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강한 존재들, 인류를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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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여와혁신
  • 승인 2015.12.15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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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로폼 분해하는 애벌레부터 신약 만들 흡혈충까지
작은 존재들이 인간 삶에 큰 영향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 시인은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지금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무엇이라도 언젠가 뜨겁게 타올랐을 연탄처럼 빛나는 순간이 있었다. 그 반짝임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에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러니 우리는 누구나 귀한 존재들이다. 하찮아 보이는 작은 것들의 활약은 연탄에 그치지 않는다. 인간이 ‘미물(微物)’이라 여기는 벌레도 자세히 살펴보면 멋진 능력을 품고 있다.

▲ 박태진 과학칼럼니스트
박테리아도 소통한다…

“번식 멈추게 유도할 수도”

생물 중에서 가장 단순하다고 알려진 박테리아. 사람들은 흔히 이 생물을 병을 옮기는 해로운 존재라고 여긴다. 또 번식 외에는 특별한 능력이 없다고 알기 일쑤다. 그런데 박테리아를 연구한 미국 UC샌디에이고 연구자들에 따르면 ‘박테리아도 서로 의사소통을 하면서 조직적으로 활동한다.

구롤 수엘 UC샌디에이고 교수팀은 박테리아가 모여 있는 곳에 형광염료를 넣고 관찰하는 실험을 했다. 이 형광염료는 전기가 흐르면 빛이 나 박테리아들이 소통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관찰 결과, 박테리아들은 내부에서 나오는 칼륨 이온을 이용해 전기신호를 주고받았다. 사람의 뇌에서 신경세포가 신호를 전달하는 것과 비슷한 방식이었다.

수엘 교수는 이런 행동이 박테리아 집단의 크기를 조절해 다 같이 살기 위한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박테리아 숫자가 너무 많아지면 먹이가 부족해서 안쪽에 있는 박테리아들이 죽을 수 있다. 이 정도가 되면 안쪽에 있는 박테리아가 바깥쪽에 있는 박테리아에게 신호를 보내서 번식을 멈추도록 하는 것이다.

다 같이 잘 살기 위해 소통하는 박테리아의 특성은 인간에게 유용할 수 있다. 최근 전 세계는 박테리아를 죽이는 항생제마저 이겨내는 슈퍼박테리아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들이 더 이상 번지지 않게 하는 방법으로 이번 연구결과가 도움을 줄 수 있다. 박테리아에게 전기신호를 보내 번식을 멈추게 하는 법을 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100만 년 있어도썩지 않는 스티로폼 해결사, ‘밀웜’

가볍고 오래 가는 ‘스티로폼’은 여러모로 유용하다. 음식을 상하지 않게 운반하거나 깨지기 쉬운 물건도 보호할 수 있다. 그런데 다 쓰고 난 스티로폼은 지구 전체의 골칫거리다. 재활용이 쉽지 않은데다 땅에 묻어도 100만 년이 지나야 분해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이 문제를 해결할 작은 영웅이 등장했다. 바로 갈색 거저리의 애벌레인 ‘밀웜(mealworms)’이다.

밀웜은 애완용 새 먹이로 잘 알려진 애벌레인데, 이들이 스티로폼을 먹고 소화시킬 수 있다는 게 밝혀졌다. 밀웜의 장 속에 있는 세균들이 스티로폼을 소화해 안전한 물질로 바꿔준 것이다.

미국 스탠퍼드대 토목공학과의 크레이그 크리들 교수와 중국 베이징대의 양준 교수 공동연구진은 밀웜 100마리에게 하루에 34~30밀리그램(mg)씩 스티로폼을 먹였다. 그러자 이들은 먹은 스티로폼의 절반을 이산화탄소로 바꿔서 배출하고, 나머지 절반은 대변으로 배설했다. 이 대변은 이건 식물을 기를 흙으로 쓸 수 있을 정도로 안전했다. 물론 밀웜의 몸 상태도 건강했다. 연구진이 찾아낸 스티로폼을 분해하는 세균을 더 연구하면 스티로폼을 분해하는 물질까지 개발할 수 있다.

피 빨아먹은 곤충에 반딧불까지 질병 치료에 활용

일본 마에대 연구팀은 흡혈곤충에서 신약 개발의 아이디어를 얻었다. 거북이 벌레의 일종인 ‘오오사시가메’는 침에 혈액이 굳지 않도록 만드는 단백질이 들어 있다. 오오사시가메는 이 단백질을 혈액에 주입해 피가 굳는 걸 막으면서 피를 빨아먹는다. 마에대 연구팀은 이 단백질의 성질을 이용해서 피가 굳어 혈전이 생기는 걸 막는 뇌경색 치료제를 개발하려 한다.

여름밤을 아름답게 수놓는 반딧불은 질병을 진단하는 데 쓸 수 있다. 스위스 로잔연방공대(EPPL) 연구진은 반딧불의 발광효소인 ‘루시페라아제’의 분자를 추출해서 암세포 같은 종양을 찾아내는 기술을 개발했다. 화학적으로 조작한 물질을 루시페라제에서 뽑아낸 분자에 붙여서 특정한 단백질에만 반응하게 만든 것이다. 이렇게 만든 물질은 암 같은 목표물을 만나면 빛이 나는데, 맨눈으로 보일 정도로 밝아서 암을 찾기에 아주 좋은 방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크기가 작아 보잘 것 없다고 여겨지는 세균이나 벌레들이지만 각자 한 가지씩 이상 멋진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들이 가장 능력은 아직 다 밝혀지지도 않았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벌레와 세균을 제대로 연구하면 인류의 삶은 지금보다 더 풍요로워질 것이다.

‘연탄재 발로 함부로 차지’ 말 듯 작은 존재들도 귀한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 언제 어느 시점에 누구의 능력이 빛을 발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 이치는 사람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누구 하나 귀하지 않은, 재능이 없는 사람은 없다. 올 연말연시에는 움츠러들어 있는 주변 사람들을 더 챙기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