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로에 짓눌린 ‘시민의 발’버스가 위험하다
과로에 짓눌린 ‘시민의 발’버스가 위험하다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5.12.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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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노련, 버스노동자 과로 실태조사
장시간노동에 시민 안전, 노동자 건강 ‘위험’
[사건]버스노동자 과로 실태조사(상)

최근 버스의 안전 문제가 대두되면서 버스노동자들의 부주의와 과실이 부각되었다. 그러나 이들이 처한 상황을 들여다보면 사고의 책임을 노동자에게만 돌리는 것은 현실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따른다.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자노련)이 수행한 ‘버스 운전 노동자 과로 실태와 기준 연구’는 이와 같은 지적이 나오는 이유를 말해준다. 이번 연구를 통해 격일제 또는 복격일제로 근무하는 버스노동자들이 장시간노동에 노출돼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또한 장시간노동으로 만성적인 수면부족과 각종 질병을 호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참여와혁신 DB
경기도 광역버스 탑승기

날씨가 많이 쌀쌀해진 11월 어느 날 경기도와 서울을 오가는 광역버스에 탑승했다. 7시 20분에 출발한 버스 노선의 왕복 거리는 총 77km에 달했다. 소요 시간으로 따지면, 도로 상황에 따라 적게는 3시간에서 많게는 4시간까지 걸린다. 21년째 버스를 몰고 있는 A씨(52)는 격일제로 근무하고 있다. 그러나 여느 경기지역 버스노동자들처럼 이틀이나 사흘 연속으로 일하고 하루를 쉰다. 버스노동자들은 이러한 근무형태를 ‘따블’이라고 불렀다.

A씨는 이날 마지막 순번이었다. 이날 운행이 모두 끝나면 다음 날은 하루 쉬고, 그 이튿날 새벽 4시 첫 차를 몰게 된다. 그는 “차 한 대당 2명 정도만 돼도 그나마 수월해질 텐데, 사람이 워낙 모자라 차 한 대를 1.4명 정도가 탄다”고 전했다. 서울 시내버스처럼 2교대제는커녕 현재의 복격일제도 제대로 시행하기 어려운 이유다. 일이 힘들다 보니 일하려는 사람이 없고, 사람이 없다 보니 남아있는 기사들은 더 힘들어지는 상황이 반복된다.

광역버스의 특성상 승객 한 사람이 버스에 머무는 시간은 비교적 긴 편이다. 출근시간대가 되면 승객들은 버스에서나마 모자란 잠을 보충하기에 여념이 없다. 그러나 이들이 아무리 버스를 오래 탄다고 해도 A씨만큼은 아니다. 그는 출발하기 전 껌을 하나 꺼내 씹어보지만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밀려오는 졸음과, 언제 고개를 내밀지 모르는 생리현상, 교통체증, ‘진상’부리는 승객, 그리고 도로에 상존하는 갖가지 위험 요소 등과 싸워야 한다.

한 차례 왕복 운행을 한 뒤 점심을 먹었다. 그나마 이날은 차가 덜 막히고 검차가 없는 날이라 밥을 ‘마시지는’ 않았다. 노선의 기점 근처 식당에 6가지의 반찬이 있었지만, A씨는 식사시간을 아끼기 위해 작은 접시에 3종류만 담았다. 그러고는 무척 빠른 속도로 식사를 마쳤다. 취재를 명분으로 운행일정에 지장을 줄 수 없었기에 그 속도를 맞추느라 애를 먹었다.

 ⓒ 참여와혁신 DB
하루 17시간 이상 운전, 많은 곳은 21시간 달해

A씨의 사례는 상당히 일반적인 편이었다.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위원장 류근중)은 가톨릭대학교 보건대학원 연구팀과 함께 ‘버스 운전 노동자 과로 실태와 기준 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 버스노동자들은 만성적인 장시간노동에 노출된 것으로 드러났다. 자노련은 올해 4월부터 10월까지 서울·경기·광주지역의 버스노동자 1,06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또, 운행지역과 버스유형 및 근무유형에 따라 6가지 범주로 나누고, 각 범주별로 2명에서 4명을 선정해 의학적 조사와 심층면접조사를 실시했다.

조사대상 중 준공영제를 시행한 서울 시내버스의 경우 1일 2교대제로 운영된다. 민영제인 경기지역은 격일제 또는 복격일제로 운영되고 있다. 그리고 광주 시내버스는 정규직은 1일 2교대제, 비정규직은 격일제 또는 복격일제다. 서울 시내버스의 만근 기준은 22일로, 1일 운전시간은 8~10시간 정도인 것으로 조사됐다. 민영제인 경기 시내·광역버스의 만근 기준은 12~13일로, 1일 운전시간은 적게는 12시간에서 많게는 21시간에 달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지역에서 만근 기준보다 더 많이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이 생계를 유지하기에는 부족해 이른바 ‘따블’을 감행하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버스노동자들은 부족한 임금을 보전하기 위한 것뿐 아니라 “회사가 ‘따블’을 강제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수면부족으로 사고위험 높아

적은 임금과 회사의 요구로 장시간 운전을 하다 보니 버스노동자들은 수면부족을 겪고 있었다. 연구팀은 각 범주별로 선정된 버스노동자들의 몸에 생체지표 측정 장비를 착용시킨 후 잠자리에 든 시각, 일어난 시각, 실제 수면시간 등을 측정했다. 그 결과 근무 유형에 따라 실제 수면시간과 수면의 질에 차이가 있었다.

조사대상 중 격일제로 근무하는 어느 경기 광역버스 노동자는 휴무일 밤 11시 10분에 잠자리에 들어 다음 날 근무를 위해 새벽 4시 47분에 일어났다. 전체 수면시간도 5시간 37분으로 매우 짧았지만, 잠들기까지 걸리는 시간과 수면 중 뒤척인 시간을 뺀 실제 수면시간은 4시간 19분에 불과했다. 이는 그의 수면효율이 매우 낮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쉽게 말해 ‘잠을 잤는데 잔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8시간 동안 잔 사람의 실제 수면시간이 6시간 48분 이상, 즉 수면효율이 85% 이상이면 정상이다.

조사대상 버스노동자들 중 대부분의 실제 수면시간이 4시간에서 5시간 안팎에 머물렀다. 또한 수면효율 역시 70% 내지 80% 초반에 머물렀다. 이처럼 부족한 수면과 낮은 수면효율은 신체의 활동을 저하시키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신체 활동 저하로 외부 자극에 대한 반응속도가 느려지면 그만큼 도로에서의 돌발 상황에 대처하기 어렵다. 자노련과 연구팀은 버스노동자의 과로가 사고위험을 높인다고 지적한다.

 ⓒ 참여와혁신 DB
‘먹고 자고 싸는’ 문제에 ‘진상’ 승객까지… 몸과 마음이 병든다

버스노동자들에게 부족한 것은 잠만이 아니었다. 배차간격을 맞추려면 식사시간도 아껴야 하고, 화장실도 제때 갈 수 없다. 자노련과 연구팀은 이러한 사실이 버스노동자들의 건강을 해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자노련은 한국 성인이 자주 앓는다고 알려진 10개 질환 중에서 버스노동자들이 의사의 진단을 받았던 적이 있는 질병에 대해서도 조사했다.

버스노동자들은 대체로 고혈압, 소화기질환, 요통, 당뇨 등의 질병을 앓았거나 앓고 있었다. 또한 혈액의 콜레스테롤 양이 제대로 조절되지 않는 이상지질혈증 진단을 받은 경우도 많았다. 2004년 준공영제를 실시한 서울 시내버스의 노동자들은 상대적으로 짧은 노동시간과 높은 임금으로 사정이 나은 편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들도 타 지역과 마찬가지로 갖은 질병을 갖고 있었다. 어느 버스노동자는 “버스기사들 다 모아놓으면 종합병원이 하나 만들어질 것”이라는 웃지 못 할 농담을 하기도 했다.

버스노동자들의 고충은 한 가지 더 있다. 이들은 ‘감정노동’의 어려움 역시 호소한다. 최근에는 승객이 기사를 폭행한 사건이 수시로 발생해 지난 6월 22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이 개정되기도 했다. 특가법은 “운행 중인 자동차의 운전자를 폭행하거나 협박한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버스노동자들은 승객의 폭행으로 신체의 상해보다 마음의 상처를 더 많이 받고 있었다.

폭행 문제 외에도 자노련이 진행한 심층면접에서 버스노동자들이 답한 내용을 모아보면 그야말로 ‘천태만상’이었다. 얌전하게 표현하면 승강이쯤 되겠지만, 솔직한 표현으로는 ‘진상’ 그 자체라고 버스노동자들은 전한다. 이들이 가장 골칫거리로 꼽는 사례는 단연 취객이 난동을 부리거나 차 내에 구토를 하는 것이었다. 스마트폰을 만지느라 손잡이를 잡지 않거나, 내려야 할 정류장을 놓치고서 기사에게 따지는 승객은 일상에 가까웠다. 고속버스의 경우 고속도로 주행 중 승객이 급한 용변 때문에 갓길에 세워달라고 하고서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사례도 있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시외버스는 입석이 금지돼 있지만, 승객이 태워달라며 어깃장을 놓기도 했다.

표본 제한의 한계 있지만 유의미한 결과

이번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앞서 만났던 경기지역 광역버스 노동자 A씨의 말이 더욱 와 닿는다. 그는 1회 운행을 마친 후 담배를 하나 꺼내 물더니 밥을 빨리 먹었던 만큼 담배도 무척이나 빨리 피웠다. A씨는 “어떤 기사는 17~18시간씩 5일 넘게 연속으로 일하고 하루 쉬기도 한다”면서, “회사가 수익만 좇지 말고 사람을 더 뽑아서 근무강도를 낮췄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번 실태조사는 특정 지역의 특정 회사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따라서 표본의 수가 제한적이라는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그럼에도 자노련 측은 이번 실태조사가 갖는 의미가 남다르다고 밝혔다. 버스노동자들 노동실태와 건강상태를 심층적이고 과학적으로 분석한 국내 최초의 연구라는 이유에서다. 이번 실태조사가 버스노동자들의 노동실태에 관해 향후 이루어질 연구의 기초가 될지 여부가 주목된다. 나아가 이들의 노동조건과 생활을 근본적으로 개선시키는 촉매로 작용할지 또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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