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곳>, 노동운동에 대한 편견을 뚫어라
<송곳>, 노동운동에 대한 편견을 뚫어라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5.12.15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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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노동운동 드라마 <송곳>
노동조합에 친숙하게 느낄 계기가 되기를
[사람]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10월 25일 최규석 작가의 웹툰 <송곳>이 종합편성채널 JTBC를 통해 처음으로 전파를 탔다. 한국 방송 역사상 최초로 노동운동을 주제로 한 드라마가 방영된 순간이었다. <송곳>은 프랑스계 대형마트 ‘푸르미마트’의 이수인 과장이 구고신 노동상담소장의 도움을 받아 노동조합을 만들면서 겪는 갈등과 승리의 경험을 그려냈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웹툰과 드라마를 구성하는 하나의 축을 형성한다. 극중 구고신 소장의 모델이라고 ‘알려진’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를 만났다.

 ⓒ 성상영 기자 sysung@laborplus.co.kr
노동운동 만화 <송곳>이 드라마로 제작됐다.  감회가 어떤가?

“가장 사실에 근접하게 노동문제를 표현하는 최초의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영화중에도 <카트>라는 영화가 있는데, <카트>와 <송곳>이 겹치는 부분이 있다. 까르푸(이후 이랜드에서 인수하여 ‘홈에버’로 변경) 510일 파업투쟁을 겪은 사람들 이야기니까. <카트>가 굉장히 훌륭한 영화이긴 하지만, 노동조합 결성 과정이 설립 총회만 나온다. 사실, 노동조합이 결성되기까지는 그 앞에 수많은 준비 과정과 갈등이 있다. 이것을 보여주는 최초의 만화가 <송곳>이고, 드라마는 대사나 여러 장면을 통해 이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노동문제를 다룬 다른 영화들을 보면 활동가들이 거칠고, 단세포적이고, 적극적이고, 투쟁적인데, 실제로는 안 그렇다. 그런데 뉴스에는 싸우는 모습이 자주 나오니까 노동운동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노동조합 내부에서 진행되는 심리적인 갈등이나 긴장관계를 사실에 근접하게 그린 만화가 송곳이고, 드라마가 거의 완벽하게 그걸 옮기고 있다. 드디어 한국에서 저런 드라마가 나오는 걸 죽기 전에 보고 죽는 구나 싶었다.”

일종의 기쁨 같은 건가?

“우려도 있다. 예를 들어서 ‘왜 노동 드라마를 JTBC에서 만드냐’면서 공격하는 사람들도 있다. JTBC가 중앙일보 계열이고 중앙일보가 삼성 계열이니까, 왜 노동조합이 없는 삼성에서 만드냐는 식으로 말한다. 그런데 JTBC에 노동조합 있다. 대개 노동운동에 대해서 평소에 비판적이었던 사람들은 송곳이라는 만화나 드라마의 약점을 잡는다. 이게 잘 되기를 바라는 시선보다 검증하려고 하고, 사실과 다른 걸 지적한다. 최규석 작가가 어느 인터뷰에서 지금은 비판보다 모범이 필요할 때라는 말을 했다. 한국 노동운동의 가장 중요한 주제가 그거다. 문제점을 비판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모범적인 걸 창안하고 확산시켜야 한다. 가장 개혁에 앞장서야 할 사람들이 노동운동을 비난한다. 깨어있는 사람을 우군으로 획득하기는 굉장히 쉽지만, 그것이 노동운동의 발전에 기여할지는 의문이다.”

극중 구고신 소장의 실제 모델이라는 얘기가 있는데?

“어느 누구도 ‘내가 구고신이다’, 이렇게 이야기할 수 없다. 그냥 구고신 이야기 속에 내 얘기도 섞여있다고 하는 게 맞다. 만화 속에서 나오는 사건들은 거의 다 실제 있었던 이야기다. 프롤로그에 보면 중국집에 들어가서 사장을 제압하는 장면 나온다. 그것도 전국을 다니면서 택배노동자들을 조직하는 활동가가 겪었던 거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음성 지원되는 느낌이라고도 하는데, 곳곳에 내가 한 이야기가 들어가 있다. 예컨대, 프랑스에서는 학생들이 1년에 여섯 번씩 노사교섭 연습을 한다거나, 대자보 쓰기, 언론 인터뷰하기까지 다 배운다는 것들이다. 또, 내가 노동상담을 할 때에는 구고신처럼 했다. 만화에서 구고신이 투석하는 장면은 부산에 있던 후배 이야기다. 구고신의 생김새도 그 사람 얼굴이다. 최규석 작가가 구고신의 모델이 나라고 한 건, 처음 만난 사람이 나라서 그렇다.”

한국에서 대중매체가 노동조합을 다루는 것은 낯선 일인데, 이 점에서 송곳은 어떤 의의를 가지고 있나?

“나는 그래서 최 작가가 사업장 업종도 마트로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미생>은 화이트칼라, <송곳>은 블루칼라 이야기가 되는 것 아니냐는 말을 한다. 금속노동자가 블루칼라의 전형적인 예이긴 하지만, 만약 <송곳>이 금속노동운동을 다뤘다면 제조업의 생산직이 아닌 사람들은 관심 없었을 거다. 우리나라에서 노동자라고 하면 일단 제조업체 생산직 육체노동자를 먼저 떠올리는 폐단이 있지 않나. 반대로 전형적인 화이트칼라 지식인 노동자들의 예를 다뤘다면 육체노동자들은 자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을 거다. 그런데 마트는 일상과 굉장히 밀접하고, 서비스업은 성격상 제조업과 사무직 중간쯤이다. 사람들에게 비교적 거부감을 덜 줄 수 있는 업종을 최 작가가 선택한 거다.

나는 노동조합에 대해 언론에 보도되는 투쟁적인 모습만을 보고, 그러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에게 친숙함을 줄 수 있는 데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본다. <송곳>은 노동조합이라는 존재를 일상에 가까이 있는 것으로 느끼게 하는 계기가 될 거다. 그리고 드라마에서 자주 보던 사람들이 노동조합 활동가들을 연기하니까.”

 ⓒ 성상영 기자 sysung@laborplus.co.kr
혹시 드라마에 카메오로 출연해 달라는 제의는 없었나?

“은근히 이런 제의가 있지 않나 싶은 기대는 했었다. 말은 안 했지만 주인공 얼굴을 혹시 내 얼굴로 하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그런데 최 작가가 내가 말하기도 전에 ‘하 선생님 얼굴은 너무 착한 인상이라 카리스마가 떨어져서 만화 주인공으로는 적합하지 않습니다’라고 딱 못을 박더라. 결국 만화에서 카메오로 나오긴 했다. 이름은 ‘하도강’으로 나온다. 드라마에서는 벌써 내 얼굴과 비슷한 사람을 섭외했더라.”

6화에서 푸르미마트 일동점 갸스통 점장이 이수인이랑 격렬한 말싸움을 한다. 갸스통이 한국인들은 노조를 가질 자격이 없다고 말하면서, 자신이 하는 노동 탄압을 ‘현지화’라고 표현했다.

“이수인의 실제 모델인 김경욱 이랜드노조 위원장이 여러 번 겪었던 일일 텐데, 사람들이 고민해야 할 지점을 최규석 작가가 정확하게 짚은 것이다. 그것과 연계되는 장면이 뭐냐면, 이수인이 처음 노동교육을 받는 장면이다. 그가 ‘프랑스는 노동자를 존중한다고 했는데 왜 우리 회사는 프랑스 회사인데도 노동조합을 탄압하냐’고 하니까 구고신 소장이 ‘여기서는 그래도 되니까’라며 딱 짚어준다. 프랑스 자본이 한국에서는 그렇게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내부의 심리를 보여준 거다. 그걸 이수인이 인종차별이라고 지적하는 것까지 이끌어간 거는 탁월한 전개다.”

현재 주임교수로 있는 성공회대학교 노동아카데미는 어떤 곳인가?

“한국사회가 특이한 게, 경제 규모는 선진국인데 노동문제를 이해하는 수준은 거의 140위 밖이다. 국민의 대다수가 노동자인데도 노동문제가 배제당하는 특이한 사회다. 자기가 노동자인데도 학력이 약간 높거나 회사 내 직책이 약간 높다고 해서 노동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현상은 다른 나라에는 없다. 이런 척박한 풍토에서 사람들에게 노동문제를 조금이라도 이해시키기 위한 지역사회 프로그램이 노동아카데미이다.

처음에는 나 같은 활동가들이 많이 왔다. 그래서 활동가를 배양할 수 있는 역할을 했다. 그때는 없었는데, 지금은 각 지역 조직마다 노동교육 프로그램이 많이 생기고, 규모가 큰 노동단체에는 노동교육 담당자들이 생겼다. 노동아카데미는 설립된 지 16년이 됐는데, 노동문제를 올바로 이해시키기 위한 교양과정 같은 거다. 그래서 노동조합 간부들도 많이 오지만, 노동문제를 올바로 이해하고 싶은 일반 시민이나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도 많이 온다.”

마지막으로 올 한 해 노동이슈에 관해 한 단어로 정리를 해달라

“너무 상투적이긴 하지만, 딱 떠오르는 말은 ‘권토중래’(한 번 패하였다가 세력을 회복하여 다시 쳐들어온다는 뜻)이다. 민주노총 창립 20주년을 맞으면서 민주노총을 점검하는 여러 가지 기획 기사라든지 글이 나왔는데, 최대의 위기 국면이라고 한다. 박근혜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혁’과도 싸워야 하고, 파업 몇 번 해봤지만 위력적이지도 못하고. 그런데 내가 이런 활동에 참여한 지 35년쯤 됐는데, 한국 노동운동이 지금까지 위기가 아니라고 한 적은 없다. 그래도 지금까지 잘 버텨왔지 않은가.

다른 사회운동도 마찬가지지만, 노동운동은 침체기와 고양기를 되풀이하면서 발전한다. 다만 침체기는 길고, 고양기는 짧다. 어쩌면 내가 죽기 전에 침체기가 안 끝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어떤 사회를 지향할 것인지에 대해 우리의 방향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장하준 교수가 미국에서 노예제도가 철폐되는 데 200년 걸렸다고 했다. 그러면 노예제도에 자기 인생의 뜻을 두고 열심히 싸운 사람 중에 노예제도가 철폐되는 걸 보지 못하고 죽은 사람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그런 사람들이 없었다면 노예제도가 철폐되지 않았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