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의 안전 위협과 운수노동자의 대안
신자유주의의 안전 위협과 운수노동자의 대안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5.12.15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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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국의 학자 및 노조 대표 참석
신자유주의와 운수분야 안전 상충관계 주목
[사건] 운수안전 국제심포지엄

지난 10월 28일,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위원장 조상수)과 사회공공연구원(원장 윤영삼)은 새정치민주연합 이인영·은수미 의원실과 공동으로 국제심포지엄 ‘신자유주의의 안전 위협과 운수노동자의 대안’을 열었다. 이날 국회 의원회관 제2세미나실 및 제2소회의실에서 열린 국제심포지엄에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영국·호주·노르웨이 등 각국의 경제학자 및 노동조합 활동가들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총 3개 세션에서 신자유주의와 운수분야의 안전 간 상충관계, 해외의 안전캠페인 사례, 안전에 관한 노동조합의 역할, 한국 노동자들의 과제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 공공운수노조
신자유주의가 안전을 위협하는 과정

경제적 자유주의자들이 신봉하는 것은 효율성(efficiency)이다. 이들이 말하는 효율성은 자유로운 시장에 아무런 간섭이 없는 상태에서 달성된다. 오늘날 흔히 ‘신자유주의’라고 부르는 체제는 이러한 상태를 하나의 규범으로 제시한다는 게 경제학자들의 생각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공공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비판이 동시에 제기됐다. 첫 번째 세션 ‘신자유주의의 안전 위협 : 탈규제화, 민영화, 경쟁 도입과 국민의 안전’은 이 같은 비판이 나오는 맥락을 소개했다.

세션1의 발제를 맡은 마이클 벨저 웨인주립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신자유주의에서의 규제 완화로 인한 안전 문제를 ‘외부효과’(externality)라는 경제학 용어를 사용해 설명했다. 외부효과란, 경제 주체들이 경제활동을 통해 얻는 이익이 그들의 외부 요인에서 비용을 초래한 상황을 말한다. 운송업체가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보험에 대한 규제를 풀어줌으로써 업체는 이익을 더 얻지만, ‘안전비용’은 노동자와 소비자가 고스란히 물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운송 서비스 공급자들이 모든 비용을 완전히 포괄하는 가격을 지불하도록 요구하거나, 비용을 화주 및 고용주에게 부과함으로써 시장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피터 F. 스완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신자유주의 철도정책이 공공안전에 미친 영향에 대해 발표했다. 스완 교수는 철도가 오랜 역사 속에서 운행시스템 전반에 걸쳐 다방면으로 발전을 거듭해 ‘수직통합’을 이뤘지만, 신자유주의 철도정책이 이를 다시 해체하면서 공공안전을 위협해 왔다고 주장했다. 철도의 수직통합은 신호체계, 선로 정비, 운행 시각, 차량 운전 등이 유기적으로 구성되면서 발전해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완 교수는 신자유주의 철도정책은 이를 각 분야별, 심지어 지역별로 조각내 외주화하거나 민영화하면서 유기적 구성을 깨뜨렸다고 지적했다. 또한 철도 운영의 유기적 구성이 깨지면서 대형 안전사고가 늘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첫 번째 세션의 마지막 발제는 이영수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원이 맡았다. 그는 한국 운수산업의 안전위협요소를 지적한 뒤, 개선방향을 제시했다. 버스의 경우 공영제를 통한 사회적 수준의 노동조건을 버스노동자에게 적용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택시산업에 대해서는 전액관리제와 월급제의 조속한 정착, 불법과 탈법을 일삼은 택시사업주에 대한 적극적 감차 등을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화물의 경우에는 운송원가를 반영한 표준운임제도가 도입돼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어 궤도교통에 관해 “안전이 강화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부의 철도산업정책 기조가 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참여와혁신 DB
안전운임과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캠페인

세션2는 두 개 분과로 나뉘어 진행됐다. 세션2의 A분과에서는 안전운임에 대한 연구사례와 노동시간 단축을 향한 호주운수노조 및 영국서비스노조의 캠페인 사례가 다뤄졌다. 한국의 사례는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가 전개했던 표준운임제 투쟁 사례와 버스부문의 사례가 소개됐다. 하지만 호주(화물)나 영국(버스)의 사례에 비해서 아직까지는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다는 점이 한계로 드러났다.

세션1에서 신자유주의에서의 안전을 외부효과로 설명했던 벨저 교수는 현재의 상황에 대해 “시장이 화물·승객 운송업체를 통제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안전사고의 전제 조건이 경쟁으로 인해 만들어진다면서, 세션1에서 소개했던 ‘안전비용’을 정부가 나서서 ‘내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운송사업자가 안전을 중요시 여길 수 있는 경제적 유인을 정부 규제를 통해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벨저 교수는 미국 화물업체인 ‘J. B. 헌트’에서 노동자들의 임금을 10% 올렸더니 사고 가능성이 40% 가량 감소했다는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다.

마이클 케인 호주운수노조 사무부총장은 호주의 안전운임 캠페인 사례를 소개했다. 케인 부총장에 따르면, 호주에서는 한 해 트럭 사고로 인한 사망자가 연간 330여 명에 달했다. 이에 호주운수노조에서는 “운임 결정 방식이 위험한 행동을 강요한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화물노동자와 그 가족의 삶을 향상시킬 수 있는 단체협약 쟁취를 목표로 설정했다. 호수운수노조가 각고의 노력을 한 끝에 호주에서는 2012년 ‘도로안전운임법’이 제정됐고, ‘도로안전운임심사위원회’가 활동 중이다.

영국에서는 버스 안전을 높이기 위한 캠페인이 진행됐다. 마틴 매이어 영국서비스노조(유나이트) 대표는 버스노동자의 장시간노동이 버스 안전을 저해하는 가장 주요한 요소라고 지적했다. 그는 1986년 영국의 지역 버스회사가 민영화된 후로 그곳 버스노동자들은 줄곧 장시간노동에 시달려왔다고 말했다. 1997년부터 2010년까지 노동당 집권 당시, 유나이트는 정부에 이를 개선해 달라고 수차례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유나이트는 ‘더 안전한 길’ 캠페인을 전개하면서 파업을 준비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실제로 파업에 돌입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매이어 대표는 ‘안전한 길’ 캠페인으로 교대제 형태와 노동 당번표(배차표)를 개선하는 성과를 거뒀다고 전했다.

 ⓒ 참여와혁신 DB
안전을 대하는 외국과 한국의 자세

세션2-A분과가 화물과 버스 등 도로교통을 중심으로 해외 사례를 소개한 자리라면, 세션2-B분과의 소재는 일반철도와 도시철도 등 궤도교통의 안전이었다. 여기서는 이른바 ‘안전거버넌스’ 구축과 ‘안전문화’ 확산하기 위해 요구되는 노동조합의 역할에 대해 토론이 오갔다. 특히 이 분과에서는 한국철도공사의 ‘억압 통제적 안전 정책 사례’에 대한 고발이 이어졌다.

발제를 맡은 이승우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원은 박근혜 정부 출범 후 급부상한 안전문제를 언급했다. 이 연구원은, “박근혜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안전한 사회를 만들겠다고 공언했지만, 이는 세월호 참사 앞에서 처참하게 깨져버렸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궤도산업이 국가 및 지자체에 의해 운영되는 한국에서는 국가가 그것의 안전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라고 설명했다. 그는 2000년대 이후 한국 정부의 공공부문 안전관리 양상에 대해 ‘안전의 상품화’, ‘안전의 관료화’ 두 가지로 요약했다. 이어 서울시에서 추진 중인 ‘노사민정 안전거버넌스’를 소개하며, “공공부문 안전관리에 좋은 전범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평가했다.

B분과에서는 안전의 개선 및 유지에 대한 노동조합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논의됐다. 먼저 외스타인 아슬락센 국제운수노련 철도분과 의장은 노르웨이 국철의 사례를 소개했다. 노르웨이 국철 노사는 철도운행 안전관리에 관한 사항을 논의하기 위한 공론의 장으로 ‘교통안전아레나’(TSA) 2개 단계와 ‘교통안전위원회’(TSC), 그리고 ‘최고레벨보고회의’(TLR)가 마련돼 있다. 총 4단계로 이루어진 회의에서는 일상 업무부터 철도 사고 및 조치, 안전 규정과 안전 관련 사안 전반에 대해 폭넓게 논의한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노동조합 대표단은 안전관리와 사고조사에 관해 1년간 시간제 대학과정에 참가하며, 모든 비용은 회사가 부담한다는 점이다.

반면, 한국의 안전정책은 앞선 사례와 달리 ‘억압·통제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최세환 전국철도노동조합 노동안전국장은 최근 15개월 여 동안 발생한 세 건의 철도사고를 통해 이러한 문제를 지적했다. 작년 7월 22일 태백선 문곡역 인근에서 발생한 여객열차 정면충돌 사고로 91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다섯 달 후인 작년 12월 22일에는 경부선 평택역 인근에서, 올해 8월 1일에는 중앙선 청량리역 인근에서 크고 작은 사고가 발생했다. 이 같은 사고에도 불구하고 관할 부처인 국토교통부와 운영사인 철도공사가 안전에 대한 논의의 장을 마련하기는커녕, 현장 노동자들을 징계하고 처벌하는 데에만 급급했다는 비판이다.

한편, 세션2-B분과에서 토론에 나선 오선근 공공운수노조 철도·지하철협의외 정책국장은 최근 빈발하는 철도사고의 원인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규제완화와 1인 승무, 정비인력의 외주화 및 비정규직 확대에 사고의 주원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지금과 같이 사고가 났을 때, 담당자의 책임을 추궁하고, 징계를 위주로 하는 조직문화에서 벗어나 원인 규명을 우선으로 하는 조직문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기에 더해 이영희 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는 노사정뿐만 아니라 시민들도 운수분야의 안전문화를 만드는 데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참여와혁신 DB
한국 운수분야 노동운동의 방향은?

이날 진행된 국제심포지엄 ‘신자유주의의 안전 위협과 운수노동자의 대안’ 전체 일정의 마지막인 세션3에서는 한국 운수노동자의 과제를 중심으로 종합토론이 이루어졌다. 윤영삼 사회공공연구원장은 한국사회를 ‘위험사회’로 규정했다. 윤 원장은 “신자유주의체제 아래 규제완화와 비용감축의 압박이 강하게 작용하는 시기에 운수분야의 안전을 담보할 주체는 결국 운수노동자”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오늘날 한국 운수분야 노동조합의 안전을 위한 활동은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운수분야의 노동안전과 교통안전에 관한 전문 인력 양성은 물론, 이 분야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한 중장기적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안전사고가 연이어 터지면서 “먹고 살기 힘들 줄은 알았는데 살아남기 어려울 줄은 몰랐다”는 어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이용자의 말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이 말을 그저 웃고 넘기기에는 어려운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국민들은 근래에 일어난 사고를 통해 스스로의 안전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뼈아픈 사실을 교훈으로 배웠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국민 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운수안전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