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짓는 선수 ‘국’ 끓이는 비정규직
‘밥’ 짓는 선수 ‘국’ 끓이는 비정규직
  • 김경아 기자
  • 승인 2006.09.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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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한 직업인 되고픈 학교 비정규직 조리원

▲ ⓒ 김창기 기자 ckkim@laborplus.co.kr

1교시가 끝나면 도시락을 꺼내 5분 안에 해치우기, 점심시간 친구와 함께 벌이는 반찬 쟁탈전 같은 분주한 풍경은 이제 학교에 없다. 엄마들이 아침마다 도시락 반찬을 걱정하던 자리는 이제 아침부터 종종거리며 급식을 준비하는 조리원의 손놀림이 대신한다. 보통 한 학교에 4~5명의 조리원이 아이들의 점심식사를 책임지는데, 조리원 한 명당 적게는 150명, 많으면 250명 분의 점심식사를 준비하는 셈이다.

2시간 남짓 되는 전교생의 점심식사를 ‘뚝딱’ 차려내는 조리원의 손에는 ‘요술방망이’ 대신 칼과 주걱이 들려있었다.

“쉬는 시간은 없다! 출근부터 퇴근까지 강행군”
아이들의 작은 식판에 담기는 점심은 소박하다. 밥, 국, 김치, 그리고 반찬 세 가지.
1인당 밥과 반찬의 양이 정확히 정해져 있어 ‘많이 먹고 힘내라’고 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때로 더 달라고 하는 아이들에게 더 줄 수가 없어 안타까울 때도 있다. 이렇듯 아이들에게는 소박한 식탁이지만 한 번에 모이면 어마어마해진다. 조리원의 하루를 살펴보면 쉽게 이해된다.

아침 8시, 출근해서 조리실로 들어서면 뜨거운 기운이 ‘후욱~’ 인사한다. 그러니 제일 먼저 환기를 시킨다. 그러고 나면 재료 검사를 하고, 영양사와 함께 식단회의도 한다.

그러면 어느새 9시, 이제 본격적인 점심식사 준비에 들어간다. 한 학교에는 평균 5명의 조리원이 있는데 밥조, 튀김볶음조, 국 및 무침조, 전처리(재료 다듬기)조 등으로 각자 역할을 나눠 ‘착착’ 움직여 쌀을 ‘북북’ 씻고, 재료를 다듬고, ‘탁탁탁’ 썰고, ‘지글지글’ 볶고, ‘보글보글’ 끓인다.

각 조는 너무 무거운 것을 많이 들어야 하거나, 너무 덥거나, 팔이 아픈 등 나름의 어려움을 가지고 있어 주기를 가지고 교대하며 일한다. 음식이 만들어지는 동안 이들이 또 해야 하는 일이 있는데, 기름온도를 재고, 조리과정을 체크하는 일이다. HACCP(식품위해요소 중점관리제도)의 도입으로 조리 전, 중, 후 과정이 상당히 까다로워졌는데, 튀김기름의 온도를 체크하는 등 조리과정에서 점검해 기재할 일이 많아졌다.

조리과정 챙기랴, 음식하랴 종종거리고 다니다보면 어느새 점심시간이 코앞에 와있다.

공식적으로 조리원의 점심시간은 12~1시까지로 정해져있지만, 이 시간에 쉬는 일이란 꿈속에서도 어렵다. 점심식사가 아이들에게 배식되고 난 후에도 아이들은 수저나, 모자란 것을 가지러 온다. 아이들을 챙기는 짬짬이 점심을 때우고 나면 어느새 설거지 식판들이 하나둘 조리실로 들어선다.

서울 D초등학교에 근무하는 이 모 조리원은 “점심은 물 만 밥에 김치 얹어 대강 때우는 경우가 많다”며 “‘식당에서 영양실조 걸린다’는 말이 이런 것”이라며 너스레를 떤다. 정작 먹을 것이 눈앞에 있어도 먹히지 않으니 황후장상도 어쩔 수가 없다.

1부 리그가 음식을 만드는 과정이었다면 2부 리그는 설거지, 청소, 소독을 하는 과정이다. 식기 관리는 물론 조리실의 벽, 천장 청소까지도 맡아서 해야 하는데 이것도 만만찮은 일이다. 모두 정리하고 나면 4시를 넘긴 시간. 서울 K초등학교에 근무하는 박 모 조리원은 “등교하는 순간부터 설거지를 모두 마치는 시간까지는 화장실에 갈 시간도 모자랄 지경”이라며 웃었지만, 손목이며 허리, 어깨가 결리는 것은 물론 심지어 락스 알레르기까지 구석구석 숨겨진 ‘종합병원’이라는 조리원의 녹녹치 않은 하루가 엿보인다.

위생시설은 ‘반짝’ 사람은 ‘땀범벅’
조리실은 아이들에게는 ‘부엌’이지만 조리원에게는 엄연한 일터이다. 그러나 조리실에는 식품 위생을 위한 모든 배려는 있어도 정작 일하는 사람에 대한 배려는 찾아볼 수 없다.

조리복에 앞치마, 장화, 장갑, 토시, 모자, 마스크까지 ‘빼꼼’ 드러난 눈만 빼고 모두 꽁꽁 싸맨 복장으로 조리실에 10분만 서있어도 어느새 땀을 한 바가지는 흘린다.

“워낙 더우니까 에어컨 설치를 얘기해도 뭐 설치해주나요. 그래서 우리끼리는 그래요. 행정실이나 교장·교감선생님이 조리실에 와서 30분만 서 있어보고 가면 아실 거라고.” 박 조리원은 또 이렇게 덧붙인다.
“사우나가 따로 없죠, 뭐. 앞치마며 장화가 다 비닐이라 더운 것도 있는데 조리복이 워낙 흠뻑 젖어서 앞치마를 벗을 수도 없어요. 갈아입지 않으면 속옷이 훤히 비칠 정도니….”

뿐만 아니다. HACCP 기준에 맞춘 위생시설이 빠지면 위생검열에서 점수가 깎이게 되므로 좁은 공간을 쪼개어 시설은 들여놔도, 에어컨은 ‘공간이 부족해서’ 어렵다는 대답을 듣기 일쑤다.

박 조리원과 이 조리원은 친구나 가족이 학교로 찾아온다고 하면 ‘절대 오지 말라’고 했단다. 일하는 동안에는 모자에서부터 장화까지 땀으로 흠뻑 젖는 등 형편없는 모습이었기 때문. 조리원을 막 시작했을 무렵에는 선생님들조차 힐끗거리고 가는데 창피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은 이제는 다르다고 입을 모은다.
“처음에는 정말 꼴이 너무 말이 아니니까 싫기도 했는데, 이제는 이 작업복이 자랑스럽기까지 해요. 이제는 대통령이 만나자고 해도 작업복 입고 만날 수 있어요.”

▲ ⓒ 김창기 기자 ckkim@laborplus.co.kr
밥하는 일용잡급, ‘아줌마!’
IMF 전인 1995년, 조리원을 처음 시작할 무렵은 급식이 막 확산되던 때였다. 그래서였는지 조리원에 대한 인식도 좋지 않았다. 조리원의 상사라고 할 수 있는 영양사조차 조리원을 윽박지르듯 ‘아줌마, 그것도 못 알아들어요?’라며 몰아세우기도 했다고. 학교에서 밥해 바치는 ‘밥순이’ 취급을 당할 때는 서럽기도 했단다.

“그래도 학교 나가면 존경받는 엄마이고 멋진 여성인데, 학교에서 그런 취급을 받으니 자존심이 상했죠. 예전엔 그랬는데 요즘은 정말 많이 좋아졌어요.”
이 조리원은 IMF 시절 있었던 에피소드를 잔잔히 들려준다.

“아이들이 대학 1학년, 4학년일 때라 정말 사정이 안 좋았어요. 물가는 점점 오르고, 남편 수입은 줄어들고… 등록금은 오르고. 그래서 은행에서 학자금 대출을 받으러 갔어요. 필요한 서류 중에 학교에서 근무한다는 확인이 필요했는데, 행정실에서 서류를 확인하며 쓰는데 직업에 ‘일용잡급’이라고 쓰더라고요. 그 서류를 은행에 제출하는데 은행직원이 저를 어찌나 빤히 쳐다보는지 민망하기도 했어요.”

학교에서 근무하며 아이들에게 영양가 있는 음식을 제공한다는 자부심을 가지며 일했는데도 자신을 보는 시선이 생경스러울 때는 답답하기도 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다. 여전히 조리원은 매년 계약을 갱신한다. 보수도 연봉으로 계산하긴 하지만 총 근무일에 대한 일당 총액을 12달로 나눠서 받는 수준으로 한달에 4대 보험을 떼고 나면 70만원 남짓이다. 방학은 근무일이 아니므로 무급휴가인 셈이다.

매년 재계약하는 일은 부담스럽고 불안한 일임에 틀림없다. 때로 지나가는 말로라도 ‘그렇게 하시면 같이 일 못 한다’는 말이라도 들리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편안한 마음이라면 더 맛있는 음식으로!
처음엔 남편의 어깨를 좀 덜어주자는 마음에, 또 가정을 가진 여자가 가질 수 있는 직업이란 게 너무 뻔해서, 시작했던 조리원이었다. 하지만 10년 경력을 훌쩍 넘긴 이들은 이제 당당하고 뿌듯한 마음으로 일한다고 한다.

“역시 제일 기운 나게 하는 건 아이들이죠. 아이들이 맛있다며 인사하면 그것보다 행복한 것도 없고. 어떤 애들은 졸업하고 나서도 길에서 보면 인사도 한다니까요. 어떤 때는 선생님들이 너무 맛있다고 어떻게 만들었냐고 조리법을 묻기도 하는데 그럼 정말 좋죠.”

박 조리원은 아이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먹이는 즐거움과 더불어 내 일터가 있다는 것도 행복한 일이라고 전한다.
“매일 출근할 수 있는 직장이 있고, 또 거기서 같은 일을 하면서 서로 이해하고 얘기할 수 있는 동료들이 있고….”

한편 워낙 많은 양의 음식을 재빨리 만드는 선수가 되다 보니 이제 집들이 같은 집안행사는 ‘뚝딱’ 차려낼 수 있을 만큼 베테랑이 됐다. 이런 탓에 ‘잘 못하는데…’라며 손사래 치는 ‘공주과’가 아닌 ‘좀 비켜봐, 내가 할게’라며 나서는 ‘무수리과’가 됐다는 요리선수들의 소망은 아주 소박했다.

“10년 넘게 같은 학교에서 일해도 매년 계약서 쓰는 건 불안한 일이에요. 그저 매년 재계약 신경 안 쓰면서 일하고, 보수도 일하는 만큼 받을 수 있으면 좋죠.”
너무 힘들어 10년까지 할 줄 몰랐다며 웃는 그들의 미소 뒤에 고단한 희망이 내비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