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하고 적극적인 참여, 위기를 기회로 바꾸다
다양하고 적극적인 참여, 위기를 기회로 바꾸다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5.11.03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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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민-정, 공동체의 ‘공동이슈’에 주목
충분한 상호 논의 후 구체적 실천 뒤따라야
[커버스토리] 제조업 위기극복 해외사례

<참여와혁신>은 135호와 136호 커버스토리 기사를 통해 오늘날 제조업의 현실을 살펴봤다. 많은 이들이 제조업이 ‘위기’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원인의 진단이나 처방은 각기 다르다. 외부 환경 변화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평가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국내 제조업의 구조적인 문제라고 말하기도 한다.

앞서 두 권의 기사에서는 다양하게 이야기되는 위기의 모습들과 처방전으로 제시된 사회적 합의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이번에는 이와 같은 이야기를 실제 현실에서 구현했던 독일의 두 자동차산업 집적 도시의 사례를 통해, 국내 제조업이 직면한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힌트를 찾아보려 한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통일 특수 이후 경제위기 봉착한 슈투트가르트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전통적인 주력 산업은 북부에 위치해 있었다. 하지만 1970년대를 넘어서 철강, 조선 등의 제조업 경쟁력이 후퇴하면서 독일 제조업의 중심은 남쪽으로 옮아간다. 뮌헨을 중심으로 한 바이에른 주와 슈투트가르트를 중심으로 한 바덴-뷔르템베르크 주가 대표적이다.

바덴-뷔르템베르크 지역은 자동차 관련 산업의 집적지로 유명하다. 메르체데스-벤츠, 포르셰 등이 대표적이다. 핵심 도시인 슈투트가르트 주변에는 1980년대 말 통계로 약 14만 개의 기업들이 들어서 있으며, 독일 경제 전체의 약 15%를 담당할 만큼 중요한 산업 거점이었다. 또한 슈투트가르트는 면적으로 봤을 때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1/10에 불과하지만, 1990년대 초 기준으로 생산 및 고용의 30% 가량을 차지하고 있었다.

익히 알려져 있는 것처럼 자동차산업은 광범위한 전후방 연관 산업을 갖고 있는 대표적인 종합산업이다. 슈투트가르트 지역의 자동차생산 클러스터는 대-중소기업 간의 원하청 관계, 지역적 산학협동, 지방정부의 지원 등이 원활하게 구동되며 높은 성장세를 보였다.

하지만 독일 통일 특수가 지나가며 1990년대 중반부터 슈투트가르트 지역은 심각한 경제적 위기를 맞게 된다. 수출의 감소, 투자의 감소, 기업의 도산, 실업률 증가와 같은 일련의 과정이 밀어닥친다. 1991년~1993년 사이 수출 감소율은 5%를 기록했고, 제조업 투자는 기존에 비해 31%나 감소했다. 1992년~1996년 사이 약 11만 명의 신규 실업자가 발생한다. 4% 대의 실업률은 1990년대 중반에 이르면서 9%를 넘어서게 된다.

이토록 심각한 산업, 경제적 위기에 봉착했던 슈투트가르트는 2000년대 들어서 다시 뚜렷한 성장세를 보이며 회복한다. 경제성장률은 전체 독일 평균 2% 수준보다 훨씬 높은 4%에 달하고 있으며, 실업률은 절반인 5% 수준으로 줄었다. 짧은 기간 동안 경제성장과 고용창출이라는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 참여와혁신 포토DB

문제해결과 혁신에 주목한 노사관계

슈투트가르트 지역의 위기극복 사례에서 주목할 점은 경제와 고용의 문제를 단순히 개별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 공동체의 문제로 보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해결을 모색했다는 점이다. 이 위기극복을 위한 거버넌스는 지자체와 기업, 노조는 물론 시민단체 등 지역 내의 다양한 주체들이 협력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구동했다. 특히 각 주체들이 자발적으로 거버넌스 구성에 참여했으며, 기능과 역할의 측면에서도 서로의 영역을 분명히 했다는 점을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우선 지역 경제권 내 지자체들 간의 정치적 조절을 위한 네트워크인 슈투트가르트 지역협회(Verband Region Stuttgart)가 구성됐다. 슈투트가르트 지역협회는 5년마다 시민선거를 통해 80명으로 구성된 지역회의를 구성하고, 이 지역회의에서 협회 대표와 지역이사회 선출, 사무국 관리, 다양한 지역 사업을 프로젝트화하고 추진하게 된다. 특히 경제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지역에 16개의 역량 및 혁신센터를 설립하고 운영한다.

또 슈투트가르트 지역의 금속노조, 노총, 상공회의소, 정계, 관계, 학계 등이 참여하는 슈투트가르트 경제육성회(Wirtschaftsföerung Region Stuttgart)도 구성됐다. 민관협력(PPP)으로 초기업단위에서 경제 혁신 기반 조성을 위한 슈투트가르트 경제육성회는 앞서 언급한 슈투트가르트 지역협회가 51%를 출자하고, 지역 경제단체와 노동조합이 참여해 설립한 유한회사 형태의 독립법인이다. 대표적으로 지역고용기구 설립 등, 숙련형성, 기업지원, 고용서비스사업, 여타 경제환경 개선 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다.

다른 한 측면에서 슈투트가르트 사례를 살펴볼 지점은 바로 노사관계 부문이다. 특히 노동조합의 협력이 없었다면, 성공적인 사례로 남기 어려웠을 것이다. 노동조합이 위기극복을 위한 혁신의 방향을 전략으로 삼았다. 이는 갈수록 커져가는 고용불안, 실업문제 등에 적극적으로 대비하기 위해서다.

독일의 자동차산업은 이미 1990년대 초부터 일본의 도전을 받아왔다. ‘린 생산방식’이라는 조직혁신을 통한 이와 같은 도전에 대해, 기술혁신, 고숙련화를 위한 교육훈련 강화, 집단작업의 도입 등의 방법으로 맞선다. 또한 노동조합의 참여경영을 통해 이와 같은 전략은 구체적으로 실현되고 성과를 낼 수 있었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지속가능한 성장에 눈 뜬 볼프스부르크

슈투트가르트 사례에 이어 독일의 볼프스부르크 지역 역시 비슷한 시기 위기극복을 위한 좋은 사례로 들 수 있다. 볼프스부르크는 유럽 최대의 자동차회사인 폭스바겐을 중심으로 한 대표적인 자동차 클러스터 지역이다.

볼프스부르크는 2013년 기준으로 전체 주민 12만 명 중 폭스바겐에 근무하는 사람이 5만 8천 명이나 된다. 폭스바겐을 중심으로 도시 전체가 움직이고 있다. 폭스바겐의 경영 상황, 근무시간 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교통, 보육, 상권, 문화 등 도시의 일상이 맞물려 있다. 폭스바겐 공장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이 일제히 여름휴가에 들어가면, 시내는 한산해지고 그에 맞춰 상점이나 음식점 등도 일제히 휴가를 보내는 식으로 말이다.

그뿐만 아니라, 볼프스부르크가 속한 니더작센 주정부는 폭스바겐 지분의 20%가량을 소유하고 있다.

이와 같은 연유로 폭스바겐은 다른 대기업들에 비해 공공적인 성격, 혹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의식이 높은 편이었다.

슈투트가르트 지역과 마찬가지로 볼프스부르크 역시 1990년대 초 경제적 위기를 맞는다. 독일 통일 특수가 끝나가던 1993년과 1994년 사이, 볼프스부르크의 핵심 기업인 폭스바겐은 악화되는 경영상황에 직면해 노동시간단축과 임금 감소를 통해 일자리를 나누는 방식으로 이를 타개하려고 시도한다. 노동조합도 3만 명에 달하는 해고를 감수하기보다는, 노동시간을 20% 단축해 주 4일제 근무를 하고, 임금의 16%를 절감하는 타협책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와 같은 자구노력에도 불구하고 지역의 경제위기는 계속된다. 1992년에 7.9%였던 실업률은 1996년 18.1%로 치솟는다. 1998년 볼프스부르크 시 창립 60주년에 맞춰, 폭스바겐 노사는 ‘아우토 비전(Auto Vision)’을 통해 실업률을 반으로 줄이고 경제를 회복하는 프로젝트를 시와 함께 추진한다.

아우토 비전 프로젝트 팀은 혁신캠퍼스, 부품사 유치, 체험세계, 인력서비스 중개 등 4개 사업을 추진한다.

혁신캠퍼스의 주요 활동은 볼프스부르크 경제구조의 다각화를 위한 창업과 이들이 성공적으로 시장에 진입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다. 또 부품사 유치는 다른 자동차 클러스터 지역에 비해 부품사들의 비중이 적은 볼프스부르크 지역 안에 부품사를 늘리고, 이를 통해 중소기업을 양적, 질적으로 강화하는 데 목표를 두었다. 체험세계 사업은 지역에서 여가, 관광사업 자원들을 개발해 시민들의 삶의 질 향상은 물론, 관광객 유치를 통해 구매력의 외부 유출을 방지하고 서비스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사업이다. 또 이와 같은 새로운 사업이 나름대로의 결과물을 내기 위해서는 역량 있는 인재들이 필요하기 마련인데, 인력서비스 중개 사업을 통해 이를 꾀했다.

1999년에는 이와 같은 아우토 비전 프로젝트의 구체적인 실현을 위해 볼프스부르크 AG가 설립된다. 이는 시와 폭스바겐이 5:5로 공동 투자해 만든 민관협력 회사이다. 볼프스부르크 AG의 목표는 단기적으로 5년 내(2003년까지) 폭스바겐 외부에 일자리 1만 개를 만들어 실업률을 반으로 줄이는 것이었다. 중장기적으로는 볼프스부르크 지역의 지속가능한 경제발전과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이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민관협력으로 일자리 창출

볼프스부르크 AG가 추진하는 사업들은 성공적인 결과물을 낸다. 1997년 당시 실업률 17.8%는 2003년에는 8%로 줄어든다. 사회보험 통계에 따르면 15,000여 개의 일자리가 이 기간 중에 창출됐는데, 이중 볼프스부르크 AG의 활동으로 창출된 일자리는 5,600개 수준이다.

특히 혁신캠퍼스 사업으로 5년 동안 176개의 기업이 새로 탄생하면서 1,065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자동차 관련 분야의 서비스 업체 31개, 정보기술 분야 23개, 관광산업 10개, 보건산업 6개 업체 등으로, 대부분이 그동안 지역에서 취약한 산업이었던 서비스부문의 기업이었다.

그동안 주력 산업이었던 자동차 관련 기업 유치와 일자리창출도 주목할 만하다. 94개의 새로운 부품업체들이 지역에 정착했고, 2,910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진다. 특히 아우토 비전 프로젝트를 통한 정보교류의 활성화로 폭스바겐과 부품업체들의 협력이 더 밀접해지고 신속해졌다.

아울러 볼프스부르크 AG는 인력서비스 사업을 통해 지역에 새로 입주한 기업, 신생 기업 등이 채용한 파견직들을 정규직으로 고용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교육과 훈련 등의 관리를 추진했다. 또 노동시장에 대한 정보, 다양한 기업들과의 네트워크를 갖고 새로운 일자리를 주선하는 사업도 펼쳤다. 2000년대 초 폭스바겐이 진행했던 ‘5000 × 5000’ 프로젝트에 인력을 주선하는 역할도 했다. ‘5000 × 5000’ 프로젝트는 월 5,000마르크 수준의 5,000개 일자리를 만드는 새로운 자동차 공장을 설립하는 프로젝트다. 2001년 볼프스부르크에는 ‘Auto 5000’이라는 공장이 생겼다.

ⓒ 참여와혁신 포토DB

위기극복 위해 책임지는 핵심 주체

아우토 비전 프로젝트와 이를 구현하기 위해 설립된 볼프스부르크 AG에 대한 평가는 몇 가지로 분류해 볼 수 있다. 우선 무엇보다 당초 목표했던 고용안정 및 일자리 창출에서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특히 94개 부품업체, 약 3천여 명의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면서, 단순히 지역의 고용창출 효과만 기대하는 게 아니라, 자동차산업 도시로서 경쟁력을 더욱 갖추게 됐다. 이는 1990년대 이후 도입된 적기생산방식(Just in Time), 즉 부품공급과 재고관리 등에서 비용절감을 실현하는 노동과정이 도입된 것과 관련이 깊다.

이와 같은 가시적인 성과는 지역의 실업률을 크게 개선했을 뿐만 아니라, 인구감소 현상도 개선할 수 있었다. 특히 폭스바겐이라는 대기업에 의존도가 높은 지역이니만큼, 단순히 사회공헌의 수준이 아닌, 기업의 사회적 책임으로 의미를 확장시킨 것은 주목할 만하다.

슈투트가르트 사례와 마찬가지로 볼프스부르크에서도 노동조합은 지역 숙련인력의 양성, 기능 향상 훈련 등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또 ‘5000 × 5000’ 프로젝트의 추진 당시 폭스바겐과 독일금속노조는 문제해결을 위해 유연한 자세로 임한다. 비단 ‘Auto 5000’이라는 결과물이 아니더라도, 핵심 주체가 위기극복을 위한 문제에 책임 있는 자세로 적극 참여한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이처럼 해외의 사례들까지 살펴본 까닭은 우리가 당면한 ‘위기’를, 혹은 앞으로 닥쳐올 위기를 어떻게 대비하고 극복할 것인지 아이디어를 얻기 위함이다. 올 한 해 가장 널리 회자된 노동이슈는 단연 노동시장 구조개선에 관한 노사정 합의였는데, 이 역시 앞으로 다가올 경제, 산업, 노동의 위기에 대한 대비를 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중앙 단위의 논의 이외에도, 더 구체적인 현실에 접근하고 대안을 마련할 수 있는 논의틀 마련이 수월치만은 않다. 특히 권한과 역량이 중앙 정부에 집중돼 있는 우리 현실을 볼 때 ‘판’ 자체가 깔리기 쉽지 않다.

앞서 살펴본 독일의 두 사례는 위기를 단순히 특정 기업, 산업의 문제가 아닌 지역의 문제로 바라보고, 지역 차원의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다양한 참여 구조를 만들어냈다는 데 공통점을 갖고 있다. 우리의 현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