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철도 수송원을 죽음으로 내몰았나
무엇이 철도 수송원을 죽음으로 내몰았나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6.03.22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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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차분리 사건 수사 받던 철도 수송원 자살
‘업무상과실’ 혐의… 철도경찰 “검찰에서 판단”
[사건]청량리역 수송원 자살

설 연휴 첫 날이었던 지난 6일 서울 동대문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청량리역 수송원으로 근무하던 백 모(33) 씨가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백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잠정 결론지었다. 숨진 백 씨의 컴퓨터에서는 ‘교통방해죄’, ‘철도경찰’, ‘변호사사무소’ 등의 단어를 검색한 기록이 발견됐다. 그는 사망 2주 전인 지난 1월 23일 ‘업무상 과실에 의한 기차 교통방해’ 혐의로 국토교통부 산하 철도특별사법경찰대로부터 조사를 받았고, 사건은 28일 검찰로 넘어갔다. 그러나 백 씨는 설 연휴 첫 날 부모에 의해 주검으로 발견됐다. 이에 대해 전국철도노동조합은 “철도경찰의 무리한 수사로 인한 것”이라며 철도경찰을 강력 규탄했다.

 ⓒ 참여와혁신 DB
화물열차분리 원인은 오리무중

사건의 발단은 지난해 8월 1일 청량리역 구내에서 발생한 화물열차분리였다. 수색역을 출발해 제천조차장역으로 가던 제3223 화물열차는 청량리역에 정차해 전기기관차 한 량을 더 연결한 후 청량리역을 막 출발하던 참이었다. 추가로 연결된 전기기관차는 제천조차장역으로 회송하기 위해 동력을 끊은 상태로, 화차를 견인하던 디젤기관차 바로 뒤쪽에 연결됐다. 작업을 마친 후 열차가 출발했다. 그런데 회기역 방향으로 414m 가량 이동하던 중 화차와 전기기관차가 분리됐다. 안전장치 작동으로 비상제동이 체결돼 다행히 별다른 피해는 없었지만 뒤따르던 열차 4대가 최대 18분 동안 지연됐다. 백 씨는 분리된 열차의 연결하는 업무를 맡았다.

사건이 발생하자 한국철도공사는 곧바로 진상조사에 들어가 분리된 화차와 전기기관차의 연결기 상태를 점검하였으나 아무런 특이점을 찾지 못했다. 또 사고가 발생한 장소와 동일한 위치에서 운행시험도 진행했으나 역시 이상 없었다. 그러자 철도공사는 ‘원인불명’으로 사고조사를 마무리했다.

사고가 난 날로부터 6일이 지난 8월 7일, 서울지방철도경찰대는 ‘업무상과실기차교통방해’와 관련해 사고열차를 운전했던 기관사와 부기관사, 그리고 숨진 백 씨와 그를 보조한 또 다른 수송팀 직원을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하겠다며 출석을 요구했다. 이에 수송원 2명은 8월 10일에, 기관사와 부기관사는 8월 12일에 모두 철도경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이후 8월 14일에 네 사람은 철도경찰의 요청에 의해 열차분리 사건을 재연하기 위한 현장조사에 참석한다. 철도경찰은 상황을 바꿔가며 해당 열차의 연결기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시험했으나 연결기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철도공사 자체 조사결과와 마찬가지로 철도경찰의 사고재연에서도 기계적 결함이 발견되지 않자 철도경찰은 네 사람에 대한 약물검사를 하겠다며 다시 한 번 출석을 요구한다. 이에 철도노조는 과잉수사라며 반발했고, 기관사와 부기관사는 약물검사를 거부했다. 하지만 백 씨와 다른 수송팀 직원은 출석요구에 응해 8월 27일 약물검사를 받았다. 그 결과 두 사람 모두 약물을 복용하지 않았던 것으로 판명됐다.

그러던 10월 7일, 철도경찰의 의뢰를 받은 국립과학수사원은 청량리역 구내 현장조사를 벌였다. 철도경찰은 3개월 뒤인 올해 1월 23일 숨진 백 씨를 불러내 조사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참고인 신분이 아니라 피의자 신분이었다. 여러 차례 현장조사를 벌였음에도 불구하고 연결기의 기계적 결함이나 파손 흔적이 발견되지 않자 연결기를 조작했던 백 씨의 과실로 수사의 초점을 맞춘 것이다. 결국 철도경찰은 1월 28일 백 씨에게 업무상과실기차교통방해 혐의를 적용해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하지만 2월 6일 백 씨의 사망이 확인되면서 화차분리 사고의 원인은 영영 알 수 없게 됐다.

 ⓒ 성상영 기자 syseong@laborplus.co.kr
인적·물적 피해 없는 ‘운행장애’, 철도경찰 수사 적절했나

백 씨의 사망 원인이 자살로 밝혀지자 지난 2월 11일 철도노조는 서울지방철도경찰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철도경찰을 강하게 비판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사고를 수송원의 과실에 인한 것으로 단정해 백 씨를 상대로 강압수사를 벌였고, 결국 그를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철도노조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철도경찰 측은 강압수사는 일체 없었으며, 검찰의 지휘를 받아 적법하게 수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철도경찰 관계자는 “과실 부분에 대해 증거자료를 첨부해 서울중앙지검에 송부했으며, 최종 판단은 검사가 내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수사를 받은 후 백 씨가 자살한 데 대한 철도경찰 책임론에 선을 그은 것이다.

해당 사건의 수사과정만 놓고 보면, ‘열차분리 사건 발생 → 연결기 결함 미확인 → 담당자 과실 의심’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런데 철도노조는 당시 열차분리 사건을 철도경찰이 수사하는 것 자체가 이례적이라는 입장이다. 청량리역 구내에서 발생한 열차분리는 인명피해나 물적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음에도 사법 처리의 대상이 되느냐는 것이다.

그간 인적·물적 피해가 발생하지 않은 경미한 사고의 경우 철도공사에서 자체적으로 조사해 관련자를 징계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던 것이 일반적이었다. 과거 사례에 비추어 봐도 작업자들이 사법 처리된 적은 드물었다. 지난 2011년 2월 광명역 인근에서 KTX 열차 탈선 사고가 발생했을 때도 철도공사가 관련자 14명에 대해 중징계를 내렸지만, 이들이 검찰에 기소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경미한 사고에 대해서도 철도경찰이 개입하는 일이 늘었다는 것이 철도노조 관계자의 설명이다. 철도노조 관계자는 “철도상황실에 철도경찰이 상주해 사고가 나면 철도경찰이 제일 먼저 현장에 도착해 조사를 벌인다”고 말했다. 그는 “구내에서 입환작업(객차나 화차 등의 차량 연결 순서를 바꾸는 작업)을 하다 사고가 나도 철도경찰이 먼저 수사를 하면서 작업자들은 형사 사건의 잠재적인 피의자가 됐다”고 덧붙였다.

한편, 철도경찰이 숨진 백 씨에게 적용한 ‘업무상과실기차교통방해’는 형법 제186조(기차, 선박등의 교통방해)와 형법 제189조(과실, 업무상과실, 중과실)에 따른 것이다. 철도경찰은 백 씨가 화차와 전기기관차를 연결하는 과정에서 업무상과실로 인해 열차가 분리됐고, 기차의 교통을 방해했다고 봤다.

업무상과실기차교통방해 관련 형법 조문

제186조(기차, 선박등의 교통방해)
궤도, 등대 또는 표지를 손괴하거나 기타 방법으로 기차, 전차, 자동차, 선박 또는 항공기의 교통을 방해한 자는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제189조(과실, 업무상과실, 중과실)
① 과실로 인하여 제185조 내지 제187조의 죄를 범한 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이에 대해서도 철도노조는 의문을 제기했다. 철도의 특성상 선로에서 열차가 멈춰서면 뒤따르는 열차가 줄줄이 지연될 수밖에 없는데, 열차 지연이 발생할 때마다 철도경찰이 나서서 수사를 할 거냐는 것이다.

현행 철도안전법에 따르면, ‘철도사고’는 “철도운영 또는 철도시설관리와 관련하여 사람이 죽거나 다치거나 물건이 파손되는 사고”이다. 청량리역에서 일어난 열차분리 사건의 경우 ‘운행장애’로 규정되는데, 운행장애란 “철도차량의 운행에 지장을 주는 것으로서 철도사고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것”을 말한다. 또, 이 법에 따라 철도사고가 발생하면 사고조사는 ‘항공·철도 사고조사 위원회’에서 맡는다.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의 사고조사 범위

항공·철도 사고조사에 관한 법률 제2조(정의)
①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6. “철도사고”란 철도(도시철도를 포함한다. 이하 같다)에서 철도차량 또는 열차의 운행 중에 사람의 사상이나 물자의 파손이 발생한 사고로서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고를 말한다.
가. 열차의 충돌 또는 탈선사고
나. 철도차량 또는 열차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운행을 중지시킨 사고

 

 ⓒ 이현석 객원기자 175studio@gmail.com
‘과잉수사’ 논란… 철도 현장의 심리적 위축 우려

이 같은 사실들을 종합하면, 철도노조와 철도경찰의 주장이 가장 크게 엇갈리는 부분은 열차 운행장애가 형법상, 그리고 ‘사법경찰관리의 직무를 수행할 자와 그 직무범위에 관한 법률’상 범죄에 해당하는지 여부다. 후자의 법률에 따르면, 철도경찰이 수사권을 갖는 부분은 “소속 관서 관할 구역인 철도시설 및 열차 안에서 발생하는 ‘철도안전법’에 규정된 범죄와 그 소속 관서 역 구내 및 열차 안에서의 범죄”에 한한다.

하지만 최근 철도경찰의 역할이 커지면서 철도사고나 운행장애에 대해 철도공사가 더 이상 쉬쉬할 수 없게 된 측면도 있다는 것이 철도공사 내부에서 들려오는 이야기이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도 현장에서 우려하고 있는 점은 심리적인 위축이다. 철도노동자들이 업무를 할 때의 구호는 ‘오늘도 무사히’라고 한다. 그만큼 현장에서 느끼는 사고에 대한 부담이 크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 철도노조 관계자는 단순 운행장애에도 철도경찰이 수사를 벌이는 일이 늘어나면서 현장의 분위기도 가라앉아 있다고 전했다.

작업 중 일어나는 안전사고에 대한 철도경찰 개입의 적정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철도종사자들 사이에서 묵직한 논쟁거리가 됐다. 특히 업무상과실기차교통방해 혐의로 철도경찰의 수사를 받았던 한 철도 수송원의 죽음으로 일어난 과잉수사 논란은 아직까지도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그런 가운데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가 ‘책임자 처벌과 과잉수사 중단시키기 위한 투쟁’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백 씨의 유족들 역시 이후 대책을 철도노조에 위임함에 따라 철도 수송원의 죽음을 둘러싼 논란은 지속될 전망이다.