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제법, 합리적 대안 필요하다”
“기간제법, 합리적 대안 필요하다”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6.01.15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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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자고, 싸는 문제는 기본적 ‘인권’
국민의 생명·안전 위해 비정규직 채용 막아야
[인터뷰] 류근중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 위원장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류근중 위원장)이 지난해 발표한 버스노동자 과로 실태조사 결과, 버스운수업의 만성적 장시간노동으로 인해 노동자들의 건강과 시민의 안전이 크게 위협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실태조사를 총괄한 류근중 위원장은 대중교통에 있어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대중교통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사회적 논란에 휩싸인 이른바 ‘기간제법’에 대해서는 합리적 대안 없이 무조건 반대만 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 이현석 객원기자 175studio@gmail.com
이번 실태조사의 목적은 무엇인가?

“연맹은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 노동시간을 규제하고자 오랜 기간 노사정위원회 등의 논의기구에 참여하고, 국회와 정부를 대상으로 정책 활동을 전개해 왔다. 이번 연구는 장시간 운전에 대한 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얻기 위한 과정이었다. 이번 조사를 통해 유럽, 일본, 미국 등 선진국들이 왜 운수업 노동자들에 대한 운전시간을 법으로 규제하는지 드러났다. 장시간 운전은 버스운전기사의 신체능력을 현저히 저하시키고 공공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결론이다. 이에 따라 버스를 이용하는 승객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경고를 보내는 과학적인 해답을 얻었다고 판단한다.”

조사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다면?

“수면시간 부족을 호소하는 조합원들의 목소리가 가장 가슴 아팠다. 서울 등 버스준공영제 지역은 1일 9시간 이내로 운행시간 규제가 이뤄지고 있지만, 도 단위 시내버스 등에서는 1일 17~18시간 운전을 3~5일 연속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운전기사가 경제적 문제로 초과 근로를 요구하는 사례도 있다. 그러나 인원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이 운전대를 잡아야 하고, 이 때문에 잠을 포기해야 하는 게 우리의 아픈 현실이다.

노선 운행시간이 긴 경우에 회차지 주변에 화장실이 없어 불편을 겪고 있는 현실도 목격했다. 도 단위의 경우에는 외부 종점에 화장실이 없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눈치를 보면서 노상방뇨를 하거나 주유소, 상가 건물의 화장실을 사용하고 있는 실태다. 먹고, 자고, 싸는 일은 가장 기본적인 ‘인권’의 문제다. 열악한 환경이 피로를 누적시키고 일에 대한 자존감을 빼앗아 피할 수 없는 재앙을 불러들일 수 있다.”

회사에서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기사를 채용하지 않다 보니 장시간노동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발생한다는 지적이 있다.

“해답은 간단하다. 임금 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이다. 법으로 노동시간을 규제하여 인원을 충원해야 한다. 문제는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과 책임이 요구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 출퇴근 시간에 버스가 교통신호 다 지키고 불법 주·정차 차량을 피해가며 안전운행을 위해 천천히 움직인다면 승객들이 가만히 있을까? 출퇴근 시간에는 운전기사들이 다 ‘색맹’이 될 수밖에 없다. 신호등 색이 모두 파란색으로 보이는 거다. 그렇게 달려도 승객들이 왜 이렇게 늦었냐며 운전기사들에게 욕설을 퍼붓는 게 현실이다.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 없이 개별 사업주에게 공공서비스를 맡겨서는 안 된다. 자가용 이용을 억제하고 대중교통 중심으로 촘촘하게 교통시스템을 바꾸기 위해서는 강제력이 필요하다. 현재 가장 유력한 대안은 버스준공영제다. 유럽의 경우에도 민간이 버스회사를 운영하면서 수입금의 50~80%를 정부가 지원하는 형태가 많다. 버스운수업은 이제 ‘공공의 편익’을 위한 특례업종에서 ‘공공의 안전’을 위한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해야 할 시기라 생각한다.”

새누리당의 ‘기간제법’ 개정안의 통과를 촉구했는데?

“지난해 세월호 참사 이래 국민의 안전과 생명에 관한 관심이 대두되고, 국가와 사회 차원의 대책 마련이 요구되고 있다. 그 대안 중 하나가 바로 생명·안전 업무에 비정규직 사용을 금지하는 내용이다. 이는 국회가 당리당략을 떠나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하는 민생문제다. 현재 여야 모두 당론으로 생명·안전업무에 대한 비정규직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기간제법 개정안을 국회에 발의한 상태다. 이 내용을 조속히 처리하라는 주장이다. 이게 어떻게 노동자 전체의 이익과 반하는 내용인가?

물론 현재 발의된 법 개정안의 일부 내용이 큰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기간제법에서 논란이 되는 내용이 35세 이상 된 사람의 경우 본인이 원할 때 2년 더 계약을 연장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이게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면 우선 법안을 올려놓고, 해당 내용을 35세에서 정규직으로의 취업이 힘든 40세나 45세부터 적용하는 것으로 바꾸자고 해야 할 것 아닌가? 연장 기간이 2년은 너무 많다고 하면, 1년까지만 연장해 주는 걸로 하든 합리적인 대안을 갖고 법안을 심의해야지 기간제법 개정안 심의 자체를 거부해서는 안 된다. 광주시내버스 같은 경우만 해도 광주시의 묵인 하에 비정규직이 800명이다. 노동자와 그 가족의 삶을 위해 더 이상 시간을 끌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

향후 어떤 활동을 할 계획인가?

“국민들이 이용하는 버스가 도로 위를 달리는 시한폭탄임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 버스노동자들만의 힘으로는 노동시간 단축도, 비정규직 사용금지도 쟁취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것을 알리고, 공감대를 형성해야 하는지가 고민이다. 노동조합은 운전시간 단축을 요구하는 교섭을 진행하면서 결국 파업이라는 최후의 수단에 돌입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버스 파업을 ‘집단 이기주의’로 내모는 언론과, 버스노동자들의 삶에 관심이 없는 국민들이 많은 상황에서 노동시간 단축은 아직도 갈 길이 멀기만 하다.

연맹에서는 시민사회의 목소리와 현장의 목소리를 모아 법·제도 개선에 집중해 나갈 예정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국회를 통해 큰 틀을 만들어 나가겠다. 특히, 내년(2016년) 5월까지 특례업종 노동시간 규제 방안에 대해 노사정이 합의하여 법을 개정키로 한 상태다. 또한, 올해(2015년) 진행했던 조사를 심화시키는 연구사업도 고민 중이다. 한 발자국 더 앞으로 나아가 조합원들의 삶의 터전인 버스현장이 자존감을 느끼고 가족애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되도록 현장 속으로 들어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