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민영화,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았다?
철도민영화,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았다?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5.11.03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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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부, 8월 20일 코레일로부터 철도관제권 회수
그간 과정 살펴보면 민영화 의구심 증폭
[사건]철도민영화

국토교통부는 지난 8월 12일 ‘철도안전 혁신대책’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국토부가 코레일에 위탁 운영 중인 철도관제센터의 관리·감독을 국토부가 맡는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국토부의 ‘철도관제권 회수’에 대해 전국철도노동조합은 ‘철도민영화 기반 마련’이라고 주장했다.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을 놓고 2013년 12월 전국철도노동조합이 벌인 최장기간 파업 이후 철도민영화는 사람들의 기억 속으로 잠시 잊힌 듯하다. 그렇지만, 일각에서는 “여전히 정부가 철도민영화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이에 대해 정부는 현재 추진 중인 정책이 철도민영화가 아니라며 극구 부인했다. 

▲ ⓒ (주)SR

철도민영화, 논쟁의 60년

‘철도민영화’라는 단어가 처음 한국 언론에 등장한 때는 이명박 정부 시절이 아니다. 놀랍게도 철도민영화 주장은 1950년대에도 나왔다. 1957년 7월 5일자 <경향신문> 1면에는 ‘철도, 민영화가 타당’하다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철도민영화 추진에 대한 논리는 ‘경영 합리화’와 ‘운영 적자 해소’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후에도 통신, 담배 등의 산업과 함께 철도민영화가 종종 언급되었다.

그러던 중 1983년 철도청은 철도민영화 계획을 내놓는다. 당시의 계획은 경춘·경원·경의·교외·동해남부선 등 적자를 내는 5개의 지선 철도를 우선적으로 민영화하겠다는 것이었다. 현재 여객열차 운행이 중단된 교외선을 제외하고 나머지 노선은 아직까지 민영화되지 않았다.

1988년 철도청 공사화 계획이 언급된 뒤, 90년대 말에 이르기까지 민영화를 전제로 한 공사화는 추진과 중단이 반복됐다. 그러다 2004년에는 철도청의 시설 부문이 철도시설공단으로, 2005년에는 운영 부문이 한국철도공사(코레일)로 나뉘어 각각 설립된다. 2002년 2월 철도 파업 이듬해인 2003년 출범한 참여정부가 철도민영화 추진을 중단한 끝에 철도청의 공사화가 마무리된 것이다. 이로써 철도민영화를 둘러싼 논란은 종지부를 찍는 듯했다.

그러나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공기업 민영화를 공약으로 내걸면서 철도민영화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2008년 이명박 전 대통령 취임 이후 공기업 민영화 추진에 속도가 붙는 듯했다. 하지만 이른바 ‘촛불정국’을 거치면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외에도 경제정책 전반에 대한 전 국민적 저항에 부딪히게 된다. 이에 더해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덮치면서 정부가 한 발 물러서는 듯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정부는 철도민영화 대신 철도 경쟁체제 도입의 필요성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했다. 그 명분은 코레일의 ‘방만한 경영’을 바로잡아 누적된 적자를 해소하고, 철도서비스를 개선한다는 것이었다. 이른바 ‘선진화’라는 이름으로 시설 및 정비 부문의 외주화 역시 함께 진행되었다.

2011년이 되자 수서-평택 간 고속철도(수서발 KTX)와 호남고속철도 운영권을 공개 입찰할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는 민간 회사가 참여하는 철도 경쟁체제 도입을 의미했다. 이때만 해도 코레일과 철도노조는 ‘민영화 반대’라는 한 목소리를 냈다. 당시 국토해양부는 “철도 경쟁체제 도입은 민영화가 아니다”라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또 최연혜 코레일 사장이 취임 초, 철도 경쟁체제 도입에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가 급작스럽게 찬성으로 돌아선 배경에도 관심이 쏠렸다.

정부와 철도민영화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철도 경쟁체제 도입이 민영화냐, 아니냐를 놓고 지루한 싸움을 이어갔다. 그러다 2013년이 되자 철도 경쟁체제 도입이 가시화됐다. 정부가 수서발 KTX의 신규 운영사업자를 모집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은 박근혜 정부는 수서역에서 출발하는 KTX 노선을 코레일이 아닌 신규 사업자에 맡기겠다는 방침을 구체화했다. 대신 신규 사업자가 민간이 아닌 코레일의 자회사라는 점이 이전과는 달랐다. 코레일에 자회사를 설립하여 수서발 KTX 운영을 맡긴다는 것이었다. 철도노조는 그 해 12월 9일부터 22일간 파업을 벌였다.

철도노조의 최장기간 파업에도 불구하고 ‘수서고속철도주식회사’(SR)가 설립됐다. 이로써 철도민영화를 둘러싸고 짧게는 10여 년, 길게는 30년 또는 60년에 이르는 시간 동안 벌어진 논쟁이 일단락됐다. SR은 오는 2016년부터 서울 수서역에서 출발하는 경부·호남선 KTX를 운영하게 된다.

코레일 ‘자회사 분리’

2013년 12월, SR이 설립되면서 자회사와 모회사 간 철도 경쟁체제의 서막이 올랐다. SR 지분의 41.5%는 코레일이 소유하고 있다. 이어 사립학교교직원연금공단(사학연금·31.5%), IBK기업은행(15%), KDB산업은행(12.5%) 순으로 SR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철도민영화가 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SR이 코레일의 자회사라는 점, 최대 주주인 코레일을 뺀 나머지 주주들이 준정부기관 혹은 국책은행이라는 점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진행되는 일들을 살펴보면, 여전히 철도민영화를 둘러싼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5월 27일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열고, ‘공공기관 3대 분야 기능조정 추진 방안’을 의결했다. 이는 2단계로 접어든 ‘공공기관 정상화’의 핵심 과제 중 하나다. 철도 분야에서는 올해 중으로 물류, 차량 정비·임대, 유지보수 등 3개 부문에 ‘책임사업부제’를 전면 도입하고, 2017년부터는 이를 각각 자회사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즉, 코레일은 물류를 담당하는 회사와 차량 정비·임대를 담당하는 회사, 시설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회사의 지주회사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자회사 전환을 위한 부문별 회계 분리가 완료되었다. 그런데 공공기관 기능조정 방안에서 담고 있는 내용은 그보다 앞선 2013년 6월 26일,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철도산업 발전방안’의 핵심 내용이기도 하다.

철도산업 발전방안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을 당시, 코레일의 자회사 분리에 대해 정부는 “지난 정부에서 철도문제 해결을 위해 수서발 KTX 운영을 민간에 맡기는 방식의 경쟁도입을 추진하였으나, 철도의 공공성에 대한 국민적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철도노조는 이를 놓고, “코레일이 보유한 자회사의 지분만 팔면 언제든 민영화를 할 수 있게 됐다”며 반발했다. 이러한 반발을 예상한 정부는 “철도운영의 공영체제를 유지하면서 경쟁을 유도하고, 경영의 투명성과 전문성을 높이는 방안”이라며, 자회사 분리는 철도민영화가 아니라고 거듭 해명했다.

신규 노선 공개 입찰했지만 응찰은 없어

한편, 철도민영화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시점부터 지속적으로 논란이 됐던 부분은 ‘어떤 노선을 민간에 맡길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현재 코레일에서 운영하는 수도권광역전철 및 KTX, 그리고 일반열차 전 노선을 통틀어 흑자를 내는 노선은 서울-인천을 오가는 1호선(경인선) 전철과 서울-부산을 오가는 경부선 KTX 정도에 불과하다. 그 외의 나머지 노선은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흑자 노선의 민영화를 추진하다가 크게 홍역을 치른 바 있다. 대표적인 흑자 노선인 경부선 KTX에서 발생한 수익으로 나머지 노선의 손실을 메우는 상황에서, 경부선 KTX를 민영화할 경우 적자 노선 운영이 불가능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와 같이 민영화 방안에 여론이 들끓자, 이를 의식한 국토부는 기존 노선의 민영화를 사실상 포기했다. 대신 신규 노선의 운영권 공개 입찰을 통해 경쟁체제를 유도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현재 건설 중인 성남-여주 노선과 동해남부선(부전-일광)의 운영권을 공개 입찰했다. 그러나 수익성에 의문이 제기되자 입찰에 응한 곳이 없어 한 차례 유찰됐다. 이후 공고된 재입찰에서도, 성남-여주 노선만 현재 서울지하철 5~8호선의 운영을 담당하고 있는 ‘서울도시철도공사’가 단독으로 응찰하는 데 그쳤다. 부전-일광 노선의 경우 공기업과 민간 기업을 모두 포함해 어느 곳에서도 입찰에 응하지 않아 코레일이 운영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도 새로 건설되는 지선 철도에서는 경쟁체제가 도입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대부분 수익성보다는 지역 균형발전과 이동 편의성에 방점이 찍혀있어 민간 기업이 운영에 참여할 유인이 없기 때문이다.

철도관제권 회수 논란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도민영화에 대한 의혹 제기는 끊이질 않는다. 국토부는 지난 8월 13일 ‘철도안전 혁신대책’을 발표했다. 철도안전 혁신대책에는 6대 전략과 30대 과제가 포함됐다. 6대 전략은 ▲ 자발적 안전관리체계 정착 ▲ 안심하고 탈 수 있는 운행안전 확보 ▲ 튼튼하고 안전한 철도인프라 확충 ▲ 철도보안 및 재난대응역량 강화 ▲ 철도안전정책 추진기반 강화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를 각각 구체화하는 30대 과제(실제로는 27개)에는 철도 안전에 대한 운영자의 책임 강화와 철도차량 및 시설의 제작·건설에서부터 폐차·폐지에 이르기까지 ‘생애주기 관리체계’ 도입 등의 방안이 마련됐다. 이 밖에도 철도보안 및 종사자 음주단속 강화, 철도관제센터의 안전상황 관리·감독 강화 방안 등도 포함됐다.

철도안전 혁신대책에 대해 사회공공연구원 이영수 연구위원은 지난 9월 2일 발표한 ‘안전의 외주화와 분할 민영화를 강행하는 철도안전 혁신대책’이라는 이슈페이퍼를 통해 국토부가 내놓은 방안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이 연구위원이 철도안전 혁신대책의 문제점으로 지적한 사항은 모두 네 가지이다. ▲ 안전의 외주화 문제 ▲ 철도 분할 민영화 기반 마련 ▲ 안전문제 은폐 조장 우려 ▲ 차량과 시설 등 인프라 투자 책임 방기 등이 그것이다.

특히 ‘철도관제권 회수’가 철도민영화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나와 눈길을 끌었다. 항공기의 운항을 관제탑(control tower)에서 감시·통제하는 것처럼, 시스템은 다르지만 철도도 마찬가지로 ‘철도관제센터’에서 열차의 착발과 선로의 상태 등을 감시하고 통제한다. 철도관제센터에서 모든 열차의 운행을 시시각각 감시하며 위험 요소를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다.

그런데 국토부는 철도안전 혁신대책을 발표하면서 “철도관제센터의 안전총괄역할(Control Tower) 강화”를 위해 “철도공사 위주의 운영방식에서 국토교통부의 관리·감독을 강화하도록 개편한다”고 밝혔다. 또한 “도시철도 등 14개 운영기관의 안전상황을 실시간으로 관리·감독할 수 있도록 ‘철도안전종합상황실’ 신설도 추진”한다.

그러나 이 연구위원에 따르면, 코레일 자회사 분리와 차량정비 부문 외주화 외에도 국토부의 ‘철도관제권 회수’ 역시 철도민영화를 위한 사전 작업이다. 그는 “코레일이 관제권을 독점하고 있으면 다른 (민간)철도 운영자들과 공정하지 않아서 철도 경쟁체제가 확립되지 않을 거라고 판단하기 때문에 관제권 회수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여러 개의 철도 운영회사가 경쟁하는 체제를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철도 현장에서도 철도관제권 회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박흥수 철도노조 서울기관차승무지부 조합원은 철도관제권을 운영사로부터 분리한다고 해서 철도안전에 도움이 되는 건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철도노조 소식지를 통해, 철도 사고는 “안전을 보장하는 신호 시스템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거나 차량이나 선로 등 시설의 유지 보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발생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여전히 철도민영화 미련 못 버렸나

그렇다면 정부는 철도민영화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버리지 않은 걸까? 2013년 12월 철도파업 이후 여론이 철도노조의 손을 들어준 이후로 정부는 철도민영화라는 단어조차 사용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보면 당분간은 정부가 철도민영화를 다시 공개적으로 추진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다만 정부가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는 철도 경쟁체제 도입이 철도민영화와 다른 점이 무엇이냐는 의문이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철도노조 관계자는 지난 철도파업의 성과로 “철도민영화 진행 속도를 늦췄다”고 말했다. 이는 철도민영화가 중단된 것이 아니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코레일 자회사 분리, 철도 경쟁체제 도입, 철도관제권 회수, 신규 노선 공개 입찰 등의 정책들은 과연 철도민영화로 가는 과정인 것일까?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았다”는 유명한 말이 있다. 이 말보다 철도민영화를 더 잘 설명해 주는 말은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