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형 일자리의 주체는 바로 나다
광주형 일자리의 주체는 바로 나다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6.01.15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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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임금으로만 평가해서는 안 돼
소통·참여 확대 필요
커버스토리_광주형 일자리, 무엇을 할 것인가? ②

광주형 일자리 창출 모델을 통해 지역사회를 혁신한다는 밑그림은 그려졌지만, 이를 제대로 된 그림으로 완성하기까지는 아직 해결해야 할 일이 많다. 광주 지역의 노·사·민·정이 광주형 일자리에 대해 가지고 있는 서로 다른 생각을 하나로 모아가는 과정부터 쉽지 않다.

광주형 일자리 = 반값 일자리?

 ⓒ 광주광역시청
“광주형 일자리요? 아, 반값 일자리!”

지난해 현대자동차 관계자를 만나 광주형 일자리에 대해 물었을 때 처음 나온 말은 ‘반값 일자리’였다. 광주 지역 경제단체의 한 상근자는 공식입장이 아닌 개인의 의견이라는 점을 전제로 “이 모델이 실현돼 임금 4천만 원짜리가 생성돼가지고 100만 대를 생산한다면 현장 업체들로서는 확률이 1%라도 그에 대한 기대감이 있을 것”이라면서 “물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입장 차이가 있어서 중소기업에서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지만 대기업에서는 100만 대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 자체를 꺼린다”고 이야기한다.

이 이야기에서도 드러나듯이 기업들은 주로 임금을 먼저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지난해 초에 언론들에 광주형 일자리가 소개되는 과정에서 ‘연봉 4천만 원짜리 일자리 1만 개’라는 식으로 소개돼, 광주형 일자리의 연봉 수준이 4천만 원대라고 오인되고 있기도 하다.

광주광역시는 광주형 일자리의 임금과 관련하여 공식적으로 ‘적정임금’ 또는 ‘사회연대임금’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지방정부가 임금을 어느 수준으로 결정하라고 정해줄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다만, 기존에 광주 지역의 큰 임금격차를 해소하는 것은 꼭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의 임금수준은 기타의 사정을 제외한다면 대략 연봉 8천만 원 수준이다. 반면 주로 부품업체들이 모여 있는 하남산단 중소기업들의 임금수준은 연봉 2천만 원대 초중반이다. 이렇게 큰 임금격차를 해소하는 것은 사회통합 측면에서도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아가 상대적으로 낮은 물가수준을 고려하면 연봉 4천만 원이 광주에서는 그렇게 낮은 수준의 임금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광주광역시의 입장과는 달리, 임금과 관련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기곤 금속노조 기아자동차 광주지회 전 지회장은 “광주 지역에서 기아자동차와 다른 기업들 사이의 임금격차는 해결해야 할 문제인 것은 분명하다”면서도 “새롭게 일자리가 만들어지면 해당 기업의 노사가 협의해 임금을 결정할 것인데 미리부터 임금수준이 어느 정도라고 못 박는 것은 맞지 않다”고 말한다.

시민단체들 중에서도 임금과 관련한 문제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이 나온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모 시민단체에서는 “사실 광주형 일자리를 통해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고 지역경제를 살리자는 취지에는 동의한다”면서도 “그러나 4천만 원이라는 말이 나온 순간부터 이에 대한 격론이 벌어져 단체 내부에서도 입장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김동헌 광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처장은 “광주형 일자리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면 기업들이 저임금, 반값 임금이라는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서 “선진국들은 경제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려 소비를 하도록 유도함으로써 경제를 살렸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반대로 기업주만 배불리고 노동자의 임금은 깎자는 것 아닌지 우려된다”고 이야기한다. “자동차 100만 대 생산기지 조성사업의 예산은 반토막 내면서 광주형 일자리 부분을 보완하라고 요구하는 게 결국은 임금을 낮추겠다는 신호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 광주광역시청
임금 올라도 써야 할 돈이 더 많다

그동안 우리나라 노동조합운동은 조합원들의 임금을 올리는 데 주력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또 노동조합이 조직된 곳은 주로 대기업이나 공기업 및 공공기관들이었다. 임금인상의 혜택은 주로 노동조합이 조직된 곳에 집중됐고, 그러다 보니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임금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대기업 노동자들은 그렇게 올린 임금의 거의 대부분을 자녀교육과 내 집 마련에 쏟아 부었다. 자녀들의 사교육비로 얼마나 쓰는지 정확한 통계를 조사한 것은 아니지만, 기아자동차 광주공장 노동자들과 노조간부들은 “사교육비로 자녀 1명 당 월 100만 원 이상을 쓰는 노동자들이 적지 않다”고 말한다. 또 서울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택 가격이 싸다고는 해도 내 집 한 칸을 마련하기 위해 막대한 돈이 들어간다. 대출을 받아 내 집을 마련했다면 그 이자비용만도 무시 못 할 수준이다.

이 때문에 노동자들은 더욱 더 임금인상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조합원들의 표를 얻어야 하는 노동조합들은 이러한 조합원들의 요구를 따라가야 했다. 하지만 아무리 임금이 올라도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사교육비와 주택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높은 임금인상 요구와 치솟는 사교육비·주택 가격이 악순환을 반복한 것이다.

물론 그 와중에도 사교육비는커녕 하루하루 삶을 걱정해야 하는 노동자들도 부지기수다. 이들이 근무하는 기업은 환경이 열악한 중소기업이 대부분이고 그 중 많은 수가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에 납품하는 납품업체다. 광주에는 이러한 노동자들이 하남산단을 비롯한 산단지역에 밀집해 있다. 기아자동차와 납품업체들 사이에 3배가 넘는 임금격차를 보이는 경우도 많다.

광주형 일자리에서 이야기하는 적정임금은 이러한 임금격차를 해소하자는 취지다. 결국 적정임금은 기존에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의 임금수준과 부품업체들의 임금수준 사이에서 결정될 것이라는 점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문제는 높은 임금인상과 치솟는 사교육비·주택 가격의 악순환을 어떻게 끊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지금까지는 이 같은 문제를 개별기업과 개인에게 떠넘겨 왔다. 대기업에서는 임금인상을 통해 이 문제를 우회했지만, 중소기업은 그럴 여력이 없어 노동자 개인에게 문제를 떠넘겼다. 그리고 사회는 이 문제를 사실상 방치해왔다.

그런데 지금까지와 같은 방식으로 문제를 떠넘기거나 방치한다면 광주형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필요한 적정임금이 노동자들에게 설득력을 가질 수 없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선 교육계를 포함한 지역사회 차원의 합의와 노력이 필요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적 차원에서 이 같은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지원해야 한다. 시민단체를 비롯한 ‘민’이 역할을 해야 할 대목이다.

 ⓒ 광주광역시청
문제 해결 노력, 영역별로 분산

하지만, 아직까지 이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곳은 드물다. 다만 광주형 일자리와는 별개로 각각의 영역에서 당면하고 있는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하기 위해 시도하는 곳은 찾아볼 수 있었다.

우선 광주광역시교육청에서는 사교육의 폐해를 줄이고 공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한 시도를 진행하고 있다. 이재남 광주광역시교육청 정책기획관은 “그동안 한 줄 세우기 입시경쟁교육을 완화시켜서 성적에 관계없이 누구나 자기 진로와 직업을 찾아 다양하게 삶의 경로를 찾아가게 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면서 “혁신학교나 방과후 공익재단, 마을교육공동체 등을 통해 학생들에게 입시경쟁이 아닌 다른 경로를 열어줄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물론 현실적인 고민이 없는 건 아니다. 예컨대 방과후 공익재단을 통해 방과후교실이라는 이름으로 학원 못지않은 경쟁력을 갖추도록 하겠다는 정책에 대해서는 학교가 너무 많은 것을 빨아들이려 한다는 비판이 따라붙는다. 그렇다고 강제적인 자율학습을 못하게 하는 것은 학생들을 학원으로 내모는 듯한 착시현상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우려와 비판에도 불구하고 광주광역시교육청에서 추진하는 공교육 정상화 정책은 결국 노동자들의 사교육비 부담을 덜기 위한 방안 중 하나로 고민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광주광역시교육청만의 시도로 그치지 않고 지역사회로 더 확장돼야 하는 이유다.

광주경실련은 주거 문제와 관련해 거품을 빼기 위한 대안을 고민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각 지자체마다 설치돼 있는 부동산평가위원회 회의록을 공개하도록 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회의록이 공개되면 거품이 낀 분양가를 그대로 인정하는 관행에 제동이 걸리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는 실제로 전북 전주시에서 시도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전고필 전라도지오그래픽 청년문화기획자 육성사업단 총감독은 현재 우리 사회가 당면한 각종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로 마을공동체에 주목한다. 전고필 총감독은 “손가락질 받던 공돌이가 아니라 이웃 아저씨, 친구 아버지와 같은 인격체로 인정받을 수 있는 공간이 마을”이라면서 “거창한 프로젝트가 아니라 망치질이나 자전거 수리와 같이 각자 잘할 수 있는 것을 통해 개인들이 가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공간이 마을공동체이고 그런 마을공동체가 모여 광주라는 지역공동체가 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전고필 총감독은 “문화는 곧 삶 그 자체”라면서 각자가 자신이 살아가는 공간에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주체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문화기획자의 역할이라고 강조한다. 지자체가 지원해야 할 부분도 그런 공간으로서의 마을공동체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요컨대 소소하게라도 각 개인이 잘할 수 있는 부분에서 주체로 나설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지자체의 역할이라는 주장이다.

흔히 광주를 예향(예술의 고장)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이런 이야기가 무색할 정도로 광주에서 열리는 전시나 공연 같은 문화행사가 적어 광주시민들이 접할 기회가 많지 않다. 전고필 총감독이 이야기한 직접 참여뿐만 아니라 광주시민 모두가 큰 부담 없이 향유할 수 있도록 다양하고 수준 높은 문화행사를 확대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는 노동자들을 포함한 광주시민들의 삶의 질을 올리는 길이기도 하다.

이렇듯 개별적인 영역에서의 노력이나 시도는 나름대로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시도들이 아직까지 하나로 모아지지는 않고 있다.

 ⓒ 광주광역시청
남의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

이 외에도 소통과 참여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곳도 있다. 허연 참여자치21 공동대표는 “광주형 일자리를 만들어보겠다는 시도 자체는 긍정적”이라면서도 “윤장현 시장은 시민단체를 대표해 선출된 시장이어서 기대가 컸지만, 역대 시장 중에서 가장 소통이 안 되는 시장이라는 게 시민단체들의 일반적인 정서”라고 이야기한다. “정책을 추진할 때 형식적으로는 공청회나 토론회 등 의견수렴 과정을 거치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정책을 수정하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우려는 광주형 일자리와 관련된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된 지 1년이 지났지만,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 수 없다는 한 택시기사의 이야기와도 맥이 닿아 있다.

물론 자동차산업밸리추진위원회와 같이 시민단체와 학계를 주축으로 한 위원회가 구성돼 활동을 하고 있기는 하다. 광주 지역의 대학생이나 특성화고 학생들이 광주형 일자리의 모델이 되고 있는 일본의 키타큐슈 지역을 방문해 견학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각종 토론회 등을 통해 광주형 일자리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등 지난 한 해 동안 많은 활동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더 많은 시민들이 더 폭 넓게 참여하고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은 아직까지 부족한 실정이다. 물론 사업이 구체화되는 단계이기 때문에 이런 문제들은 점차 보완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이 때문에 허연 대표나 앞서의 택시기사와 같은 비판도 나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광주형 일자리가 노·사·민·정이 상생협력을 통해 함께 만들어가는 일자리라면 시민단체를 비롯한 지역사회 차원의 참여는 꼭 필요하다. 참여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우선 폭 넓게 소통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광주형 일자리 창출 모델이 광주광역시가 추진하는 정책일 뿐만 아니라 광주시민들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정종현 자동차산업밸리추진위원회 사무국장은 이와 관련해 “자신의 일자리가 불안정한 것을 걱정하고 자녀가 학교를 마치고 갈 수 있는 일자리가 부족한 것을 고민하는 모든 광주시민들이 바로 광주형 일자리의 주체”라고 강조한다. 남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