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리는 정부, 뭐가 그리 급하기에
내달리는 정부, 뭐가 그리 급하기에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6.02.16 15:10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부 독주 속 오간 데 없는 ‘대타협’
세력 간 균형 이룰 때 사회적 합의 가능하다
[사건]갈등만 남은 노사정합의

지난해 9월 15일 타결된 이른바 노사정대타협 이후 정부의 움직임은 더욱 빨라졌다. 합의문 타결 직후 여당은 노동5법으로 호응했다. 한바탕 난리 끝에 합의문을 통과시켰던 한국노총은 합의문 최종 타결 하루 만에 노동5법의 입법 철회를 요구했다. 예정된 일이었을까? 이들은 1월 19일 노사정합의 무효를 선언하기에 이른다.

진작부터 ‘심판이 경기 뛴다’는 비아냥거림을 들어왔지만, 정부는 꿋꿋하게 제 갈 길을 가는 모양새다. 노동5법이 국회에 발이 묶이면서 합의 주체였던 한국노총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통상해고 도입과 취업규칙 변경에 관한 행정지침을 발표했다. 공공·금융기관에는 성과연봉제 도입이 확실시 됐다. 늘 강조됐던 사회적 합의는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 성상영 기자 syseong@laborplus.co.kr
좋은 말은 다 갖다 붙였으나

박근혜 정부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개선하겠다며 ‘노동시장 구조개선’(이른바 노동개혁) 방안을 들고 나왔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노동조건 격차를 줄이겠다는 것이었다. 또한 고용의 유연안정성을 통해 청년일자리 문제를 해소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면서 노·사·정 간의 사회적 ‘대타협’을 전면에 내세웠다.

뿐만 아니라 정부는 노동개혁의 당위성을 홍보하기 위해 사용 가능한 모든 수단을 다 동원했다. 버스 외부 광고와 신문 지면광고, 영상광고를 쏟아냈다. 온라인에서도 이벤트를 통해 태블릿PC에서 작게는 커피 교환권까지 상품을 후하게 뿌렸다. 웹툰 원작 드라마 <미생>의 ‘장그래’가 등장했고, 스펙보다는 능력이라거나 ‘일가양득’(일·가정 양립), 청년들의 희망 등 좋은 말은 다 나왔다. 고용노동부는 이러한 내용을 담아 카드뉴스도 만들어 배포했다.

수사법만 사용된 것은 아니었다. 정부가 언론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노동개혁 등 정책을 홍보하기 위해 언론사별로 수천만 원의 예산을 지원한 사실도 드러났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언론사들은 ‘정규직 과보호론’과 노동개혁의 필요성을 특집 기사로 내보내는 대가로 정부로부터 돈을 받았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해명자료를 내고, “국민 생활과 밀접하거나 관심이 높은 정책 현안에 대하여 국민들의 올바른 이해를 돕기 위하여 홍보기획사를 통하여 언론사의 취재 보도를 간접 지원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고용노동부가 기사의 방향과 내용에 개입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정부는 사회적 합의와 노동개혁이라는 두 키워드를 가지고 해외의 성공한 사례를 인용하기도 했다. 스웨덴의 살트셰바덴 협약(1938), 네덜란드의 바세나르 협약(1982), 독일의 하르츠 개혁(2002) 등이 그것이었다. 이들 세 국가의 사례는 한 동안 집중 조명되었다. 특히 하르츠 개혁은 독일이 ‘고용기적’을 일으키며 ‘재도약의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쏟아졌다.

그러나 정작 독일 내에서는 부정적 평가가 여전히 만만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또한 정부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던 것만큼 사회적 합의의 모범적 사례였던 것도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하르츠 개혁안이 나오기 이전인 1998년 노동계와 경영계가 사회적 합의를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당시 총리인 슈뢰더가 주도적으로 ‘노동시장 현대화를 위한 법’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독일의 사례가 언론의 주목을 받고 정부가 여론전을 벌이면서 이른바 노동개혁을 향한 속도전은 계속됐다. 이 과정에서 눈코 뜰 새 없이 쏟아지는 정보는 무엇이 맞고 틀렸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겨를이 없게 할 정도였다. 정부가 나서 사회적 합의를 강조했지만, 정작 노동개혁이 어떠한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구체적으로 무엇이 필요한가에 대해서는 제대로 토론이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이다.

ⓒ 성상영 기자 syseong@laborplus.co.kr
고통 겪었는데 진주는 어디에

그럼에도 지난해 9월 노사정합의는 이루어졌다. 이를 놓고 여당 원내대표는 “고통 속에서 만들어낸 진주”에 빗대기도 했다. 비록 지난 1월 19일 합의 주체였던 한국노총이 노사정합의 파기를 선언했지만, 9·15 노사정합의까지 이르는 과정이 험난했던 것은 사실이다.

지난 2014년 노사정위원회에 ‘노동시장 구조개선 특별위원회’가 구성된 이후 이듬해 3월까지 노사정합의를 끝맺는다는 계획은 불발됐다. 4월에는 한국노총이 노사정합의 결렬을 선언하고, 김대환 노사정위원장이 사퇴를 발표하기도 했다. 2015년 5월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노동시장 구조개선’ 일방 추진 의사를 밝힌 후로 한국노총은 총파업 찬반투표는 물론 지도부 천막농성까지 벌였다. 7월 말 새누리당이 ‘노동시장 선진화 특별위원회’를 구성하며 노동계를 향한 공세가 계속됐다. 이후 한 달여 간 정부와 정치권, 한국노총 간 물밑 대화가 이어지다 8월 26일 한국노총이 노사정위 복귀를 선언한다.

그러나 9월 10일로 정해진 노사정합의 시한을 넘기자 새누리당은 이른바 ‘노동개혁 5대 법안’(노동5법)을 단독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에 호응하며 노동개혁 추진 과정에서 가장 논란이 됐던 통상해고 도입과 취업규칙 변경에 관한 행정지침을 만들겠다고 발표한다. 노사정합의 없이도 정부·여당이 ‘노동개혁’을 밀어붙이는 상황이 된 것이다. 한국노총으로서는 합의 당사자로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조성됐고, 노사정합의는 급진전을 이루었다. 결국 2015년 9월 13일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노사정합의문’은 체결됐다. 그리고 다음 날 한국노총 중앙집행위원회에서 한 바탕 홍역을 치른 끝에 9월 15일 노사정합의는 최종적으로 타결된다.

노사정합의에 이르기까지 극심하게 대립했던 정부·여당과 노동계의 1년은 나름대로 고통의 시간이었다. 정부·여당은 자신들이 뜻했던 결과를 만들기 위해 너무 긴 시간을 끌었고, 한국노총은 쉬지 않고 자신들을 조여 오는 정부·여당과 언론의 압박 속에 탈출구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의 경우 줄곧 노사정위에 참여하지 않은 채 세 번의 총파업대회를 열었지만, 현장의 참여 부족으로 크게 기울어버린 판도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그렇게 노사정합의에까지 도달했지만, 이는 최종 목적지가 아니었다. 새누리당이 기다렸다는 듯이 합의 타결 하루 만에 노동5법을 발의한다. 노동5법은 ▲ 근로기준법 ▲ 고용보험법 ▲ 산업재해보험법 ▲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다.
어느 정도 예상은 됐지만, 합의 당사자였던 한국노총의 입장에서는 뒤통수를 맞은 것이었다. 여기에 더해 12월 30일 고용노동부가 2대 지침 초안을 발표한다. 결국 지난 1월 19일 한국노총은 노사정합의 ‘파기’를 선언하기에 이른다.

정부가 사회적 대타협이라며 치적을 홍보하기에 바빴지만, 정작 지금까지의 흐름을 보면 9·15 노사정합의가 ‘대타협’이라 할 만한지 쉬이 의문이 가시질 않는다. 질주하는 정부·여당 대 무기력한 야당·노동계의 구도가 그대로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손 안 대고 코푼 재계?

‘노동개혁’을 둘러싼 사회적 합의 과정은 노·정 간의 좌충우돌이었다. 보통 사회적 합의라고 하면 노·사·정 또는 노·사·민·정이 그 주체로 나서지만, 어찌된 일인지 ‘사’는 한 발짝 물러난 듯 보인다. 노사정위 노동시장특위의 사용자위원 세 자리는 한국경영자총협회, 중소기업중앙회,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각각 차지하고 있지만, 이들 세 단체는 하루라도 빨리 노·정 갈등이 끝나기를 바라는 듯 보이기만 했다. 노동계가 정부가 서로를 향해 날선 공격을 가하는 동안 이들 ‘경제단체’는 간간히 성명서만 낼 뿐이었다.

비록 사회적 합의라는 외형을 갖고는 있었지만 정부가 ‘노동개혁’ 논의를 사실상 기획했던 것이다. “노동5법은 재벌의 청부입법”이라거나 “심판이 경기 뛴다”는 조롱 섞인 비판은 이러한 상황을 표현한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법안까지 만들어진 상황에서 정의화 국회의장이 직권상정 거부로 일관하면서 더 이상 상황이 진전되지는 못했다. 여당의 ‘노동5법’은 2015년 내 처리 무산에 이어 새해 1월에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사용자 단체들은 그야말로 손 안 대고 코 푸는 상황이었지만 한국노총이 노사정합의 파기를 선언한 마당에 뭐든 해야만 하는 입장에 놓인 것이다.

한국노총이 노사정합의 파기를 선언하기에 앞서 지난 1월 11일 “노사정합의가 파탄 났음을 선언”했을 때 1주일 동안 정부의 입장 변화를 기다린다며 한 가지 단서를 달았다. 이를 의식한 탓인지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 담화를 통해 노동5법이 안 되면 기간제법을 뺀 ‘노동4법’이라도 통과될 수 있게 “국민들이 나서달라”고 말했다.

그러자 드디어 사용자 단체들이 나섰다. 대한상공회의소,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이른바 ‘경제5단체’와 각종 협회들이 ‘민생구하기 입법 촉구 천만 서명운동본부’를 꾸리고 대대적인 서명운동에 들어갔다.

사회적 합의를 진정으로 이끌어내기 위해서 정부의 ‘노동개혁’에 동의하는 국민들의 의사를 모으는 측면에서 의미를 가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사용자 단체들의 서명운동은 시작부터 논란에 휩싸이고 말았다. ‘박근혜’라는 이름만 천 건이 등록됐고, 확인 결과 아무 이름이나 입력해도 상관없었다. 게다가 곳곳에서 서명운동 목표치 할당 의혹이 불거지면서 ‘관제서명’ 논란도 일었다.

ⓒ 성상영 기자 syseong@laborplus.co.kr
진짜 대타협, 우리도 할 수 있을까

사용자 단체들이 벌이는 서명운동 참가자 수는 31일 현재 67만 명을 넘어 곧 70만 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관제서명 논란이 말해주듯 정부로부터 시작된 노동개혁을 둘러싼 갈등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정부는 사회적 대타협을 이야기했지만, 현실로 드러난 것은 정부·여당의 독주였다.

정부의 노동개혁 방안 중에서도 특히 노동계의 반발을 불러왔던 것은 임금피크제, 성과연봉제, 파견 확대, 기간제 계약기간 연장, 그리고 통상해고 도입과 취업규칙 변경 요건 완화 등이다. 이러한 문제를 사회적 합의를 통해 해결하려는 게 정부의 취지였다면, 정부는 노사 간 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배려했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따른다.

그런 점에서 사회적 합의에 대해 1994년 한국노동연구원이 발간한 <사회적 합의와 노사관계>에 수록된 한 논문은 20년 넘게 지난 오늘에도 의미 있게 다가온다. 해당 내용에 따르면,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비타협적인 이데올로기적 근본주의가 존재하지 않아야 하고, 완강한 정치적 반대가 없어야 한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적절하게 구조화된 사회적 파트너들 간의 권력 균형이다. 이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나 ‘재벌 청부입법’이라는 수사가 판치는 우리나라 사회적 합의의 현주소를 생각하게 한다. 그 외에 언급된 사회적 합의의 조건은 정부의 능력, 의제의 명확성, 통계와 같은 기술적 준비, 사회적 합의기구 등이다. 이것들이 두루 충족될 때 비로소 사회적 합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내용이 담긴 글이 소개된 때로부터 4년 뒤에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지금의 노사정위원회가 출범한다. 당시에는 국가부도 사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놓고 사회적 합의 시도가 있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경제는 위기이고, 따라서 사회적 합의가 절실하다고 누구나 쉽게 말한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사회적 합의를 바라보는 시각에는 뚜렷한 발전이 없는 듯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