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 동의 없이 개혁 가능할까?
당사자 동의 없이 개혁 가능할까?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6.03.22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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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정부 주도한 하르츠 개혁, 여전히 논란 중
더디 가더라도 설득이 필요한 때
마음을 모아야 혁신이다 ②

이른바 ‘노동개혁’을 둘러싼 정부와 여당의 일방적 밀어붙이기는 ‘답정너’와 유사하다. ‘답은 정해져 있고 넌 대답만 하면 돼’라는 의미의 ‘답정너’는 더 이상 단순한 개그 프로그램의 웃음거리가 아니다. 현실에서도 ‘답정너’와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것도 노·사·정 간의 이해관계가 맞부딪치는 영역에서 어느 한 쪽을 압박하는 방식으로.

 ⓒ 참여와혁신 DB
‘답정너’로 풀 수 있는 문제는 없다

‘답정너’는 상대방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의 입장에 꿰어 맞추려고 한다는 점에서 소통과는 거리가 멀다. 상대방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소통하지 않으며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지난 한 해 지속적으로 이슈가 됐던 노동개혁은 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정부와 여당은 양극화된 노동시장을 바로잡는다는 명목으로, 어느 시점부터는 청년실업을 해소한다는 명목으로 노동개혁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와 여당은 노사정위원회를 통한 사회적 합의를 시도했다.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하고 있지 않은 민주노총은 처음부터 이러한 논의에서 배제됐지만, 한국노총은 대화를 통해 노동시장의 양극화 해소라는 과제를 이루기 위해 노사정위원회의 논의에 한 당사자로 이름을 올렸다.

2014년 하반기에 시작된 노사정위원회 논의를 통해 노·사·정은 논의의 의제를 확정했고, 그 중 우선과제에 대해서는 지난해 3월 말까지 결론을 도출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이어진 논의를 통해 시한으로 정한 지난해 3월 말까지 결론을 내지 못했고, 한국노총은 지난해 4월 9일 논의 결렬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정부와 여당은 이 같은 상황에서 당시 심각한 사회문제로 인식되고 있었던 청년실업 문제를 노사정위원회 논의의 앞머리에 올리며 한국노총을 압박했다. 노동시장의 양극화 해소라는 당시까지의 주요 목표에 앞서 청년실업 해소가 노사정위원회 논의의 핵심 목표로 등장했다. 이러는 동안 민주노총은 ‘노동시장 구조개악 저지를 위한 선제 총파업’을 강행했지만, 실제로 파업에 참가한 노조는 소수에 그치면서 별다른 영향력을 가지지 못했다. 한국노총 역시 농성 등의 방식으로 여론의 전환을 시도했지만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했고, 결국 노사정위원회에 복귀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지난해 9월 15일 노·사·정 간의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졌다.

한국노총은 민감한 문제, 즉 이른바 ‘저성과자 통상해고’와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요건완화’에 대해서는 일방적으로 추진하지 않고 충분한 협의를 통해 추진한다는 합의를 이끌어냈다. 여론의 압박에 밀린 한국노총으로서는 최대한 버틴 결과였다. 당초 정부와 여당은 한국노총의 한 간부의 이야기처럼 답과 시한을 정해놓고 도장을 찍으라고 요구했다. 한국노총이 그 시한을 늦추고 확정된 답을 논의과제로 돌린 것은 당시에 도출할 수 있는 최대치였다.

당초 정부와 여당이 취한 태도는 ‘답정너’에 다름 아니었다. 그 답안의 옳고 그름을 떠나, 대화의 상대방에게 답과 시한을 정해 합의를 압박한 것 자체가 그렇다. 나아가 지난해 9월 15일 합의가 이루어지자마자 이른바 노동개혁 법안을 일방적으로 입법발의하고, 지속적인 논의과제로 돌렸던 내용에 대해 일방적인 지침을 발표한 것은, 처음부터 ‘한국노총이 합의했다’는 명분만을 필요로 했음을 드러낸 것이나 마찬가지다.

실제로 합의하지 않았던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이나 파견 확대가 노동개혁 법안이라는 이름으로 입법발의됐고, 저성과자 통상해고는 ‘공정인사 지침’이라는 이름으로,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요건완화는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 지침’이라는 이름으로 발표됐다. 입법발의된 내용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두 개의 지침은 애초에 정부와 여당이 추진했던 노동개혁의 내용을 그대로 포함하고 있다. 즉, 정부와 여당은 내용적인 합의 여부와 무관하게 처음부터 ‘한국노총이 합의했다’는 명분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이 같은 ‘답정너’ 식의 노동개혁 추진에 처음부터 반대했던 민주노총은 물론 합의 당사자였던 한국노총도 반발하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사회적 합의라는 이름으로 추진된다고는 하지만 합의하지 않은 내용까지 법제화되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노총은 정부의 일방적인 지침 발표 이후, 합의가 파탄 났음을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여당은 여전히 노동개혁 법안의 국회 처리를 주문하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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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르츠 개혁, 우리나라와는 방향이 달랐다

정부와 여당이 이처럼 무리수를 둬 가며 노동개혁을 추진한 것은 답보 상태에 놓인 경제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이른바 ‘4대 개혁’이 ‘시급’하다는 현실인식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연초 대국민 담화를 통해 공공·노동·교육·금융의 4부문에서의 개혁을 강조한 바 있다.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현재의 경제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다소 무리가 있더라도 꼭 추진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는 대통령의 담화 이후 정부와 여당의 주요 인사들이 지속적으로 강조한 발언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그런데 아무리 급하다고 해도 바늘허리에 실을 묶어 바느질을 할 수는 없는 법이다. 바느질을 하려면 반드시 바늘귀에 실을 꿰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노동개혁을 꼭 이루고자 했다면 당사자들을 설득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했다. 이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결과는 노동계의 반발이라는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노동개혁을 추진하면서 모델로 삼은 것은 독일의 ‘하르츠 개혁’으로 알려져 있다. 독일에서는 2000년대 초반 400만 명을 웃돌던 실업자를 줄이고, 실업자들에게 들어가는 복지비용을 줄이기 위해 파견과 단시간노동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노동시장 개혁을 단행했다. 그리고 2000년대 말에 이르면 실업자 수는 200만 명대로 떨어지고 고용률은 70%를 넘어섰다.

문제는 독일에서 실업자 수의 감소와 고용률 증대가 하르츠 개혁 때문인가를 놓고 독일 사회에서는 논란이 일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하르츠 개혁 당시 도입된 미니잡(mini jobs)은 저임금 단시간 근로를 확대시켜 고용의 질을 악화시켰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사실 독일에서 하르츠 개혁이 시도된 배경에는 노동시장 개혁을 위한 노·사·정 협상의 실패가 놓여 있다. 독일 사회민주당 정부는 노·사·정 협상을 통해 노동시장을 개혁하려는 ‘고용연대’를 추진했다가 노동계의 반대로 실패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에 당시 슈뢰더 총리는 폴크스바겐 사에서 노동개혁을 이끌었던 페터 하르츠 노동이사에게 노동개혁을 맡겼다. 하르츠를 중심으로 구성된 하르츠 위원회에서는 광범위한 노동시장 개혁 조치를 담은 보고서를 내놨고, 이는 하르츠 법안으로 성안돼 2003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됐다. 슈뢰더 정부는 노·사·정 협상을 통한 노동개혁이 실패함에 따라 정부가 주도하는 노동개혁을 단행했다.
하르츠 개혁의 핵심은 광범위한 실업자를 구직시장으로 이끌어내고 정부가 부담해야 할 복지비용을 경감하는 데 있었다. 이를 위해 슈뢰더 정부는 사회보험 의무를 제거한 가벼운 일자리 도입(미니잡), 실업수당·실업부조·사회부조로 나뉘어 있던 실업자 지원방식 이원화를 통한 사회적 비용 경감 및 구직 유도 등과 함께 고용서비스 체계의 개혁을 추진했다. 사실 하르츠 개혁의 핵심적인 내용 중 하나는 그동안 실업자를 고용으로 이끌지 못한 고용서비스를 고객 중심적 서비스로 바꾼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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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르츠 개혁에서 주목할 또 하나의 지점은 노동개혁이 유연성을 추구하되 우리나라와 같이 수량적 유연성, 즉 자유로운 해고를 추구한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애초에 하르츠가 폴크스바겐 사에서 노동개혁을 추진했을 때에도 하르츠는 고용을 유지하는 데 중점을 뒀다. 폴크스바겐 사는 1990년대 들어 경영악화를 경험했고, 이에 따라 최대 3만여 명을 해고해야만 하는 상황에까지 내몰리게 됐다. 하지만 하르츠는 노동시간을 주당 28.8시간까지 단축함으로써 고용을 최대한 유지하고, 대신 급여 중 일부를 삭감하는 해법을 내놨다.

이러한 해법은 ‘조업단축(Kurzarbeit)’ 제도를 기업 내부에서 응용한 것이었다. 이와 함께 폴크스바겐 사는 다기능화, 수평적 팀제의 강화, 고령자와 청년의 릴레이 고용, 노동시간계좌제 도입 등을 통해 고용을 유지하는 데 힘썼다. 우리나라에 잘 알려진 ‘아우토 5000’ 프로젝트도 이 시기에 진행된 것으로, 실업자를 신규채용해 새로운 공장을 가동하는 프로젝트였다.

결국 폴크스바겐 사는 경영악화라는 위기를 단 한 명의 노동자도 해고하지 않은 채 극복할 수 있었다. 나아가 당시 도입한 다양한 혁신안을 통해 가장 잘 나가는 자동차 메이커로 부상할 수 있었다. 기간제 사용기간을 연장하거나 파견을 허용하고, 해고요건을 완화해 기업의 부담을 줄이는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노동개혁과는 전혀 상반된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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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 이해를 구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

우리나라의 노동개혁 논의는 언뜻 보면 하르츠 개혁과 닮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정부가 주도해서 노동개혁을 추진한다는 점이나 노동개혁의 목표로 유연성 확대를 내걸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러나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개혁의 방향 자체가 다르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우선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유연성의 확대를 노동개혁의 목표로 내세웠다는 점은 같지만, 우리나라가 수량적 유연성, 즉 해고의 자유를 추구하는 반면, 하르츠 개혁에서는 기능적 유연성을 추구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더 중요하게는 독일과 우리나라의 상황 자체가 다르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하르츠 개혁을 추진하던 당시 독일은 정부와 사회가 대량의 실업자를 부양하는 시스템이었다. 이에 따라 실업자가 400만 명을 넘어서는 상황이 닥치자 정부가 이를 부양하는 데 한계상황에 부딪히게 됐다. 실업자를 구직시장으로 유도하기 위한 각종 개혁조치들은 그런 상황을 배경으로 추진됐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실업급여 제도가 실업자를 제대로 부양할 수 있는 수준이 되지 못한다. 이 때문에 ‘해고는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구호까지 등장하게 되는 상황이다. 당시 독일과는 달리 일자리에서 밀려나면 생존 자체가 위협을 받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표면적으로 하르츠 개혁을 모방해 그대로 우리나라에 이식하려는 것은 고용안정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는 조치가 될 것이다. 하물며 독일에서도 실업자가 줄어들고 고용률이 상승한 것은 하르츠 개혁 때문이 아니라 경기 상황이 나아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터다. 시기적으로 겹칠 뿐이라는 주장이다. 더구나 최근 독일에서는 하르츠 개혁을 통해 비정규직이 확산되자 이를 제어하기 위해 파견을 규제하는 방향으로 법률을 개정하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기존 노동자들의 고용을 유지하기 위한 방향으로 개혁을 추진했음에도 그렇다. 당사자인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마음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르츠 개혁과 우리나라의 노동개혁에서 유사한 부분은 정부의 일방적 주도에 의해 일련의 개혁조치들이 추진되고 있다는 점이다. 독일에서는 하르츠 개혁을 추진하기 전에 노·사·정 협상을 통한 노동개혁이 무산된 이후 정부가 개혁을 주도했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처음부터 정부가 노동개혁의 목표와 수단을 정해 놓은 상태에서 사회적 합의라는 틀을 빌리려 했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정부가 주도하고 있다는 점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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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부가 일방적으로 주도한 하르츠 개혁은 독일에서 수많은 비판에 직면해야 했다. 그러한 비판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특히 독일의 노동계는 하르츠 개혁을 통해 비정규직이 양산됐다고 비판하며 이를 되돌리기 위한 규제의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 하르츠 개혁이 수량적 유연성을 추구한 것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을 개혁의 대상으로 상정하고 당사자인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마음을 얻지 못한 결과다.

이를 본떠 우리나라에서 추진하려고 하는 노동개혁은 당사자인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마음을 얻기 위한 설득의 노력이 전혀 없다는 점뿐만 아니라, 그 방향에서 수량적 유연성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 큰 비판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사회적 합의라는 외연을 빌렸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여당의 일방적인 밀어붙이기는 그 합의의 한 당사자마저 합의의 파탄을 선언하게 만들었다.

어떠한 개혁 또는 혁신도 당사자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성공하기 어렵고, 설령 당장은 성공한다고 할지라도 종국에 가서는 더 큰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당사자들을 설득하기 위해 시간이 걸리더라도 지속적으로 설득하고, 나아가 당사자들의 참여를 보장해 함께 논의하는 것이 절실한 이유다.

이와 관련해 백형록 현대중공업노동조합 위원장은 “노동자가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회사가 살기 위해서라도 경영에 노동조합의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노동조합이 경영의 한 주체로서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고, 경영진이 잘못된 의사결정을 하지 않도록 견제와 감시의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참여까지는 아니더라도 노동을 단지 개혁의 대상으로만 보는 데에서 나아가 당사자들을 설득해 동의를 이끌어내고 마음을 얻을 수 있다면 개혁이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렇게 할 때 당사자의 반발이 아닌 참여도 가능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현재 상황을 놓고 본다면 양극화된 노동시장의 폐해는 누구나 인식하고 있는 바다. 그러한 양극화를 극복해야 한다는 점도 역시 공감하고 있는 바다. 그렇다면 그러한 공감대 위에서 이해당사자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해법을 모색하는 것이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 될 것이다. 양극화 해소라는 혁신의 과정이 새로운 갈등을 만들어내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