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건도 어차피 민사의 일부?
노동사건도 어차피 민사의 일부?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6.01.15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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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2015 ‘최악의 판결’ 모두 노동사건
노동문제 특수성에 현저한 시각차
[사건]노동법원 논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은 해마다 법원 판결을 분석해 걸림돌 판결과 디딤돌 판결을 선정해 발표한다. 지난해 걸림돌 판결 중 민변이 ‘최악의 판결’로 꼽은 것 중 하나는 KTX 승무원들의 근로자지위확인에 관한 대법원 판결이다.

이외에도 굵직한 노동현안이 법정에서 다뤄지곤 한다. 2013년에는 통상임금 소송이, 2014년에는 쌍용차 정리해고 관련 소송이 대법원에서 다뤄졌다. 노동문제가 법정으로 가는 경우가 많은 만큼 노동사건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노동법원이 설치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 참여와혁신 DB
돌에 맞은 개구리

무심코 던진 돌에 종종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 요즘은 돌 몇 개 던져봐야 맞아죽을 개구리도 없겠지만, 이 속담은 말이든 행동이든 신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땅바닥에 돌 하나 던지는 것처럼 사소한 일이라 할지라도 다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라는 게 조상들의 가르침이다.

법원의 판결은 더 그래야 할 것이다. 물론 사법부의 판사들이 판결을 무심코 내리지는 않을 것이라 사람들은 믿는다. 하지만 소송 당사자들의 운명을 판가름하는 것이 곧 판결인 만큼 재판은 신중히 이루어져야 한다는 데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민변은 지난 2010년부터 법원의 판결 중 ‘디딤돌 판결’과 ‘걸림돌 판결’을 선정해 오고 있다.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들의 권익 신장에 도움이 된 판결을 디딤돌로, 그 반대의 판결을 걸림돌로 선정한다. 그중에서도 최고의 판결과 최악의 판결을 가려내는데, 3년째 최고의 판결은 선정되지 않았다. 반면 지난해 최악의 판결은 선정위원들의 치열한 논쟁 끝에 두 건이 선정됐다. 그중 하나가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한국철도공사(코레일)의 KTX 승무원 직접고용을 인정하지 않은 대법원 판결이다.

KTX 승무원들이 한국철도공사(코레일)를 대상으로 낸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의 경우 1·2심을 거치며 최종 판결까지 무려 7년을 끌었던 재판이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한국철도공사가 KTX 승무원들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코레일은 대법원에 상고했고, 작년 2월 대법원은 결국 코레일 측의 손을 들어준다. 당시 대법원이 원고 패소 취지로 원심을 파기환송한 이유는 ▲ 철도유통의 독자적인 인사권 행사 ▲ 열차팀장과의 업무 구분 ▲ 피고 측의 구속력 있는 지휘·명령 부재 ▲ 업무수행 방식에 관한 결정권 행사 등이었다.

또한, 대법원은 지난 2014년 11월 쌍용차 정리해고가 적법하다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경영상의 긴박한 필요’에 의한 정리해고라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그리고 대법원은 회사 측이 정리해고를 회피하기 위한 노력을 했다고 봤다. 해당 판결은 민변이 꼽은 2014년 최악의 판결로 선정됐다.

2014년과 2015년 두 해 모두 ‘최악의 걸림돌’로 뽑힌 판결들은 모두 노동문제를 다룬 것이었다. 그런데 KTX 승무원 직접 고용 불인정 판결 이후, 투쟁에 함께해 왔던 한 명의 KTX 승무원이 자살했다. 그리고 5년 동안 이어진 쌍용차 정리해고 재판 과정에서도 스무 명이 넘는 해고노동자들이 질병으로 사망하거나 자살했다. 오랜 기간의 재판과 노동자에게 불리한 재판 결과가 이들을 죽음으로 이르게 한 직접적인 원인으로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회사와의 갈등 속에서 노동자들이 마지막 희망을 갖고 찾아가는 곳이 법원이다. 노동자들은 대체로 돌을 던지는 사람이라기보다는 돌에 맞는 개구리에 가깝다.

 ⓒ 참여와혁신 DB
사법부가 노동을 대하는 자세

법학이나 정치학에서 평등 개념을 설명할 때, 흔히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라는 비유를 곁들인다. 이 표현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론>에서 인용한 것으로,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에게는 같은 몫을 나누어주고, 다른 처지에 놓인 사람들에게는 다른 몫을 나누어주는 것이 정의에 부합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것이 헌법 제11조 제1항의 내용이다.

그런데 문제는 노동의 사용자와 노동자 중에서 누가 더 나은 처지에 놓여 있는가, 혹은 둘 사이의 관계에서 누가 더 우위에 있는가 하는 것이다. 하지만 민변이 2014년과 2015년에 각각 ‘최악의 걸림돌’로 꼽은 두 판결을 볼 때, 이러한 문제에 대해 사법부의 판사들이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민변은 대법원의 보수화와 노동·인권에 대한 이해도 부족을 지적한다. 이들은 2015년 걸림돌·디딤돌 판결을 발표하면서 “하급심에서 의미 있는 판결을 내리더라도 최고법원에서 이러한 하급심의 판결을 지지하지 않고 폐기하거나 오히려 최고법원이 국민의 기본권을 외면하는 결정을 하는 경우가 많았던 사법부의 경향”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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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법원 둘러싼 노사정의 다른 시각

일각에서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노동문제에 대한 사법부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영국이나 프랑스, 독일처럼 노동법원을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이미 설치되어 운영 중인 행정·가정·특허법원처럼 노동 관련 분쟁을 다루는 전문법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주장은 이미 오래 전부터 제기돼 왔다.

1996년 노동관계법·제도 개혁안 마련을 위한 대통령 자문 노사관계개혁위원회에서 노동법원 설치 방안이 제시되었다. 2002년에는 노사정위원회에서 노동위원회 제도 개선방안을 논의하면서 다시 한 번 노동법원 설치 방안을 논의했다. 그리고 대법원 사법개혁위원회에서도 2004년부터 꾸준히 노동법원 설치를 논의했으나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다. 최근 사례로 2013년에는 더불어민주당(당시 민주통합당) 최원식 의원이 노동법원 도입 관련 법률안을 발의하였으나 현재 계류 중이다.

2004년 대법원 사법개혁위원회에서 노동법원 설치를 논의할 당시 노사정 각각으로부터 의견을 들었는데, 서로 다른 입장을 나타냈다. 정부(노동부, 현 고용노동부)와 사용자 측은 노동법원이 필요하지 않다는 의견을 낸 반면, 노동계는 노동법원 설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정부 측은 노동분쟁의 특수성을 감안해 사법제도의 개선방안을 찾자는 취지에는 공감했다. 그러나 기존의 노동위원회를 대체하거나 기능 일부를 이관하는 것을 전제로 한 노동법원 도입은 안 된다고 주장했다. 노동쟁의 조정의 경우 당사자 간 이익분쟁에 대해 제3자(노동위원회)가 조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법제도와는 맞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또, 정부는 부당해고나 부당노동행위 심판과 구제 절차가 현재도 보장되고 있다고 보았다.

사용자 측에서는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의견을 냈었는데, 정부보다 더 강한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경총은 노동계가 제안하기 이전에는 노동법원의 신설에 관한 특별한 논의가 없었고,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기존 노동위원회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경총의 주장에 따르면, ▲ 법리보다 정황을 고려한 편향적 판정 ▲ 노동위원회 제소의 남용과 처리기간 장기화 ▲ 조정전치제도의 요식화 경향 ▲ 공익위원 구성의 노동계 편향성 등이 그것이다. 무엇보다 경총은 시민법과 노동법의 간격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며 노동사건의 특수성을 부정했다.

마지막으로 노동계는 양대 노총이 각각 의견을 냈다. 그러나 현상에 대한 인식과 노동법원 도입 방안 등에 의견을 같이 했다. 주목할 부분은 정부와 노동계(한국노총)가 같은 통계자료를 인용하면서도 그 해석이 완전히 상반됐다는 점이다. 이들이 인용한 자료에 따르면 2003년 기준 노동관련 심판 및 소송 건수는 모두 2만 5천여 건이었다. 이를 놓고 정부는 2만 5천여 건 ‘밖에 안 된다’고 주장했고, 한국노총은 2만 5천여 건으로 ‘폭주하고 있다’고 봤다.

이러한 인식의 차이는 사용자와 노동계 사이에도 존재했다. 앞서 사용자 측은 노동사건의 특수성을 부정했으나 노동계는 양대 노총 모두 그 특수성을 강하게 주장했다.

정부나 사용자 측과는 현저히 다른 인식 속에, 노동계는 노동법원의 심급은 1심과 2심까지로 하고, 대법원에 노동전담재판부를 설치하자는 방안을 제시했다. 특히 민주노총의 경우 헌법 개정을 통해 3심까지 노동법원으로 독립시키는 안을 고려해야 한다는 보다 적극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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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사건의 특수성?

그런데 여기서 노동사건의 ‘특수성’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의문이 생긴다. 이 질문에는 노동법원 설치의 필요성을 둘러싸고 노동계와 사용자 측이 그 전제에서부터 시각을 달리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즉, 노동사건을 일반 민사와 같게 볼 것인지, 다르게 볼 것인지에 관한 견해가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노동자와 사용자가 동등한 입장에 놓여있는가 하는 문제로 연결된다. 보통의 민사는 당사자들을 서로 동등한 개인이나 집단을 전제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시민법의 원리가 작동한다.

사용자 측 입장에 따르면 노동사건 역시 노동자 개인과 사용자 개인 사이에 맺은 노무제공 계약의 문제로, 시민법의 원리가 작동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따라서 굳이 노동법원을 설치할 필요도, 노동전문 재판관을 양성할 필요도 없다. 오히려 이는 사회적 비용을 늘리는 결과만 낳게 된다.

반대로 노동계 입장에 따르면 노동자와 사용자는 근로계약을 맺는 순간부터 임금을 대가로 한 지시와 복종의 수직적 권력관계가 된다. 따라서 시민법의 원리와는 다른 무엇이 필요하고, 그것이 노동법의 원리이다. 그리고 그것에 맞는 전문법원과 전문 재판관이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노동계 입장에서 시민법과 노동법의 간격이 좁혀진다는 주장은 납득되기 힘들 수밖에 없다. 시민법의 원리는 ‘같은 것을 같게’ 하자는 것으로, 노동법의 원리는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하자는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본 전제부터 서로 다른 노동계와 사용자 측의 입장 탓에 노동법원 도입 논의는 20년 동안 꾸준히 반복돼 왔으나 여전히 마침표를 찍지 못하고 있다. 노사갈등 요인과 노동분쟁이 점차적으로 증가하는 만큼, 앞으로는 노동사건 해결을 위한 제도적 장치 보완과 새로운 시도를 위한 논의가 사회적으로 확산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