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다운 노동조합, 기업 안에만 갇혀선 안 돼
노동조합다운 노동조합, 기업 안에만 갇혀선 안 돼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6.02.16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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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 간 풀어야 할 현안 가득
‘지부’의 역할 무엇인지 고민 필요
[사람]박유기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지부장

“현대자동차에는 한국 노사관계가 있다”는 말처럼 현대자동차 노사가 국내 노동현안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남다르다. 우리 사회가 직면한 통상임금, 비정규직, 임금피크제 등의 문제는 현대자동차가 노사가 풀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통상임금 소송은 2심 판결 이후 상고심으로 넘어갔고, 임금피크제 역시 올해로 공이 넘어왔다.

한편 비정규직 문제는 지난 1월 20일 잠정 합의되었으나 비정규직지회 투표에서 또 다시 부결됐다. 비정규직지회 쟁대위는 다시 교섭하겠다는 입장이다. 잠정 합의가 이루어지기 이틀 전인 18일, 임기 시작 한 달을 조금 넘긴 박유기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장을 만났다.

▲ ⓒ 이현석 객원기자 175studio@gmail.com

산별노조 위원장을 역임하고 지부로 돌아오기까지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금속노조 위원장을 하면서, 금속노조 내에서 기업지부의 규모나 영향력이 워낙 크다 보니까 각 기업지부에 기대하는 역할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민주노조 운동, 산별노조 운동, 노동자 정치세력화 사업 등에서 전반적으로 현대자동차지부의 역할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과제에 대해서 현대자동차지부의 자기 역할을 충실히 바꿔보자는 생각이 강했다.

그리고 현대자동차지부 안으로 들어오면, 회사 측의 일방적이고 변칙적인 노무관리가 판을 치고 있다. 회의석상이나 교섭장에서 노사관계가 이루어지는 게 정상인데, 지금은 온갖 로비들이나 회유 같은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는 거다. 이것을 정상화시켜 보겠다는 것이다.”

선거 당시 구호는 ‘노동조합다운 노동조합’이었다. 어떤 의미인가?

“노동조합답다고 하는 건 회사로부터 자유로워야 된다는 거다. 노동조합의 요구가 정확히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임금체계 개선을 하자고 했을 때 세부적인 노동조합의 자기 요구가 정확히 있어야 하는데, 그게 안 되고 있다. 그리고 교섭의제가 만들어질 때 조합원들이 주체가 돼야 되는데, 어느 순간부터 이런 기본이 상당히 무너졌다고 생각한다.

노동조합은 세상을 바꾸는 거라고 하지만, 옛날처럼 소위 기업주의에 빠져서 조합원들의 복지와 임금 문제를 중심으로만 노동조합이 운영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틀렸다고 보지는 않지만, 내가 생각하는 노동조합은 세상을 바꾸려고 하는 조직이다. 그렇기 때문에 산별노조 운동이나 전국민주노조 운동, 노동자 정치에서 현대자동차지부가 과거 10년, 15년 전에 했던 자기 역할들을 회복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우선 상급조직의 회의 결정사항을 잘 집행하고, 결정에 대한 책임성을 높여야 한다. 그러려면 대표자가 직접 참석해서 결정과정에서 자기 역할을 다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현장의 동력을 끌어올리고, 그것이 노동조합 지부를 통해서 결집되는 게 중요하다. 궁극적으로는 현장투쟁 동력을 복원시킨다는 계획이다.”

지난 1월 11일 ‘8+8’ 주간연속2교대제 시행 이후 조합원들의 반응은?

“지금은 생산량 보전과 임금 보전이 정확히 맞는지에 관해서 휴일특근 시 임금이 일부 줄어든다는 문제 제기가 있다. 2직 연장근무를 12시 30분에서 01시 30분까지 했었는데, 이 시간을 줄이면서 350%였던 할증요율이 일부 줄어든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조합원들의 불만이 있다. 그것을 일정부분 보완하려고 실무협의를 하고 있다.

또 한 가지 크게 문제되고 있는 건 2직 퇴근시간이다. 12시 30까지 연장근무를 하는 걸로 약정노동시간이 회사와 합의됐다. 그런데 조합원들 중에서 12시 10분에 정시근무를 마치고 퇴근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 2직 근무조가 오후 3시 30분 출근, 식사시간 40분이니까 12시 10분에 8시간 정시근무가 끝난다. 그런데 정시근무 후 퇴근이 정문에서 통제가 되고 있다. 회사 측 주장은 이들 중 상당수가 12시 30분까지의 연장근무 수당을 받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연장수당을 받는 사람이 12시 30분 이전에 퇴근했을 때 노동조합이 나서서 이것을 허용하라고 요구할 건지다. 이 경우 ‘두발뛰기’나 ‘쳐올리기’ 작업을 못해서 12시 30분까지 근무를 해야 하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불만이 생기는 거다. 두발뛰기나 쳐올리기는 노사가 묵시적으로 동의한 것이지만 계속 문제가 되고 있다. 그래서 2주 동안 시범 시행을 해보고 그 문제를 어떻게 정리할 건지 판단을 내려야 될 것 같다.”

2015년 임단협이 연내 타결됐지만, 임금피크제는 올해로 넘어왔다. 정년 연장과 관련해서 어떻게 문제를 풀어갈 계획인가?

“15년도 협상 결과를 보니까 정부방침 때문에 상당히 노사가 힘들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까 장기근속자에 대한 예우를 높이면서 임금피크제를 확대하자고 얘기됐다. 그런데 이미 59세 때 임금 동결, 60세부터 임금 삭감으로 돼있기 때문에 작년에 회사가 59세 때 10%를 삭감하자고 제안했다. 이렇게 되면 장기근속자들의 임금을 삭감시키는 문제이기 때문에 지부로서는 더 이상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판단을 했던 것 같다.

이외에 회사에서 내놓은 안을 보니까 사내에서 촉탁직으로 더 연장해서 근무할 수 있는 사람을 몇 백 명, 그리고 사외협력업체에 기술직원으로 파견할 수 있는 사람을 몇 백 명, 이런 식으로 해서 장년층과 퇴직자에 대한 취업 알선을 한다고 돼있었다. 청년실업을 해결하기 위한 비전지원센터를 청·장년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비전지원센터로 만들자고 하는 구체적인 안까지도 회사가 냈었다. 그러면서 장기근속자 예우에 관한 조항을 확대하면서 임금삭감에 대해서 일정 부분 완화할 수 있는 방안까지 나왔다. 논의가 여기까지 진행되던 중에 중단됐다. 그래서 2016년도에 다시 추가 논의를 한다는 거다.

정년 연장에 관해서는 소득의 공백이 없도록 국민연금 수급 시점과 연동해야 한다고 본다. 정년퇴직을 하면 고용보험을 일정 기간 받는데, 그 안에 정년을 1, 2년만 연장하면 국민연금과 연동이 된다.”

▲ ⓒ 이현석 객원기자 175studio@gmail.com

통상임금 범위에 관한 2심 판결 이후 상고 입장을 밝혔다. 어떤 문제가 남았나?

“법원에서는 15일 미만 근무자에 대해 상여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상여금지급세칙을 얘기했다. 현대자동차지부에서 1심부터 계속 주장하는 건, 회사가 일방적으로 상여금지급세칙을 만들어서 시행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걸 고정성에 대한 문제로 삼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또 임금 차등에 관해서 얼마만큼 임금을 차감할 수 있는지, 이것이 근로기준법에 위배되지는 않는가 하는 점이다. 이는 지금까지 우리가 공방했던 법률논리하고 같이 갈 수밖에 없다고 본다.

또 한 가지는 기아자동차 통상임금 소송이 진행 중이라는 점이다. 기아차 법원 판결과 현대차의 교섭 문제가 연동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문제는 현대기아차 전체 그룹사의 논의 과제 중 하나가 될 거라고 보는데, 현대기아차그룹 계열사들이 수직계열화됐다. 노사관계도 그렇게 돼버렸는데, 현대자동차가 어떻게 교섭 결과를 내느냐에 따라서 모든 계열사가 영향을 받는다. 일단 금속노조에서 현대기아차 계열사노조 대표자들을 빠른 시간 내에 소집하면 거기서 올해 공동의 대응과제를 논의할 것이다. 금속노조 교섭체계에 현대기아차그룹 교섭을 붙이는 게 어떻겠냐는 안이 나와 있는데, 이렇게 간다면 공동의 대응과제로 통상임금 문제가 들어오게 된다.”

해묵은 사안인 현대차의 비정규직·불법파견 문제에 대한 전망은?

“지난 1월 8일에 불법파견 특별교섭을 재개했고, 11일부터 일주일 동안 실무교섭을 진행했다. 실무교섭에서 여전히 쟁점이 되는 건 근속 인정과 공정 배치에 관한 부분이다. 지금 현대차지부의 입장은 비정규직지회의 입장을 최대한 존중한다는 것이다. 비정규직지회에서는 1월 27일 항소심 판결 이전에 불법파견 특별교섭이 일정한 성과를 거두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있는 것 같다. 일단은 이번 주가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일정한 성과가 있더라도 비정규직 문제는 남는다고 본다. 정규직으로 채용이 되는 조합원, 안 되는 조합원이 있을 건데, 채용이 안 되는 조합원들은 남아서 비정규직지회를 유지한다. 결국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문제는 여전히 이런 식으로 남아 있을 거다. 그래서 이러한 문제는 추후에 불법파견 특별교섭이 정리되고 나면 울산, 전주, 아산공장이 함께 모여서 또 다른 방향에서 논의를 해야 한다.”

현장의 고령화와 조합원 건강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다.

“3년 뒤부터는 현대자동차의 정년퇴직자가 1년에 천 명이 넘어간다. 지금 우리 고령화와 관련해서 임금피크제하고 정년 연장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같이 고민하고 있다. 고령자들은 따로 특별히 모아서 다른 특화된 교육을 한다. 그리고 조합원 건강권 문제 때문에 상당 부분의 폐혈관, 심혈관 전부 검진이 가능할 수 있도록 지원체계를 계속 늘리고 있고, 앞으로도 지원이 늘어날 거라 본다.

다만, 정년퇴직에 이르렀을 때 그 이후의 인생을 위해서 어떤 식으로 우리가 지원 프로그램을 어떻게 가져갈 건지가 고민이다. 현재 정년퇴직을 하더라도 조합원 자격을 유지하는 방안을 가지고 있다. 이 경우에 구체적인 프로그램은 아직 없다. 하지만 현대자동차에서 퇴직하신 분들이 주로 요구하는 건 이런 거다. 자신이 퇴직하더라도 울산지역의 주요 거점에다 언제든 찾아가서 사람을 만나거나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거점들을 마련하기 위해서 올해도 노사 간의 협상 의제가 될 것 같다.”

자동차산업의 패러다임 변화에 대한 노동조합의 대응은?

“차세대 자동차 개발과 거기에 따른 노동조건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지 논의하는 TF팀을 노사 공동으로 구성해야 한다. 회사에서 경영설명회를 할 때 친환경 차나 차세대 자동차에 대해서 자기들도 설명을 하는데, 장기적 과제다 보니까 불확실성이 많다. 지금도 유가가 이렇게 떨어질 줄 몰랐다. 전문가들도 앞으로 내연기관 자동차가 상당 기간은 유지될 거라 본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하이브리드가 앞으로 어디까지 갈 건지, 과연 연비 문제로 계속 경쟁을 할 수 있을지 문제가 있다.

노동조합에서도 패러다임이 변화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 소재공장 같은 경우 옛날에 거의 2천 명 가까이 되는 조합원들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소재 부문이 상당 부분 외주로 넘어가고 몇 백 명만 남아있다. 이같이 장기적인 변화에 따라서 현대자동차지부 조합원들의 노동환경이 어떤 식으로 바뀔 건지 충분히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노사관계에서 이걸 검토하고 연구할 수 있는 팀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노동운동 위기와 관련해 현대차지부를 바라보는 눈길이 많다. 지금의 노동운동을 진단하면?

“내가 1992년도 수배 중일 때에도 노동운동이 위기라고 했다. 그런데 세상을 바꾸겠다는 노동조합운동이 자본주의체제를 넘어서 새로운 사회를 꿈꾸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게 첫 번째 위기라고 본다. 기업 중심으로 자꾸 쪼그라들고 있는 활동 시스템과 풍토를 바꾸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금속노조의 집행력이 회복돼야 한다. 우선 현대차지부의 사업계획이 금속노조 사업계획하고 따로 가서는 안 된다. 금속노조 중집에 가서도 대공장 기업별 지부가 너무 벽이 된다고 생각하지 말고 충분히 열어놓고 얘기를 하자고 말한다. 그런 데서부터 금속노조의 집행력을 회복하고, 초기업단위의 교섭구조를 통해 산별노조의 위상을 제고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지역 민주노총 사업에도 집중하려고 한다. 그런데 지역본부의 재정이 빈약하니 현대자동차지부와 함께 할 수 있는 지역사업을 만들어보려고 한다. 내년이 87년 노동자대투쟁 30주년이다.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현대중공업노동조합,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까지 해서 내년 노동자대투쟁 30주년을 어설프게 넘기지 말고 내실 있게 해보자는 취지의 사업을 지역본부장에게 제안했다. 이런 역할을 통해서 기업 밖의 사업들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지금 운동의 위기를 극복할 방법이 내가 볼 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