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일, 여자들이나 하는 것?
집안일, 여자들이나 하는 것?
  • 장원석 기자
  • 승인 2015.12.15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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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노동 인식 변화 빠르게 일어나
실질적 분담 비중은 아직 걸음마 수준
[사건] 가사노동

“가사노동? 그게 무슨 말이야?”남성 어르신들에게 가사노동을 물어봤더니 처음에는 알아듣지 못했다. 어르신들이 알아듣기 편한 단어를 찾다가 집안일이라 말했더니 “집안일이 무슨 일이야 그거 좀 하는 걸 가지고 유세부리는데 집에서 편하게 지내니까 아주 배가...”라는 답이 돌아왔다.

예전부터 여자들이 하는, 남자가 하면 어디가 떨어져 나간다는 ‘집안일’은 남녀가 같이 나눠 하는 일로 그 의미가 바뀌었다. 더불어 가사 일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남성도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가사노동은 아직까지도 여성에게 축이 맞춰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 참여와혁신 DB
여자는 원래 집안일 해야되는 거야

A씨는 몇 년째 시댁 식구들과 얼굴을 보지 않고 살고 있다. 명절에도 남편과 아이만 인사하러 갈 뿐이다. 이유는 바로 가사노동 때문에 이었다.

“결혼을 하고 서로 집안에 돈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맞벌이를 해야 했다. 주말부부는 아니었지만 우리 모두 대출금 갚는데 바빴고 집에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가사는 시간 되는 사람이 해왔다. 그러다 아이가 생기고 나는 아이가 태어난 뒤, 2년 동안 휴직하며 가사를 해 왔다. 하지만 경제적 상황도 그렇고 일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아이를 가까운 친정에 맡기고 다시 복직을 했는데 그 때부터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 A씨의 말이다.

일을 시작하자 남편도 다시 가사에 참여해야 했고, 그것이 시어머니의 심기를 건드렸다. 어느 날, 가족이 시댁을 찾았을 때, 시어머니는 A씨에게 일을 그만 두고 집안일을 하라고 했다. A씨는 “좋게 설명을 드렸다. ‘지금 대출금 갚는 문제가 급하다. 아이가 크면 돈이 더 많이 들어갈테니 벌 수 있을 때 벌어두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시어머니는 ‘니가 벌면 얼마나 번다고 애도 망치고 애비 손에 물 묻히게 하냐. 그리고 집안일 하는게 뭐가 있다고 같이 못하겠다고 하느냐’며 나무랐다. 계속 말을 했지만 요지부동이었고 정도도 심해졌다”고 말했다.

A씨는 주위에서 듣는 이런 일을 경험하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아직도 우리나라에는 전근대적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많고 그 방식을 강요하는게 문제라고 했다. A씨는 “그나마 남편이 내 입장을 잘 헤아려줘서 다행이었다. 남편은 지금도 퇴근하면 할 수 있는 일들을 해준다.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여성으로서 평생 집안일만 하는 삶을 살아왔다면 그 일이 힘든지 잘 알텐데 그 일을 멸시하고 흉보면서 자기 며느리에게 하도록 강요한다는 점이었다”고 했다.

A씨는 “니가 더하니 내가 더하니 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집안일이 누구 한 사람이 모두 도맡아서 하는 일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이 서로 도와가며 할 수 있는 일이 될 수 있어야 한다. 대단한 일이 가사가 아니다. 내 아이도 식사를 마치면 그릇은 싱크대에 가져다놓고 우리가 청소할 때 자기 방은 자기가 쓸고 닦는다. 남은 열심히 일하는데 옆에서 누워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 것이 바로 함께하는 집안일이다”고 말했다.

이게 적성에 맞더라고요

한정수 씨(37)의 아침은 6시에 시작한다. 아내를 깨우고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7시에 아내가 출근하면 5살 된 아이를 깨워 유치원에 보낸다. 정수 씨는 아이를 보낸 다음, 오전에 빨래, 청소 등 집안일을 오전에 마치고 5시에 아이를 데리러 가기 전까지 번역 일을 한다. 아이를 데리고 온 후, 정수 씨는 저녁을 준비하며 아이와 놀아준다. 7시에 아내가 돌아오면 저녁을 먹고 가족끼리 시간을 보내거나 남은 일을 하며 보낸다.

정수 씨는 2년 전부터 ‘전업주부’를 시작했다. 그 전까지는 물류회사에 다니는 직장인이었다. 정수 씨는 “아이가 두 살이 될 때까지는 아내가 휴직을 하고 가사를 전담했다. 나는 매일같이 야근과 출장의 연속이라서 가족들과 얼굴 맞대는 것이 1주일에 한두번에 불과했다. 그런데 아이가 세 살이 되고 아내가 다시 직장에 나가게 되면서 문제가 생겼다. 나는 집에 들어오기가 힘들었고 아내가 직장에 다니며 육아와 가사를 동시에 하기에 힘이 부쳤다. 결국 서로 간 언성이 잦아졌고 가정불화가 극에 달했다”고 말했다.

그 날도 부부는 서로 냉전을 이어가고 있었다. 갑자기 아내가 펑펑 울며 정수 씨에게 말했다. “난 밥해주고 빨래하고 애 키워주는 기계가 아니다” 그 사건으로 인해 정수 씨는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했다. “출장을 갔는데 그 생각밖에 나지 않더라. 생각해보니 아내가 너무 많은 짐을 지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아내가 고생을 했으니 이제는 내가 그 역할을 맡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후 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전업주부로 정수 씨의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었다. 처음 한두달은 집안 꼴이 마치 폭격을 맞은듯한 모습이었다. 사무직으로 살던 사람이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를 하니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다. 그래도 주변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고 열심히 노력해 지금은 다들 정수 씨의 솜씨에 감탄한다고 한다.

그렇게 가정은 행복해졌지만 주위 사람들의 시선은 정수 씨를 힘들게 했다. 직장 동료들은 ‘남자가 좋다고 말하는 것보다 더 충격적이다. 미치지 않았냐’, ‘그럼 여자를 회사를 그만두게 하고 네가 일을 더 해라’고 난리가 났고 집 주변에서도 ‘직장에서 잘렸다’, ‘일을 많이 해서 정신이 이상해진거다’, ‘로또가 됐다’ 등등 별의별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실제로 그렇지 않더라도 주부생활을 처음 시작한 정수 씨의 눈에는 모두가 자신을 비웃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한동안은 꼭 나와야 되는 때를 제외하고는 집에서 나오지도 않았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러 밖에 나가는 것이 정말 스트레스였다고 정수 씨는 말했다.

지금도 친척 등 주변 사람들은 아쉬운 소리를 하고 있지만 이제 정수 씨는 그런 일에 대해 개의치 않기로 했다. 가정이 행복해지니 자신에게도 좋고, 무엇보다 생각 외로 적성에 맞기도 했다. 예전에 희망사항으로만 가지고 있던 번역가라는 꿈 앞에도 설 수 있게 되었다. 정수 씨는 “아직도 우리 사이에는 여자는 집안일 하고 남자는 밖에서 돈벌어오는 구조가 박혀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문화가 바뀌면 나 같은 사람도 점점 늘어나지 않겠나 생각한다. 일도 남녀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지 않나. 가사노동도 마찬가지다”고 말했다.

 ⓒ 참여와혁신 DB
반반씩 나눠서 하기로 약속했어요

이성민 씨(32)는 내년 초에 결혼을 앞둔 예비 신랑이다. 한창 촬영이다 혼수나 예물 장만이다 바쁠 시기에 성민 씨는 예비 신부와 요리학원에 다니는 중이다.

성민 씨는 “요즘 결혼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결혼이 내 삶에 족쇄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우리도 ‘내가 이 사람을 사랑하고 결혼하고 싶긴 하지만 그렇게 되면 나라는 사람의 삶은 없어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했다. 가정을 이루면 얻는 것도 많지만 그로 인해 신경써야 할 부분도 많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더불어 성민 씨는 누구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버리면서 가정에 매달리게 되는 것이 싫었다고 했다. “결혼해서 아이 낳고 살다보면 내가 이성민이 아니라 누구 아빠, 아내도 누구 엄마로 불린다. 사람이 더 잘살기 위해 결합하는 건데 언제부턴가 가정을 위해 개인이 희생하는 구도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그렇게 되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 성민 씨의 생각이다.

성민 씨 부부는 가사에 대해 역할을 분담해 전담하는 대신 일을 반반으로 나눠서 하기로 약속했다. 요리를 배우는 것은 그런 계획의 일환이다.

성민 씨는 “같이 요리학원에 다닌 지 이제 두 달이 좀 넘었다. 아내와 음식을 만들며 ‘내가 더 맛있게 만들어 보이겠다’고 경쟁하곤 한다. 요즘은 이런 과정과 결과 모두 행복하다. 또 얼마 전에 아내 집에 수도관이 막혀 문제가 생겼는데 내가 가보니 아내가 열심히 고치고 있었다. 도와주겠다는 말도 거절하고 열심히 고치더니 결국 해냈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런 과정 속에서 내가 도와주지 못해도 혼자서 잘 할 수 있다는 서로간의 신뢰가 쌓인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성민 씨는 남자가 가사노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가정과 부인을 사랑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것이 서로를 존중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남자는 돈 많이 벌어 주고, 여자는 집에서 일을 해야 한다는 방식은 이제 끝났다. 가정과 아내를 자신의 소유물쯤으로 보던 예전의 낡은 생각에 불과하다. 지금은 예전같이 외벌이로 가정을 꾸리는 것이 가능한 사람이 거의 없을뿐더러 사람들의 인식 또한 달라졌다. 요즘에 저런 말 하면 남자가 소박맞기 딱 좋다”

성민 씨는 “20살 이후 지금까지 혼자 지내서 가사가 어느정도 몸에 익었지만 분명 다른 사람이랑 사는 일은 다른 문제가 될 것이다. 우리가 일을 나눠서 하기로 했지만 실질적으로 사는데 있어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지금 가지고 있는 생각을 잃지 않고 지켜나간다면 분명 나와 우리 가정 모두 살필 수 있을 것이다”고 밝혔다.

가사노동 인식은 변했지만, 갈 길은 멀다

2012년 10월,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여성정책 수요조사’에서 조사자의 42.4%는 남성이 가사를 전담하는 것에 긍정적 답변을 했고 35.1%는 중립적, 22.5%는 부정적으로 답했다. 특히 20대는 긍정적 답변이 50%에 이르렀다. 이전의 부정적 응답 일변도이던 조사결과에 비하면 긍정적 방향으로의 변화가 늘고 있다.

실제로 남성의 가사노동 참여는 늘어나고 있다. 서울시가 발표한 ‘2014 통계로 본 서울남성의 삶’에서는 가사와 육아에 참가하는 남성에 대한 흥미로운 수치들을 확인할 수있다.

통계를 살펴보면 우선 우리나라 가정에서 남성들의 가사노동이 여전히 미흡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15세 이상 가구주에게 가사노동을 어떻게 분담하는지에 대한 질문에서, 남편과 부인이 공평하게 분담한다는 답변율은 2013년 12.1%로 2007년(7.6%)의 답변율과 비교해 4.5% 증가한데 그쳐, 유의미한 증가를 보이지 않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가정에서 가사노동을 아내가 전적으로 책임진다는 비율은 2007년 44.9%에서 2013년 24.8%로 줄었으며, 아내가 주로 책임지고 남편이 돕는다는 비율은 2007년 46.1%에서 2013년 62.0%로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 가사노동의 역할주체의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가사 및 육아를 전담하는 남성 비경제활동인구가 10년 동안 약 2.5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2003년에 만 3천 명이었던 남성 전업주부는 꾸준히 증가하여 2010년 3만 6천 명까지 증가했으며 2011년 3만 5천 명, 2012년 3만 2천 명, 2013년 3만 3천 명으로 증감을 거듭하고 있다.

이러한 증가율(2003년 대비 153.8%)은 같은 기간 내 남성 비경제활동인구의 증가율(13.2%)이나, 같은 기간 전업주부(활동상태가 가사 및 육아인 경우)인 여성 비경제활동인구 증가율(2.7%) 보다 월등하게 높은 수치임을 확인할 수 있어 변화가 급속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여성가족부와 통계청이 발표한 '2015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을 보면 남녀의 가사노동 비중은 아직 갈 길이 멀게 느껴진다. 조사 결과, 여성의 가정관리 시간은 2시간 27분으로 나타나 남성(31분)의 가정관리 시간보다 1시간 56분 더 많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가사노동의 비중이 여성에 집중되면서 여성이 가사노동에 느끼는 불만족도가 23.5%로 나타났다. 이는 남성(8.2%)보다 15.3%포인트 높은 수치다. 특히 40대, 고학력, 유배우자 층에서 불만족 의견이 높게 나타났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저출산 시대의 가사 노동 및 자녀 돌봄 시간 변화와 시사점’ 보고서에서도 여성의 가사노동 시간은 남성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다만 가사노동의 세부 항목에서는 전통적인 성 역할 구분이 약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신윤정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보고서에서 “가사 서비스 이용 등 여성 노동력을 대체할 수 있는 가정 관리 영역에서는 성 역할 규범이 약화되고 있으나, 자녀 돌봄에서는 여전히 남녀의 전통적 역할 구분이 뚜렷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