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주걱을 타고
사랑은 주걱을 타고
  • 현예나 기자
  • 승인 2006.09.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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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회와 아픔 나누는 대우자동차노조

▲ ⓒ 김창기 기자 ckkim@laborplus.co.kr

참담했다.
그 표현 말고는 이 광경을 표현할 방법이 없다. 언론을 통해 비춰진 모습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음을 알았다. 또 다시 이 땅을 먹어 삼키려는 듯 무겁게 내려앉은 먹구름처럼 수해현장을 목격한 우리들의 심정도 그렇게 가라앉았다.

때맞춘 나눔 활동
“막막했습니다”
대우자동차노동조합(위원장 이성재) 김재식 보건1부장은 수해복구 활동으로 토사의 첫 삽을 뜨던 그 때 심정을 이렇게 표현한다. 그도 그럴 것이 수해복구활동을 위해 강원도 인제군 덕적리를 찾은 대우차노조 간부들의 눈에 비친 수해현장의 모습은 ‘물 마귀죂水魔죃가 휩쓸고 갔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을 만큼 처참했다. 뼈대만 앙상히 남은 집들, 마당의 흙이 고스란히 들어앉은 안방, 무너져 내린 지붕….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곳이 심각했다. 그 참담함을 목격한 대우차노조 간부들은 그때서야 정말로 ‘잘 왔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한다.

대우차노조가 수해복구활동을 나선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을 통해서였다. 수해복구활동의 필요성이 제기되던 때 노조는 2006년 임금인상 및 단체협약 갱신을 위한 교섭의 막바지 작업에 한창이었기 때문이다.

대우차노조 김성열 교육선전실장은 “수해복구활동은 시급을 다투는 활동이기에 ‘강행’했다”고 수해복구 활동을 결심하게 된 계기를 말했다. 그리고 “교섭이 없는 주말에 간다면 조합원들도 이해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그러한 마음이 회사에도 전해진 것일까. 수해복구활동일 전날(7월 21일) 교섭은 잠정합의 됐다.
이들은 7월 22일 2000만원 상당의 구호물품을 강원도 인제 수재민과 덕적리 수재민들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덕적리에서 하루 종일 마을을 뒤덮은 토사를 제거하기 위해 삽질을 했다.

▲ ⓒ 김창기 기자 ckkim@laborplus.co.kr

‘밥’주는 노조, ‘사랑’받는 주민
대우차노조가 수해복구 현장에서 ‘토사’를 퍼내기는 했지만, 사실 이들의 주된 나눔 활동은 ‘밥’을 푸는 것이다. 작년 11월부터 지금까지 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 인천시 부평구 삼산동 삼산종합사회복지관(이하 복지관)에서 지역 노인을 위한 무료배식 활동을 하고 있는 것.

이 활동은 기업 내부의 이익에만 파묻히지 말고 지역 주민과 함께, 지역 발전에 앞장서는 노동조합이 되자는 결심으로 시작됐다. 지자체는 당연히 반겼다. 부평구청으로부터 복지관이 위치한 삼산영구임대아파트에 독거노인이나 몸이 불편한 장애인, 생활보호대상자 등 많다는 정보를 듣고 이곳을 활동의 터로 삼았다.노조는 무료배식이 있는 날이면 사내식당에서 식당아주머니들의 도움을 받아 음식을 마련하고 배식도구와 식판, 숟가락, 젓가락, 식수까지 배식에 필요한 모든 것을 챙겨 차에 싣고 복지관으로 향한다. 적을 때는 300명, 많을 때는 400~500명 가량의 주민이 와서 점심식사를 하는데 거동이 불편해 올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따로 도시락을 싸서 ‘배달 서비스’까지 하고 있다.

무료배식 때 주로 ‘짬(잔반)을 모으는’ 마지막 작업을 한다는 노동조합 송종승 총무부장은 “남자라 밥 나르고 푸고 하는 게 익숙하지 않아 처음에는 어색했는데 지금은 집에서도 조금씩 돕고 있다”며 “어딘가에 장성한 자식이 있을 노인 분들이 무료 배식한다고 하면 나와서 식사하시는 모습이 안쓰럽다”고 안타까운 마음을 전한다.

이 밖에도 대우차노조는 다양한 ‘지역사랑’을 실천해 왔다. 지난해 3월에는 남아시아 돕기 성금을 모금해 전달했고, 환경미화원들을 위해 따뜻한 조끼를 선물하기도 했으며 지난 겨울, 부평지역의 불우이웃에게 쌀을 전달하기도 했다. 또 올해 3월에는 인천 부평구 부개동에 위치한 ‘기적의 도서관’에 1000만원 상당의 책과 자동차모양의 서가를 기증했다. 기적의 도서관 최지혜 관장은 “노조에서 기증한 서고를 보고 아이들이 ‘나도 커서 저렇게 책을 기증하는 사람이 돼야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며 “돈을 기부하는 것과는 달리 책을 기부하는 것은 꾸준한 관리가 필요하니 지속적인 관심을 주셨으면 좋겠다”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 ⓒ 김창기 기자 ckkim@laborplus.co.kr

▲ ⓒ 김창기 기자 ckkim@laborplus.co.kr

낮은 곳을 향하는 연대의 손길
수해로, 복구로 나라가 떠들썩했던 지난 8월.
집과 생활 터전을 잃고 울부짖는 수재민에게 가장 큰 힘이 된 것은 어려운 이웃을 돕자고 떠들어대는 언론도, 한 번씩 와서 어깨 두드려주고 악수하고 떠나는 정치인도, 돈 봉투 쥐어주고 사진만 찍고 가버리는 자선단체도 아닌 묵묵히 함께 삽질을 하며 고통을 나눠 준 ‘동지’였을 것이다.

어깨를 엮고 함께 투쟁하는 이들만이 아니라 같은 지역에 살고 있는 이웃도, 어려움으로 고통당하고 있는 이들도, 이제 막 걸음을 떼기 시작한 나라의 미래를 짊어진 아이들도 우리의 ‘동지’임을 상기시켜 준 대우차노조가 이후에는 어떤 이들의 ‘동지’가 될지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