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추정원칙도 보장 안 됨!
무죄추정원칙도 보장 안 됨!
  • 이상동 기자
  • 승인 2015.11.03 10:22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동조합 탄압 수단으로 악용할 수 있어
벌금 내고 재판 포기 속출…출입증 갱신 때문
[사건]인천국제공항 출입증 규정 논란

인천국제공항은 세계 공항 서비스평가에서 10년 연속 세계 1위를 차지할 정도로 훌륭한 공항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공항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현실이 놓여 있다. 공항공사가 87%에 달하는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우개선이나 고용보장 노력은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노동조합을 탄압하고 있다는 목소리는 계속되고 있다.

ⓒ인천공항지역지부
사건(재판) 진행 중이면 출입증 발급제한

인천국제공항 ‘보호구역출입증규정’은 ‘사건(재판)이 진행 중이거나 처분이 미확정된 자’를 출입증발급제한 대상에 한하고 있다. 문제가 제기되는 부분이다.

사례1.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 탑승교지회 파업 고발.

2013년 12월 7일 인천공항지역지부는 임금인상과 고용보장을 주장하며 파업에 들어갔다. 탑승교지회도 오전 5시부터 파업에 동참했다.

탑승교는 공항과 비행기를 연결하는 다리 모양의 임시통로로 승객이 공항과 비행기 사이를 안전하고 편하게 이동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탑승교는 공항 운영에 필수적인 부분으로 분류돼 파업을 해도 필수유지율 57%를 지켜야 한다.

탑승교지회는 필수유지율을 지키며 파업을 진행했지만, 공항공사는 대체인력을 투입했다. 이에 지회는 파업 인원을 더 추가했고, 파업이 끝난 후 고발을 당했다. 1심 판결은 무죄였다. 하지만 검사가 항소해 2심 판결을 앞두고 있다.

사례2. 18일간 이어진 파업, 노조 지도부 고발.

인천공항지역지부의 파업은 2013년 12월 7일에 시작돼 같은 달 25일에 잠정 종료 됐다. 하지만 공사는 파업 지도부 8인을 고발한다. 이중 1명은 소속된 하청업체의 업체변경 기간이 다가오자 즉결심판에서 부과된 벌금을 냈고, 3명도 벌금을 내고 재판을 포기했다.

사례3. 보안검색지회의 1인 시위 고발.

지난 9월 3일 보안검색을 담당하는 노동자들이 하청업체 변경과정에서 임금, 노동조건 하락과 경력 미반영을 이유로 1인 시위를 진행했다. 공사는 그 중 10명을 업무방해 혐의로 고발했다. 1심 판결에서 지부장에게는 집행유예, 나머지 9명에게는 벌금형이 선고됐다. 지부장을 제외한 이들은 벌금을 납부하고 항소를 포기했다.

현재 2심 재판을 앞두고 있는 탑승교지회를 제외하고, 파업과 1인 시위로 고발된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재판을 포기하고 벌금을 냈다. 사실상 잘못을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인천공항지역지회는 합법파업과 합법시위였고, 출입증규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재판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인천공항지역지부
신원조사 때마다 이상 유무 확인

인천국제공항에서 출입증이 필요한 ‘보호구역’은 ‘항공보안법 제12조’에 따라 보안검색이 완료된 구역, 활주로 및 계류장 등 공항시설의 보호를 위한 구역을 말한다. 승객이 탑승수속과 보안검색을 끝낸 후 비행기를 기다리는 장소도 보호구역 중 하나로, 보호구역에서 일하는 노동자만 4만여 명에 달한다.

이들은 신원조사를 거쳐 ‘정규출입증’을 발급받아야 보호구역에 출입할 수 있다. 정규출입증은 주기적으로 갱신되고 그 때마다 신원조사가 이뤄진다. 정기갱신기간(5년)과 하청업체 변경 때마다 신원조사를 하고 이상이 없어야 출입증이 갱신되는 것이다.

올해 7월 20일부터 12월 31일까지가 정기갱신기간으로 이에 따른 신원조회가 이뤄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보호구역출입증규정 제3장 신원조사’ 항목에 따라 ‘사건(재판)이 진행 중이거나 처분이 미확정된 자’는 출입증 발급제한 대상이 된다.

사례1의 탑승교지회는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검사가 항소함에 따라 2심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신원조회가 시작되면 출입증이 정지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인천공항지역지부는 기관·업체별 갱신일정에 따라 아직 신원조회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인천공항지역지부 박대성 지부장은 1인 시위를 했다가 고발을 당했고, 이번 정기갱신기간에 ‘신원특이자’로 확인되며 출입증이 정지됐다. 앞서 설명한 사례3이다.

사례2의 파업 당시 노조 집행부에 대한 고발도 별반 다르지 않다. 업체 변경기간이었기 때문에 1명은 바로 벌금을 냈고, 나머지 3명도 이번 정기갱신에 앞서 벌금을 내고 재판을 끝냈다. 나머지 인원은 노조 전임자라 재판을 이어간다고 했다.

‘노동조합 활동 무력화, 탄압’ 주장

출입증이 정지되는 것을 단순한 제재의 의미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보호구역에 들어갈 수 없으면 일을 할 수 없게 되고, 하청업체에서는 임금을 지급하거나, 고용을 보장할 이유가 없어진다. 결국 출입증이 정지되는 것은 해고되는 것과 같다.

인천공항지역지부는 출입증 갱신이 기본권 침해와 노조탄압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한다. 헌법 제27조 4항에는 ‘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고 돼 있다. 즉, ‘무죄추정원칙’에 따라 재판이 진행 중인 경우에는 무죄로 봐야하고 재판만으로 출입증이 정지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주장이다.

또한, 출입증 발급제한 조항이 정당하게 재판 받을 권리도 침해한다고 지적한다. 업체변경이나 정기갱신기간이 되면 출입증 정지를 피하기 위해서 항소를 포기하거나 즉결심판으로 벌금을 내고 재판을 마무리하게 된다는 것이다.

노조는 일반범죄가 아닌 노조활동으로 인한 법적 분쟁에 출입증 발급이 거부되면 사실상 노동조합 활동은 물론 현장 업무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고 주장한다. ‘출입증을 이용한 노동조합 활동 무력화, 탄압’이라는 것이다.

또한, 공사가 이 조항을 의도적으로 악용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한다. 노조간부가 소속된 업체의 변경기간에 맞춰 고소·고발을 하면 된다는 것이다. 재판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업체변경으로 신원조사가 이뤄지면 출입증이 정지된다.

이들은 공사가 지방노동위원회의 조정을 거친 합법 파업과 1인 시위도 고발했다고 주장한다. 노조간부는 고발을 당하고 출입증이 정지돼 해고될 걱정을 해야 하는 것이다. 결국 노조는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는 허수아비가 된다.

ⓒ인천공항지역지부
인천공항공사 노조파괴 계획도 있어

2013년에 인천공항공사가 ‘노조파괴프로그램’을 실제로 운영했었다는 점에서도 출입증규정을 이용해 노조활동을 무력화하려 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얻고 있다. 2013년 11월 은수미 의원실에서 보도한 ‘인천공항공사 노조파괴프로그램’에서 공사는 총 6단계 과정을 거쳐 인천공항지역지부를 사실상 해산시키려 했다.

그 내용을 보면 (1단계) 적극적 홍보를 통해 노조의 파업을 불법으로 몰아가고 (2단계) 하청업체에 쟁의행위 참가자들에 대한 교체요구 (3단계) 업체가 해당 조합원을 해고하도록 하고 (4단계) 소송 제기 시 사건처리를 지연시켜 법적 구제를 받지 못하게 하고 (5단계) 조합원들의 탈퇴 유도 (6단계) 노조를 사실상 해산시키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 밖에도 업체변경 시 변경업체가 고용승계를 거부하는 방식으로 해고가 이뤄진 경우도 있다. 조성덕 전 지부상 사례다. 2014년 7월 공사가 용역업체를 변경했으나 신규업체가 고용승계를 거부해 사실상 해고 됐다. 이에 노조탄압과 ‘표적해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공사 소속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는 6천 명 정도다. 이중 2천여 명이 노조에 가입해 있다. 이들은 공사가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모든 권한이 공사에 있으니 공사가 책임지라는 것이다. 하지만 공사는 ‘자신이 사용자가 아니니, 하청업체와 해결하라’고 주장한다.

재판도 제대로 받지 못한다

인천공항지역지부는 출입증규정에 대한 문제를 꾸준히 제기해 왔다. 인천공항지역지부가 2015년 2월에 공사에 보내는 건의사항에서도 “이 규정이 개정되지 않을 경우, 지속적인 노동조합 활동 ‘탄압’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기 때문에 개정 되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한 지난 9월에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공공기관 비정규직 문제 해법 모색 토론회’에서도 출입증규정과 관련해 ‘공사가 어떤 식으로든 재판만 걸면 간부들과 조합원들의 목숨 줄을 끊을 수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박대성 지부장은 1인 시위에 대해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항소했지만, 10월 7일 출입증반납 통보를 받으면서 우려가 현실화됐다. 이전까지의 조합원들은 즉결심판에서 결정된 벌금(약 200만~300만 원)을 납부하고 서둘러 재판을 끝냈다. 벌금을 납부하면 재판이 종료되어 출입증 발급제한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탑승교지회 7명의 조합원들도 검사의 항소로 재판을 끝낼 수 없기 때문에 출입증발급 제한 대상이 된다. 재판을 통해 죄의 유무를 명확하게 가리기도 전에 일자리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공사는 “출입증 규정은 출입증심의위원회와 보안관련기관 합동회의를 통해 결정된다”는 답변만 할 뿐 해당 규정의 기본권 침해와 노조탄압 가능성에 대해서는 대답을 피했다.

인천공항지역지부 신철 정책기획국장은 “2018년에 제2여객터미널이 개항하는데 공사 입장에서는 새 인력이 들어올 때 노조가 힘을 못 쓰게 하려면 치명타를 입혀야 한다”며 “공사가 노조 전임자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간부도 일을 하면서 조합 활동을 해야 하는데, 출입증을 안 내주면 치명타가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즉결심판이 최종심판은 아니다”

공항은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시설이다. 공항과 비행기의 안전이 철저히 지켜져야 한다는 점에는 누구도 반대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철저한 신원조사를 통해 출입증을 관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출입증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지난 9월 14일 진행된 인천공항공사에 대한 국정감사에서는 출입증 관리에 대한 지적이 이어졌다. 2011년 이후 출입증 분실 건수는 1,584건이며, 매년 300건 이상 분실이 발생한다. 또한 부정사용 건수도 최근 5년간 총 139건이나 적발됐다. 외부인 침입도 13 차례나 적발되는 등 보호구역에 대한 관리와 출입증 관리의 허술함이 지적됐다.

이처럼 출입증 관리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철저한 출입증 관리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그런데도 출입증규정을 이유로 노조활동을 무력화시키려는 시도만 이루어지고 있다는 문제제기가 이어지고 있다.

인천공항지역지부는 “즉결심판이 최종심판은 아니다”며 “불복하면 정식재판을 받을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못하게 하는 규정”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따라 인천공항지역지부는 “출입증규정 조항이 헌법상 기본권을 유린하고 있다”며 “가처분 소송에 들어가 12월 재판이 시작될 예정”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