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에서 기술까지 위기 아닌 게 없다
구조에서 기술까지 위기 아닌 게 없다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6.02.16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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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나도 뛰어들었지만 물량 줄자 한꺼번에 무너져
해양플랜트 위기, 오래갈 수 있다
조선산업의 위기를 통해 본 제조업의 현재와 미래, 그리고 노동조합 ②

한 때 조선산업은 우리나라 수출의 11%를 기록할 만큼 비중이 큰 산업이었다. 하지만 현재 조선산업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 내외에 그친다. 소위 ‘돈 되는 사업’으로 각광받던 호황기에는 너도 나도 조선산업에 뛰어들어 우리나라 조선사 수는 30여 개에 이른 적도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그렇게 뛰어들었던 많은 수의 중소형 조선사들이 퇴출돼 사라진 상태다. 우리나라 조선산업이 현재와 같은 상태에 이르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살펴본다.

참여와혁신 DB
글로벌 금융위기 계기로 조선산업 침체

우리나라 조선산업이 주력으로 삼고 있는 사업부문은 크게 두 가지다. 조선부문과 해양플랜트부문이 그것이다. 조선부문은 규모에 상관없이 모든 조선사에 공통된 영역이지만, 해양플랜트부문은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3사에 한정된 영역이다.

그런데 조선부문과 해양플랜트부문에서 위기가 드러나는 시기에 차이가 있다. 조선부문에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수주가 줄어들면서 중소형 조선사들이 흔들리는 등 위기가 현실화됐다. 반면 해양플랜트부문에서는 2014년에 이르러 각종 문제점들이 부상하면서 위기가 현실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따라서 조선산업의 위기는 조선부문과 해양플랜트부문을 나누어서 살펴볼 수 있다. 우선 조선부문에서는 2008년까지를 호황기로 볼 수 있다. 이 시기의 호황에 대해 홍성인 산업연구원 기계전자산업팀장은 “보통 선박의 수명이 25~30년 정도 되는데 이러한 선박의 교체주기가 도래했고, 중국경제의 활성화에 따른 물동량의 증가와 해운운임의 급격한 상승 등으로 발주가 급증했다”고 설명한다.

이렇게 조선산업이 호황을 맞으면서 많은 기업들이 대규모로 설비투자를 하면서 조선산업에 뛰어들었다. 물량은 넘쳐났다. 이런 흐름에 제동을 건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였다. 금융위기 이후 조선산업의 전방산업인 해운업에서 물동량이 줄어들면서 선사들의 신규 물량 발주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이러한 조선산업의 흐름은 장기적인 시각에서 보면 조선산업의 경기변동 사이클과 맞아떨어진다. 여기에 우리나라 조선산업의 구조적인 측면을 곁들여 현재의 위기의 원인을 설명하는 이도 있다. 일본이나 중국 등 경쟁국 조선산업에서는 자국 내 발주를 통해 경기변동에 따른 발주 감소에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조선산업은 그렇지 못하다.

산업통상자원부 조선해양플랜트과에서는 “우리나라 조선산업은 건조물량의 90% 이상을 해외 수출용 선박으로 채우고 있어서 경기변동에 민감한 구조”라면서 “최근 조선경기 둔화가 장기화되고 유가도 하락하면서 조선업체들의 경영여건이 악화되었다”고 보고 있다.

일반적인 제조업이 상품을 먼저 만들어 시장에서 판매하는 방식이라면, 조선업은 먼저 수주를 하고 발주자의 요구에 맞춰 제품을 생산하는 방식이다. 이런 수주산업에서는 발주자들의 입김이 세질 수밖에 없는데다가, 특히 일본이나 중국과는 달리 국내에서 발주를 할 수 있는 선사들이 극히 제한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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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조선사와 중소형 조선사, 위기 양상 다르다

다른 한편, 조선산업의 설비가 공급과잉 상태에 있었다는 점이 지적되기도 한다. 산업통상자원부에서는 “시장에서 공급과잉 상태에 있는 조선시황을 감안할 때 전반적인 설비합리화를 위한 구조조정이 불가피했다”고 보고 있다. 조선업계 노조 관계자도 “너도 나도 조선산업에 뛰어들면서 서로 경쟁하는 영역이 중복되다 보니 출혈경쟁을 할 수밖에 없는 토대가 됐다”는 점을 지적한다.

실제로 조선산업의 호황기에 조선부문에 뛰어들었던 대부분의 조선사들은 벌크선이나 탱커 등 범용선박을 주로 건조했다. 주력 선종이 겹친다는 뜻이다. 물량이 충분할 때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으나, 물량이 줄어들면 치열한 경쟁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여기에 중국 조선사들이 급격히 성장한 것도 우리나라 조선산업에는 위협요인으로 작용했다. 중국 산업의 성장은 원료, 기자재, 제품 등 물동량의 증가를 가져왔고, 이를 운송하기 위한 선박 수요가 급증했다. 2003~2008년의 조선산업 호황기는 이 같은 중국 산업의 성장에 힘입은 바 크다. 하지만, 이 같은 물동량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중국에서도 수많은 조선소들이 건설됐다. 중국 조선산업도 전 세계 조선산업의 흐름에 따라 경쟁력이 떨어지는 조선사들을 퇴출하는 등 구조조정이 한창이지만, 호황기 때는 1천 개가 넘는 조선소들이 만들어졌다.

중국 조선사들은 벌크선이나 탱커 같은 우리나라 중소형 조선사들이 건조하던 선종을 주로 만들었는데, 이는 경쟁을 격화시킨 한 원인이 됐다. 그 결과 가격경쟁이 심화됐고 국내 중소형 조선사들은 저가수주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반면 대형 컨테이너선, LNG 운반선 등을 주력 선종으로 하던 대형 조선사들은 상대적으로 중국 조선사들의 성장에 따른 영향을 적게 받았다.

박종식 금속노조 노동연구원 객원연구위원은 “2009년 이후에 수주가 줄어들면서 벌크선 등을 만들던 중소형 조선사들이 버티지 못했다”면서 “이미 폐업할 곳은 폐업했고, 살아남은 곳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 살아남은 것”이라고 보고 있다.

중소형 조선사들이 물량의 감소와 함께 어려움을 겪은 것과는 달리 대형 조선사, 특히 빅3 조선사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이 같은 영향을 덜 받았다.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에 따르면 “빅3 조선사가 고급 요트 같은 선박을 많이 만들 수 있을 만큼 높은 수준의 기술은 아니지만, 중국 조선사들에 비해서 높은 기술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면서 “상선 중에서도 고부가가치 선종에서는 중국 조선사들에 비해 기술력의 우위를 가지고 있고, 중국 조선사들이 이를 따라잡기에는 아직 멀었다는 게 지배적인 판단”이라고 진단한다. 고부가가치 선종에 대한 기술력의 우위를 바탕으로, 이들 선종에 대해서는 우리나라 조선사들, 특히 빅3 조선사가 아직까지 높은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이 밖에 중소형 조선사들의 위기를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국내 금융기관들의 RG(refund guarantee, 선수금환급보증) 발급 거부와 헤비테일(heavy tail) 방식의 선박대금 결제 관행의 확산도 지적된다. RG는 선박 수주 시 조선사들이 선주로부터 받는 선수금에 대해, 정상적인 인도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환급해 주겠다는 것을 금융기관이 보증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선박을 수주하면 금융기관으로부터 RG를 발급받아야 정식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데, 금융기관이 RG 발급을 거부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는 해당 선박을 건조해도 수익이 나지 않을 것이라는 금융기관의 재정적 판단이나, 해당 조선사의 경영상태에 대한 진단 등의 이유 때문이다. 이로 인해 신규 수주를 통해 자금을 회전시켜야 하는 조선사 입장에서는 RG 발급 거부가 자금줄을 옥죄어 위기를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보통 선박은 수주에서부터 건조와 인도에 이르기까지 장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각각의 단계에 맞춰 대금을 분할해 지급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관행이었다. 예컨대 RG 발급, 절단, 탑재, 진수, 인도의 각 단계마다 20%씩 대금을 지급하는 식이다. 하지만, 2010년 이후 헤비테일 방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는 선수금으로 5~10%만 지급하고 마지막 인도 시에 60~70%의 대금을 한꺼번에 지급하는 방식으로, 자금의 여력이 없는 중소형 조선사들에게는 건조자금의 부족을 불러올 수도 있다. 이러한 방식이 점차 확산돼 2008년에는 전체 수주의 30% 수준이던 헤비테일 방식이 2013년에는 70%까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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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부문 위기는 피했지만

비록 벌크선 등에 비해 물량 감소폭이 크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고부가가치 선종에서도 물량이 줄어든 것은 마찬가지다. 이 같은 물량의 감소가 대형 조선사들에도 위협요인으로 작용할 것은 분명했다. 이 때문에 대형 조선사들은 새로운 분야를 통해 활로를 모색했다. 그것이 곧 해양플랜트부문이었다. 우리나라에서 해양플랜트부문에 뛰어든 것은 빅3 조선사였다. 한때 현대삼호중공업이 해양플랜트에 도전하기도 했으나 적자만 남기고 철수한 이후, 해양플랜트부문은 빅3 조선사만의 영역이 됐다.

빅3 조선사가 해양플랜트부문 수주를 공격적으로 늘려가던 시기는 2009년부터다. 이 시기는 유가가 고공행진을 하던 시기였고, 엑손모빌 등 주요 석유회사(oil major, 오일메이저)들은 원유를 찾아 심해유전 개발에 주력했다. 심해유전을 개발할지 말지는 유가에 따라 결정되는데, 관련업계에서는 심해유전 개발에서 수익을 낼 수 있는 손익분기점을 대략 배럴당 70~80달러 수준으로 보고 있다.

빅3 조선사가 해양플랜트부문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시기는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나들 만큼 고유가가 지속되던 시기였다. 이런 고유가는 2014년 상반기까지 지속됐다. 이에 따라 주요 석유회사들은 경쟁적으로 해양플랜트를 발주했고, 이 부문에 주력하던 빅3 조선사에게는 기회가 됐다. 이렇게 해양플랜트를 수주하다 보니, 빅3 조선사의 매출에서 해양플랜트부문의 비중이 60% 선으로 치솟기도 했다.

그러나 국제유가는 2014년 6월에 정점을 기록한 이후 곤두박질쳤다. 2014년 6월 WTI(서부텍사스산중질유) 기준 배럴당 113.30달러였던 유가는 불과 반년이 지난 2015년 1월에 46.59달러로 반토막 이하로 떨어졌다. 2016년 1월 현재 유가는 배럴당 30달러 수준에서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이 같은 유가 하락은 셰일가스(shale gas, 모래와진흙 등이 단단하게 굳어진 퇴적암 지층인 셰일층에 매장되어 있는 천연가스) 개발에 따른 것이다. 그동안 기술, 환경 등의 문제로 개발되지 못했던 셰일가스를 개발할 수 있는 기술이 상용화되면서, 유가가 폭락한 것이다.

유가가 떨어지면서 해양플랜트 발주도 끊겼다. 신규 발주만 사라진 것이 아니라, 기존에 수주해 인도를 앞두고 있는 물량에 대해 이러저러한 꼬투리를 잡아 수령을 거부하는 경우까지 생겨나고 있다. 이러한 사태는 해양플랜트부문에 주력했던 빅3 조선사에 직접적인 타격을 가했다. 2014년 이후 실적이 급격히 악화된 빅3 조선사들은 지난 한 해 9조 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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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능력·기술인력 확보 못한 채 뛰어들었다

그런데 해양플랜트부문의 이 같은 부진의 원인이 유가 하락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경영계의 입장에 서 있는 조선업계 한 관계자는 “경험이 없는 해양플랜트부문에 진출하면서 조선사들이 계약조건을 엄격하게 검토하지 못했고, 선박 발주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설비를 가동하기 위해 수주하다 보니 수익을 내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면서 “그 외에도 단시간에 해결되지 않는 기술력의 부족 문제나 근로자의 높은 임금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실적을 악화시켰다”고 분석한다.

곽진호 현대중공업노조 노동문화정책연구소장은 “설계역량이나 수주역량, 심지어 단가계산까지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미흡한 구조에서 해양플랜트 사업에 성급하게 뛰어들어서 많은 손실을 낳았다”고 진단한다. 이 같은 분석은 현대중공업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해양플랜트 사업에 경쟁적으로 뛰어들었던 빅3 모두에게 해당된다.

기술력의 문제와 관련해 홍성인 팀장은 “해양플랜트를 건조할 때 우리나라 조선사들이 상세설계는 어느 정도 하는데 그에 앞서는 기본설계, 개념설계는 거의 100년 가까운 기술과 경험을 확보하고 있는 업체들의 영역이고, 단시간에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면서 “우리나라 조선사들이 할 수 있는 영역만 수주했으면 실적이 지금과 같지는 않을 텐데, 오일메이저들이 기존과 달리 턴키방식으로 발주하다 보니 설계변경에서 발생하는 비용까지 모든 책임을 떠안게 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또 “상선의 경우 기자재의 90%를 국산화했지만, 해양플랜트 기자재는 국산화율이 20%대에 그친다”면서 “기자재를 국내에서 조달하지 못하니까 해양플랜트를 수주해도 50% 이상은 도로 나가야 하는 구조”라는 점도 지적한다.

박종식 연구위원은 “고유가로 인해 뜻하지 않게 해양플랜트 공사 발주가 크게 늘어나자 빅3 조선사들이 조선산업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전략으로 해양플랜트 사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했지만, 2014년부터 해양플랜트 진출의 폐해가 본격적으로 드러나면서 천문학적인 적자라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조선산업의 위기는 사실상 ‘지연된 위기’라고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조선부문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해양플랜트부문에 진출했지만 이 부문에서도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은 사실상 위기의 시점이 늦춰진 것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해양플랜트부문에서 특히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것이 반숙련 또는 미숙련 인력의 대거 투입이다. 숙련된 기술인력은 직영, 즉 빅3 조선사의 정규직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박종식 연구위원에 따르면 해양플랜트부문에 투입되는 인력 중 직영은 5%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사정은 정규직/비정규직 문제를 떠나 필요한 기술인력이 투입되지 못하는 문제로 이어진다. 숙련 기술인력 1명이 할 수 있는 작업을 반숙련, 미숙련 인력 10명이 달라붙어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이 같은 문제는 경영진도 인정하고 있다. 정성립 대우조선해양 사장은 지난해 7월 사내통신망에 올린 글에서 “인력을 대규모로 투입했으나 미숙련 작업자의 낮은 생산성도 원가 상승을 부채질했다”고 언급했다.

홍성인 팀장은 이와 관련해 “지금까지 상선 위주로 작업을 해왔기 때문에 기술도 거기에 맞춰져 있는데, 해양플랜트는 소재도 다르고 기술도 다르다”면서 “상선 건조에서는 미숙련 인력을 투입해도 될 만큼 기술력이 뒷받침됐지만, 해양플랜트에서는 그런 기술력이 확보되지 않아 투입될 인력을 단기간에 확보할 수 없었고, 제대로 된 기술인력을 투입하지 못한 채 일명 ‘물량팀’이라고 불리는 비정규직 인력을 대규모로 투입하면서 반복작업을 하게 돼 공수만 늘고 공기만 지연됐다”고 분석했다. 숙련된 기술인력이 투입되었다면 한 번에 끝났을 작업이 보완을 위해 반복되고, 결국에는 추가 공수 발생과 공기 지연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더구나 이와 같은 문제는 향후에도 상당기간 지속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셰일가스로 인한 저유가 국면이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또한 권순원 교수는 “자동차산업에서 전기자동차나 수소연료전지자동차를 개발하고 있는 것처럼 산업 구조 자체가 석유가 아닌 대체자원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면서 “석유에 대한 수요 자체가 줄어들 가능성이 커짐에 따라 조선산업이 해양플랜트부문에서 경험하고 있는 위기는 그 기간을 특정할 수는 없지만,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