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자, 다시
꿈을 꾸자, 다시
  • 홍민아 기자
  • 승인 2015.11.0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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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분위기가 물씬 풍기던 10월의 주말, 10년지기 친구가 기획한 ‘청춘 쉐어 ART 콘서트’를 보기 위해 신촌에 한 게스트 하우스를 찾았다. 게스트 하우스 거실에 옹기종기 청춘들이 모이자 공연 준비 때문에 한껏 초췌해진 친구가 포문을 열었다. 게스트하우스의 빈 공간들을 활용해 책과 시, 요리가 어우러진 전시회와 연극이 진행됐다. 연극은 장면 장면이 끝날 때마다 관객들의 생각들을 묻고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참여 연극이었다. 주제가 꿈과 연애였기 때문에 젊은 관객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나 생각을 털어놓으며 연극을 완성시켜 나갔다.

장장 3시간 넘는 공연을 이끌고 있는 친구를 보니, 그 친구가 지난 온 10년의 고행들이 생각났다. 고등학교 때부터 연극배우를 꿈 꾼 친구는 대학교 때 극회에서 배우로 활동했고, 대학에서 주최한 뮤지컬의 주인공 역할까지 맡았었다. 졸업 후에는 대학로의 한 극단에 들어가 연극을 뛰었다. 대학로에는 한 극단에서 여러 연극들을 올리고 소속 배우들을 로테이션 시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친구 역시 이 연극, 저 연극을 뛰었지만 문제는 손에 쥐어지는 돈이었다. 배우 역할에, 공연 없는 날에는 조명과 음향까지 담당하며 발바닥에 땀나게 뛰었지만 남는 건 카드빚이었다.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돈으로는 도저히 생활 자체가 안 되니 친구는 극단을 나왔고, 배우의 꿈도 포기했다.

최근 한 구직사이트에서 20~30대 성인 남녀를 대상으로 당신은 N포 세대에 속하는지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응답자 1,675명 69%가 자신은 N포 세대에 포함된다고 답변했다. N포 세대는 사회경제적인 이유로 인해 N가지의 것을 포기한 젊은 세대를 일컫는 신조어다. N에는 어떠한 수도 들어갈 수 있기에 ‘모든 것’으로 해석된다.

자신을 N포 세대라고 부르는 청년들이 가장 먼저 포기한 것은 결혼(56.8%)이었다. 그리고 근소한 차이로 꿈과 희망(56.6%)을 포기했다는 대답이 많았고, 내 집 마련(52.6%), 연애(46.5%), 출산(41.1%), 인간관계(40.7%)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응답자 중 73.5%가 포기한 많은 것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며, N포 세대가 사라지기 위해서는 33.3%가 경제적 안정이 가장 우선되어야 한다고 답했다. 스펙쌓기와 구직대란을 겪으며 꿈을 잃어버리고, 치솟은 집값을 보며 내 집 마련의 꿈을 버리고, 지금 받는 월급에 아이까지 키우며 생활할 수는 없어 또 결혼을 포기하고. 그렇게 한국의 청년들은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 아무 것도 바랄 수 없는 N포 세대가 되어 버렸다.

친구 역시 생활고에 시달리면서 10년을 넘게 꿈꾼 배우의 길을 포기했다. 한동안 빚을 갚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꿈꾸기를 멈춘 건 아니었다. 배우로서 무대에 오르는 대신, 무대를 만드는 공연 기획자로 변신했다. 빈 공간만 있으면 충분히 무대로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하면서 ART 콘서트를 기획했고, 첫 번째 무대를 무사히 마무리했다.

하지만 아직도 꿈조차 꿀 수 없는 시대를 견뎌야 하는 청년들이 있다. 정부에서는 정규직 과보호를 완화하고, 임금피크제를 실시해서 청년일자리 13만 개를 만들어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하지만 아랫돌 빼서 윗돌 괴고, 윗돌 빼서 아랫돌 괴기 식의 정책은 포기의 늪에 빠진 청년들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 임기응변식의 정책이 아닌 근본적인 대안을 위한 정부의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