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제는 견습 노예체험?
인턴제는 견습 노예체험?
  • 장원석 기자
  • 승인 2015.11.03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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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불법·부당노동행위 판을 쳐
인턴인력 보호, 사용자 규제가 필요한 시점
[사건]인턴 잔혹사

청년들이 취업을 하기 위해 흔히 ‘스펙’이 필요하다. 인턴 경험 또한 중요한 스펙 중 하나다. 인턴은 기본적으로 ‘기업의 문화와 실무를 배워 업무에 대한 경험과 자신감을 높이고 이를 바탕으로 기업 취직에 도움을 주는 제도’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주위를 살펴보면 본래 의미의 인턴을 하는 사람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모두들 단지 이력서에 한 줄을 더 쓰기 위해 아르바이트보다 못한 대우를 받으며 일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인턴제도란 이미 변질된 지 오래다.

인턴은 알바보다 일도 열심히 하고 돈도 안 들어

취업준비생인 A씨는 작년 7월 모 중견기업에 인턴으로 들어갔다. 취업에 좋은 경험을 할 수 있고 정규직 전환 기회도 준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A씨는 인턴기간 동안 열심히 일해 능력을 보여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회사에서 일을 시작한지 한 달 만에 후회하게 됐다. A씨는 “처음에 팀에 나를 소개할 때 팀장은 ‘인턴은 일을 배우는 것이 목적이다. 실수해도 좋으니 열심히 해달라’고 말했다. 그런데 일하다 보니 ‘진짜 이건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배울 것이 없었다. 출근해서 하는 일이 물건 나르고 복사하고 청소하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이런 것부터 시작해서 배우나보다’ 싶어서 열심히 했다. 하도 물을 많이 만져서 주부습진이 생겼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도 마찬가지였다. 직원들이 물건 잘 나른다고 ‘○○○씨’가 아니라 ‘○머슴’이라 부르더라. 울화통이 터졌다”고 당시 심정을 이야기했다.

그래도 A씨는 묵묵히 참고 일했다. 어쨌든 사람들이 허드렛일이라도 잘한다는 사실을 인정해 준 것이고 일단 평판이 좋으니 인턴을 다 마치면 정규직 전환도 되지 않겠나 생각했다. 그런데 두 달째 되는 날 일이 터졌다. 일이 끝나고 흡연구역으로 담배를 피우러 가는데 그 곳에 있던 이사와 팀장의 대화가 들렸다. 원래부터 인턴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생각이 없었다는 내용이었다. 팀장은 ‘알바보다 열심히 하고 돈도 안주니 이득’이라고 좋아했다.

“대화 내용을 녹음하고 그 자리에서 뛰쳐나가 소리소리를 질렀다. 바로 사장실로 들어가 녹음내용을 들려줬다. 하나같이 변명을 늘어놓는데 듣고 싶지도 않았다. 언론에도 알리고 고소도 하겠다고 하자 사장은 ‘일한 것에 더해서 돈으로 주겠다. 일을 크게 만들지 말자’고 말했다. 진짜 그날 누구를 어떻게 하지 않은 것이 기적이었다”고 A씨는 말했다.

A씨는 본보기를 보여주고 싶었지만 현실의 벽이 너무 컸다. 생활비도 필요했고 공부하는 데 필요한 돈도 부족했다. 결국 2달 만에 돈을 받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A씨는 “이 일로 배운 것들이 있다. 인턴으로 들어가는 것이 힘든 일이기는 하지만 들어가서 뭔가 문제가 있다 싶으면 바로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차라리 운이 좋았기 때문에 돈이나 받았다. 몰랐으면 그냥 당했지 않았겠나. 인턴은 분명 요즘 취업하는 데 필수적인 스펙이지만 요령 있게 고르지 않는다면 시간도 정성도 날려버리게 된다. 나 같은 사람이 더 이상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고 충고했다.

내가 맞아가면서 일해야 하나요?

작년 10월, 중견 물류회사에 인턴으로 입사한 B씨는 당시 같이 인턴생활을 했던 사람들과 함께, 현재 회사 팀장 C를 형사고소해 사건을 진행 중이다.

B씨는 “처음에는 호방한 성격이라고만 생각했다. ‘오빠같이 생각하고 지내라’, ‘나만 믿고 따라오라’는 말을 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그 사람의 본성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같이 인턴으로 들어온 사람이 단순한 업무상 실수를 했다. 그걸 보더니 팀장이 와서 뒤통수를 소리가 나게 때리며 욕을 하더라. 너무 깜짝 놀랐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후 C팀장의 언행은 정도를 더해갔다. 아침부터 자신이 기분이 나쁘다며 아무 상관도 없는 인턴에게 욕을 퍼붓는가 하면, 술을 마셨다 하면 손찌검을 일삼았다. 여성인 B씨에게도 욕설과 성희롱이 이어졌다. 처음에 인턴사원들은 참아보려고 노력도 하고 주변 직원들에게도 도움을 청해 봤지만 ‘나는 모르겠으니 못 견디겠으면 나가면 된다’는 차가운 대답만 돌아올 뿐이었다.

결국 사단이 일어났다. 어느 날 회식자리에서 C부장이 B씨의 뺨을 때리며 물건을 집어던지는 일이 벌어졌고 B씨와 다른 인턴들은 증거를 모아 C씨와 직원 몇 명을 모욕·폭행·성추행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B씨는 인턴들이 고소를 하자 회사에서 인턴들에게 ‘좋은 게 좋은 거다. 소 취하만 해주면 다른 회사에 자리를 알아봐주겠다’는 말까지 하며 회유했다고 말했다.

B씨는 “모든 사람들에게 C팀장이 그런 식으로 행동했다면 개인의 문제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처구니없게 정직원은 부하라도 건들지 않았다. 인턴은 말 그대로 일을 배우는 사람이다. 일을 배우기 때문에 돈도 받지 않고 일하는 것이다. 우리는 남의 스트레스를 풀기위한 샌드백이 아니다. 정규직과 같은 대우를 바라지는 않지만 인간 대우를 못 받을지는 몰랐다. 지금도 당시를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다”고 말했다.

원래 나라 돈은 눈먼 돈이야

D씨는 작년, 사무보조 아르바이트 공고를 보고 한 벤처기업을 찾았다가 뜻밖의 소리를 들었다. 인사 담당자가 “인턴 등록을 하자”고 한 것이다. D씨가 어리둥절해 하자 담당자는 “아르바이트 기간 동안 인턴을 한 걸로 서류를 작성해주면 매달 월급에 10만 원씩 더 얹어주겠다. 서로가 이득인 것 아니냐”고 제안했다.

잠시 고민하던 D씨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돈을 더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담당자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간단히 가서 교육받고 가끔 오는 전화에 인턴으로 일하고 있다고 거짓말만 하면 한 달에 10만 원을 더 준다고 하는데 안 넘어갈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중에 그 담당자가 ‘나라 돈은 원래 눈먼 돈이다. 잘 찾아서 빈틈으로 타먹는 사람이 똑똑한 사람이고 못 찾아먹는 사람이 바보’라고 충고를 해주더라. 심정적으로는 올바르지 못한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도 나도 처벌이 되지 않고 계속 이런 현상이 되풀이 된다면 나라에도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 D씨의 말이다.

○○○씨. 혹시 운전 잘해요?

E씨는 한 중견기업에 인턴 지원을 했다. 몇 군데나 서류전형에서 고배를 마시다 드디어 면접을 보게 되었다. 인사 담당자가 E씨의 이력서를 한참 바라보더니 물었다. “○○○씨. 혹시 운전 잘 합니까?”

E씨는 군대에서 장성 관용차를 몰던 운전병이었다. 자신의 경력을 알아봐주는 것 같아서 당연히 운전은 잘 하고 이러저러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고 답했다. 그게 문제였다. “차라리 운전 못해서 사고를 엄청 많이 냈다고 말했어야 했다”는 것이 지금 E씨의 생각이다.

E씨가 인턴을 시작한 이후 E씨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업무가 주어졌다. 사장의 운전기사 역할을 하라는 것이었다. 당시 담당자는 사장님 운전기사가 그만 두었기 때문에 새 사람을 구할 때까지만 업무를 맡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말해, 약속했던 새 운전기사는 오지 않았고  E씨는 6개월 내내 운전만 하다 회사를 나왔다.

낮에는 사장 업무에 맞추고 밤에는 술자리 약속에 맞춰 운전해야 했다. 다른 인턴들이 사무 업무를 보는 동안 사장의 운전기사 노릇만 한 것이다. 새 운전기사에 대해 물어보자 담당자는 “그냥 지금 기사로 취직하는 것이 어떠냐”고 되물었다. E씨는 “내가 무슨 대리운전 경력 쌓으려고 인턴 지원했나. 사무 업무에 도움이 되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 적은 돈 받으면서 인턴에 지원한 것이다. 아무리 인턴이 스펙을 위한 도구라고 해도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일을 맡기는 것은 분명히 문제다. 단지 지금까지 해온 시간이 아까웠기 때문에 6개월을 버텼다. 나에게 인턴 기간은 내내 자괴감만 드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왜 저 사람이 정규직이 되지?

F씨는 작년, 한 공기업에 인턴으로 입사했다. F씨는 오랜 시간 준비해서 어렵게 들어온 인턴인 만큼 반드시 정규직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이후 인턴 업무를 하며 F씨는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 정말 열심히 일했다. 업무뿐만 아니라 직원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궂은일은 모두 도맡아 했다. 석 달쯤 지나자 부서에서는 F씨에 대한 칭찬이 이어졌고 인턴 업무가 종료될 쯤에는 부서 업무의 한 부분을 맡아 정규직 직원들 모두 F씨는 충분히 정직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인턴 업무가 종료되고 F씨는 정규직이 되지 못했다. 8명 인턴을 뽑아 2명이 정규직으로 전환됐는데 정규직 전환자 이름을 살펴보던 F씨는 황당했다고 한다. 들어가서는 안 되는 이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F씨는 “둘 중 하나는 인정을 한다. 나보다 분명 뛰어났던 것 같다. 그런데 나머지 한 사람은 정말 아니었다. 사실 인턴에 어떻게 뽑혔는지도 모르겠다. 일도 안하고 걸핏하면 병가를 내고 회사에 오지 않기 일쑤였다. 정규직 직원들이 나에게 ‘같이 들어왔으니 어떻게 좀 해보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런 사람이 정규직 전환자에 이름이 올라 있으니 무슨 생각이 들겠나”고 말했다.

탈락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모두가 “인생은 역시 빽이 있어야 된다”고 입을 모았다고 한다. F씨는 “정말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고 자부하고 모든 능력을 다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식으로 결과가 나버리면 우리는 뭐가 되는지 모르겠다. 정말 상처를 많이 받았고 그래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턴, 보호받을 수 있는 법안이 필요하다

현재 인턴은 사실상 전일제 노동임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게 된 원인은 인턴 노동자에 대한 보호와 인턴 사용자에 대한 규제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지난 3월 국회에서는 ‘청년 과도기 노동의 실태와 대안’이라는 주제의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서 청년유니온은 과도기 노동을 경험한 청년 23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인원의 23.3%가 급여를 받지 못했으며, 급여를 받은 경우에도 월 평균 85만 9,000원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평균 노동시간 8.8시간으로 나누어 보면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근로형태상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일단 고용노동부는 인턴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의 지위에 있음을 확인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인턴의 법적 지위는 ‘수습’ 내지 ‘시용’ 근로자로서, 완화된 해고규정이 적용되는 것, 근로자와 합의해 일정 수준 감액해서 지급하는 것 이외에는 근로자로서 같은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노호창 호서대학교 법정학부 교수는 2012년 논문에서 교육·연수·훈련 등 ‘인턴’이라는 다양한 명칭이 붙은 근로형태에서 실제 업무를 수행하지만 시용·수습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 교육·연수·훈련만 받는 경우는 근로자가 아닌 자로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함을 지적하고 있다. 노 교수는 특히 “현행 노동법 체계에서 근로자 개념이 갖는 ‘all or nothing’ 식의 이분법적 성격이 사용자로 하여금 근로를 제공받으면서 근로기준법상 사용자 책임을 다하지 않을 방안을 찾게 한다”고 비판했다.

그렇다면 인턴을 최초로 도입해 폭넓게 사용하고 있는 미국은 어떨까. 미국은 연방공정노동 기준법을 통해 무급인턴을 보호하고 있다. 기준법은 ▲ 인턴십 경험은 인턴의 이익을 위한 것 ▲ 인턴이 실제 고용주의 고용환경에서 일하더라도 고용 프로그램이 대학 등 교육환경에서 제공하는 교육과 동등해야 함 ▲ 인턴은 정규직의 업무를 대체할 수 없고 기존 직원 감독아래 이루어져야 함 ▲ 인턴은 인턴십을 마친 후 취업을 보장받아서는 안 됨 ▲ 고용주와 인턴은 인턴십에 소요되는 시간에 대한 임금을 지불하거나 받지 못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어야 함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것은 정규직 채용을 위한 인턴십은 반드시 유급이 되어야 하고 무급 인턴십은 순수 교육 프로그램으로서 이용되어야 함을 말한다.

하지만 미국에서도 이러한 법안은 기준이 모호해 잘 지켜지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에 인턴 직원이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벌이면서 문제는 달라졌다. 뉴욕 등 각 주가 조례를 통해 인턴에게 일반 노동자와 같은 대우를 적용하기 시작했으며 올해 8월 인턴의 일반 노동자 대우를 골자로 하는 인턴보호법안이 연방 하원에 상정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인턴에 대한 법적 보호가 필요하다는 데에는 사용자를 제외한 대다수가 공감하고 있지만 방법에 대해서는 이견이 갈리고 있다. 청년유니온의 정준영 정책국장은 “인턴이라는 새로운 법적 지위 마련을 통해 근로자로서의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이정봉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실장은 “특별법 제정을 통해 사용자 의무를 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새정치민주연합 우원식 의원은 “기존 비정규직과 별개로 근로자 지위를 법으로 만드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우려를 표하며 “기존 근로기준법을 보완해 현 노동법상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현실적이다”고 말했다.

현재 국회에는 새정치민주연합 최민희 의원이 대표발의한 ‘무급인턴보호법’이 계류 중이다. 이 법안이 통과된다면 무급인턴이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을 수 있게 되지만 세부적인 기준은 대통령령에 위임된 상태이기 때문에 인턴의 법적 지위에 대한 세부적 논의는 계속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