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함께
다시 함께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6.02.16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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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모여 궁리하면서 영감과 노하우를 공유하고, 거기서 출발한 아이디어로 특정 누군가에게 맞춤하게 필요한 물건을 만드는 문화가 이른바, ‘메이커 무브먼트’라고 불리며 널리 회자되고 있습니다.

좁은 영역에서 바라보자면 그다지 새로운 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무엇이든 뚝딱뚝딱 만들어 쓰는 DIY 장인들을 주변에서 찾아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지요. 2014년 2월 3D 프린터의 핵심 기본 특허권의 기한이 만료되면서, 이미 많은 기업들이 메이커 무브먼트를 겨냥하고 시장에 뛰어들기도 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미래 산업, 특히 제조업 분야의 향배를 가를 중요한 분기점이라고 전망합니다. 미국이나 유럽을 비롯한 산업 선진국에서도 연일 이 ‘익숙하지만 새로운’ 개념을 혁신의 원동력으로 삼으려고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다양한 방면에서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메이커 무브먼트에 대한 소개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더 자세한 내용은 각설하고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얘깃거리를 꼽아보자면 ‘공동체’라는 개념과 떼어낼 수 없다는 점입니다. 골방에 틀어박혀 기벽에 몰두하는 괴짜 천재가 만들어내는 문화도 아니고, 시대를 선도해 나가는 소수 엘리트 집단이 이끌어가는 문화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19세기 영국의 예술가이자 공예가, 건축가이고, 시인이고, 사상가이고, 정치가이자 사회운동가였던 윌리엄 모리스는 당대엔 배부른 소리나 하는 호사가, 이상향에만 몰두하는 몽상가 취급을 받았습니다. 바야흐로 대량생산이 세상을 바꾸기 시작한 즈음에 수공업의 가치, 공동 창작의 기쁨을 주창했을 때 많은 이들은 시대착오적이라고 비난했을 것입니다. 지금은 어떨까요? 그때에 비해 도구가 더 많이 발전하지 않았습니까?

미디어의 발달은 정보를 더 많이, 자유롭게 나눌 수 있도록 했습니다. 어쩌면 맨 처음 출발은 엉뚱하게 생각하는 누군가에 의해서 시작됐을지 몰라도,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의 공동 노력으로 점점 더 아이디어는 가다듬어집니다.

정부는 물론, 각 지자체에서도 이와 같은 메이커 무브먼트의 활성화에 많은 투자와 지원을 펴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현실은 생각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데 반해, 노력만큼 성과는 가시적이지 않다는 점입니다. 왜 일까요?

공동체라는 개념을 떼어 놓는다면, 메이커 무브먼트도 여느 정부 지원 정책들과 별 다를 바가 없습니다. 지자체가 매년 예산을 쏟아 붓는 각종 지원 사업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질적인 우수함으로 승부하든, 양적인 방대함으로 승부하든, 혹은 학연, 지연, 혈연, 오만 인맥을 총 동원해서라도 ‘따내면 장땡’인 사업들 말입니다.

그동안 흔히 써왔던 ‘협업’이라는 의미와도 조금 다를 것입니다. 혼자 독식하는 게 아니라 함께 고민하고, 함께 결과물을 만들어간다는 의미를 떼어낸다면, 메이커 무브먼트도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없을 것입니다.

개인 간의 경쟁이 더 없이 치열해지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첨단의 문화를 이야기하며 다시 ‘함께’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다니, 이래서 자연(自然)의 신비는 끝 없는 건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