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길’돌려 기업 '살길' 텄다.
‘물길’돌려 기업 '살길' 텄다.
  • 박경화 기자
  • 승인 2006.09.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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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갈증’ 해소로 투자유치 ‘단비’창원시 기업·노동자·지역 동반성장 실험 주목

창원 컨벤션센터 1층에 설치된 '기업 명예의 전당'을 찾은 박완수 시장이 기업인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

 

공장증설 부지를 구하지 못해 중국 이전을 고민하던 기업을 지자체가 나서 붙잡았다. 경남 창원시(시장·박완수)에 위치한 창원특수강(대표이사·김정원).

 

스테인리스 선재류를 생산하는 이 회사는 협력업체 직원을 포함해 2000명의 일자리를 책임지고 있고 연간 1조1421억원의 매출로 생산량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우량기업이다. 하지만 2010년까지 공장을 증축해 생산 규모를 늘리지 않으면 중국의 추격을 감당하기 어려운 경쟁상황 때문에 2004년부터 공장 증축을 추진해 왔다. 가장 큰 걸림돌은 부지확보. 공장 안에 빈터가 있었지만 하천이 흘러 불가능했고 창원공단 내 다른 부지는 평당 150만원 이상의 비용과 입지조건 때문에 고려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고민 끝에 올해 1월 창원시에 하천을 복개해 공장을 짓겠다는 신청을 냈다. 하지만 하천 복개가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소하천 정비법’ 때문에 복개 불가능 판정이 내려졌다. 창원특수강 못지않게 창원시의 고민도 깊어갔다. 공장이전은 지역주민의 고용 및 지역경제와도 직결된 문제였기 때문.

 

그러던 차에 담당 공무원이 “하천 물길을 공장 외곽으로 돌리자”는 제안을 했다. 창원시는 환경영향평가 등을 거쳐 환경부에 ‘유로(流路) 변경 승인’ 신청을 냈다. 5월 경 “물길을 돌릴 경우 하천 유량 변화 때문에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이유로 불승인 판정이 났다. 하지만 시는 포기하지 않았다. 하천 폭이 유량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도록 다시 설계하고 담당 공무원들이 환경부와 경남도를 끈질기게 설득한 결과 7월 26일에 허가를 받아냈다. 창원특수강은 공장 안 하천을 메우는 공사가 끝나는 대로 2만여 평의 부지에 첨단설비를 갖춘 새 공장을 지을 예정이다.

 

이 회사 경영지원부 백창욱 과장은 “기업을 위해 물길까지 바꿔주는 창원시 공무원들의 적극적인 자세에 큰 감동을 받았다”며 “이번 공장 증설로 2010년 조강 100만톤 생산, 연매출 1조5000억원을 달성해 지역경제에 큰 보탬이 될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창원시는 시청 1층에 기업서비스센터를 설치하고 정기적으로 기업인들과 간담회르 갖는 등 기업의 고충해소를 위해 다양한 사업을 벌이고 있다.>

 

도시와 기업의 상생모델
물길까지 바꿔 기업을 붙잡은 창원시의 노력은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창원시가 고안한 기업과 도시의 상생모델인 ‘기업사랑운동’의 시작이 그것이다.
일자리 창출이 국가적인 과제로 떠오른 지 오래지만 낮은 인건비와 좋은 입지조건을 찾아 짐을 싸는 기업들의 ‘탈출 행렬’은 여전히 끝이 보이질 않는다. 박완수 창원시장은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것 만큼 기왕 있는 기업들이 한국에서 계속 기업을 하면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 운동의 취지를 설명했다.

 

기업사랑운동은 ▲기업인·근로인이 존경받는 사회풍토 조성 ▲연구기능군 시설 집적화 및 도시발전을 위한 산업용지 확보 ▲경쟁력 있는 공단 인프라 확충 ▲기업의 애로 및 고충 해소 ▲기업사랑 추진을 위한 조례제정 등 제도적 장치 마련 등을 주요 추진사업으로 하고 있다.


기업들의 반응이 가장 좋은 부분은 기업들의 ‘갈증’을 해소해 주기 위한 활동이다. 이번 창원특수강 공장증설 부지 확보를 위한 노력뿐 아니라 시청 내에 ‘기업서비스센터’를 설치해 기업의 설비투자 애로를 해소하고 있다. 지난해 5월에는 창원공단에 위치한 두산중공업과 볼보건설기계코리아가 주로 이용하는 산업용 도로를 ‘두산·볼보로(路)’로 명명했고 진입로가 좁아 물품의 적재와 운반 등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STX중공업의 고충 해소를 위해 시청이 나서 부지 매입과 보상 등을 대행해 준 결과 새 블록공장을 유치하기도 했다.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이 즐거운 도시로!
처음에 운동이 시작됐을 때 ‘캠페인성 활동에 그칠 것’이라는 시민들의 냉소와 ‘기업사랑’이 아닌 ‘기업가사랑’이라는 노동계의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시는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고 경영자와 노동자 모두가 지역경제의 소중한 원동력이라는 인식을 확산시키기 위해 많은 활동을 벌였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해 12월 수립된 ‘근로자종합복지 5개년 계획’이다. 


2006년부터 2010년까지 343억원이 투입되는 이 계획은 ▲복지인프라 구축 ▲생활안정 지원 ▲복리후생 증진 ▲사기진작 등 4개 분야, 19개 사업으로 추진되고 있다.

우선 중소기업 밀집지역으로 노동자들을 위한 복지시설이 부족한 월림ㆍ창곡ㆍ양곡동 일원 3000여 평에 공원을 조성하고 상남동에는 연면적 2050평 규모의 근로자종합복지관을 건립키로 했다. 또, 저소득 노동자와 자녀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생활안정자금 대부이자 경감 및 중소기업 장기근무자에 대한 국민주택 우선 입주기회 부여 등 생활안정대책도 추진하고 있다.


이와 함께 노동자들이 퇴직 후 생계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재고용 프로그램 등 정보를 제공하고 근골격계 질환자들을 위해 2007년부터 수중운동교실도 운영할 계획이다.
창원컨벤션센터 1층에 설치된 ‘기업 명예의 전당’에 ‘올해의 최고 경영인’뿐만 아니라 ‘올해의 최고 근로인’을 선정해 함께 헌정하는 것도 땀흘려 일하는 사람이 기업의 주인이라는 의식을 확산하기 위한 것이다.

 

투자 늘고 일자리도 쑥쑥
기업사랑 운동은 시작 2년 만에 놀라운 성과를 나타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신규 투자유치 실적이다. 지난해에는 GM대우자동차가 부평공장의 ‘칼로스’ 생산라인을 단계적으로 창원으로 이전하고 DOHC 엔진 공장을 설립키로 했고, 지난해 11월 (주)로템이 창원으로 이전하면서 1100억원 규모의 시설투자와 500여 명의 신규 고용창출 효과를 냈다.


 

올해 들어서도 두산중공업이 폐열회수 보일러 제조공장 증축에 100억원, (주)카스코가 자동차 제동장치 생산규모 확대를 위한 설비증설에 1000억원, 창원특수강의 단조·조괴공장 증축에 1030억원이 투자되는 등 꾸준히 기업의 투자가 늘고 있다. 이에 따른 기업체수 증가와 고용증가 효과도 괄목할 만하다.

 

2004년까지만 해도 완만한 증가세를 보이던 기업체 수가 2005년에는 전년 대비 15% 성장해 1852개(2004년 1604개)로 늘었고 올해 6월까지도 꾸준히 늘어 1930개를 기록했다. 일자리도 함께 늘었다. 최근 10년간 창원의 고용증가율은 -0.5%였던데 비해 2004년 이후의 일자리 수는 플러스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그래프 참조>


10년 후 내다보고 산업 고도화 추진
기업사랑운동의 성과로 투자유치와 고용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창원시는 당장의 고용증가에 만족하지 않고 10년 후를 내다보는 활동을 시작했다. 창원공단이 기계산업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기계산업의 사양화를 대비해 첨단산업으로의 세대교체를 함께 추진하고 있는 것.

 

이를 위해 경남 사천으로 이전하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창원공장 부지 7만5000여 평을 평당 81만원에 매입해 첨단기업 유치에 나서고 있다. 분양가가 98만원 선으로 현재 창원국가산업단지의 평당 분양가 보다 40% 가량 싸기 때문에 많은 기업들의 문의가 있지만 창원시는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첨단산업만을 유치한다는 원칙을 세워놓은 상태. 첫 부지 당첨자는 호스와 호스커플링 생산분야 세계3위 그룹인 미국 게이츠사와 삼성테크원의 제휴공장이다. 게이츠사와 삼성테크원이 각각 1억 달러, 350억원을 투자해 올해 11월 착공할 이 공장은 1120개의 일자리를 새로 만들게 될 전망이다.

 

창원시의 기업사랑운동은 총 4단계로 추진되고 있는데 올해부터 내년까지의 추진 목표는 기업만족도 및 노사관계 경쟁력 제고다. 이를 위해 시는 지역의 노사정이 함께 추진하고 있는 창원지역노동교육협의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창원대학교 노동대학원 심상완 교수는 “현재까지의 기업사랑운동이 기업중심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면도 있지만 향후에는 지역의 노사관계가 결국 경쟁력을 가르는 열쇠가 될 것”이라며 “노동자도 기업가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기업의 주인이라는 인식이 확대되어야 하고 노사와 지자체가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활동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 한 나라를 넘어 전 세계적 과제가 된 시대, 기업과 노동자, 지역이 함께 성장하는 모델을 만들겠다는 창원시의 새로운 실험이 주목된다. 

 

 

   

▲ 박완수 창원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