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메일 사찰 딱 걸린 경영진, 변명으로 일관
이메일 사찰 딱 걸린 경영진, 변명으로 일관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6.02.16 15:26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조 협조 직원 찾으려다 연달아 자충수
논란 커지자 이번엔 기관 신뢰에 흠집내기
[사건]한국기업데이터 이메일 사찰

중소기업 신용대출 활성화를 위해 설립된 신용평가 전문기관 한국기업데이터의 올 겨울은 뒤숭숭하기 그지없다. 전문 인력이나 노하우의 축적 없이, 가열차게 ‘육성’에만 초점을 맞추었던 정부의 기술신용평가기관(TCB) 확대 정책의 폐단으로, 지난해 말 ‘평가내용을 사전안내해 준다’고 공지해 정보유출 파문이 일기도 했다. 새해 들어선 대표이사가 전 직원의 사내 이메일을 임의 확인하라고 지시한 점이 드러나면서 홍역을 앓고 있다.

ⓒ 한국기업데이터지부
노조에 이메일 유출자를 찾아라!

한국기업데이터 주식회사(대표이사 조병제)는 신용보증기금·기업은행 등 국책기관과 민간금융기관이 출자해 2005년 설립한 중소기업 전문 신용평가업체이며 4년 전인 2012년 민영화됐다.

이번 직원 이메일 사찰 파문은 지난해 12월 30일, 2015년 노사 임금 협상이 마무리된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병제 대표이사는 협상이 마무리되고 1, 2급 직원들에게 “1, 2급 직원 여러분들께 드리는 말씀”이란 제목의 이메일을 발송한다. 새해 인사와 함께, 지난 임금 협상에서 1, 2급 고위 직원들의 임금 인상에 노력했으나, ‘하후상박’을 주장하는 노동조합의 반대로 인상폭이 크지 않음에 대한 유감을 표현하고 있다.

해당 이메일 서신은 누군가에 의해 노동조합 익명게시판에 게시되었고, 노동조합이 항의하자, 조 대표이사는 1월 4일 부서장 신년회 이후 한국기업데이터의 전산 관리를 총괄하는 IT관리부장에게 누가 해당 내용을 노조와 노조 위원장에게 전달했는지 파악하라고 지시했다.

금융노조 한국기업데이터지부(위원장 윤주필)가 1월 7일 확보한 IT관리부장의 사실 확인서에 따르면, 조 대표이사의 지시로 해당 IT관리부장은 2015년 12월 30일부터 2016년 1월 4일까지 전체 직원의 이메일을 외부 이메일 시스템(kedware) 데이터베이스에서 일괄 다운받아 이메일 사용현황을 분석하였고, 그 결과를 조 대표이사에게 1월 6일 직접 보고하였다.

통신 관련법 위반, 부당노동행위 등 법적절차 가나?

해당 정황을 포착한 노동조합의 반발에 이어진 조병제 대표이사의 해명은 이번 ‘이메일 불법 사찰’ 논란에 의구심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노동조합은 대표이사와의 면담을 통해 사과와 재발방지를 요구했지만, 조 대표이사는 전 직원에게 이메일을 보내 이번 사찰이 대표이사 고유의 ‘감독권’이며 이를 통해 조직기강을 세우겠다는 주장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개인의 이메일을 무단으로 열람하는 것이 정보통신망법과 통신비밀보호법 등 실정법 위반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논란의 여지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법적인 문제와 함께 이메일 ‘사찰’에 대한 내부 직원들의 반발이 커지자, 조 대표이사는 다시 사내 보안과 관련된 문제로 해당 이슈를 설명하고 있다. 특히 공개된 문서가 인비친전(人秘親展) 이메일임을 들어, 비밀문서가 유출된 사태라고 주장하고 있다.

윤주필 한국기업데이터지부 위원장은 “만일 해당 이메일이 회사의 인사 관련 비밀문서라면 엄연히 보안관리요령 등 내부 규정에 따라 비밀문서로 분류되는 절차와 규격을 따라야 하고, 배포와 인수 역시 마찬가지의 규정을 따라야 한다”며 “해당 이메일은 그 성격상 보안 비밀문서가 아니고, 만에 하나 비밀문서라면 대표이사는 보안관리 규정을 위반한 것”이라고 지목했다.

노동조합은 또 이번 사안이 노조 활동에 대한 개입이나 탄압을 목적으로 이루어진 정황이 다분한 것을 감안해 통신 관련 실정법 위반 외에도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법적 절차에 들어가는 것을 검토 중이다.

그동안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이메일 불법 사찰 건이 논란이 된 경우는 종종 있었으나, 이번처럼 ‘딱 걸린’ 경우는 없었다. 서울남부지방법원은 2월 3일 노동조합의 증거보전 신청을 받아들여 구로사무소에서 증거보전 절차를 진행하기도 했다.

ⓒ 한국기업데이터지부
고생하는 직원들 사기는 어디로?

윤주필 한국기업데이터지부 위원장은 “이번 사건은 경영진이 직원을 믿지 못하고, 스스로 잘못을 오히려 직원들에게 책임전가하고 있는 매우 안타까운 상황”이라며 “개개 직원들의 인권과 사생활 침해 문제 못지않게, 조직의 단결된 분위기를 저해하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이와 같은 경영진의 ‘무리수’는 지난해 말 파문을 일었던 평가정보 유출 사안에서도 마찬가지의 행태로 드러나고 있다.

정부의 기술금융 확대 정책에 발 맞춰 2014년 2월 민간, 공공 통틀어 4곳의 TCB 중 하나로 선정된 한국기업데이터는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노동조합은 전 직원이 야근과 주말근무를 해가며 밀려드는 평가 업무량 소화를 위해 노력을 했지만, 기술평가를 위해 충원된 인원은 6개월~11개월 사이 단기 계약직 인력 위주였다고 비판한 바 있다. 심지어는 비용절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현장조사는 계약직 직원들이 하고 평가서 작성은 다른 직원이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한다.

더욱이 고객인 은행들로부터 평가 접수 건 수를 늘리기 위해 대출이 불가능한 하위등급이 예상되는 경우(T7 이하 등급) 평가서 작성 전에 사전안내를 하겠다는 내용의 공지를 버젓이 게시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기술평가 정보를 사전에 유출하겠다는 ‘안내’인 셈이다. 하지만 당시에도 경영진은 실무를 담당한 일부 직원들의 책임으로 해당 문제를 전가한 바 있다.

바람 잘 날 없이 연이어 파문에 휩싸이고 있는 한국기업데이터, 그 원인은 무엇일까? 윤주필 한국기업데이터지부 위원장은 “평가기관에 대한 마인드나 업무 경험 없이 낙하산으로 부임한지 고작 1, 2년이 된 경영진이 책임”이라고 말한다. 특히 은행에서 근무했던 경험을 가지고, ‘안 되면 되게 하라’ 식의 찍어누르기 업무 강요를 하고 있는 점이 기관의 사기와 신뢰성을 저하시키는 주범이라는 것이다.

조병제 한국기업데이터 대표이사는 최근의 이메일 사찰 파문이 여론을 통해 확산되자, “회사 설립 10년 동안 시스템 로그 분석 등 보안점검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인지하게 됐다”고 밝혀 점입가경의 행태를 보이고 있다. 기업 신용평가를 전담하는 조직에서 내부 보안에 문제가 있음을 선언하는 모습이다. 과연 어떤 고객이 믿고 평가를 맡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