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르는 매각, 이번에는 어떨까
아무도 모르는 매각, 이번에는 어떨까
  • 장원석 기자
  • 승인 2016.03.22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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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 없다 약속한 MBK, 희망퇴직으로 뒤통수
실적 높이려는 MBK, 진짜 기업의 힘 빠진다
[사건]ING생명 매각 후 2년

2012년 7월 31일, ING생명지부는 무기한 파업에 돌입했다. ING생명의 매각과 관련해 고용안정을 보장하라는 요구에서였다. 이로 인해 ING생명의 매각은 한동안 지연되었다. 가장 유력한 인수후보였던 KB금융지주가 인수를 포기하는 가운데 2013년 8월,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가 우선협상대상자가 되고 2013년 12월 인수가 마무리되었다.
인수 후 2년, ING생명에는 많은 일이 있었다고 한다. 외형상 단기순이익이 급증하고 기업의 자산도 늘었지만 ING생명의 임직원들에게는 힘든 시간이 이어졌다. 매각 당시 했던 고용보장에 대한 약속은 결국 임직원 20% 희망퇴직으로 끝나고 말았다. 2016년, MBK는 ING생명을 다시 시장에 내놓았다. 또다시 매각의 문제가 떠오르고 있다.

 ⓒ 참여와혁신 DB
‘매각은 아무도 모른다’

2012년 매각 당시 ING생명은 생명보험업계 5위의 평가를 받는 기업이었다. 네덜란드 기업인 ING그룹의 계열사인 ING생명은 한국 법인이 독립된 형태로 약 1,000여 명의 직원 규모를 가지고 있었다. 주력 판매창구인 보험설계부분의 생산성이 타 보험사에 비해 월등하게 높고 자산구조가 안정적인 ING생명은 ‘알짜’기업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러한 기업을 모그룹에서 매물로 내놓은 것은 2008년 금융위기로 인한 100억 유로에 달하는 구제금융을 상환하기 위해서였다.

매물로 나온 ING생명에 많은 기업들이 군침을 삼켰다. 특히 KB금융지주는 적극적이었다. 어윤대 전 KB금융지주 회장은 매각 이전부터 “ING생명을 팔라고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ING생명을 사고 싶다”며 강한 인수의사를 나타냈고 우리금융지주, 신한금융지주 등 금융지주와 기업은행, 삼성생명, 대한생명, AIA그룹, 푸르덴셜그룹 등이 러브콜을 보냈다.

결국 교보생명, 대한생명, KB금융지주, AIA생명이 인수의향서(LOI)를 냈다. 이중에서도 KB금융지주는 ING생명지부에 고용보장을 간접적으로 약속했고 ING생명도 지부에 2년 고용보장과 기본급 3개월 치 위로금을 지급하는 등 협상에 나섰다. 노조가 전면 파업을 하고 있었지만 매각은 시간문제로 보였다. 실제로 2012년 9월 초에는 KB측이 ING한국법인을 2조 7,000억 원에 매각하는데 합의했다는 소식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사회에서 일부 사외이사들이 ING생명과의 협상에서 끝까지 문제가 되었던 가격과 대선 등 대외상황을 문제 삼으며 매각이 문제를 겪기 시작했다. 결국 2013년 12월 임시 이사회에서 인수 표결이 부결되면서 매각은 원점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후 재매각시장에 관심을 보인 기업은 한화생명, 교보생명, 동양생명, 루터어소시에잇코리아, MBK파트너스 등 5개 기업이었다. 매각 초반에는 동양생명이 우선협상권을 따내며 유력한 인수주체로 떠올랐다. 하지만 동양생명의 자금동원에 문제가 생기며 우선협상대상자는 MBK파트너스가 되었다. MBK는 금융위원회에 ‘2년간 ING생명을 재매각하지 않고 배당 역시 금융당국의 가이드라인을 따르겠다’고 밝혔다. 이에 금감원이 MBK의 대주주 자격요건이 문제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12월 매각이 완료되면서 약 2년 만에 ING생명의 주인은 MBK로 바뀌게 되었다.

 ⓒ 참여와혁신 DB
오랜 매각 기간에 노조 동력 떨어져

인수과정에서 노동조합은 고용보장과 매각 과정의 투명한 공개를 요구하며 전면 파업까지 불사하는 투쟁을 전개했다. 2012년 파업에서 전체 825명 조합원 중 협정근무자와 출산, 육아휴직자를 제외한 모든 조합원들이 파업에 참여했다.

매각 과정에서 매각하려는 기업과 인수하려는 기업이 가장 중시하는 것은 매각 대금이다. 노동자들은 매각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그 과정에서 근로조건과 고용에 어떤 문제가 생길지 알지 못한다. 당시 ING생명지부 역시 매각과 관련한 어떤 정보도 사측으로부터 듣지 못했다. 이런 부분이 ING생명지부가 파업을 계속하는 원인이었다.

사측은 매각 완료 시점부터 2년간 강제적 정리해고를 하지 않겠다는 고용안정협약서와 기본급의 300% 수준의 매각위로금, 2012년 성과급을 제시했다. 하지만 노조는 고용안정을 보장해달라며 맞섰고 그해 12월까지 144일에 이르는 파업을 지속했다.

결국 KB금융지주와의 매각이 무산되면서 파업은 종료되었다. 하지만 장기간 파업으로 인한 조합원의 이탈, 비교적 좋은 환경을 가진 KB금융지주로의 매각 무산은 노동조합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후 재매각과정에서 일반 기업보다 고용안정 측면으로 더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가 선정되었을 때 노조는 지난 번 같은 투쟁동력을 만들 수 없었다.

180도 다른 회사, 수세에 몰린 노동자들

이기철 ING생명지부장은 “매각 전과 후의 회사는 180도 다른 상황”이라고 말한다. MBK로의 인수 이후 ING생명 노동자들은 고용에 대한 불안과 성과에 대한 압박에 시달리며 지내야 했다. 외국계 회사 특유의 분위기로 직원들이 가졌던 자신감은 이내 회사에 대한 두려움으로 변했다.

이전의 ING생명은 개인의 자율성과 대우를 보장해주고 직원들은 능력과 성과를 회사에 증명하는 형태였다면 MBK 매각 이후 ING생명은 노동자들이 일상적인 고용불안을 느끼는 곳으론 변했다는 것이다. 특히 3년 동안 6~7번 이상의 부서발령이 나는 등 인사 부분에서의 문제가 심각했다고 노조는 말한다.

이러한 고용불안이 극에 달한 것은 2014년 7월,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한 희망퇴직이었다. ING생명은 구조조정에 앞서 30여명의 임원 중 절반을 해임하고 70여명의 부장급 직원에 대해 희망퇴직을 실시하더니 노조에 5년차 이상 전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해 270명의 임직원을 줄이겠다고 통보했다. 이는 전체 직원의 30%에 달하는 숫자다.

노조는 “MBK파트너스는 인수 당시 3년간 인위적 구조조정을 하지 않겠다는 단체협약과 고용안정협약서 승계 의사를 밝혔음에도 반년도 되지 않아 약속을 저버렸다”며 강력하게 반발했지만 결국 희망퇴직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고 약 200여명의 임직원이 회사를 떠나게 되었다.

희망퇴직 과정에서도 문제가 심각했다. 한 사람을 수차례 면담하면서 “힘들게 버티지 말고 알아서 희망퇴직해라”, “당신은 여기에서 더 이상 있을 자리가 없다”, “당신과는 더 이상 같이 일하고 싶지 않다” 등 직원들을 압박해 결국 퇴사하게 만들었다. 이와 같은 면담에서 2명의 임신한 직원이 견디지 못하고 쓰러져 치료를 받기도 했다 특히 이러한 희망퇴직 강요는 임신을 했거나 출산·유아 휴직의 상태에 있는 여성에 집중되어 문제가 심각했다. 우리나라 사회에서 특히나 고용불안에 노출되어 있는 여성에 대해 협박이나 회유가 좀 더 쉬울 것이라는 것이다.

성과에 대한 압박도 심해졌다. ING생명은 매각 이전부터 상대평가제를 실시하고 있었다. 평가를 해서 1등급부터 5등급까지 평가를 한다면 하위 10%의 인원은 4~5등급에 무조건 배정된다. MBK 인수 이후 모호한 기준을 통해 회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 직원을 정리해버릴 수 있다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노조는 정부의 2개 행정지침이 앞으로 이러한 추세에 기름을 끼얹는 것이 아닌가 우려하고 있다.

노동조합 역시 축소되었다. 매각 이전 임직원 1,020명 중 825명이 조합원이었던 ING생명지부는 현재 약 800명의 임직원 중 540명 정도로 줄어들었다. 단체협약 상 여러 부분도 실제로 지켜지지 않거나 문서로 축소가 확정되었다. 이기철 지부장은 “MBK 밑에 있던 3년의 기간 동안 있었던 일들로 임직원 간의 인간적 관계, 기업 문화가 붕괴하고 직원 간 불신이 커지게 되어 결과적으로 점점 소극적, 수세적으로 변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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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성장 보였지만 속 빈 강정되진 않을까

MBK로 주인이 바뀐 이후, ING생명은 외형적으로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고 있다. ING생명의 자산은 2015년 3분기 기준 27조 5,934억 원에 이른다. 매각 당시인 2013년 12월 자산(23조 8,928억 원)에 비해 약 3조 7,006억 원이 증가했다. 영업이익 역시 2015년 기준 2,673억 원으로 2013년 1,616억 원보다 1,057억 원 증가했다. 보험설계사의 생산성도 높은 편인데 2015년 3분기까지 ING생명 보험설계사 수입(1인당) 보험료는 2,668만 원을 기록해 동양생명(915만 원)이나 미래에셋생명(1,912만 원), 신한생명(507만 원)에 비해 크게 높다.

하지만 일반적인 사모펀드의 기업 판매 과정을 볼 때 이와 같은 기업의 성장이 정상적인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단지 허우대만 멀쩡할 뿐, 속에는 문제가 생기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기철 지부장은 “전년도보다 더 많은 실적을 냈다고 해서 그 회사가 좋아지고 있다고 볼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특히 보험업계는 영업에 대해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면 당장의 이익은 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수익구조가 악화된다는 것이다.

특히 작년 엄청난 수의 계약을 체결한 저해지환급형 종신보험인 ‘용감한 오렌지 종신보험’의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 이 상품은 납입기간을 만기까지 유지할수록 보험사가 환급해야 할 적립금의 규모가 많아지는 상품이다. 당장의 실적은 높게 보이지만 실제 기업 부담이 증가한다. 2020년 IFRS4 2단계(기존에는 원가로 평가하는 보험부채-가입자에게 돌려줘야 할 보험금-가 2020년 이후 시가로 평가됨. 금리가 떨어지는 만큼 부채가 늘어난다)가 도입된다면 보험사 부채는 더욱 증가한다.

노조는 MBK가 실적을 최대한 뽑아내기 위한 인사들을 CEO로 내정하고 그들에 대해 엄청난 성과급을 부여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회사의 장기적인 성장을 책임져야 하는 CEO들이 본인의 이익을 위해 실적을 강요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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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장에 나온 ING생명, 이번에는?

MBK가 금융당국과 2년간 재매각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은 지난 해 말로 시한이 지났다. MBK 역시 기다렸다는 듯 ING생명을 매물로 내놓았다. 2월, MBK는 최근 ING생명 매각 주관사로 모건스탠리를 선정하고 1분기 중 매각 시점, 절차를 정하기로 했다.

MBK는 사정이 급하다. 투자금 회수를 위해 내놓은 기업들의 매각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2016년 경제위기전망에 M&A 거래가 크게 줄었다. 코웨이가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지만 몸집이 커지며 기업 매각 자체가 어려워지고 있고 홈플러스 역시 노조가 강하게 반대하고 있어 구조조정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씨앤앰 역시 매각에 관심을 보이던 SK텔레콤이 CJ헬로비전을 인수하기로 하면서 물거품이 되었다. 매각에 성공한 HK저축은행은 매각금액이 너무 적다.

결국 MBK 입장에서는 매각 관련 약속도 끝나고 실적도 높게 나온 ING생명 매각에 거는 기대가 크다. 업계 2, 3위인 한화생명과 교보생명은 유력한 인수후보다. 둘 중 하나가 ING생명을 인수하게 되면 업계 부동의 1위인 삼성생명에 이은 업계 2위 지위를 안전하게 확보할 수 있다. 업계에서는 중국이나 대만의 보험사들도 인수 후보로 거론되지만 가능성은 낮은 편이라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고용안정이다. 노조는 이미 한차례의 희망퇴직으로 인해 기업 크기에 비해 인력이 모자란 상황이고 매각에 있어서도 추가적인 구조조정의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더불어 장기적인 ING생명의 발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인수기업이 새 주인으로 들어오기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맨 처음 언급했듯 기업의 매각은 아무도 모른다. ING생명과 근래 기업 매각 과정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살펴보면 어떤 문제가 발목을 잡을지 알 수 없다. 고용이나 보상에 대해 매각사와 인수사 사이에 노동조합이 갈팡질팡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2012년 매각 당시에 파업투쟁을 이끌었던 ING생명지부의 새 집행부가 노동조합의 복원을 중점에 두고 있는 가운데 앞으로 있을 ING생명의 매각에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