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단계 하도급, 그 끝없는 먹이사슬
다단계 하도급, 그 끝없는 먹이사슬
  • 박경화 기자
  • 승인 2006.09.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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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건설업체-십장-실행소장-팀·반장-현장노동자층층 거치면서 최초 시공비 절반까지 떨어져

▲ ⓒ 김창기 기자 ckkim@laborplus.co.kr

연일 계속된 찜통더위로 공사장 주변의 흙먼지마저 몸에 척척 감기는 8월의 오후 충남 아산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

공사장에 들어서자 판때기를 깔거나 아니면 그마저도 없이 아무렇게나 너부러져 조각잠을 청하는 건설노동자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10분만 서 있어도 살이 따끔거리는 햇볕을 가려줄 천막 하나 없어도 모두들 달게 잠에 빠져들어 있다. 또 다른 쪽에는 자갈밭 바닥에 식판을 깔아놓고 점심을 해결하고 있는 무리도 눈에 들어온다. 가건물로 지어진 식당은 이미 만원, 간신히 식판을 받아든 사람들이 계속해서 바깥으로 밀려 나온다.

▲ ⓒ 김창기 기자 ckkim@laborplus.co.kr

4단계는 기본, 심한 곳은 7단계까지
5백여 명이 일을 하고 있는 이 현장에 원청에 해당하는 종합건설업체 직원은 총 28명. 나머지는 전문건설업체라 불리는 하청회사 직원들과 건설일용직 노동자들이다. 현장에 들어와 있는 전문건설업체는 모두 여덟 곳인데 토목, 철근, 미장 등 특정 분야별로 면허를 가지고 있는 건설업자들이다. 여기까지가 합법적 하도급으로, 원청(종합건설업체) 쮡 하청(전문건설업체)의 2단계 구조다. 전문건설업체가 다시 다른 업체에 도급을 맡기는 ‘재하도급’은 건설산업기본법 상 금지되어 있다.
하지만 이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중 전문건설업체에 소속된 노동자는 200여 명이 채 안 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나머지 300명은 어떻게 건설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형님 보면 안 된께, 쩌그로 가서 얘기합시다”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 노동자에게 말을 붙이자 꺼리는 기색이 역력하더니 식당 뒤쪽으로 안내한다. 식당 뒤쪽에 그의 동료들인 듯한 노동자들이 담배나 커피를 들고 쭈그려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다.

이들이 말하는 ‘형님’이란 자신들이 이곳에서 일하도록 알선한 오야지(십장)다. 십장들은 전문건설업체에서 재 하도급을 받아서 사람들을 열 명에서 스무 명 씩 모집해 현장에 투입하는 일을 한다. 여기에서 끝이 아니다.

무리에 끼어 있는 사람 중 한 사람은 자기는 “십장 소속이 아니라 반장 소속”이라고 말했다. 십장이 다시 다른 십장에게 재하도급을 줘서 사람을 모집했다는 것. 여기까지만 해도 4단계의 하도급이 이뤄지고 있는 셈.

30대 중반에 사업을 “털어먹고” 건설현장을 전전한 지 20년 이라는 김철영(52·가명)씨는 “전국의 건설현장 안돌아 본데가 없지만 4단계까지는 그래도 양반”이라면서 “심하게는 7단계까지 하청이 내려가는 경우도 있다”고 말한다. 단계가 종합 건설업체 → 전문건설업체 → 십장 → 실행소장 → 팀·반장 → 팀·반장 → 팀·반장 … → 현장 노동자’로 층층이 이어진다는 것.

점심식사 후 잠깐의 휴식시간. 하지만 이들에게는 잠시 몸누일 공간조차 없다.

▲ ⓒ 김창기 기자 ckkim@laborplus.co.kr

■ 떨어지는 단가, 바닥을 모른다

더 얘기를 나눠볼 틈도 없이 점심시간이 끝나는 종이 울린다. 사람들은 “하소연 해봤자 무슨 소용이냐, 한 푼이라도 더 벌자”는 농(?)을 던지며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갔다.

이제 막 10여 층이 올라가고 있는 아파트 내부로 들어가자 부부로 보이는 두 명의 목수가 천정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다. 남편인 이모(51)씨는 ‘오야지’ 오기 전에 얼른 얘기하고 나가라며 담배를 한 대 피워 문다. 함께 일하고 있는 이 씨의 부인은 현장 사람들 말로 ‘데모도’(조공(助工)의 일본어로 허드렛일을 맡아하며 조수 역할을 하는 사람)다. 예전에는 숙련기능공이 한 명의 조공을 데리고 다니면서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엔 숙련기능공의 임금이 계속 떨어져 조공을 따로 고용할 수 없다는 게 이 씨의 설명이다.

“마누라 데리고 다니면서 일을 하니까 그나마 애들 학교도 보내는 거지. 지금 이렇게 해도 둘이서 하루 종일 일해 15만원을 못 버는 날도 부지기수야.” 이 씨는 “10년 전만해도 ‘단가’가 좋았는데, 매년 오르지는 않더라도 떨어지지는 말아야 할 것 아니냐”고 하소연한다.

“몇 년 전엔 10만원 하던 게 이제 7만원이고, 점점 떨어져요. 그게 다 중간에서 등 쳐먹는 사람들 때문이야” 두 부부가 하루종일 일해 15만원을 번다지만 이것도 일정한 수입이 아니다. 장마철이나 겨울철 등 비수기를 제외하면 1년에 제대로 일하는 날은 200일이 채 못 된다고 한다.

이 씨 부부가 작업하는 옆 칸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공사장에서 가장 힘들다는 천정공사는 하루 종일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어야 하는 데다 단가도 낮아 대부분 외국인 노동자들 몫이다. 얼마나 받느냐는 질문을 이해 못한 듯 한참 기우뚱 거리던 필리핀인 노동자가 “한 개 다…, 16만원”이라고 더듬더듬 대답을 한다. 43평짜리 아파트 하나의 천정을 모두 마무리하면 16만원을 받는다는 뜻이라고 이 씨가 귀띔을 한다.

“그래도 우덜은(우리는) 그중 낫지, 쟈들(외국인 노동자들) 데려오는 십장 놈은 아주 나쁜 놈들이야, 중간에서 절반 넘게 뚝딱 해 먹는다고. 그래도 우리말을 아나 법을 아나, 그냥 주는 대로 받는 거지.”

■ “사람 꼴 좀 해서 살자는 거 아니요”
외국인 노동자들과 몇 마디 나누고 나서는 통 말을 붙여볼 데가 없다. 다들 작업에 열중인데다 눈치가 보여서인지 쉽게 말문을 트지 않는다. 일부에서는 “포항에서 일 터졌다고 빤짝 관심인 모양인데 반갑지 않다”며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오후 세시가 지나자 햇볕의 따가움이 절정에 달한다. 여기저기 솟아올라 있는 철근에서 닿기만 해도 데일 듯 열기가 뿜어져 나올 즈음, 빨간 ‘고무다라’에 빵과 두유가 담겨 올라온다. “먹고들 하자구~!” 소리에, 사람들이 연장을 내려놓고 속속 모여든다. 간식시간이라고는 하지만 햇볕을 피해 편하게 두 다리를 뻗을 공간도 없이 있던 자리에서 연장만 내려놓으면 거기가 바로 휴게실이다.

아파트 꼭대기 층, 입맛도 태워버릴 듯한 땡볕 아래지만 사람들은 게 눈 감추듯 빵 한 봉지를 치운다.
“징하게 덥구만. ××” 허리춤에 찬 못 주머니를 풀러 놓으며 김철주(48·가명)씨가 험한 소리를 내뱉는다. “옌장, 쉬는 시간만이라도 그늘에서 한숨 잤으면 좋겠구만” 왜 휴게시설이 없느냐는 질문에 고운 소리가 나올 리 없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요. 식당도 모자라 자갈밭에서 밥을 먹는 거 못 봤어요? 땀범벅인데 얼굴에 물 좀 묻히려 해도 수돗가가 천리니 웬걸, 퇴근할 때는요, 샤워도 못하고 집에 가요. 애들 보기 창피해서 시내 사우나에 알아봤더니 한 달에 10만원이래나, 일당보다 더 비싸니 엄두가 나나…”

옆에서 애꿎은 빵 봉지만 만지작거리던 다른 노동자가 묻지도 않았는데 포항 얘길 꺼낸다. “이번에 포항에서 대차게 한판 했다며? 그것 땜에 온 건가? 모르긴 해도 우리랑은 사정이 많이 다를 거요. 거긴 아파트보다도 어마어마한 공장이잖소. 그렇지만 이거 하나는 똑같다구. 사람 꼴 좀 해서 살아보자는 거 그거 하나는 똑같은 거지.”

■ 쥐꼬리 일당도 그나마 ‘쓰메끼리’로 뜯겨
포항 얘기가 나와서 인지. 사람들이 하나 둘 입을 연다. 포항건설노조의 요구사항이었던 주5일제 실시와 토요일 유급휴일화에 관해 얘기를 꺼내봤다.

현장까지의 거리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통상 건설 일용노동자들은 새벽 다섯 시쯤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한다. 현장에 도착하면 6시 반, 그러면 20~30분 정도 빵이나 라면 등을 먹고 아침체조를 한 후 7시부터 작업에 들어간다. 12시부터 1시까지는 점심시간, 그리고 오후 새참을 먹고 보통 7시 반까지 일을 한다.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꼬박 열두 시간을 일하는 셈이다.

“8시 나와서 5시 퇴근할 수도 있기야 있지, 하지만 그리 해버리면 하루에 5만원도 못 버니까. 나는 기계다, 공구다, 생각하고 돌아야지, 사람이라고 치면 못하는 일이에요. 단가가 똑바로 돼 있어야 뭘 해먹지”

건설 일용직 10년차라는 양철근(46·가명)씨가 말을 거든다. “그것도 그렇지만 쓰메끼리가 더 문제에요. 한 달씩 돈을 깔고 주는 게 이판 생리인데 이달에 일한 돈 다음 달에 나오니까 하루 벌어먹는 사람들은 죽을 맛이지.”

‘쓰메끼리’란 건설현장의 오래된 관행으로 일종의 유보임금이다. 임금을 제때 주는 것이 아니라 일정 기간이 지난 후 지급하는 것. ‘노가다 경력 20년’이라는 김모 씨는 “IMF가 오기 전에는 5일 정도 ‘까는’ 게 보통이었는데, 그 후에는 2달, 3달은 보통이고 심지어는 4달까지 ‘까는’ 경우도 있다”고 전한다.

유보임금은 건설노동자의 삶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일당을 받기 위해 몇 달 기다리는 동안 여기저기서 돈 빌려 쓰다보면 일당을 받아도 빚을 갚는 데 다 들어간다”는 게 이들의 하소연이었다.

이렇게 공사와는 관계없이 공사금액이 유실되면서, 실제로는 설계가 대비 30~47% 정도의 금액으로 공사가 진행된다. 때문에 최종단계에서 노동자들의 임금이 깎일 수밖에 없고, 체불임금이 발생해도 어디에 호소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한다.

▲ ⓒ 김창기 기자 ckkim@laborplus.co.kr

■ 현장노동자 등골 빼는 시공참여자제도
건설 노동자들의 또 다른 고충은 일명 ‘오야지’(십장)들의 권한 남용이다. “십장한테 잘 못 보이면 몇 달치 임금을 못 받는 일도 있고, 어떻게 돈을 받았다 해도 밉보이면 다음번엔 일을 떼이기도 해요. 또 깔아놓은 임금(쓰메끼리)을 들고 날라버리면 받을 길도 없고 막막하지.

”‘오야지’가 들을세라 나지막이 말을 잇는 김형근(52·가명)씨도 지난 가을 모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세달 치 임금을 받지 못했다. “업체에 얘기해도 십장이랑 계약한 거니까 십장한테 알아보라고 하지, 그놈(십장)은 나르고 없지, 결국 날렸지 뭐. 하도 억울해서 그놈 잡으러 다닐까 생각도 해봤지만 내가 손놓고 그놈 잡으러 다니면 누가 그동안 대신 일 해주는 것도 아니고…” 그는 과거에는 없던 이런 관행들이 ‘시공참여제도’가 도입된 후에 생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공참여자제도는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계기로 건축물의 실제 시공담당자인 십장(오야지)을 양성화해 부실공사를 방지한다는 취지로 97년부터 도입된 제도다. 그러나 건설산업기본법의 재하도급 금지 규정이 ‘시공참여자’를 예외로 한다는 점이 악용되어 다단계하도급 확산의 원인이 되고, 전문건설업체들이 시공참여자에게 4대보험과 임금체불의 책임을 떠넘기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일부 업체에서는 산재책임을 시공참여계약서를 통해 인력 동원하는 십장에게 돌리기도 한다.

포항건설노조원들도 잦은 임금체불과 건설현장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근본 원인으로 시공참여자제도를 지목하고 이 제도의 폐지를 주요 요구안으로 내걸기도 했다.

■ “코너에 몰리면 쥐도 고양이를 물지”
“우리 같은 무지렁이들이 뭘 알겠어요. 다단계 하도급이니 시공참여제도니 그런 건 몰라요. 하지만 층층이 내려오면서 우리 주머니로 들어올 게 딴 데로 샌다는 것쯤이야 이 바닥 생활 1년이면 빤하지. 그게 나쁘다는 말은 10년 전부터 나왔는데 어째 아직도 이 모양인지….” 10년을 운영하던 봉제공장이 외환위기 때 부도가 난 이후로 공사판을 전전했다는 이중근(56·가명)씨는 “그래도 해결할 사람은 정부 밖에 더 있냐”며 “그 사람들(포항건설노조원들)이 목숨까지 내 놓으면서 그렇게 했는데 뭔가 달라지지 않겠냐”고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아산의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무지렁이’ 노동자들과 하루를 마감할 즈음 건설교통부가 시공자참여제도 개선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건설산업기본법개정안’을 내 놓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기뻐하지 않았다.

“한 번 사고를 쳐야 뭔가 하는 척이라도 하니, 쯧쯧”하는 자조와 “그것도 다 한때 뿐”이라는 냉소만이 들려왔다. “잘했든 못했든 그거(포항 건설노조파업) 보면서 어쨌든 우린 속이 다 시원했다구. 손가락질만 할 게 아니라 오죽했으면 그 사람이 그랬는지 잘 생각해 봐요. 코너에 몰리면 쥐도 고양이를 문다고 했는데…”

사람들은 이런 대화를 나누며 다시 일속에 파묻혔다. 그들이 짓고 있는 아파트는 ‘왕족이 사는 집’을 뜻한다는 화려한 영어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씻을 곳이라도 있어 ‘사람 꼴로’ 퇴근하고 싶다는 한 노동자의 말이 내내 귓전을 떠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