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죽음으로 지키려 했던 것
그가 죽음으로 지키려 했던 것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6.03.22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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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버스노조 제로쿨투어지부장 분신자살
전세버스업계 살펴보니 그야말로 ‘아수라장’
[사건]전세버스 노동자 분신

지난 1월 19일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전세버스업체 (주)제로쿨투어(대표이사 박광수) 사무실 앞 계단에서 신형식(59) 씨가 스스로 몸에 불을 붙여 사망했다. 신 씨는 당시 전세버스노동조합(위원장 윤춘석) 제로쿨투어지부장을 맡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죽음 이후 사측이 노동조합을 탄압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이유가 드러났다. “노조 하면 칼질해서 버린다”는 관리소장의 발언도 사실이었다. 그리고 제로쿨투어에서 벌어진 사건 뒤에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전세버스업계와 노동자들의 처참한 현실이 숨어있었다.

 ⓒ 이현석 객원기자 175studio@gmail.com
목숨 걸고 하겠다는 약속

고 신형식 지부장이 제로쿨투어 사무실 앞 계단에서 분신한 시각은 1월 18일 저녁 8시경으로 추정된다. 사건이 일어나기 40여 분 전, 그는 조합원들에게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문자메시지의 내용은 마치 유서와 같았다.

“제가 노조 설립할 때 목숨 걸고 하겠다고 조합원 여러분께 약속한 바 있습니다. 이제는 그 약속을 지키려고 합니다. (…) 제가 마무리하지 못한 부분은 조합원 여러분의 힘을 모아 반드시 이루어 주십시오.”

조합원들이 받은 이 같은 내용의 문자메시지는 숨진 신 지부장이 박광수 대표이사와 노동조합에 관해 대화를 나눈 뒤 보낸 것이었다. 문자메시지를 보고 이상한 낌새를 느낀 제로쿨투어지부 조합원 김 모 씨는 고 신형식 지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 씨의 주장에 따르면, 신 지부장은 그와의 전화통화에서 “면담을 했는데 대화가 안 된다”, “박 회장님이 노사협의회하고만 대화를 하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통화가 끝나고 김 씨는 느낌이 이상하다며 윤춘석 위원장에게 다급히 연락했다.

윤 위원장이 사고 현장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신 지부장이 숨진 뒤였다. 사고 현장은 당시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계단과 복도 사이의 철제 출입문은 시커멓게 타 있었고, 벽과 유리창 곳곳에는 소화기 분말 자국이 선명했다.

한편, 박광수 대표이사는 고 신형식 지부장과 김 씨의 통화내용에 대해 전면 부인했다. 그는 분신사건이 일어난 다음 날인 19일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과 전세버스노조 관계자들이 자신의 사무실로 항의방문을 하자 “왜 노조를 만들려고 하는지 길게 얘기를 했다”며 “회사 내 여러 가지 문제를 함께 풀어가자고 이야기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면담이 잘 마무리되었다면 왜 신 지부장이 분신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했겠냐고 노조 관계자는 지적했다.

윤춘석 위원장에 따르면 고 신형식 지부장은 침착하고 차분한 성격이었다. 그런 그가 회사 대표이사와의 면담을 마친지 한 시간 만에 스스로의 몸에 불을 붙이는 선택을 했다는 사실을 조합원들은 믿기 어려웠다. 또 다른 노조 관계자는 19일 항의방문 자리에서 박광수 대표이사에게 “노동조합 설립에 관한 사측의 압박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느냐”고 묻기도 했다. 그러자 박 대표이사는 “한 회사 노조위원장이 왔는데 그렇게 하겠냐”면서 “노조가 이미 결성이 됐는데 막을 수 있나”라고 항변했다.

 ⓒ 성상영기자 syseong@laborplus.co.kr
노조 가입하니 “칼질해서 내보내겠다”

전세버스노조 제로쿨투어지부는 지난해 11월 18일에 조합 가입을 신청한 사람 7명 중 6명이 모여 설립총회를 열었다. 당시 고 신형식 지부장도 그 자리에 함께했다. 그러나 설립총회 다음 날인 11월 19일 새벽 제로쿨투어 관리소장 박 모 씨와 신 지부장은 관리소장실에서 언쟁을 벌인다. 두 사람의 대화는 녹취록으로 고스란히 남았는데, 사측이 부당노동행위를 일삼은 결정적 증거가 됐다.

<참여와혁신>이 입수한 녹취록에 따르면, 박 모 관리소장은 고 신형식 지부장과 대화를 하는 내내 자신이 노동조합에 가입한 사람들을 관리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노동조합에)가입하겠다는 원서를 썼는데 회사가 원치 않아”라며, “그러면 ‘니가 정상적으로 진짜 가입해서 진행할 거냐? 노동조합에 가입해서 갈 거냐? 아니면 회사에 그냥 있는 상태에서 나갈 거냐?’ 난 그 뜻을 (조합원들에게)다시 물어봐야지요”라는 등의 발언을 했다. 언론을 통해 화제가 됐던 “칼질해서 내보내겠다”는 내용도 이 대화에서 언급된 것이다. 박 모 씨는 당시 “(노동조합 가입을)진짜 할 거냐, 안 할 거냐 하는 건 내가 칼질해서 내가 버린다니까”라고 말했다. 그것도 모자라 “노동조합 내가 승인을 안 할 거야”라고 하는 등 마치 자신의 허락을 받아야 노동조합 설립이 가능한 것처럼 이야기했다.

그런데 이미 제로쿨투어지부가 설립총회를 열었던 그 날에도 박 모 관리소장은 노동조합에 가입한 노동자들을 회유하기 위해 움직였다. 박 모 씨는 조합에 가입한 오 모 씨에게 전화를 걸어 노동조합 탈퇴 여부를 결정한 후 자신에게 알려달라고 말했다. 그는 오 씨를 향해 “분명히 얘기하지만 그 부분이 나는 용납이 안 된다니까”라며 “회사에서 (노동조합을)인정 안 하는데 왜 그걸 인정을 해주냐”고도 했다. 이와 같은 수법으로 관리소장 박 모 씨는 노동조합에 가입한 노동자들에게 개별적으로 전화를 걸어 노동조합 탈퇴를 종용했다.

 ⓒ 성상영 기자 syseong@laborplus.co.kr
단체교섭권을 사용자가 준다니

사측의 노조 탄압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경기도 파주에서 출퇴근하는 한 전세버스 노동자는 그동안 파주지역이 출발지인 운행을 맡았다. 그러나 그가 노동조합에 가입하자 사측은 서울 강남구에 있는 탄천공영주차장에 버스를 입고시키도록 하고, 이를 어길 경우 징계 조치했다. 뿐만 아니라 1년마다 근로계약을 반복하는 기간제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하면, 계약을 더 이상 연장해 주지도 않았다.

사측은 한편으로는 개별 노동자들에게 노조를 탈퇴하라며 압박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노사협의회를 통한 노조 파괴에 나섰다. 전세버스노조에 따르면, 박광수 대표이사가 직원들과 소통을 하겠다며 그 수단으로 노동조합, 상조회, 노사협의회, 회사 방침 등 네 가지 방안을 들고 나와 노동자들에게 한 가지를 고르게 했다. 사측은 노사협의회 방안을 원한 사람이 가장 많았다면서 투표함을 돌려 노사협의회 의장도 선출했다.

박광수 대표이사는 노사협의회에 단체교섭권을 줬다. 단체교섭권을 노사협의회가 갖는 것도 현행 노동관계법에서 불가능한 일이지만, 애초에 단체교섭권은 누가 주고 말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전세버스노동조합은 이러한 사측의 행위에 대해 지난해 12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구제신청을 했다. 당시 서울지노위 심판회의에서 한 공익위원이 “어떻게 노사협의회에 단체교섭권을 주느냐”고 묻자, 박광수 대표이사는 몰랐다고 발뺌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 신형식 지부장의 분신자살 이후 사측의 노조 탄압 정황이 드러나자 고용노동부 산하 서울동부고용노동지청은 지난 1월 28일부터 2월 3일까지 일주일 간 제로쿨투어를 대상으로 특별근로감독에 나섰다. 그 결과 노동관계법을 위반한 온갖 사례들이 적발됐다. 연차수당이나 휴일근로수당 등 각종 수당을 지급하지 않았는가 하면,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고, 취업규칙을 회사 내에 비치하지도 않았다. 서울동부고용노동지청은 제로쿨투어의 노동관계법 위반 사항에 대해 과태료 부과 및 사법처리할 방침이다.

규제완화로 수급조절 실패, 불법 지입제 판쳐

그런데 문제는 고 신형식 지부장이 몸담았던 제로쿨투어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또 서울동부고용노동지청이 적발한 각종 노동관계법 위반 사례는 단지 전세버스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의 한 단면일 뿐이다. 전세버스 노동자들이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데에는 규제완화와 전세버스 공급과잉, 전세버스업계에 만연한 지입제, 관할 부처와 지자체의 방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탓이 크다.

2013년 7월 한국교통연구원의 ‘전세버스 운송사업 규제합리화 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기준 전세버스 운송업체 수는 1,468개, 차량대수는 3만 9,235대로 업체당 26.7대의 차량을 보유하고 있었다. 또 전세버스 노동자들의 평균 운행시간은 같은 해 성수기를 기준으로 하루 9시간에서 10시간대의 분포를 보였다. 그러나 업종의 특성상 대기시간이 긴 점을 감안하면 이들의 하루 노동시간은 그보다 더 길 것으로 추측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세버스 노동자들은 월 평균 129만 원(직영운전자)에서 157만 원(지입운전자) 가량의 급여를 받는 것으로 드러났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에는 전세버스의 공급과잉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이미 2009년에 실수요 대비 약 20%의 초과공급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전세버스 차량대수는 2013년 기준 4만 2천여 대로 2009년 당시보다 약 1만 대 늘었고, 전세버스노조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2015년 현재에는 4만 7천여 대까지 늘어났다.

한국교통연구원은 전세버스의 공급과잉에 대해 정부의 규제완화로 전세버스운송업의 장벽이 낮아졌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1993년 8월 김영삼 정부는 전세버스운송업을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전환했다. 당시만 해도 전세버스는 초과수요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정부가 진입장벽을 낮춰 수요와 공급을 일치시키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이는 다른 결과를 낳게 된다.

여기에 더해 1998년 8월 최저자본금제도가 폐지되면서 전세버스업체의 설립은 더욱 쉬워진다. 적은 자본으로도 각 지자체별로 정한 일정 차량보유대수만 충족하면 전세버스운송업을 시작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이는 불법 지입차량을 증가시키는 도화선이 된다. 사업주가 가진 자본이 적더라도 지입을 통해 업체 설립 요건을 맞춘 것이다. 여기에는 1997년 말 외환위기로 인한 대량실업사태도 한몫했다. 직장을 잃은 사람들이 전세버스 지입차주가 된 것이다.

물론 지입제는 현행 여객자동사운수사업법상 불법이다. 하지만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전체 전세버스 중 지입차량의 비율은 44.6%에 달한다. 또 지입차량이 1대라도 있는 업체는 전체 전세버스업체 중 74.5%나 된다. 한국교통연구원은 실제 지입제로 운영되는 비율이 이보다 더 높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조사에 응한 사업체나 지입차주가 현행법상 불법인 지입제를 솔직하게 답할 유인이 없기 때문이다.

▲ 자료: 한국교통연구원(2011)
전세버스업계 기형적 구조 바로잡아야

이처럼 업계에 만연한 불법 지입제는 전세버스 과잉공급과 맞물려 전세버스운송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정부의 규제완화로 전세버스운송업의 진입장벽이 낮아지면서 경영능력이 없는 영세업체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이들 영세 사업주들은 자본이 없기 때문에 자가용 버스를 구입해 들어오는 지입차주들을 끌어들였다. 이는 전세버스의 과잉공급을 불러오고, 직영회사와 지입제회사 간 출혈경쟁을 초래했다.

지입제회사는 차량관리비를 절감하면서도 지입차주들로부터 지입료를 받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직영회사에 비해 요금인하 경쟁에서 유리하다. 또 지입차주들은 근로소득이 원천 징수되는 직영 소속 노동자들과 달리 세금을 탈루하기 쉽기 때문에 직영 소속 노동자들보다 더 많은 수입을 올린다. 그러나 물가상승을 고려한 운전자 1인당 급여가 1992년 연 1,170만 원 수준에서 2009년 1,092만 원 수준으로 오히려 떨어졌다. 결국 상대적으로 지입차주가 직영 소속 노동자들보다 다소 높은 수입을 올릴 수 있다 하더라도, 지입제가 전세버스운수업 종사자 모두를 저임금의 벼랑으로 몰아넣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일부 전세버스 노동자들은 임금수준을 조금이라도 높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노동조합에 가입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세버스업계의 기형적 구조가 해소되지 않는 한, 어느 누구도 제로쿨투어에서 벌어진 일이 또 다시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고 신형식 지부장은 “제가 마무리하지 못한 부분은 조합원 여러분의 힘을 모아 반드시 이루어 주십시오”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겼다. 남은 사람들의 어깨가 무겁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