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연휴는 ‘도피기간’?
명절 연휴는 ‘도피기간’?
  • 장원석 기자
  • 승인 2016.02.16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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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원석 기자 wsjang@laborplus.co.kr
올해 설날은 대체 공휴일까지 포함해 5일을 쉬는 긴 연휴입니다. 이만큼 쉬었으면 다시 일상이 시작될 만한데 아직도 쉴 날이 남았다는 사실이 마치 가구 밑에 들어간 동전을 찾은 것처럼 기분이 좋습니다. 연휴가 끝나고 이틀 후면 다시 주말이 찾아온다는 점은 덤입니다.

누구는 이번 연휴에 스키장을 가기도 하고 해외여행을 계획하기도 합니다. 간만에 긴 연휴니 하고 싶었던 것을 다 할 기세입니다. 하지만 누구에게 꿀맛 같은 긴 명절 연휴는 또 다른 누구에게 한숨만 푹푹 나오는 날이 되기도 합니다. 취직을 하지 못하고 명절을 맞는 취업준비생에게 명절 연휴는 그저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도피기간’일 뿐입니다.

구인구직 포털 알바몬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학생, 취준생의 69%가 명절을 앞두고 스트레스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는 ‘취업과 학점에 대한 친척들의 관심’이 31.1%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습니다. 가장 듣기 싫은 말은 ‘좋은데 취업해야지’가 42.6%로 1위랍니다. 이렇게 친척집에 가기만 하면 달달 볶는데 명절에 가고 싶어 할 리가 없습니다. 응답자의 59.09%는 잔소리 때문에 명절 등 가족모임에 불참한 적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실제로 대학가 도서관이나 노량진, 신림동 등 고시촌은 명절이라는 느낌을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서울에 있는 한 대형 어학학원에서는 취준생과 청년들에게 ‘명절대피소’라는 공간을 만들어주기도 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주변에 있는 취준생 친구들은 대부분 “지금 취직 못하는 것도 스트레스인데 거기 가서까지 나쁜 소리 듣고 싶지 않다”는 반응입니다. 몇몇은 “이전 기억이 너무 안 좋아서 취업을 해도 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까지 합니다. “북한이 미사일을 쏴줘서 친척들이 다 그 이야기만 하느라 나는 신경 쓰지 않는다. 올 명절에 북한 덕을 톡톡히 봤다”고 하는 취준생 친구의 말에 쇼크를 받으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많은 취준생들은 가족이나 친지들로부터 듣고 싶은 말로 ‘곧 좋은 소식 있을 거야, 힘내!’(38.09%)를 꼽았습니다. 그 외에도 ‘넌 잘하리라 믿어!’(23.81%), ‘신중하게 잘 선택해,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기야!’(19.05%) 등 희망과 용기를 주는 말들을 듣고 싶어 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요즘 청년들은 좋고 싫은 것이 명확합니다. 독자 분들도 이정도면 알고 계실 것이라 믿습니다. 가끔 만나는 친척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취준생들도 친척들의 말에 악의가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말을 감당하기에 취준생들이 처한 현실은 너무나 가혹한 것 또한 사실입니다.

4년 정도 공무원 준비를 하다 작년 말에 합격에 성공했던 친구는 매년 명절에 친지들을 찾았을 때 아무 말 없이 꼭 잡아주는 손이 오랜 기간 수험생활을 버티게 하는 힘 중 하나였다고 말합니다. 이번 설은 이미 지나가버렸지만 다음 명절, 다음 가족 모임 때는 따뜻한 말과 행동으로 치열하게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