 인천 스포츠강사 결의대회’를 개최하며 해고를 막기 위한 투쟁에 나섰다. 하지만 인천시 교육청은 재정난이 심해 스포츠강사 제도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체육전담교사가 스포츠강사의 대안?

2013년 교육부의 ‘초등학교 체육전담교사 배치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교사들은 체육수업에 많은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초등학교에서 가르치는 대부분의 수업은 교실에서 진행된다. 하지만 체육은 운동장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날씨, 황사 등의 기상 상황의 문제가 발생하고, 교사가 학생을 통제해야 하는 범위도 넓어진다. 때로는 시설물 또는 기구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어 크고 작은 안전사고의 발생 가능성도 있다. 학생들의 돌출행동으로 인한 사고의 위험성이 있고 잠깐의 부주의가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초등학교 여교사의 비율이 매우 높아(2014년 기준 76.9%이며, 서울은 85.9%) 체육 시범에 대한 부담과 교과 지도의 자신감 부족 등의 이유로 체육수업을 걱정거리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에 따른 대안이 체육전담교사 제도인 것이다. 교육부는 2014년 6월 ‘학교체육 활성화 추진 계획(시안)’을 발표해 2017년까지 전국 모든 초등학교에 체육전담교원을 배치한다고 밝혔다.

초등 체육 전문성을 갖춘 현직 교사를 체육전담교사로 배치하고 운영하거나, 교육대학교 졸업자 및 졸업예정자를 초등학교 체육전담교사로 채용하는 방법이다.

초등학교 체육수업이 학생들의 인성함양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인식과(초등교원 95.8%, 학부모 91.7%), 학생들의 체육수업 선호도는 높지만(85.9%, 만족도 85.4%) 정작 그를 만족시킬 방안은 충분치 못하다.

2014년 5월 전주지역 초등교사 293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74.5%는 본인이 체육전담교사가 되기를 희망하지 않았다. 그 이유로 능력부족과 수업의 열악함 등을 꼽았으며, 41.5%는 현행 스포츠강사 시스템을 유지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스포츠강사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응답은 15.7%였다. 이처럼 교사들도 원하지 않는 체육전담교사가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 이상동 기자
비정규직 체육선생님

이명박 정권에서 ‘학교체육 활성화’를 목표로 추진했던 스포츠강사 제도는 시작된 지 10년도 채우지 못하고 위기를 맞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공약에서 ‘공공부문부터 상시·지속적인 업무에 대해서는 2015년까지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했다. 하지만 2015년 10월이 다 되어가는 지금에도 공공기관에는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일하고 있다.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학교비정규직 인원은 2014년 기준으로 약 37만 명에 이른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와 전국교육공무직본부는 ‘교육공무직법’ 제정을 통해 스포츠강사를 포함한 학교 내 비정규직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교육공무직법은 유기홍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으로 정식 명칭은 ‘교육공무직원의 채용 및 처우에 관한 법률’이다. ‘학교비정규직 사용자 명확화, 채용절차 규정, 차별 처우개선 및 처우기준 근거 마련’ 등의 내용을 담고 있지만 2012년 10월에 발의돼 아직까지 국회 상임위에서 계류 중이다.

매년 스포츠강사의 수는 계속 줄어들고 있지만 뚜렷한 대안은 없다. 정부는 교육 개혁을 통해 한자교육, 안전, 소프트웨어 교육 등을 추가하려 하지만 초등 체육의 비전은 명확히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체육전담교사 제도가 지금까지의 스포츠강사 제도만큼의 만족과 성과를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교사, 학부모, 학생 모두에게 높은 만족감을 주지만, 11개월 계약, 낮은 임금, 열악한 처우와 예산삭감으로 인한 대량해고 위기 등 스포츠강사 제도가 흔들리고 있다. 학생들은 스포츠강사를 ‘체육선생님’이라 부르며 따르지만, 비정규직인 ‘체육선생님’을 내년에 다시 못 만날 수도 있는 사실은 알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