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권 위협하는 지자체 복지 통폐합
생존권 위협하는 지자체 복지 통폐합
  • 이상동 기자
  • 승인 2015.12.15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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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수혜자, 노동자 모두에게 피해 우려돼
보건사회연구원, “중복 없다” “신중히 접근해야”
[사건] 지자체 복지 통폐합

지난 8월 11일 정부는 정부세종청사에서 제10차 사회보장위원회를 열어 ‘지자체 유사·중복 사회보장사업 정비 추진방안’을 확정했다. 이는 지자체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복지사업 중 중앙정부의 복지사업과 유사하거나 중복된다고 판단되는 1,496개 사업을 정비하는 것이다. 654만 명이 수혜를 받던 약 1조 원가량의 복지 예산이 삭감될 상황에 놓인 것이다.

 ⓒ 이상동 기자 sdlee@laborplus.co.kr
복지사업 축소 생존권 위협한다

10월 24일 사회서비스시장화저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사회서비스 공공성 강화와 복지권리 확대를 위한 제6차 사회서비스노동자대회’를 열었다. 이들은 돌봄노동자(간병인), 활동보조인, 보육교사, 사회복지사 등 사회기본복지서비스를 담당하고 있는 노동자들로 정부가 복지사업을 ‘구조조정’하고 ‘정리해고’하려 한다며, 정부의 지방자치단체 사회복지사업 통폐합 추진 중단을 촉구했다.

사회복지노동자들은 대부분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하고 있다. 이러한 처우를 개선하려는 노력도 없이 예산 감축에만 매달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사회복지사업이 통폐합 된다면 5천여 명이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 주장했다. 복지사업 축소가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동계의 반발만 있는 것이 아니다. 복지혜택의 축소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되는 장애인뿐 아니라 시민사회단체의 반발도 이어졌다. 74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전국복지수호 공동대책위원회(복지수호공대위)’도 정부가 추진 중인 ‘지방자치단체 유사·중복 사회보장사업 정비지침’의 철회를 요구했다.

이들은 “무엇보다 피해를 보는 당사자가 저소득층, 노인, 장애인, 아동 등 취약계층”이라며 “열악한 사회복지 종사자들과 사회복지 시설 역시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부 기초자치단체는 이 지침이 “지방자치권 침해”라며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하는 등 반발이 계속되고 있다.

사회각계의 반대가 이어지고 있지만 정부의 의지는 확고해 보인다. 지난 11월 11일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한 ‘제11차 사회보장위원회’에서 정진엽 보건복지부장관은 “사회보장 신설·변경 사업의 협의·조정 결과의 이행여부를 지자체의 경우 지방교부금에 연계하도록 한다”고 밝혔다.

즉, 지방교부세법 시행령을 개정해 정부의 지침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엔 지방교부세를 감액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 이상동 기자 sdlee@laborplus.co.kr
활동보조 서비스 부족에 생명 위협도

유사·중복 사업으로 분류 돼 지자체에서 축소해야하는 사업 중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장애인활동지원 서비스’다. 이 사업은 혼자서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을 하기 어려운 장애인들에게 활동보조인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등급에 따라 47~118시간(추가급여 10~273시간)을 제공받아 활동보조를 받을 수 있는데, 일부 장애인은 제공된 시간이 부족해 문제가 된다.

이런 경우 부족한 부분을 지자체에서 자체 복지사업을 통해 보충해 주고 있었는데, 이번 지침으로 인해 지자체가 보조하는 부분이 축소된다면 문제의 여지가 있는 것이다.

전국활동보조인노동조합은 활동지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고 했다. 활동보조인이 집으로 돌아간 늦은 밤에 불이나 장애인이 사망한 사례가 있다. 또한 호흡기 없이는 숨을 쉴 수 없는 근육장애인인데, 활동보조인이 퇴근하고 어머니가 돌아오는 사이에 홀로 있다가 호흡기가 빠지며 사망하는 사고도 발생했다.

이처럼 혼자 있을 때 문제가 발생하면 몸을 가누기 힘든 장애인에게는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위험이 된다. 현재 중앙정부의 활동지원 서비스만으로는 시간의 공백을 모두 채울 수 없는 것이다.

최근 가장 논란이 된 것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사업’이다. 보건복지부는 지자체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 대한 생활비 지원이 중앙정부 사업과 중복된다며 중단하라고 지시한다. 이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자 정부·여당은 지원이 계속될 것이라며 수습에 나선다.

유사·중복사업 선정 과정에서 제대로 된 검토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또한 복지수호공대위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 사례뿐 아니라 85세 노인이 받는 3만 원의 장수수당, 극빈층의 건강보험료, 장애인과 저소득층의 월동 난방비, 노숙인 지원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의 생존권이 걸린 문제가 정비 대상에 포함됐다”며 이번 정부의 복지 정비를 지적했다.

 ⓒ 이상동 기자 sdlee@laborplus.co.kr
중복 사례 없고, 유사 판단 어려워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지난 9월 발행한 ‘사회보장사업 유사·중복성 분석의 시사점과 정책과제’에서는 “사회보장사업 중 중복 사업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수급이력 분석 결과에서도 중복 수급하는 사례는 없는 것으로 확인 된다”고 밝히고 있다.

이 연구에서는 ‘동일 대상자에 대한 동일한 목적 및 급여유형’의 사업이 각각 (다른 부처, 부서, 동일 부서 내) 존재하는 경우를 중복 사업으로 판단했으며, 사업의 ‘목적·기능’이 동일하거나 유사하면서, 사업의 ‘대상 범위(전부 혹은 일부)’가 일치하거나, ‘급여유형(제공형태)’이 유사한 경우를 유사 사업으로 판단했다.

분석 결과 “동일 대상에 대한 완전히 동일한 목적, 동일한 수단(급여유형 등 지원내용, 운영방식)을 의미하는 중복사업은 발견되지 않았고, 사회보장사업의 수급이력 분석 결과에서도 급여의 중복 수급 사례는 없는 것으로 확인된다”고 전했다.

유사 사업에 대해서도 “세부사업 영역별 욕구 및 사업대상 특성, 사업의 성숙도에 따른 운영 여건의 차이 등이 감안되어야 하기 때문에 유사성 여부를 명확하고 일관된 기준으로 판가름하기는 어렵다”고 제시하고 있다.

이어, “기존 사업의 유사·중복성 검토에서 출발한 조정안의 마련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장기적 전망 속에서 수요자의 욕구 특성·규모를 중심으로 통합적 제도의 설계가 준비되어야 한다”고 했다.

“실증되지 않은 담론 차원의 유사·중복 논의는 막연한 불신과 복지 축소로 오도될 수 있으므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이상동 기자 sdlee@laborplus.co.kr
복지가 과할까?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복지가 과하면 국민이 나태해진다”고 말했다. 여당 대표가 생각하는 복지에 대한 인식 수준을 보여주는 발언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복지가 정말 과도한 것인지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다.

계속해서 언론에 보도되는 내용을 봐도 우리나라의 복지가 과하다고 생각하긴 어렵다. OECD 국가 중 우리나라의 GDP 대비 복지 예산 비율은 10.4%로 조사 대상 국가 중 최하위(28위)다. 가장 복지 예산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는 프랑스로 31.9%로 우리나라의 세 배나 된다. 우리나라의 복지 예산은 OECD 평균(21.6%)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인 것이다.

우리나라 자살률이 OECD에서 1위인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그 중 노인자살률 또한 1위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심각한 노인빈곤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노인 평균빈곤율도 OECD 1위인 것이다. 2013년을 기준으로 65세 이상 노인의 빈곤율은 49.6%다. OECD 평균이 12.8%인데 반해 4배나 높은 수치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는 무상보육, 빈곤 사각지대 완화, 장애등급제 폐지, 중증장애인활동보장 24시간 보장, 초등학교 온종일 돌봄교실 운영 등 많은 복지와 관련된 부분이 있다. 하지만 이중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 부분은 많지 않다. 사회서비스시장화저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후퇴하거나 폐기된 공약이 많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의 복지가 과해서 유사·중복 사업에 대해서 정비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사회보장위원회는 지난 8월 11일 유사·중복 사업에 대한 정비를 추진한다고 밝히며 “사회보장사업의 양적 확대에도 불구하고 유사 중복 복지사업 등으로 비효율을 초래하고 있어 지속가능한 복지 구현을 위해 정부는 복지재정 효율화를 추진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결국 복지재정 효율화를 위해 전국 지자체의 사회보장사업 5,891개 중 1,496개 사업을 정비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발도 거세다.

복지 중복 말하지 말고, 복지 예산 늘려야

일부 지자체에서는 “시의 6개 사업 중 단 한 건도 유사·중복 사업이 아니다”, “당장 폐기할 사업은 없다. 이름은 비슷하지만 수혜 대상자가 다르다”, “지침을 지키지 못하겠다. 3~4개 정도 정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유사·중복 사업에 대한 정비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지역 특수성을 감안해야 한다는 이유”로 자체 시행중인 사업을 계속 유지할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지자체의 복지사업은 중앙정부의 복지 사각지대를 채우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장애인 활동보조인 서비스와 사각지대의 소외계층을 위한 복지사업 외에도 사회복지 종사자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지원도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유사·중복 사업으로 분류됐다. 전국사회복지유니온의 김준이 위원장은 “사회복지계열의 노동자들이 적은 임금과 수당 등으로 대부분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다. 이를 견디지 못해 잦은 이직이 발생하는데, 이를 막자는 의미에서 지급됐던 보조 수당을 정부가 유사중복이라며 막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노동자들은 이번 통폐합으로 “5천여 명이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최보희 사회서비스공동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은 “정부는 사회복지를 지방자치단체에 떠넘겨 왔다. 지방자치단체는 각 지역에 맞는 사회복지서비스를 만들어 제공해 왔지만, 정부가 유사사업이라며 통폐합 하라고 한다”며, “그것도 과도한 복지라며 막으려 한다. 지금은 복지 중복을 말하는 것이 아닌, 복지예산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