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만시지탄? 이제는 유비무환!
아직도 만시지탄? 이제는 유비무환!
  • 박경화 기자
  • 승인 2006.09.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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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형성되는 노동행정 영역에도 주목해야

김창기 기자 ckkim@laborplus.co.kr

“새 옷은 입어야겠는데 몸은 허약하다, 엑스라지를 입으라고 하는데 몸은 여전히 스몰 사이즈다. 그러니 새 옷이 어울릴까 안 어울릴까 고민하기 전에 몸부터 불려야 한다”

노동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중앙노동위원회 개편에 관한 논의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노동위원회로 부과될 과제는 많은 데 그걸 소화할 수 있는 역량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답답함의 표시다.

지난 4월 중앙노동위원회 주최로 열린 ‘노동위원회 개편 방안’ 토론회에서 발제자와 참석자들은 산별·복수노조 시대 도래, 비정규직 문제, 공무원 노사관계 본격화 등을 앞두고 기존의 조정·심판 기능 외에 새로운 수요가 형성되고 있다는 점에서 공감대를 형성했다. 하지만 현실은 암담하다.

노동위원회 판정 및 조정기능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면서 지난해 대법원 산하 사법개혁위원회에서 노동법원 설치를 검토하기도 했다. 그러나 노동법원 신설이 대안이 될 것인가에 관한 논란은 여전히 결론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법원의 설립 전까지 또는 노동법원을 설립하지 않고도 현재의 노동위원회가 가진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동위원회 제도에 대한 정비가 필요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사후약방문은 그만
일단은 조정기능 강화를 위해 조정대상을 확대하고 ‘사후조정’보다는 ‘예방’의 기능을 강화해야 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집단적 권리분쟁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노동위원회법을 개정해 쟁의행위를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조정한다는 ‘서비스’의 개념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노사간의 집단적 분쟁은 노동조건의 결정과 관련된 이익분쟁 외 노조전임자 등 조합활동사항, 구조조정 등 인사·경영사항, 단협 이행 및 해고자 복직 등 권리분쟁 등 다양하다. 또, 노사간의 분쟁 원인은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노동위원회가 다루는 범위로는 이러한 분쟁을 효율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예방적 조정을 위해서는 조정신청 이후, 조정 기간 내에만 조정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제도적 한계를 개선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있다. 중앙노동위원회 전운기 사무국장은 “그간 사전예방 및 사후 조정 서비스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법적 근거가 없어 분쟁의 예방적·사후적 활동에 제약을 받아왔다”며 “노동위원회의 적극적 조정활동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노동위원회의 소관 사무에 예방적 조정 및 사후 조정을 제공할 수 있는 명확한 근거를 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적조정 활성화를 위한 지원 절실
공적조정이 가지고 있는 한계가 여실히 드러나면서 사적조정 활성화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03년 실시한 “사적조정 활성화 방안에 관한 연구”에서는 사적조정의 활성화가 필요한 이유로 ▲노사자치 촉진 ▲노사의 책임성 제고 및 분쟁해결능력 양성 ▲ 집단적 힘에 근거한 쟁의행위 대신 정보의 공유와 대안의 모색 등을 통한 분쟁 해결 등을 꼽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노사관계 관련 연구소나 컨설팅 등 사적조정 시장이 확대되고는 있지만 아직 형성기이기 때문에 부작용도 우려된다. 때문에 사적조정이 실질적으로 분쟁의 해결에 기여할 수 있으려면 정책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 이미 조정경험이 있는 노동위원회가 조정 전문가의 양성과 교육체계 마련, 조정 전문가 자격기준 설정 등에 일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방안이다.

대대적 인력 확충으로 신속성 확보해야
심판기능의 경우에는 인력부족으로 인한 처리지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시급하다 1997년 3천여 건이던 심판사건은 2001 이후 7~8천여 건을 웃돌며 매년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심판담당 심사관의 인력은 2005년 기준으로 66명에 불과하다. 지방노동위원회는 한 명의 심사관이 한해 평균 125건을, 중앙노동위원회는 182건을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중앙노동위원회 관계자는 “통상 심판사건 하나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계획 수립, 사실관계 조사, 부의안 작성, 판정문 작성 및 각종 행정업무 등으로 심사관 1인당 1주일에 1건 정도의 처리가 적정한데, 현재에는 최대 4건을 담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중노위 집계에 따르면 2005년 심판 처리 건수 6,703건 중 사건처리에 91일 이상 소요된 사건은 1,776건으로 26.5%가 지연 처리됐고 1건당 평균 처리일수는 74일이었다. <그래프 참조>
또 중노위 재심사건 처리의 경우, 평균 사건처리 기간이 154일에 달했다.

아직은 허약체질, 숙제는 쌓여가고
노동법원 설립 등의 문제가 아직 검토 단계지만 노동행정의 수요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영역의 수요도 계속 생겨나고 있어 이에 대한 대비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우선 올해 1월부터 공무원노조법이 시행되면서 공무원노사관계가 새로운 영역으로 떠올랐다. 이와 함께 공기업·공사 등 공공부문 노조의 활동이 강화되면서 공공부문의 노사관계가 주요 노사관계 현안으로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공무원 노사 모두 노사관계의 경험과 전문성이 부족해 초기에는 상당한 갈등이 예상된다. 때문에 공무원을 포함한 공공부문의 노사관계 특성에 맞춘 조정기법 개발, 업무처리 지침 제정, 위원 및 심사관 교육 등의 전문화된 조정서비스 제공을 위한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9월 정기국회 처리여부가 불투명 하기는 하지만 비정규직법안이 통과될 경우 차별시정위원회 운영도 노동위원회가 맡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 또한 준비가 전혀 안 된 상태다. 일단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차별판단 기준은 기존의 부당해고 구제심판 등과는 달리 판례·지침·사례 등이 거의 없고, 노사가 판단기준을 공유하고 있지도 않기 때문에 차별여부를 둘러싼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노동위원회에 차별판단의 기준·사례연구 등을 전담할 조직과 인력을 배치할 필요가 있다. 복수노조가 시행될 경우 교섭창구 단일화 업무도 노동위원회가 맡게 되는데, 이 또한 새로운 영역이라 상당한 혼란이 예상된다. 교섭단위 결정, 조합원수 확인을 통한 과반수 노조 확정, 선거를 통한 교섭대표노조 결정 등 복수노조 창구 단일화 관련 분쟁 등의 업무량이 빠르게 증가할 것이 예상돼 노동위원회 인프라 확충은 물론 철저한 사전준비가 필요하다.

매년 도마 위에 오르는 필수공익사업장 중재회부의 대안으로 논의되고 있는 ‘필수유지업무’제도도 많은 숙제를 남길 전망이다. ‘필수유지업무’제도는 쟁의권의 과도한 제약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중재회부제도를 폐지하는 것의 대안으로, 공익사업 분야에서노사가 법령에 제시된 기준을 토대로 필수유지 업무를 위한 직무 및 필요 인원 등을 협정으로 체결하는 것이다. 이 제도가 도입될 경우 필수유지 업무의 범위 및 필요인원 등에 대한 노사간 의견일치가 쉽지 않아 이에 대한 신청도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사의 신뢰·공정성 확보가 관건
비정규직법안과 함께 국회에 계류 중인 노동위원회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노동위원회는 일대 전환을 맞게 될 전망이다. 특히 2007년의 노사관계 환경 변화는 ‘약체’인 노동위원회에 더 많은 짐을 던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간 노동위원회 역할의 중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에도 제도개선 및 인적·물적 인프라 구축에는 소홀했던 것과 비례해 노사의 불신도 쌓여 있다. 때문에 법의 정비 뿐 아니라 노사 모두의 신뢰와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현실적 운영방안도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