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乙’에 대한 괴롭힘은 멈추지 않는다
‘乙’에 대한 괴롭힘은 멈추지 않는다
  • 장원석 기자
  • 승인 2015.12.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직장내 괴롭힘, 인사관리 무기로도 악용
법안, 노사 자율적 방안 마련 필요
[사건] 직장내 괴롭힘

왕따. 이 단어는 90년대 중반 처음 등장했다. 처음 등장했을 당시 왕따는 ‘미성년 학생 간의 집단적 괴롭힘’을 뜻하는 말이었다. 약 20년이 지난 2015년, 왕따는 특정 계층이 아닌 전 사회의 문제가 되었다. 사실 왕따의 확산은 개념이 퍼져나간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집단 곳곳에서 이어지던 왕따를 재발견한 것에 가까웠다. 특히 직장의 경우, 삶의 절반 이상의 시기를 보내는 집단으로 이 공간에서 일어나는 괴롭힘은 구조적, 만성적인 문제를 보인다.

 ⓒ 장원석 기자 wsjang@laorplus.co.kr
나가거나 자살할 때까지 계속할거야

A씨는 작년 여름, 한 중견기업에 취직했다. 모든 사람들이 취직이 되지 않는다고 아우성일 때 한 취직이라 더욱 값지게 느껴졌다. 하지만 열심히 일하겠다는 다짐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몇몇 사람들이 이유 없이 자신을 괴롭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군대에 있을 시절보다 더 심했다. 새벽 3시에 나오라고 시키거나 며칠이 걸리는 업무를 하루 안에 하라는 경우도 있었다. 못하면 사람들 보는 앞에서 큰 소리로 욕을 해댔고 머리를 툭툭 건드리기도 했다. 사람들마다 ‘저놈은 쓰레기’라고 험담을 하고 다녔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게 줘야 할 업무를 주지 않고 일부러 며칠씩 두고 있다가 줬더라. 악의를 가지고 조직적으로 괴롭힌 것이다.”

A씨는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로 노력했다. 처음에는 자신이 일을 열심히 한다면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에 부당해 보이는 지시에도 열심히 따르려 노력했다. 하지만 반년이 넘도록 괴롭힘의 강도는 더욱 심해질 뿐이었다. 견딜수 없었던 A씨는 당사자들에게 왜 자신을 괴롭히는지 물어봤다.

“무슨 애랑 말하는 줄 알았다. ‘어떤 것이 문제인지, 알려주면 고치겠다’고 말하니 ‘넌 지금 뭘 잘못한지도 모른다. 너랑 이야기하고 싶지도 않고 꼬우면 네가 나가던가 자살하던가 할 때까지 계속 괴롭히겠다’고 말하더라. 마음 같아서는 한 대 쳐버리고 그만 뒀으면 싶었지만 지금까지 노력했던 일들이 생각나 꾹 참았다.”

A씨는 이 대화 이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정리해 인사과에 상담을 요청했다. 결국 A씨를 괴롭히던 사람 4명이 징계를 당하고 다른 곳에 전출가는 것으로 사건은 정리되었다.

“이유가 정말 궁금했다. 그래서 인사과에 이유를 꼭 물어봐달라 말했는데 사건이 종료되고 며칠 뒤에 담당자에게 전화가 왔다. 옛날에 자기 차버린 남자친구랑 똑같이 생겨서 복수하고 싶었다는 것이 이유였다더라. 둘 다 헛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나는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다. 주위 사람들의 경우를 들어보면, 이런 괴롭힘을 당할 때 도와주는 사람도 방법도 없이 그저 견디다 퇴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경쟁업체 직원도 이렇게 하지 않는다

B씨는 한 건설업체에 영업직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B씨는 5년 동안 회사에서 일하며 중요한 공사를 따내는 등, 많은 성과를 나타낸 우수한 직원이었다. 하지만 지금 B씨는 회사에 사표를 제출한 상태이다.

“원래 작년까지 우리 팀에는 부장님과 차장님이 있었다. 이 두 분은 회사의 기둥이었다. 회사에 3개 팀이 있었는데 7년 가까이 다른 두 팀을 합친 것보다 많은 실적을 올렷다. 말 그대로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회사가 계속 성장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인간적으로도 배울 것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나도 그분들을 따라 몇 년 동안 열심히 일을 하며 많은 것들을 배웠다. 보람있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작년에 부장에게 병마가 찾아오며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오랜 기간 치료가 필요하기도 했고 정년이 다 되어서 부장은 퇴사를 하게 되었다. 그러자 부장을 따랐던 나머지 직원들에게 지금까지는 못했던 괴롭힘이 시작되었다.

“부장님 있었을 당시에는 입이 마르게 칭찬하던 다른 팀 사람들이 나가고 나니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 계속 유지해오던 팀 간 공조를 중지하는가 하면 매년 같이 가던 야유회도 B씨가 속한 팀을 제외했다. 이런 일은 시작에 불과했다. 같은 회사인데도 입찰 업무를 방해하는가 하면 유언비어를 퍼트렸다. 주차되어 있는 공간을 막아 입찰과 미팅에 늦게 만들기도 했다. 경쟁업체 직원들도 이렇게 하지는 않는다.”

나머지 두 팀이 합심해서 괴롭히니 방법이 없었다. 열심히 회사를 일구던 사람들은 하소연해보기도 하고 맞서 싸워보기도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하나둘씩 회사를 나가기 시작했고 회사 사정 역시 급격하게 나빠졌다.

“뭐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봤다. 얘기도 해보고 술도 한잔 사주고 찾아가서 뒤집어엎기도 해봤다. 소용이 없었다. 회사 내부에서 그렇게 괴롭히니 실적이 좋을 리가 없다. 적자가 이어지는 상황이 계속되었고 준비가 된 사람들은 회사를 떠나기 시작했다. 남은 사람들은 나가는 사람들을 ‘탈출한다’고 표현했다. 차장님은 책임감 때문인지 남아있으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퇴직하게 되었다.”

B씨는 하루하루 회사를 다니는 것이 고욕이라고 했다. 자신이 열심히 일구었던 회사가 무너지는 모습, 다른 팀원들의 조롱과 괴롭힘이 견디기 힘든 이유였다. 얼마 전 퇴사했던 차장이 작은 회사를 차리고 이직을 제안하자 B씨는 지금 직장보다 좋지 않은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이직을 결심했다.

“괴롭힘이라는 것이 학교나 군대 같은 곳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괴롭힘이 회사를 어떻게 망가트리는지 지켜본 입장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이 더욱 무섭게 여겨진다. 단순히 회사에서 왕왕 있는 직원 간 다툼이라고만 생각한다면 엄청난 결과로 돌아올 수 있다.”

 ⓒ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직장 내 괴롭힘, 인사관리 무기?

직장내 괴롭힘은 독일·스웨덴·영국·미국 등과 같은 선진국에서 1980년대 후반부터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되었다. 직장 조직에서 발생하는 따돌림 등의 괴롭힘을 최초로 연구한 레이만은 이를 ‘개인이 한명 이상에 의해 수개월간 잠재적으로 공격받는 사회적 상호작용’이라고 정의하였다.

사실, 우리나라의 직장내 괴롭힘은 1990년대 말부터 연구가 지속되었고 원인과 유형을 분류하려는 움직임 역시 계속되었다. 1999년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직장 내 집단괴롭힘 방지대책’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을 “사업주·상급자 또는 근로자들이 집단을 이루어 특정인을 그가 소속한 집단 속에서 소외시켜 구성원으로서의 역할 수행에 제약을 가하거나 인격적으로 무시 혹은 음해하는 정신적·육체적 가해행위”라고 정의하고 있다.

한국인사관리협회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의 행동유형을 ▲피해자의 적절한 의사소통의 방해 ▲사회적 관계의 단절 ▲피해자의 개인적 명성에 대한 위해▲피해자의 업무적 상황에 영향력을 행사▲피해자에게 위험한 업무를 부여하거나 타인이 신체적으로 위협을 가하는 행동의 다섯 가지 형태로 구분했다.

하지만 최근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또 다른 의견이 등장했다. 회사가 직장 내 괴롭힘을 묵인하고 때로는 조장해 정리해고와 같은 인사제도의 일환으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2014년 열린 ‘KT 직장 내 괴롭힘 실태조사 보고회’에서는 2014년 4월 명예퇴직과 이에 거부하는 인원들에 대한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증언이 이어졌다.

보고서에서는 “KT 민영화 이후 계속적인 구조조정 과정에서, 노동자들에게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침해하는 모욕적이고 차별적인 괴롭힘을 가하여 인력 퇴출을 유도해 왔다. 미행 등을 통한 지속적인 감시, 생소한 직무 부여, 잦은 직무 전환을 통한 실적 부진 유도, 원거리 발령, 조직 내에서의 따돌림 유도·방치 등이 전형적으로 동원되었다”고 밝혔다.

이어 “회사 전체에도 구조 조정을 무기로 하는 강박적인 성과 경쟁,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분할과 차별적인 업무 배분이 이루어졌기에 KT노동자들은 고강도의 스트레스에 상시적으로 시달려 왔다. 그 결과는 KT 노동자들의 높은 자살율과 돌연사율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최근 몇 년간 구조조정으로 인해 많은 노동자들이 퇴직당한 사무금융노동자의 사례도 이와 같다. KT사례의 연장선상 개념으로 25일 열린 ‘노동자 직장 내 괴롭힘 실태조사 보고회’에서도 구조조정을 위한 성과관리프로그램 운영과 노동자들에 대한 직장 내 괴롭힘 문제가 지적되었다.

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과 신경아 한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서선영 변호사 등은 카드, 증권, 보험 등 업무에 종사하는 사무금융노조 조합원 3033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실시했다. 조사 결과 응답자의 절반에 가까운 48.5%가 괴롭힘을 경험한 것으로 드러났다. 괴롭힘을 당하는 대상은 상사가 33.56%로 가장 많았고 임원·경영진이 10.45%, 고객·거래처가 6.86%로 나타났다.

유형으로는 ▲다른 사람이 보는 자리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망신을 주는 경우▲ 욕설이나 비꼬는 말▲ 해고 등 징계를 하거나 승진 등에 불이익을 줄 것이라는 위협▲ 외모나 행동특성을 짚는 호칭을 이용한 모욕▲ 뒷담화를 하거나 부정적 소문을 퍼트리는 경우▲ 달성 불가능한 목표나 기한이 촉박한 업무 배정 등 다양했다.

이로 인해 노동자들은 높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8.07%가 고도 우울증상을 보였으며, 심리상담이 필요한 경우가 27.93%였다. 또 자살을 생각한 응답자도 180명이나 되었다. 하지만 괴롭힘에 대한 대응은 미미한 것으로 드러났다. 다른 조치 없이 참고 지나갔다는 응답이 34.73%, 목격해도 ‘모른 체 했다’는 답이 59.57%였다. 이유에 대해서 ‘알려도 개선되지 않을 것 같아서’란 응답이 41.18%였다.

 ⓒ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법안은 걸음마, 노사 자율 대책 필요

이렇게 직장 내 괴롭힘이 사회적인 문제가 되는 현실에서 이를 근절하기 위한 대책인 무엇일까. 괴롭힘 하면 ‘이지메’를 떠올릴 만큼 사회문제가 된 일본에서는 2011년부터 대책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후생노동성은 ‘직장 내 괴롭힘 문제에 관한 원탁회의’ 및‘ 직장 내 괴롭힘 문제에 관한 원탁회의 워킹그룹’을 설치하고, 2012년에는 이 문제를 예방하고 해결하기 위한 제언 및 보고를 내놓았다.

그러나 대기업의 76.3%가 각종 대책을 마련한 반면, 종업원 99인 이하 기업에서는 18.2%에 불과했으며 노조의 65.5%가 부정적 답변을 해,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대책마련에 소극적인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지난해 개정된 노동안전위생법에 따라 12월 1일부터 일본의 모든 직장은 직원들에게 의무적으로 스트레스 검사를 실시하게 되었다.

현재 직장내 괴롭힘에 대해 적극적인 대응을 하고 있는 나라는 영국, 독일, 프랑스, 캐나다 퀘벡주, 포르투갈, 네덜란드 벨기에 정도다. 이들 국가는 직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차별 외에 직장 내 괴롭힘을 따로 규정하여 다루는 법을 제정하고 있다. 특히 프랑스는 2002년 1월 17일자로 사회선진화법을 제정하여 최초로 형법과 노동법, 공직자규정에 직장 내 괴롭힘에 관한 조항을 신설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떨까. 2013년 9월, 새정치민주연합 한정애 의원은 사용자는 직장 내 괴롭힘 예방 교육을 실시하고 또한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했을 경우, 행위자에 대하여 징계 등의 조치를 하고 피해자에게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조치를 못하게 하는 근로기준법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11월, 새정치민주연합 이인영 의원이 발의한 근로기준법개정안은 한정애 의원의 개정안에 더해 직장 내 괴롭힘을 ‘사용자나 근로자가 직위, 업무상의 우월한 지위 또는 다수의 우월성을 이용해 다른 근로자의 신체. 정신적 건강을 훼손하거나 인격을 침해하는 행위’로 새롭게 규정하고 피해 근로자 구제를 위한 가해자 입증책임을 지우는 내용이다.

하지만 한정애 의원의 개정안은 현재 2년이 넘게 환경노동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올해 역시 정부의 노동개혁 이슈에 밀려 상임위 상정은 요원해 보인다.

전문가들은 법안 마련 외에도 대기업을 시작으로 직장 내 괴롭힘 예방 교육과 활동을 정착해 확산하는 것이 필요하며 노동조합 측면에서도 단체협약을 통해 직장내 괴롭힘 규제 조항을 신설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